113화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레온 선생의 호출이 있었다.
‘또 수련이 시작되는 건가. 오늘은 좀 컨디션이 영 아닌데.’
사실 어젯밤, 세오린 산의 갈등에 대한 문제로 밤잠을 설쳤다.
그리하여 피곤한 상태인 것이 당연했다.
가장 큰 고민은 역시나 달시에게 현재 세오린 마을의 상황을 알려야 하느냐 마느냐.
물론 지극히 정상적으로, 정의롭게 생각했을 때는 세오린 마을의 행태를 달시에게 고발하고, 그들의 악행을 뿌리 뽑는 것이 당연했다.
다만, 그렇다기엔 정작 피해자가 그것을 원치 않고 있었다.
거기다 나는 이 마을의 관련자도 아닌 단순한 이방인.
‘과연 피해자가 원치 않는데 사건에 개입해야 하는가’에 대한 딜레마가 하루 종일 머릿속을 맴돈 것이다.
“관두자. 어차피 나는 그저 외지인일 뿐이니까.”
나는 그게 맞는 판단이라 결론지었다.
결국 나는 영웅의 아티팩트만 찾으면 이 마을을 떠날 사람이었다.
물론 이곳의 마을 사람들의 행태는 참을 수 없고, 그들에게 괴롭힘당하는 세이피어 가문의 방계 사람들도 안쓰럽지만, 무엇보다도 피해자들이 원치 않는데 끼어드는 것은 도리가 아니었다.
‘이건 역시나 이곳의 당주인 달시의 과제일 뿐이야.’
외지인에 의한 변화는 의미 없었다.
결국 사회가 바뀌려면 내부에서부터 변화가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세오린 산의 갈등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관두기로 했다.
“그래도 레온 선생 밑에서 수련을 받으면 좀 잡생각이 사라지려나.”
몸이 힘들면 딴생각할 겨를이 없는 법이다.
그리하여 나는 오로지 오늘의 수련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수련이 중요한 것도 아니었네.”
생각해 보니 그랬다.
이 마을의 갈등도, 수련도 애초에 내가 여기 온 목적은 아니었다.
“빨리 아티팩트를 챙겨서 이 마을을 떠나자.”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그래도 수련을 받는다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단순히 원거리에서 공격하는 마법사들과 상대할 때는 무술이 그다지 의미 없었다.
다만, 일전에 만났던 클로버와 같이 근거리에서 전투해야 하는 상황일 때는 무술의 의미가 매우 클 것이다.
게다가 세이피어 가문은 세간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일컬어지는 무술 가문이니까.
그리하여 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수련에 임하기로 했다.
레온 선생이 나를 부른 곳은 다름 아닌 중림사 뒤편에 있는 폭포였다.
“오셨습니까, 제로 님.”
“예.”
어제도 느꼈지만, 나이가 지긋한 노인에게 존대로 대우받는 것은 기분이 묘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레온 선생이 낮게 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그의 목소리나 행동에서 느껴지는 기품 덕분에 절로 존경의 마음이 생기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이곳으로 부르신 이유가…….”
“사실 제로 님에게는 딱히 검술을 가르칠 생각은 없습니다. 이미 제로 님은 충분히 훌륭한 검술 스승님을 두신 것으로 보이거든요.”
“그런가요.”
내 검술을 높이 산다는 것은, 곧 아텔라 교수님을 높이 평가한다는 것.
나는 내가 칭찬받은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오늘 제가 가르칠 것은 다름 아닌 호흡법입니다.”
“호흡법이요? 번개의 호흡… 같은 건가요?”
“예?”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는 레온 선생.
나는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에 헛기침을 했다.
“흠흠… 호흡법이라면 보통 몸의 내공을 다스리는 거 아닌가요?”
호흡법이라는 것은 무협에서 많이 들어 본 용어였다.
보통 운기조식이라는 것을 통해 체내에 ‘기’를 생성하는 것.
‘그런데 이 세계에서의 기는 마나잖아.’
그리고 이곳 세오린 산은 체내의 마나를 억제한다.
그리하여 이곳에서는 마나를 운용하는 호흡법 같은 것이 존재할 리 없었다.
