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의 무속성 마법사-124화 (124/175)

124화

팟!

내가 이동한 장소는 바로 세오린 산 정상에서 보이는 곳 중 가장 먼 지평선.

뒤를 돌아보자 세오린 산은 원근감 덕분에 작게 보이고 있었다.

“역시 ‘버밀리온의 로브’는 너무 사기 같단 말이지.”

방금 이동한 거리는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시야에 들어오는 곳은 아무리 거리가 멀어도 단숨에 이동할 수 있다니.

정말이지 사기적인 능력이 아닐 수 없었다.

“역시 이게 영웅의 아티팩트의 능력인가.”

내가 괜히 달시 세이피어의 호의를 거절한 것이 아니었다.

심지어 골드버그의 영지는 세오린 산에서 꽤나 먼 곳.

그럼에도 나는 괜스레 이 점멸 마법만으로 이동해 보고 싶었다.

기껏 ‘버밀리온의 로브’를 획득하고 능력도 확인했지만, 지금껏 세오린 산의 마나 억제 때문에 ‘버밀리온의 로브’를 마음껏 사용해 볼 기회가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지금, 자유를 제대로 만끽하고 있는 것이다.

팟!

또 한 번의 긴 점멸.

사실 이 정도의 거리라면 점멸보다는 순간 이동에 가까웠지만, 나는 역시 점멸 쪽이 어감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금의 또 한 번의 점멸로 인해, 이젠 세오린 산이 거의 희미하게 보이고 있었다.

“항상 이런 능력을 사용하는 것을 꿈꿔 왔는데 말이지.”

비단 나뿐만 아니다.

아마도 현대인들의 갖고 싶은 초능력 순위를 설문 조사하게 되면 점멸의 능력은 보나 마나 탑3 안에 들 것이다.

그만큼 점멸은 실용성과 간지를 둘 다 만족시키는 마법이었다.

“그나저나 쿨타임이 꽤나 거슬리네.”

아무래도 ‘버밀리온의 로브’ 쿨타임은 이동 거리에 비례하는 듯했다.

따라서 지평선 끝의 먼 거리까지 이동하려면 적어도 5분 이상은 대기시간이 필요했다.

다만, 지금의 나에게는 남는 게 시간이었기에 딱히 상관은 없는 부분이었다.

그렇게 나는 계속해서 점멸을 사용해 골드버그의 영지 방향으로 이동했다.

대략 5분에 10km 정도, 무려 시속 120km라는 엄청난 속도의 이동이었다.

“음……. 생각해 보면 엄청날 정도는 아닌가…….”

생각해 보니 원래 세계에서의 자동차만 해도 시속 100km 정도는 평범한 수준이었고, 이곳에서 타 본 페가수스도 그보다는 훨씬 빨랐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이곳의 다른 탈것들도 지금 속도보다는 빠를 듯도 싶었다.

“괜히 혼자 간다고 했나……?”

조금 후회가 되는 나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가 발생했다.

팟!

또 한 번 5분의 대기 시간을 기다린 후 점멸을 시전한 나.

그런데,

“으응……?”

갑자기 머리가 어지럽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그 원인을 파악할 수 있었다.

“설마 마나를 다 쓴 건가……?”

지금껏 이런 적은 없었기에 당황스러웠다.

그 샘솟던 마나가 바닥난 느낌은 이번이 처음인 것이다.

“이 내가 마나가 부족한 상황에 처했다고?”

애초에 ‘아카마’에서 제이드 다음으로 마나가 많은 것이 제로였다.

그런 내가 마나가 부족한 상황에 처하다니.

“생각보다 ‘버밀리온의 로브’ 마나 소모가 심한 모양이네.”

애초에 넘치는 마나로 인해 세오린 산의 마나 억제 한계까지 돌파했던 나였다.

그런 내가 마나가 부족할 정도라면 정말 소모량이 상당한 듯싶었다.

“어찌해야 하나.”

내가 멈춘 곳은 산 한가운데.

애초에 막힐 것을 예상하지 않고 온 터라 딱히 대책은 없었다.

그런데 문득 머릿속에 좋은 생각이 하나 떠오르고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곧바로 그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우우웅―

‘골드버그의 회중시계’에 남아 있는 마나를 짜내자, 이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매기.

- 끼룩!

녀석은 또다시 소환되자마자 폭신폭신한 얼굴을 비벼 댔다.

“그래도 매기를 소환할 정도의 마나는 남아 있어서 다행이네.”

마나 부족으로 인해 파르까지는 미처 소환하지 못했다.

