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콰과과과광!!
산속에서 들려오는 커다란 굉음.
그와 동시에 달시의 몸에서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이건… 설마 제로?”
갑자기 발동하고 있는 상시 강화의 마법.
분명 이것의 의미는 마나 봉인의 동굴이 해제되었다는 뜻이었고, 그것을 할 만한 사람은 그녀가 알기로는 제로밖에 없었다.
이내 달시 세이피어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믿고 있었다고.”
사실 그녀는 지금 수세에 몰리고 있었다.
아무리 버밀리온의 협회장 밑에서 단련을 해 왔다지만, 결국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평범한 인간의 몸으로는 건장한 무술인 여럿을 상대하기에 무리가 있을 수밖에.
따라서 지금껏 중림사 건물의 지붕을 타고 도망치기에 급급했던 달시였다.
그러나 이제는 전황이 완전히 뒤바뀐 것이다.
“어, 어떻게 된 거지?”
“이 감각은?!”
“설마 세오린 산의 마나 봉인이 해제된 것인가?!”
그녀를 뒤쫓아 지붕 위를 펄쩍펄쩍 뛰어넘던 방계 사람들이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다.
그들도 방금 일어난 이변을, 공기의 흐름과 변화를 눈치챈 것이다.
다만, 그렇다기엔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이미 그들이 일으킨 반란의 선택지는 성공과 실패, 두 가지밖에 남지 않았다.
“자, 다시 덤벼 보시지?”
갑자기 여유가 생긴 달시는 당황한 모습을 보이는 녀석들에게 한껏 도발했다.
“그, 그래 봤자 고작 어린애 하나일 뿐이다!”
“다들 강화 마법을 사용해라!! 세오린 산의 마나 봉인이 풀렸다!”
“강화 이후에 다시 돌격해라!!”
순식간에 방계 사람들은 신체 강화의 고유 마법을 시전하였고, 그와 동시에 푸른빛이 뿜어져 나왔다.
밤하늘에 밝게 떠 있는 푸른 달과 함께 주변이 파랗게 물들기 시작했다.
달시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지 않았다.
이내 그녀는 자신의 목에 걸린 초승달 장식을 힘껏 떼어 냈다.
그러자 목줄이 스르르 빠지더니 그녀의 손에 초승달 모양의 돌이 쥐어졌다.
동시에 달시는 주문을 외웠다.
「루나 뤼나(lūna ruína)!」
우우우웅―!
순식간에 그녀의 손에 들려 있던 초승달의 장식이 무언가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다름 아닌 ‘언월도’였다.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카론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런 고유 마법이 있었다고?”
세이피어의 고유 마법은 두 가지.
단순한 신체 강화의 마법과 계승을 통해 사용할 수 있는 ‘계승’의 힘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달시가 보여 주는 고유 마법은 제3의 고유 마법.
무언가를 강화하여 무기로 변환시키는 강화계 마법이었다.
분명 무기 변환은 강화계 마법의 범주 안에 드는 고유 마법이었지만, 애초에 세이피어 가문 출신이 저런 고유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그러고 보니.’
카론은 예전에 ‘영웅 세이피어’의 옛 자료를 읽었던 기억에서, 세이피어 가문의 무기 변환 마법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던 것이 생각났다.
그것은 바로 ‘월석(月石)’을 무기로 바꾸는 고유 마법, ‘달의 몰락’.
다만, 애초에 지금껏 그 ‘달의 몰락’을 사용할 수 있는 세이피어 가문 출신은 매우 소수였다.
심지어는 매우 강력했다고 알려진 전대 당주 조차도 ‘달의 몰락’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그 내용을 고서에서 한번 확인했던 카론이 지금껏 잊고 있던 것.
그런데 지금의 당주는 멀쩡히 그 ‘달의 몰락’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저것 때문에 전 당주가 자기 딸을 외부에서 키워 낸 것이었나.”
지금의 당주가 저 ‘달의 몰락’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그러한 이유인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곳 세오린 산에서는 아무래도 마나 봉인 때문에 제대로 된 마법을 사용할 수 없을 테니까.
달시의 손에 들려 있는 푸른 언월도는 그녀의 키를 훌쩍 뛰어넘는 길이였다.
그런데도 달시는 매우 익숙하다는 듯 능수능란하게 언월도를 온몸으로 빙빙 돌리고 있었다.
“어디 들어와 보시지!”
큰 목소리로 호령하는 달시.