레온 선생은 이런 내 의문을 눈치챘는지 이내 설명하기 시작했다.
“호흡법은 마나를 다루는 게 아닙니다.”
“그럼요?”
“호흡법은 바로 정신의 단련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평정심과 집중을 잃지 않는 거죠. 혹시 명경지수라는 말 들어 보셨습니까?”
“명경지수라면… 흔들리지 않는 고요한 상태 말인가요?”
“예, 거울과도 같이 잔잔한 물을 의미하는 겁니다. 아무래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떤 무술을 사용하든 혹은 마법을 사용하든, 어느 상황에서라도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아무래도 레온 선생은 나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향의 수련을 알려 주고자 하는 듯했다.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러면 혹시 저 바위를 한번 목검으로 내리쳐 보시겠습니까?”
레온 선생은 들고 있던 목검을 나에게 건네더니 폭포 주변에 널려 있는 바위를 가리켰다.
그것을 본 나는 살짝 당황스러웠다.
“바위를 목검으로 내리치라는 건가요?”
“괜찮습니다. 이곳의 바위는 그리 단단한 편이 아니라서요. 밀도가 낮은 편이기에 목검으로도 충분합니다. 제가 먼저 시범을 보여 드리지요.”
그러더니 레온 선생은 폭포 주변의 바위 중 적당한 것을 하나 골랐다.
그리고 목검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고는 살짝 내리쳤다.
쩌저적.
그러자 한 번에 갈라지는 바윗돌.
나는 그 모습에 입을 쩍 벌렸다.
“어떻게 한 거예요?”
분명 레온 선생은 목검에 그다지 힘을 주지 않았다.
그저 천천히 내리쳤을 뿐이었다.
그런데 바위가 갈라지다니.
“한번 해 보시지요.”
레온 선생은 웃으면서 내게 권유했다.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적당한 바위를 골라 그 앞에 섰다.
“…진짜 이게 된다고?”
나는 조심스레 한번 중얼거리고는 잔뜩 기합을 넣었다.
“이랴아아앗!!”
퉁―!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내 목검은 바위에 부딪힌 후에 튕겨 나갈 뿐이었다.
그와 함께 손목이 매우 저려 왔다.
“아앗……!”
나는 목검을 바닥에 던지고는 저린 손을 다른 손으로 감쌌다.
그러자 레온 선생이 웃으며 말했다.
“그것은 힘으로 밀어붙이는 게 아니랍니다. 아까의 제가 힘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이셨나요?”
나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확실히 레온 선생은 바위를 천천히 내리쳤을 뿐이었다.
“그것이 바로 호흡법입니다. 호흡법은 단순히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뿐만 아니라 집중력도 높여 준답니다. 그리하여 목검의 검날에 고도로 집중하게 된다면 그 정도의 바위쯤이야 목검으로도 쉽게 가를 수 있는 것이지요.”
나는 레온 선생의 말이 믿기지가 않았다.
‘아무리 검날에 집중한다고 한들 힘을 주지 않고 바위를 벨 수 있다고……?’
다만 레온 선생은 이미 시범을 보였고, 이곳은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곳이기에 딱히 의심할 이유는 없었다.
“그럼 호흡법을 한번 시작하도록 하죠.”
그리하여 시작된 호흡법 수련.
방법은 간단했다.
레온 선생은 나에게 폭포 안에서 정좌를 취하라고 지시했고, 나는 상체를 탈의하고 떨어지는 폭포 한가운데에 들어갔다.
“첫 번째 단계는 머리를 비우는 것입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무의 상태로 돌입하는 거죠.”
무의 상태.
즉 제로의 상태.
그 말을 듣고는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니지, 아니야. 잡생각 하면 안 되는 거잖아.’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멈추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5분.
10분.
한 시간.
계속되는 폭포 수련.
그리고 어느덧, 머리 위로 떨어지는 폭포 소리에 점차 의식이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비로소 머릿속의 생각을 비우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야 이미 머릿속엔 생각이라는 게 비워진 상태였으니까.
그렇게 몇 시간 뒤, 나는 레온 선생의 호통에 의식을 되찾게 되었다.
