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 * *
조금 전.
나는 노엘을 뒤로한 채 그대로 달맞이 절벽에서 뛰어내렸다.
“으아아아아악!!”
애초에 달렸을 때부터, 절벽 아래를 확인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 도박은 목숨을 걸지 않는 이상 성사되지 않을 테니까.
바람이 안면을 강타하고, 머리엔 피가 쏠렸다.
그러나 지난 수련의 덕분인 건지, 정신은 아까보다도 더 뚜렷했다.
이내 나는 눈을 감고 목청껏 기합을 토해냈다.
“크으으… 아아아아아!!”
동시에 온몸에서 파직 파지직 튀는 마나.
세오린 산의 마나 억제에 짓눌렸던 마나가 조금씩 피부를 뚫고 나오려 하고 있었다.
“아아아아악!!”
나는 이를 꽉 깨물고 좀 더 집중했다.
얼마나 세게 물었는지 입술에 피가 날 지경이었다.
그러나 나는 멈추지 않았다.
오로지 마나를 발산하는 데만 집중했다.
파직―!
파지직―!
조금씩.
또 서서히.
세오린 산의 마나 억제에 의해 억눌렸던 체내의 마나가 폭발하고 있었다.
떨어진 지 몇 초가 흘렀는지도.
곧 지면에 부딪혀 박살 날지 모른다는 사실도.
모든 잡념은 전부 내 머릿속에서 비워진 지 오래였다.
나는 그저 비워 낸 흰 공간 위에 검은 점 하나를 찍을 뿐이었다.
이윽고.
내 귀에 들려오는 데이몬의 목소리.
“용사님……! 도와줘!!”
동시에 내 몸이 지면으로 추락했다.
쿠우우우웅!
높다란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을 때만큼의 충격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나 높은 곳에 포탈의 위치가 생성되었는지 상당한 충격이 느껴졌다.
그런 내 아래에는 사람이 한 명 깔려 있었다.
다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두 꼬마의 안위였다.
나는 나를 보고 눈물을 글썽이는 데이몬에게 씨익 미소를 보였다.
“미안, 늦었지.”
그러고는 빠르게 주위를 살폈다.
울고 있는 데이몬.
의식을 잃은 채 데이몬의 품속에 추욱 늘어져 있는 포비.
그리고 내 아래에 깔려 정신을 잃은 대머리까지.
“설마 이 대머리가 그런 거야?”
나는 일단 기절한 대머리는 뒤로한 채, 울고 있는 데이몬에게로 달려가 포비의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도 포비는 의식을 잃었을 뿐, 별다른 외상은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야?”
“저… 모비우스가… 훌쩍… 포비를…….”
데이몬은 울먹이며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들을 나열했다.
다만 나는 곧 사건의 진위를 파악할 수 있었다.
“역시 이 대머리가 너희를 공격한 건가.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상황을 정리하자면, 노엘이 레온 선생을 독살했다.
그리고 일주일 전 나와 대련했었던 저 대머리, 모비우스가 꼬맹이들을 노렸다.
“반역이라도 일어난 건가. 응? 반역? 잠깐만…….”
나는 불현듯 예전에 이 두 꼬맹이에게서 들었던 말과 카론의 말들이 떠올랐다.
“분명, 보름달이 뜨면 ‘계승’의 힘을 빼앗을 수 있다고 했잖아.”
아까 전 노엘이 지껄이던 것도 그렇고, 녀석들이 노리는 것은 다름 아닌 세이피어 가문의 ‘계승’의 힘인 것으로 보였다.
게다가 애초에 세이피어 가문의 후계자인 두 꼬마를 노리고, 세이피어 가문의 최대 전력인 레온 선생을 노린 것을 보면, 이번 반란은 상당히 계획적인 것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그때,
콰아아아아앙!
중림사 쪽에서 큰 굉음이 울려 퍼졌다.
아무래도 중림사 안에서도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젠장… 달시 쪽인가……?”
그러고 보니 아까 전 인원들이 중림사 쪽으로 향한 것도 그렇고, 달시 쪽에 뭔가 큰 문제가 생긴 게 분명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당주는 어쨌든 ‘계승’의 힘을 가지고 있잖아?”
아무리 이곳에서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다 한들.