딱 매기까지가 한계였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곧바로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것을 매기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나를 태우고 날아갈 수 있어?”

그러자 고개를 연신 끄덕이는 매기.

- 끼룩! 끼룩!

그러더니,

슈우우우웅―

점차 매기의 솜사탕 같은 몸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매기는 사람 하나 정도는 올라탈 수 있을 만한 크기로 변해 있었다.

“그럼, 탄다?”

- 끼룩!

‘얼마든지.’라는 표정으로 의기양양해하는 매기.

나는 녀석의 솜사탕같이 푹신한 몸 위에 올라탔다.

“오오. 탑승감이 장난 아닌데?”

지금껏 매기를 쿠션처럼 사용하면서 느껴왔던 거지만, 매기의 솜사탕 같은 몸은 정말이지 폭신했다.

마치 메모리폼 같은 느낌도 들고 있었다.

- 끼루우욱!

이내 기합과 함께 서서히 상승하기 시작한 매기.

그리고 곧 매기 위에 올라탄 나는 하늘을 날게 되었다.

“오오오!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매기는 이렇게 활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마치 그 모습이 손오공의 근두운을 타고 다니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속도는 페가수스나 여타 탈것에 비해서는 다소 느린 편이었지만, 어쨌든 마나가 없는 지금 당장으로서는 이 정도도 만족이었다.

‘그나저나 구름 폼이 되는 거였으면 지금껏 떨어질 때 바로 받쳐 주면 되는 거 아니었나……?’

왜 계속 떨어지기 직전에 쿠션 용도로만 사용해 왔는지 의문이었다.

게다가 높은 곳을 올라갈 때도 이런 식으로 올라갔으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뭐, 그때는 몰랐으니까.’

어차피 명령은 내가 내리는 거였기에 매기는 딱히 거기까진 생각하지 않았으리라.

아무튼 나는 매기의 폭신한 구름 위에 누워 상공에서 느껴지는 신선한 공기를 만끽했다.

그런데 그때,

드르르륵―

휴대용 송신기가 울리고 있었다.

나는 한 손으로 모니터를 켜서 그 내용을 확인했다.

역시 보나 마나 송신인은 캐서린이었다.

[캐서린(방금 전): 언제 도착해요?]

나는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나(방금 전): 글쎄 내일 도착할 것 같기도.]

[캐서린(방금 전): 오늘 도착한다 하지 않았어요?]

[나(방금 전): 좀 사정이 있어서.]

[캐서린(방금 전): 알았어요. 천천히 와요.]

그리고 나는 다시금 휴대용 마나 송신기를 바지춤에 집어넣었다.

“한숨 자면 도착할 수 있으려나…….”

내가 듣기론 골드버그의 영지는 꽤나 먼 곳에 위치해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에라 모르겠다 하고 잠을 청했다.

* * *

결국 내가 골드버그의 영지에 도착하게 된 것은 거의 새벽에 가까운 늦은 밤이었다.

골드버그의 영지는 한눈에 봐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나게 거대한 저택이었다.

마치 왕족이 사는 성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규모였다.

“역시 재력 No. 1 가문인 건가.”

나는 아무렇지 않게 대문 옆에 달린 초인종을 눌렀다.

그러자 잠시 후 집사로 보이는 사람이 와서 신원 파악을 했고, 곧바로 캐서린 골드버그가 마중을 나왔다.

그녀는 레이스가 주렁주렁 달린 검은 잠옷을 입고 있었다.

“왔어요? 좀 늦었네요.”

“그래도 내일 도착까지는 아니었네. 아무튼 집이 되게 큰데?”

“흠흠…….”

내 말에 캐서린은 살짝 부끄러운지 헛기침을 했다.

“그나저나 밥은 먹었어요? 늦은 시간인데 배고픈 거 아니에요?”

“아냐, 아까 오다가 마을에 들러서 먹고 왔어.”

“그럼 곧바로 침실로 안내해 드릴게요.”

그리하여 나는 캐서린의 뒤를 따라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사실 골드버그 가문의 영지와 저택은 ‘아카마’에서도 종종 서술로 언급되긴 했었다.

다만, 애초에 ‘아카마’에서 제페토는 주인공 제이드의 앙숙이었고, 캐서린은 마기의 폭주로 인해 사살됐기 때문에 이곳에 오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었다.

‘이건 이거 나름대로의 힐링인가…….’

거의 100명은 되어 보이는 골드버그 가문의 집사와 시종들.

그리고 호화로운 장식들과 웬만한 편의 시설들이 전부 갖추어진 꿈의 저택.