“제로 님!!”
“어, 어라?”
비로소 몸에 감각이 되돌아오는 느낌.
매우 신기한 경험이었다.
“어떻게 된 거죠?”
“성공하셨습니다. 보통의 생도들은 며칠이 걸리는 것이 보통이고, 또 아예 적성에 맞으면 못 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는데 대단합니다.”
“성공한 건가요…….”
나도 조금 얼떨떨했다.
그만큼 머리를 비우고, 생각을 정지하고, 감각을 단절시켰던 느낌은 꽤나 신기한 경험이었다.
‘괜히 영화나 드라마에서 수련할 때 폭포 안에 들어가는 게 아니었잖아?’
머리 위에 떨어지는 폭포수가 명상에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폭포수의 차가운 온도와 머리를 짓누르는 듯한 압력, 그리고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게끔 머릿속에 쏴아아아 울려 퍼지는 폭포 소리까지.
덕분에 쉽게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았다.
나는 이윽고 폭포 밖으로 나왔다.
그러고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폭포 안에 들어갔을 때는 몰랐지만 밖으로 나오니 다소 춥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라……?”
갑자기 머리가 핑 돌기 시작했다.
눈앞이 흐려졌다.
곧 몸의 균형 감각을 잃고 바닥에 털썩 쓰러지고 말았다.
“…제…로… 님!!”
레온 선생이 뭐라 뭐라 소리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서서히 의식을 잃어 가고 있었다.
* * *
“으응……?”
눈을 뜨고 보이는 것은 건물의 천장.
나는 여기가 어딘가 싶어 조심스레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다.
“의원…인가?”
그제야 비로소 기억이 났다.
아무래도 나는 레온 선생과의 수련 이후 의식을 잃고 쓰러져 이곳으로 옮겨 온 모양이었다.
“일어나셨습니까?”
문을 열고 들어오는 노엘 선생의 목소리.
그는 손에 약탕 같은 것을 들고 있었다.
“이것을 마셔 보시지요.”
노엘 선생은 내가 상체를 일으키는 것을 도와준 뒤에 약탕을 한 숟가락 퍼서 입에 넣어 줬다.
뭔가 씁쓸한 맛이 났지만, 한 모금 마시니 온몸에 따뜻한 기운이 퍼져 가는 것이 느껴졌다.
“어떻게 된 거죠……?”
“호흡법의 수련 중에 의식을 잃으신 거죠. 생도들에게도 종종 벌어지는 일입니다.”
어쩐지 이러한 상황이 조금 익숙해 보이는 노엘 선생.
나는 그의 말에 살짝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런데 노엘의 얼굴을 보니 문득 머릿속에 드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혹시…….”
“예.”
“레온 선생과는 어떤 관계인가요?”
기분 탓이 아니었다.
길게 내려오는 백발의 노엘은 머리 스타일부터 외모까지 레온 선생과 비슷했다.
“레온 선생은 제 형님이십니다.”
“그런 거였군요.”
어쩐지 묘하게 닮았다고 생각했었다.
‘한쪽은 무술의 달인이고, 한쪽은 의술의 달인이라.’
참 다재다능한 형제였다.
그런데 문득 의원 안에서 코를 찌르는 악취가 느껴졌다.
“읏… 그나저나 이건 무슨 냄새인가요?”
“설마 느껴지시나요……?”
노엘 선생은 내 말에 순간 당황한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더니 이윽고 악취의 정체를 설명했다.
“약재를 달이고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노엘 선생은 냄새가 들어오지 않게끔 방문을 닫아 주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냄새가 여기까지 나진 않을 텐데… 아마 명상을 통해서 감각을 넓히신 것 같군요.”
“감각을… 넓혔다고요?”
“예. 종종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무의식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면, 더욱 자신의 신경에 집중할 수 있게 되고 그리하여 감각이 예민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감각이 예민해졌다라.
그것은 비단 후각만이 아니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뭔가 호흡을 내쉬는 게 달라진 듯한 느낌도 얼핏 들고 있었다.
‘이게 호흡법이라는 건가…….’
역시 이곳 사람들이 괜히 무술에 정진하는 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