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 * *
“크아아아아악!!”
술잔을 들이켠 레온 세이피어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경련을 일으켰다.
그리고 곧 쿨럭거리는 기침과 함께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노엘 세이피어는 다시금 술잔을 기울였다.
“술맛이 좋습니다, 형님.”
“너… 너 대체 이게 무슨… 쿨럭.”
레온은 제대로 말을 잇지도 못했다.
이윽고 계속해서 경련을 일으키던 레온은 술상 밖으로 나자빠졌다.
그리고 몸을 부들부들 떨 뿐이었다.
“첫 잔에는 비강을 막는 약을 탔습니다. 단숨에 코가 마비될 정도로 꽤나 효과적이지만 쉽게 눈치채지 못하는 녀석이지요.”
노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방금 전까지 레온이 마시던 술잔을 손에 잡은 뒤, 쓰러져 있는 레온의 코 부근에 가져다 대었다.
“마지막 잔에는 아무리 형님이라도 견뎌내지 못할 맹독을 탔습죠. 한번 향을 맡아 보시겠습니까?”
레온의 코 바로 앞에 놓인 술잔.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향기는 아까까지만 해도 마비된 후각 덕분에 느끼지 못했던 지독한 악취였다.
그리고 레온은 그 냄새가 어딘가 익숙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이 향은…….”
“눈치채셨습니까?”
노엘은 눈썹을 파르르 떠는 레온을 흘끔 내려다보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
“전 당주의 사망 당시, 형님께서 당주의 시체에서 악취가 난다고 하길래 살짝 식겁했습니다만. 나름 잘 처리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역시나 형님의 감각은 못 속이겠더라고요.”
“너 설마……. 네가… 죽인 것이냐…….”
“맞습니다. 특별히, 전 당주를 지극히 모시던 형님이신지라 같은 녀석으로 대접해 드렸습니다.”
“그… 그런……. 쿨럭…….”
또다시 피를 토하는 레온.
이윽고 부들부들 떨리던 몸이 힘을 잃더니, 레온의 머리가 추욱 수그러졌다.
“무려 10년이 걸렸습니다.”
전 당주는 엄청나게 강인한 신체를 가지고 있었다.
물리적으로는 절대 죽일 수 없음은 물론이거니와, 웬만한 독도 통하지 않을 만큼 만독불침에 가까운 신체였다.
따라서 전 당주를 죽이기로 카론과 함께 결심한 10년 전 그날.
그날부터 노엘은 매일같이 티가 나지 않는 독을 긁어모아 전 당주에게 복용시켰다.
그리하여 서서히 알 수 없는 이유의 병마를 앓게 된 전 당주.
그러나 그 사망 시기가 보름달의 타이밍과 어긋나, ‘계승’의 힘을 빼앗는 데는 실패했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들에게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마침 오늘은 3년에 한 번 찾아온다는 푸른 보름달의 밤.
노엘은 마침내 몸을 축 늘어뜨리고 죽어 버린 레온을 내려다보며 크게 소리쳤다.
“푸하하하하!! 곱게 가셔서 다행입니다, 형님! 당주에 대한 충정은 지옥에나 가서 지키시지요! 저는 이제 곧 이 세이피어 가문의 새로운 당주가 될 것입니다!!”
그런 노엘의 목소리가 달맞이 절벽에 메아리쳐 울렸다.
* * *
한편, 제로가 떠난 뒤.
세이피어 가문의 두 꼬맹이는 나무 뒤에 숨어 숨을 죽이고 있었다.
“…괜찮겠지, 포비?”
“걱정 마. 용사님이 꼭 괴물을 물리치실 거야.”
포비도 살짝 겁먹은 상태였다.
다만, 데이몬을 안심시키기 위해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그나저나 정말 괴물이 있는 거야?”
“용사님이 그렇다니까 그런 거겠지.”
“…그 사람, 용사 아니야.”
“용사님 맞거든!”
“증거 있어?”
“증거는…….”
포비는 잠시 말을 멈추고 골몰히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는 이윽고 입술을 다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용사는 용사야! 반드시 괴물을 무찌르고 오실 거야!”
그런데 그때,
부스럭.
숲속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포비는 재빨리 데이몬을 감싸 안고는 소리가 난 방향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곳은 어두운 탓에 잘 보이지 않고 있었다.
물론 하늘에는 푸른 보름달이 떠 있어 나름 시야가 훤히 보였지만, 그럼에도 나무에 가려진 그림자는 여전히 어두운 탓이었다.
“무슨 일이야?”
“쉿. 조용히 해.”
그다지 경계하지 않는 데이몬.
그런 그를 포비가 꾸짖었다.
그런데 그러한 경계심은 한발 늦은 모양이었다.
“여깄었구나. 꼬맹이들아.”
두 꼬마들을 향해 다가오는 사람의 그림자.
그리고 곧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다름 아닌 세이피어 가문의 생도 모비우스였다.
연병장에서도 몇 번 마주친 적 있었기에 꼬마들에게는 그리 낯선 인물이 아니었다.
“모비우스?”