이곳에서 일주일 동안 생활할 수 있다니 원래 세계의 호캉스가 따로 부럽지 않았다.

저택 부지에는 여러 건물이 있었지만, 캐서린은 나를 본관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본관 2층에서 잠시 대기하라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는 두리번거리며 골드버그 저택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득 불빛이 새는 방이 눈에 띄었다.

그곳의 문은 살짝 열려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슬쩍 안을 들여다보았다.

일부분만 봐도 매우 넓어 보이는 방.

갖가지 동물 인형들과 파스텔 톤의 벽지가 눈에 띄었다.

한눈에 봐도 뭔가 아기자기한 분위기였다.

“캐서린의 방인가……?”

게다가 제일 압권인 것은 방 한쪽 구석에 위치한 사람보다 훨씬 큰 곰 인형이었다.

나는 그 귀여운 곰 인형을 보고는 의외의 취미라는 생각과 함께 감탄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뭐 하냐?”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

그곳에 서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제페토 골드버그였다.

“내 방 앞에서 뭐 하는 건데?”

“…네 방이었어?”

이 녀석, 아닌 게 아니라 옷차림도 곰돌이 무늬의 잠옷에다가 곰 모양의 털 실내화.

심지어는 잠옷에 달린 곰돌이 형태의 모자까지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 기숙사 방도 이거 비슷하게 꾸며 놨었지…….’

문득 그때의 기억이 다시금 떠올라 버렸다.

“볼일 없으면 비켜라.”

“으응…….”

나는 왠지 모르게 비켜서야 할 것만 같았다.

제페토는 딱히 나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 듯 곧바로 방 안으로 들어가 방문을 쾅 닫았다.

‘그나저나 저 녀석, 저런 옷차림으로 잘도 명령하네.’

그의 취향과 말투 사이에서 조금 괴리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기다렸지요?”

이내 캐서린이 나를 불렀다.

그러고는 내 방으로 안내했다.

애초에 내게 주어진 방은 제페토의 방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자, 이곳에 머무는 동안은 여기서 지내시면 돼요.”

“그런데 따로 부모님께 인사드려야 하지 않나?”

“밤이 깊었잖아요. 인사는 내일 해도 충분해요. 먼 길 오느라 고생하셨어요, 오늘은 푹 쉬세요.”

“알았어. 고마워.”

이내 캐서린도 본인의 방으로 사라졌다.

나는 이내 방 안으로 들어가 침대 위에 털썩 누웠다.

“우와아아아…….”

입에서 절로 나오는 감탄사.

방 안의 침대는 거의 매기만큼이나 푹신했다.

마치 누우면 바로 잠이 올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여기까지 오면서 충분히 숙면을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내 눈은 어느새 서서히 감기고 있었다.

‘오늘은 많이 무리했으니까…….’

마나를 바닥날 때까지 사용해서 그런지 온몸에는 피로가 느껴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스르르 잠에 빠져들게 되었다.

* * *

다음 날 아침.

나는 창문으로 들어오는 따사로운 햇살을 맞이하며 잠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우와. 창문도 남향이었잖아?”

역시 골드버그 가문의 저택이라서 그런지 이런 세심한 부분까지 전부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마침 창문 밖으로 골드버그 가문의 정원이 보이고 있었다.

“저건… 제페토가 말했던 그 동상인 건가?”

멀리서 봐도 사람의 형태로 보이는 것과 거대한 무언가의 동상이었다.

“한번 확인해 볼까.”

딱히 나를 부르러 오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래도 아침을 먹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인 듯했다.

그리하여 나는 시간도 비었겠다, 동상을 확인하러 저택을 내려갔다.

골드버그 가문의 저택 안 정원에 위치한 동상은 황금으로 이루어졌는지 노란빛을 뽐내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동상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동상의 중간에 위치한 인물, 아무래도 영웅 피너클러스 골드버그로 추정되는 인물은 키가 180cm에 다다르는 엄청난 장신의 꽃미남이었다.

그리고 그의 뒤에 듬직하게 서 있는 거대한 무언가.

“…저게 피너클러스의 고유 마법 ‘정령왕’인 건가?”

마치 대천사와도 같은 거대한 날개를 자랑하고 있는 정령왕이 거기에 있었다.

정령왕의 얼굴을 찬찬히 감상하던 나는 이내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그런데,

“응……? 저건?!”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피너클러스의 발밑에 위치한 호박.

“파르잖아?!”

나는 뜻밖에 나타난 파르의 모습에 살짝 눈이 휘둥그레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