‘저주의 낙인’이 발동되는 것처럼 ‘계승’의 힘도 발동될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다면 방계 사람들이 당주의 말을 순순히 들을 이유와 통제력이 없을 테니까.
그런 내 혼잣말을 듣고는 데이몬이 한마디를 툭 던졌다.
“보름달이 뜨는 날은 계승의 힘을 못 써.”
“…그런 건가.”
그리하여 녀석들은 이 보름달이 뜨는 시기에 반역의 계획을 세운 걸 테지.
너무나도 완벽한 시기와 계획이었다.
나는 곧바로 카론을 떠올렸다.
세이피어 가문에 굉장히 원한이 깊어 보였던 카론.
필시 그가 이번 반란의 주동자이리라.
나는 이내 심호흡을 한 번 내쉬고는 천천히 머리를 회전했다.
‘지금 내가 달시와 합류한다고 해서 달라질 게 있을까?’
아니다.
아무리 내가 합류한다고 한들 이곳 세이피어 가문의 무술인 여럿을 상대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당장 노엘만 하더라도 그를 견뎌 낼 수 있을 자는 아마 이곳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윽고 나는 판단을 내리고는 중얼거렸다.
“…달시 녀석은 충분히 강하니까.”
녀석은 충분히 버텨 줄 것이다.
애초에 내가 합류한다고 한들 거기에 큰 전력 차는 없을 게 분명했다.
그리하여 내가 내린 결론은…….
“데이몬.”
“응…….”
“마나 봉인의 동굴. 어디 있는지 알아?”
“응.”
“당장 거기로 안내해 줘.”
이것이 내가 내린 최선의 판단이었다.
* * *
달시를 둘러싼 가문의 사람들.
그 모습에 달시는 살짝 근육을 긴장시켰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다들.”
그러나 아직까지 달시의 목소리에는 여유가 있었다.
그리고 그 여유로운 모습에 카론이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된 일이긴요. 이제 당신들의 왕조는 끝났다는 것이지요.”
현재 세이피어 가문의 최대 전력 레온 선생은 달맞이 절벽에서 노엘 선생에 의해 독살이 계획되어 있었다.
그리고 방계 사람들 중에서도 직계를 따르는 자들은 현재 중림사 아래의 마을 사람들을 막기 위해 투입되어 있었다.
지금 이 중림사에 있는 것은 오직 당주인 달시 세이피어, 그리고 반란을 일으킨 방계 소속 사람들뿐이었다.
“보름달이 뜨면 당주는 ‘계승’의 힘을 쓰지 못하지요. 그렇다면 당신은 그저 일개 세이피어 가문의 생도만도 못한 꼬마일 뿐입니다.”
카론은 그들을 견제하는 자세를 취한 달시를 한껏 비웃었다.
계승의 힘도 사용 못 하는 녀석이 버텨 봤자 얼마나 버티겠냐는 생각이었다.
“그럼……. 이제 그만 죽으시죠.”
말을 마치자마자 카론은 손짓으로 인원들을 보냈다.
순식간에 달시에게 달려드는 방계 소속의 인원들.
각자의 손에는 각각 칼과 창, 방패가 들려 있었다.
달려드는 방계 인원들의 모습을 좌시하던 달시는 잠깐 자세를 낮추더니,
팟!
중림사 건물의 지붕 위로 도약했다.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이곳에서, 가히 놀라울 정도의 신체 능력이었다.
“과연, 그래도 당주를 허투루 달진 않았다는 건가요.”
이윽고 방계 소속 사람들도 달시를 잡기 위해 기둥을 잡고 지붕 위로 올라갔다.
그런데,
퍼어어어억!!
지붕 위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달시가 올라오는 녀석들을 발로 뻥뻥 차며 떨어트렸다.
“어디 한번 해 보시지!”
아직까지 달시는 여유가 있었다.
다만, 현재 제로와 동생들의 위치가 파악되지 않고 있었고, 게다가 남은 인원들이 몇이나 될지 알 수 없었기에, 한편으로는 불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부탁한다. 제로.’
달시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생각했다.
지금은 동생들과 함께 있을 제로를 믿으며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 * *
‘마나 봉인의 동굴’은 세오린 산 중턱쯤에 있었다.