익숙한 대머리의 얼굴에 안심한 데이몬은 그에게 다가서려 했다.
그런데 포비가 데이몬을 잡아당겼다.
“조심해! 용사님이 아무도 믿지 말랬잖아!”
“용사님? 누굴 말하는 거냐 꼬맹이들아? 설마 그 외지인 자식을 말하는 거냐? 푸하하핫!!”
모비우스는 꼬마들의 말을 한껏 비웃었다.
그리고 씨익 이빨을 드러내며 미소를 지었다.
“그깟 외지인 녀석의 말 따위를 듣고 있다고? 그런 것보다 자, 어서 가자. 당주님이 너희를 찾으시니깐.”
“달시 누나가?”
“소, 속지 마, 데이몬!”
별 의심 없는 데이몬과는 달리 포비는 매우 불안했다.
그녀는 제로의 말을 꼼짝없이 믿고 있었고, 그렇기에 아무리 세이피어의 먼 친척일지라도 믿을 수 없었다.
“다, 다가오지 마!”
“당주님이 급하게 찾으신다니까? 버릇없는 꼬맹이들이네.”
서서히 한 발짝, 한 발짝 다가서는 모비우스.
포비는 데이몬을 안은 채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다.
그런데 그때,
촤아아악!
다가온 모비우스가 손을 뻗더니 두 꼬마의 옷깃을 낚아챘다.
“잡았다. 꼬맹이들아.”
“이, 이거 놔! 뭐 하는 거야?”
“여, 역시! 달시 언니가 부른다는 건 거짓말이죠?!”
“아냐, 진짜야. 당주님이 너희를 찾고 계신다니깐?”
모비우스는 허공에서 아등바등하는 두 꼬맹이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씨익 웃었다.
“…세이피어 가문의 ‘새로운 당주님’이 말이지.”
그 모습에 포비와 데이몬은 침을 꿀꺽 삼켰다.
* * *
급하게 달맞이 절벽으로 뛰어간 나는, 그곳에서 쓰러져 있는 레온 선생과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술잔을 넘기고 있는 노엘 선생을 발견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응? 뭐냐. 넌. 한창 술맛이 좋아지려 했는데.”
나는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이미 쓰러진 레온 선생의 주변은 토사물과 피로 가득했다.
게다가 노엘 선생은 평소의 경어를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나를 매우 깔보는 듯한 표정으로 째려볼 뿐이었다.
“설마 당신이 그런 거야……? 당신들 형제잖아!”
“아아, 형제는 맞지. 레온 형님은 참 좋은 형이었어.”
“그런데 도대체 왜 이런 거야!!”
“형님은 지나치게 올곧은 분이셨다. 그리고 그 지나친 성품 탓에 스스로 세이피어 가문의 개가 되고 만 것이야.”
“개라니…….”
어떻게 자신의 형을 개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지?
나는 갑작스레 일어난 상황에 너무 혼란스러웠다.
“사람이 어찌 개로 살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내가 죽였다. 형님도 그리고 전 당주도 내가 죽였다 이 말이다!”
크하하하하!
고개를 치켜들고 웃는 노엘 선생.
얼굴에 살짝 홍조가 도는 것을 보니 꽤나 술에 취한 모양이었다.
“너 이 자식…….”
나는 일단 쓰러져 있는 레온 선생에게로 재빨리 다가가 상태를 살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레온 선생은 숨을 쉬지 않고 있었다.
“독인가……? 설마 이 악취는…….”
레온 선생 옆에 떨어져 있는 잔에서 느껴지는 심각한 수준의 악취.
그리고 그 냄새가 어딘가 익숙했다.
“저번에 그 악취잖아…….”
“크하하하! 맞다! 독을 끓이는 걸 눈치챘을 때는 살짝 식겁했었지.”
레온 선생의 몸에 올려진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지금껏 이 세계에 온 이후로 처음 겪는 누군가의 죽음.
비록 안 지는 고작 일주일이 넘었을 뿐인 짧은 기간이었지만, 레온 선생은 성심성의를 다해 나를 가르쳐 준 나의 스승님이었다.
“너 이 자식…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다.”
“호오. 말은 번지르르하구나. 네 녀석이 뭘 할 수 있다는 것이지?”
녀석을 당장이라도 쳐 죽이고 싶었다.
분노로 머릿속이 타올랐다.
그러나 조금 냉정해질 필요가 있었다.
나는 이내 심호흡을 내쉬었다.
‘호흡법’.
레온 선생이 가르쳐 준 그 호흡법이 나에게서 침착함을 불러오고 있었다.
‘냉정하게 내가 저 녀석을 이길 수 있을까?’
아니, 무리였다.
노엘은 세이피어 가문의 대가 레온 선생의 동생.
필시 레온 선생에 필적하는 무술을 익혔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 당장은 녀석을 이길 수 없다.’
이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리고 나는 쓰러져 있는 레온 선생의 얼굴을 잠시 훑었다.
‘레온 스승님… 감사합니다.’
당신이 가르쳐 준 호흡법이 없었더라면, 나는 지금쯤 앞뒤 안 가리고 저 괴물에게 달려들었겠지.