지금껏 도망만 치던 것과는 다르게 매우 자신 있어 보였다.
“쫄지 마라! 그래 봤자 상대는 하나다! 다들 공격해라!!”
카론은 이내 큰 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방계 소속의 무인들이 일제히 그녀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신체 강화 마법을 적용받은 그들이라 몸놀림이 일반적인 인간의 신체 한계를 뛰어넘고 있었다. 때문에 그들 스스로도 매우 자신이 있는 부분이었다.
다만, 그래 봤자였다.
촤아아아악!
크게 반원을 그리는 언월도.
그와 동시에 달려들던 인원들이 언월도에 쓸려 나갔다.
“크어어어억!!”
“크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삽시간에 지붕 아래로 떨어지는 무인들.
남은 인원들은 그런 동료의 모습을 보고는 쉽사리 접근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기다란 봉 끝에 반달 모양의 검이 달린 언월도.
애초에 무기 자체의 사정거리가 매우 길어, 웬만해서는 접근조차 용납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더 이상 무인들의 싸움이 아니었다.
이제 전투의 양상은 마법사와 마법사의 싸움이 된 것.
결국 그들보다도 더 강력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달시가 우위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예상 못 한 변수네요.”
카론은 의기양양한 달시의 모습을 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다만 아직 끝난 것은 아니었다.
짝짝짝―!
카론은 이내 지붕 위로 도약하여 달시를 향해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러고는 달시 세이피어와 마주 보았다.
달시는 그런 카론에게 언월도의 창날 끝을 겨눌 뿐이었다.
“훌륭하군요.”
“너 혼자 이번 일을 주도한 거야?”
“아뇨, 노엘 선생도 함께한 일입니다.”
“노엘 선생도 연루되어 있다고……?”
노엘 선생은 달시가 어렸을 때부터 그녀를 예뻐해 줬던 사람.
거의 달시의 친할아버지와도 같은 존재였다.
그런 사람이 이번 일을 계획했다니…….
“그뿐만 아니라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가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당신 곁에 있던 사람들입니다. 조금 느껴지는 게 있을 텐데요.”
“왜 이런 짓을 벌인 거야.”
“그야 당신들이 저희를 이 지경으로 내몬 탓이지요. 모든 건 당신 아버지, 전대 당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아버지 때문이라고……?”
달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카론은 친절히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
“최근 들어 마을 사람들을 설득하려는 움직임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마 마을과 저희의 관계를 눈치채신 모양이지요. 그런데 그것이 전 당주 때문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까? 그가 이 마을의 갈등을 심화시키고 발화시킨 원인입니다.”
그 말에 달시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설령 네 말이 옳다고 해도, 지금부터 변화하면 되는 거 아니야? 굳이 싸울 이유는 없는 거잖아.”
“아뇨.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아무리 당신이 노력한다 해도 이 마을의 기이한 문화는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게다가 고작 그런 걸로는 용서받지 못하는 게 당연합니다. 당신은 당신 아버지의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요!!”
점점 감정을 드러내는 카론.
그런데 그때,
“어이.”
누군가가 갑자기 그의 뒤에서 나타났다.
카론은 전혀 기척도 느끼지 못했는데 뒤에서 튀어나온 그 누군가의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황급히 몸을 돌렸다.
“그래서. 그게 마을 사람들과 뭐가 다른 건데?”
그리고 그것은 다름 아닌 제로였다.
* * *
나는 노엘을 처치한 이후에 두 꼬맹이를 데리고 중림사의 외곽으로 순간 이동했다.
그러고는 데이몬에게 포비를 맡기고 다시금 순간 이동하여 달시와 카론이 대치 중인 곳에 합류했다.
그런데 점멸을 사용하자마자 들려오는 카론의 말에 어이가 없어진 것이다.
“저 마을 사람들이 귀족을 싫어하는 것이 연좌제를 묻는 것이라며, 너의 행동 목적도 연좌제와 다를 바 없어 보이는데?”
“아뇨, 다릅니다. 세오린 마을의 사람들은 실제로 권력을 사용한 적도 없는 저희에게 귀족이라는 이유로 화풀이하는 것이고, 달시 세이피어는 엄연히 전 당주의 딸입니다. 우린 지금의 당주에게 죄를 물을 자격이 충분합니다.”
“그래서 뭐?”
“예?”
카론은 살짝 당황한 듯 되물었다.
어쨌든 이 녀석은 적어도 지금 당장 나에게는 적대심이 없는 듯했다.