다행히도 원래의 장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나는 아직 기절해 있는 포비를 등에 업은 채, 데이몬의 뒤를 쫓았다.
그리고 곧 ‘마나 봉인의 동굴’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 후 나는 포비를 조심스레 바닥에 내려놓은 채 온몸을 스트레칭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데이몬은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여긴 왜……?”
“뭐야, 너 그것도 모르고 안내한 거였어?”
나는 그런 데이몬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었다.
“당연히, 봉인을 해제하러 왔지.”
“마나 봉인을 해제한다고……? 그건 무리야!”
말이 안 된다며 펄쩍 뛰는 데이몬.
그도 그럴 것이 동굴을 가로막는 거대한 바위는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돌파하기 힘들어 보였다.
“확실히, 무리는 맞는 것 같네.”
아무래도 이 마나 봉인의 동굴을 설계한 인간은 ‘계승’의 힘을 사용해서 저 바위를 옮겨 놓은 거겠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마을을 마법이 없는 장소, 그것도 본인만이 고유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장소로 만들었는지는 모르겠다.
혹시나 해서 있는 힘껏 바위를 밀어 보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거중기나 크레인을 사용하지 않는 이상, 사람 몇십 명이 달라붙어도 저 바위는 옮기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나도 다 생각이 있었다.
“어이, 꼬맹이.”
“응?”
“지금부터 잘 봐 두라고.”
파직―!
파지직―!
이내 내 몸에서는 스파크가 튀고 있었다.
“‘용사의 방식’을 말이지.”
“뭐, 뭐야, 지금?! 마법을 사용하는 거야?!”
내 몸에서 조금씩, 서서히 빠져나오는 백색 마나.
미세한 반응이지만 분명 육안으로도 확인될 정도로 계속해서 방출되고 있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해?!”
놀란 데이몬을 뒤로한 채, 나는 씨익 미소를 짓고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사실 이곳에 오기 전부터 든 의문이었다.
애초에 ‘마법 자체를 금지하는 마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생각한 가설은 이 산이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게끔 하는 것이 아니라, 마법사의 체내에 있는 마나를 방출 못 하게끔 억제하고 있다는 것.
예전에 달시, 루비와 한번 경험했던 던전과 비슷한 구조라고 생각했었다.
그렇다면, 보통의 마법사와는 달리 마나량이 월등히 많은 나는 그 제한을 뚫고 마법을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그러나 이곳에 온 이후로 몇 번 시도해 봤을 때, 분명 마나는 방출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체내에 입는 손상이 매우 컸고 마나량도 마법을 사용할 수 없을 정도의 수준 미달이었다.
그래서 이곳에 있는 일주일 동안은 딱히 마나를 사용할 시도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한 번 성공했으니까.’
아까 전 달맞이 절벽에서 한 도박 수.
온몸을 극한 상태로 내몰아 마법을 사용하겠다는 무모한 생각에서 착안한 무모한 행동.
결국 그것은 성공했고 나는 ‘버밀리온의 로브’를 발동하여 두 꼬마에게 이동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또다시 내 한계를 부수려 하고 있었다.
“쿨럭.”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아무래도 온몸이 과부하 상태인 거겠지.
다만, 나는 여기서 멈출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머뭇거리다간 달시 녀석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죽을 각오를 다해 정신 집중에 임했다.
파직―!
파지직―!
계속해서 내 몸에서 용솟음치는 백색 마나.
그것들은 조금씩 마나 억제를 뚫고 나와 내 오른손에 모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힘내, 용사님!!”
데이몬이 갑자기 나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응.”
언제까지 이 녀석들 앞에서 용사 노릇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다.
다만, 단정할 수는 있었다.
지금의 나는 확실히 ‘용사’에 가까웠다.
“크아아아아악!!”
이내 내 오른손에서는 거세게 마나가 소용돌이쳤다.
세오린 산의 마나 억제를 뚫고 끝끝내 모이게 된 거대한 양의 마나 집합체.
그리고 나는,
“고출력―!!”
그것을 동굴을 막고 있는 바위를 향해 쏘아 냈다.
“―매직 미사일!!”
순식간에 날아가는 거대한 크기의 마나 구체.
그리고,
콰과과과과과광―!!
그것은 동굴의 바위를 무너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