지금의 냉정함 또한 레온 선생 덕분이었다.
‘일단은 달시와 합류해서 상황을 알리고 대처하자.’
침착하게 판단하자면 마법을 쓸 수 없는 지금 상황에서 세이피어 가문의 장로인 노엘을 상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게다가 두고 온 꼬마 녀석들도 걱정되었다.
당장은 물러서야 할 때.
그리하여 나는 이내 반대쪽으로 뛸 준비를 취했다.
그러나 녀석의 동작이 좀 더 빨랐다.
이내 술상에서 높이 도약하는 노엘.
노엘의 민첩한 발차기가 내 등을 찍어 내렸다.
퍼어어억!
“크으윽…….”
내 몸은 그대로 바닥을 구르게 되었다.
“도망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나? 사실상 세이피어 가문의 ‘무술의 대가’가 없어진 지금, 그 칭호는 이제 내 몫이란 말이다.”
뚜벅뚜벅 걸어오는 노엘.
역시 녀석은 의술뿐만 아니라 무술 또한 수준급이었다.
‘빠르게 판단하자.’
나는 잠시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 눈을 감은 찰나의 순간.
나는 그 속에서 도박 수 하나를 생각해 냈다.
‘어차피 이 녀석에겐 도망칠 수 없다. 이게 최선이야.’
그리고 이어지는 동작.
“으아아아아!!”
순식간에 일어선 나는 기합과 함께 절벽의 끝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갑자기 시작된 내 미친 행동에 노엘은 딱히 막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쯧쯧. 절벽으로 몸을 던지기라도 할 생각이더냐? 소용없다. 그곳에서 떨어지면 아무리 무인이라 할지라도 즉사다. 그냥 순순히 포기하는 게 좋을…….”
그러나 노엘은 이어지는 내 모습에 말을 잇지 못했다.
내 발이 멈추지 않고 그대로 높다란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기 때문이었다.
* * *
“이거 놔!!”
포비가 몸을 열심히 움직여서 뒤척여 보았지만, 모비우스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애초에 온몸이 근육질로 이루어진 세이피어 가문의 생도를 고작 꼬마 둘이 뿌리칠 방법이라곤 없었다.
안간힘을 쓰는 꼬마 둘을 보며 피식피식 비웃음을 내뱉는 모비우스.
“그런다고 될 거 같냐? 이대로 곱게 따라오기나 해.”
“치이잇……!”
그런데 그때.
포비가 자신을 감싼 모비우스의 팔뚝을 있는 힘껏 물어뜯었다.
“아아아아악!”
모비우스는 그 고통에 크게 비명을 내지르고는 이내 한 손으로 잡고 있던 포비를 있는 힘껏 바닥에 내팽개쳤다.
콰아아아앙!
바닥에 던져진 포비는 잠시 꿈틀거리더니 이내 추욱 늘어졌다.
아무리 세이피어 가문의 후계자라고는 하지만 고작 어린아이였을 뿐.
당연히 모비우스의 거센 힘을 견딜 수 있을 리 없었다.
“쪼끄마한 게 어딜 감히…….”
모비우스는 잠시 잡고 있던 데이몬을 내려놓고는 물린 팔을 쓰다듬었다.
얼마나 세게 물었는지 팔뚝에는 이빨 자국이 선명했다.
“포비……!!”
풀려난 데이몬은 황급히 달려가 포비의 몸을 살폈다.
그러나 이미 포비는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어이, 꼬맹아. 너도 덤빌 거냐?”
“오, 오지 마……!”
“어디 한번 저 여자애처럼 발버둥 쳐 보지 그래?”
모비우스는 이내 쓰러진 포비를 감싸고 있는 데이몬을 향해 한 발짝, 한 발짝 다가섰다.
잔뜩 겁먹은 데이몬은 그저 모비우스를 올려다본 채 그 자리에서 덜덜 떨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겁쟁이였다.
포비처럼 맞서 싸울 용기도, 달시 같은 힘도 없었다.
이윽고 데이몬의 눈물샘이 터져 버렸다.
“으아아아앙!!”
“꼴사납게 우는 건가? 그래 지금 실컷 울어 두라고. 어차피 곧 너희들은 죽은 목숨이니까.”
모비우스의 다가오는 손을 보며 데이몬이 할 수 있는 건 이제 오직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하여 데이몬은 눈을 질끈 감고 목이 터져라 외쳤다.
“용사님……! 도와줘!!”
데이몬은 지금껏 제로가 용사인 것을 부정했다.
그야 그는 본인이 상상하던 용사와는 전혀 달랐으니까.
그러나 이 최후의 순간.
오직 데이몬이 의지할 것은 그 ‘용사님’뿐이었다.
그리고,
“뭐, 뭐냐……?”
갑자기 하늘 위에서 떨어지는 무언가.
모비우스가 그 정체를 파악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것은 데이몬에게 다가서던 모비우스의 머리 위를 그대로 깔아뭉개며 낙하했다.
쿠우우우웅!!
“휴우…….”
한숨을 내쉬며 로브를 펄럭이는 남자.
“용사, 등장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제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