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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의 무속성 마법사-120화 (120/175)

120화

“…블랙잭? 아카데미를 습격했던 녀석들을 말하는 거야?”

옆에서 반문하는 달시 세이피어.

그러나 나는 이미 다른 생각에 잠겨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역시 블랙잭은 녀석들이 전부가 아니었던 건가…….’

분명 원작의 게임 ‘아카마’에서의 블랙잭은 하트, 클로버, 다이아몬드, 스페이드.

이 넷이 전부였다.

그리하여 지금껏 그들이 블랙잭의 핵심 간부이자, 블랙잭을 설립한 인물들이라고 알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틀린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그들은 단지 수면 위로 나타났을 뿐인 블랙잭의 극히 일부.

‘진짜’는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이었다.

“오히려 명확해서 좋네.”

결국 내가 이 세계에 온 목적과 달성 과제는 ‘블랙잭’이라는 조직을 막는 것.

이로써 내 임무는 확실해졌다.

“아무튼 그 블랙잭 녀석들이 저 녀석에게 마기를 잠식시켰다는 건가.”

어떤 경로인지, 어떤 시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녀석은 블랙잭으로부터 마기를 하사받았다.

그리고 세오린 산의 마나 억제의 영향 때문에 지금껏 폭주하지 않고 잠잠했던 거겠지. 이젠 마나 봉인이 해제되었으니 마음껏 마기가 폭주하고 있는 거고.

다만 한 가지 의문점이 있었다.

‘어째서 저 녀석은 의식이 멀쩡한 거지?’

카론은 마기와 완벽히 융화된 것으로 보였다.

그렇다면 정신이 마기에 잠식되어 본래의 의식을 잃어야 정상이었다.

그러나 녀석은 지금 멀쩡히 우리와 대화하고 있었다.

마인화한 캐서린도, 이전에 블랙잭이 아카데미를 습격했을 때 맞닥뜨렸던 생체 마인도 이렇지는 않았다.

“완전한 마인화라.”

또다시 새로운 국면에 치달은 듯한 느낌이었다.

카론 녀석은 먼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은 채 온몸을 까딱까딱 움직여 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저 녀석도 마인화는 처음인지라, 몸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카론이 몸을 뒤척일 때마다 그의 등 뒤로 연결된 지네의 꼬리가 살랑살랑 움직이고 있었다.

- 이렇게 강대한 힘이 있다니.

카론은 제힘에 도취한 듯 보였다.

나는 곧바로 매기와 파르를 소환하여 녀석의 공격에 대비했다.

달시도 또한 녀석을 향해 언월도를 겨냥했다.

- 아직 부족해. 역시 ‘계승’의 힘은 내가 가져가겠다!

그러더니 카론은 풀쩍 뛰어 하늘 높이 도약을 시도했다.

곧 녀석의 그림자가 푸른 달을 가렸다.

“매기! 파르!!”

나는 황급히 뒤로 물러서며 매기와 파르에게 명령을 내렸다.

동시에 녀석에게 날아가는 근육 폼의 매기와 사신 폼의 파르.

그런데,

콰아아아앙!!

녀석의 주먹이 매기와 파르를 단번에 소환 해제시켰다.

그러고는 그대로 아래를 내리찍어 건물을 뚫고 지면으로 들어갔다.

“매기와 파르가 한 방이라고……?”

그러나 당황할 시간이 없었다.

녀석은 곧 다시금 도약해서 지붕 위를 뚫고 올라왔다.

- 나약하군.

한껏 자신의 힘을 뽐내는 카론.

다만, 그 자신감에는 근거가 있었다.

탓!

이윽고 카론은 한번 자세를 움츠리더니 전속력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와 달시는 급한 대로 녀석의 공격을 피해 지붕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런데 달시는 한발 늦은 모양이었다.

아니, 애초에 녀석의 공격 방향은 달시 쪽을 노린 듯도 싶었다.

퍼어어어억!

달시의 복부를 스친 카론의 주먹.

달시는 살짝 신음을 흘리며 연병장으로 뛰어내렸다.

카론은 한껏 여유를 부리며 바닥에 주저앉은 달시를 노려볼 뿐이었다.

나는 그런 달시와 카론의 대치를 보며 또다시 매직 미사일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윽고 가만히 달시를 노려보던 카론이 입을 열었다.