나는 이내 말을 이었다.
“그게 바로 연좌제야. 같은 신분이라는 이유만으로 죄를 묻든, 혈육이라는 이유만으로 죄를 묻든 다를 게 없는 거라고.”
모순이었다.
누구보다도 마을 사람들의 행위를 경멸하는 사람이, 똑같은 짓을 반복하려 하다니.
분명 달시는 노력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벌여 놓은 일이라는 진실은 알지 못했지만, 어쨌든 지금의 현상을 바꾸려고 앞장섰던 그녀였다.
그런데 이들은 그런 달시의 입장은 무시한 채.
그저 전 당주의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달시를 죽이고 그녀에게서 ‘계승’의 힘을 뺏으려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 계승의 힘을 뺏으려면 ‘키스’를 해야 한다 했었지?”
그런 걸 위해 뭉쳤다니.
참으로 최악이었다.
“외지인이 참견할 생각 마시죠!”
이내 카론은 내 말에 반박하지 못하고 도리어 화를 냈다.
그러고는 내 쪽으로 주먹을 내질렀다.
팟!
나는 동시에 점멸을 사용해 달시의 옆으로 이동했다.
카론은 조금 어리둥절한 모양이었다.
반면 나는 카론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달시의 어깨 위에 손을 툭 얹었다.
“괜찮아?”
달시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응. 포비와 데이몬은?”
“안전한 곳에 두고 왔어. 괜찮아.”
“고마워.”
“그나저나 멋진 무기네.”
달시가 들고 있는 언월도는 그녀의 몸집보다도 훨씬 길었다.
나름 그녀의 전투 스타일과도 어울리는 듯했다.
“그럼 저 녀석이 이제 끝이겠지.”
노엘은 이미 처리했다.
남은 것은 카론 하나.
다만 나는 굳이 레온의 죽음을 달시에게 알리지 않았다.
애도는 모든 일이 끝나고 나서 해도 충분하니까.
“큭.”
갑자기 카론이 고개를 숙이더니 웃었다.
그러고는 갑자기 고개를 팍 젖히더니,
“크하하하하하하!!”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갑자기 녀석의 몸을 감싸는 푸른 기운.
‘강화계 마법인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나는 이내 매직 미사일을 충전했다.
달시도 또한 녀석에게 달려들 준비를 끝마쳤다.
그런데 녀석의 몸이 심상치 않았다.
녀석의 몸을 감싸는 건 비단 푸른 마나뿐만이 아니었다.
육안에도 보일 정도의 거대한 검은 마나가 그의 주변에 휘몰아치고 있는 것이었다.
“…마기? 마인화?!”
분명 녀석의 몸에서 나오고 있는 것은 검은 마나.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마기가 지금 카론에게서 뿜어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여긴 지금껏 마나를 억제해 온 세오린 산이잖아……?”
애초에 마기 같은 것이 존재할 구석이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저 카론이 마기를 사용하여 마인화를 할 수 있는 것인가?
그러나 혼란도 잠시, 나는 곧바로 녀석에게로 완충된 매직 미사일을 날렸다.
콰아아아아앙―!
검은 마기에 직격하는 매직 미사일.
그러나 그 거대한 마기의 흐름을 뚫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고출력 매직 미사일이 안 통한다고?”
이윽고 검은 마기의 장막이 걷히고 나서 보이는 것은 다름 아닌 기이한 모습을 하고 있는 카론이었다.
마치 에일리언 같은 모습.
얼굴을 제외한 온몸이 검은 껍질에 덮여 있었고, 등에는 거대한 꼬리 같은 게 살랑이고 있었다.
그 모습은 적어도 인간의 모습은 아니었다.
“…지네?”
그것이 녀석의 마인화를 본 내 감상평이었다.
녀석의 등에서 살랑거리는 꼬리는 마치 지네의 꼬리와도 같은 형상이었다.
나는 침착하게 녀석에게 물었다.
“어떻게 마인화가 가능한 것이지?”
애초에 저것은 단순한 강화계 마법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변신계 마법은 더더욱 아니었다.
저것은 분명 강화계 마법사의 마인화가 분명한 것이다.
이어지는 카론의 대답.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이미 인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 이 힘은 ‘그들’이 주고 갔다.
“그들? 누구를 말하는 거야.”
- 블랙잭.
나는 카론의 입에서 나오는 예상 못 한 이름에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 그들은 스스로를 ‘블랙잭’이라고 하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