- 그거 아나, 당주. 전 당주는 당신의 아버지였을 뿐만 아니라, 내 아버지이기도 했다는 것을.

“뭐라고……?”

달시는 당황한 듯싶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저 녀석, 달시의 형제였다고?’

카론은 우리들의 반응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 내 어머니는 세오린 산의 평민이셨지. 이른바 숨겨 둔 자식이라는 거다.

“…….”

- 우리는 똑같은 전 당주의 자식. 그러나 우리의 운명은 달랐다. 너는 이렇게 당주의 자리를 물려받게 되었고, 나는 그저 세오린 산의 주민들에게 매일 핍박받는 삶을 살게 된 것이다.

카론의 쉬익쉬익대는 기괴한 목소리가 점점 떨리고 있었다.

그의 말을 잠자코 듣던 달시가 이내 배를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이런 짓을 벌인 거야?”

- 그래. 게다가 나의 아버지, 전 당주도 내 손으로 죽였다. 그 팔팔한 영감탱이를 쇠약하게 만드는 데만 무려 10년이란 세월이 걸렸지만.

녀석의 이어지는 말에 달시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아무리 도를 넘는 짓을 해 왔다지만, 결국 아버지는 아버지였으니까.

나는 녀석이 서 있는 지붕 위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당주를, 달시를 증오하는 거야? 너의 증오의 대상은 잘못되었어. 전 당주에게 죄가 있다 하더라도 애초에 달시는 아무런 죄가 없잖아!”

그녀는 아무런 죄가 없었다.

결국 아까의 얘기와 같은 맥락이었다.

녀석이 하는 행동은 자신이 증오했던 세오린 마을 사람들과 같은 짓을 반복하는 것일 뿐.

이래서야 증오의 순환, 증오의 고리는 끊어 낼 수 없는 것이다.

카론은 이내 내 쪽으로 고개를 슬며시 돌리더니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 죄가 없다라. 이 세상에 죄가 없는 사람이 과연 존재하는가? 나는 단순히 당주에게 죄를 묻는 것이 아니다. 나는 평민도 증오한다. 당연히 귀족들도 증오한다. 그뿐만 아니라 나를 낳은 어머니도 아버지도, 나는 그저 모두를 증오할 뿐이다.

“그게 뭐야…….”

나는 더 이상 허울 좋은 소리를 할 수 없었다.

결국 모두를 증오할 만큼 카론의 지난 상처가 컸다는 소리일 테니까.

그의 입장을 겪은 것도 아닌데 함부로 그에게 일침을 날릴 순 없었다.

따라서 그를 설득할 수는 없는 것이다.

서자가 아니었더라면.

방계의 사람이 아니었더라면.

애초에 세오린 산에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그도 모두를 증오하지 않고 평범한 삶을 살았을 테지.

‘그렇게 됐다면 저 녀석도 그저 평범한 아카데미의 신입생이었으려나.’

다만, 그의 처지를 이해한다고 해서 그의 범행을 납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엄연히 둘은 다른 문제였다.

그런데,

“…미안.”

갑자기 사과를 내뱉는 달시 세이피어.

뜬금없는 그녀의 사과에 카론은 오히려 흥분했다.

- 미안?! 어째서 네 녀석이 나에게 사과를 하는 것이지? 살려 달라고 최후의 발악이라도 하는 건가?

“아니. 모두를 대신해서 진심으로 사과할게.”

그러면서 달시는 다친 배를 감싸 안고 조심스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세오린 산의 주민들. 아버지 일. 그리고 네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던 환경까지. 전부.”

- 네까짓 게 무슨 자격으로 나에게 사과를 한단 말이냐!!

“그야…….”

세이피어는 배시시 웃었다.

“나는 이곳의 당주니까. 과거의 아픔도 현재의 슬픔도 모두 내가 짊어지는 게 당연한 거잖아?”

- 지껄이지 마라!!

달시의 말에 발끈한 카론이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달시는 전혀 피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내가 바꿀게. 더 이상 세이피어 가문 사람들이, 이 세오린 산의 사람들이 고통받지 않도록…….”

퍼어어어어억!!

중얼거리던 달시는 또다시 카론의 주먹에 의해 멀리 날아갔다.

그러고는 내 앞에 힘없이 툭 떨어졌다.

“달시!! 괜찮아?!”

나는 빠르게 그녀의 몸 상태를 살폈다.

아무리 상시 강화 마법으로 신체가 강화된 상태라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마인화한 녀석의 힘은 너무 막강했다.

애초에 매기와 파르를 단숨에 보낼 정도로 강한 녀석이었다.

쉽게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달시는 이내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면서 내게 넌지시 말해 왔다.

“괜찮아. 나한테 맡겨.”

그리고 그녀에게 성큼성큼 다가오는 카론을 노려보는 달시.

“이건 당주인 나의 싸움이니까.”

본인한테 맡기라니.

물론 현재의 나도 상태가 좋진 않았다.

애초에 마나 봉인을 해제했을 때부터 너무 무리였었다.

아무리 내 마나가 보통의 마법사보다 월등하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마나 봉인을 뚫는 것은 상당히 무리한 행동이었다.

게다가 그 이후로 노엘을 상대하기도 했고, 점멸을 남발하기도 했었다.

매기와 파르가 단번에 소환 해제된 것도 지금의 내 상태가 온전치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는 느낌도 받았다.

그럼에도 카론은 너무나도 강했기에, 내가 도울 수밖에 없었다.

설사 내가 같이 싸운다고 하더라도 상대할 수 있을까 말까 싶은 녀석이었다.

그런데 ‘나한테 맡겨.’라니.

- 반성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아니, 틀려. 책임을 지겠다는 거야. 이 마을에 있는 고통을 하루빨리 바꾸지 못한 스스로에 대한 책임.”

- 그래서 목숨을 걸겠다는 건가? 죽음으로 죗값을 치르겠다는 말이냐!

“아니. 난 싸울 거야.”

달시 세이피어의 단호한 말.

그에 대한 카론의 반응은 조소였다.

- 크하핫! 싸운다고? 고작 네 녀석이?! ‘계승’의 힘을 쓰지 못하는 이상, 너는 그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하찮은 녀석일 뿐이다!

카론의 말에 세이피어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계승’의 힘 없이는 솔직히 무리일 거 같아.”

- 그래서? ‘계승’의 힘을 쓰기라도 하겠다는 말인가? 저 하늘 위의 보름달이 보이지 않는 것이냐? 너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저 나에게 ‘계승의 힘’을 넘기고 죽을 운명일 뿐이다!

“아니, 틀려.”

순간 달시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리고 아까까지만 해도 비틀거리던 그녀가 갑자기 전투 태세를 취했다.

“‘계승의 힘’은 보름달이 뜨는 날에는 사용할 수 없어. 그러나.”

언월도를 빙빙 돌리기 시작한 달시.

그리고는 이내 언월도를 등에 맨다.

“푸른 보름달이 뜨는 밤, ‘블루문’에는 계승의 힘을 사용할 수 있지. 이게 ‘계승의 힘’에 숨겨진 비밀이야.”

- 계승의 힘을 사용할 수 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탓!

아까보다도 더욱 빠른 속도로 달시 세이피어에게 달려드는 카론.

그러나 달시는 싱긋 웃으며 여유롭게 주문을 외울 뿐이었다.

「아르스(Ars)」

순간 그녀의 몸이 사라졌다.

그리하여 달려온 카론의 주먹은 허공을 때리게 되었다.

이내 그녀의 몸이 카론이 달려오던 방향에서 나타났다.

- 이, 이게 무슨.

심히 당혹스러워하는 카론.

그러나 달시는 계속해서 주문을 외울 뿐이었다.

「롱가(Longa)」

달시의 오른손에 푸른빛이 감돌았다.

- 죽어라!!

다시금 달려드는 카론.

달시는 또다시 주문을 외웠다.

「비타(Vita)」

이번엔 그녀의 왼손에 푸른빛이 감돌았다.

그리고 그녀는 이번에는 카론의 주먹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탁!

힘껏 내질러진 카론의 주먹을 왼손으로 부여잡았다.

- 크아아아악!

단순히 손아귀에 잡혔을 뿐인데도 카론의 주먹에서는 극심한 고통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달시는 마지막 주문을 외웠다.

「브레비스(Brevis)」

동시에 달시의 눈에 이글거리는 푸른 불꽃.

그리고,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달시가 내지른 오른 주먹이 카론을 중림사의 외곽 건물로 순식간에 날려 버렸다.

그 모습을 숨죽인 채 지켜보고 있던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녀의 모습은 마치 ‘무신(武神)’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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