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나는 거인의 공격을 피해 요리조리 도망가며 계속해서 매직 미사일을 시전했다.
한번 시전할 때마다 네 개씩 소환되는 백색의 구체들.
1,000개가 넘는 매직 미사일을 소환하기엔 3분이면 충분했다.
어느덧 수천 개 이상 쌓인 매직 미사일들이 하늘을 가득 메웠다.
개중에는 간간이 ‘성공의 주사위’로 증폭된 거대 매직 미사일도 보이고 있었다.
탁―!
손가락을 튕기자 그와 동시에 수천 개의 매직 미사일이 일제히 거인을 향해 날아갔다.
거인은 그 압도적인 광경에 살짝 몸을 움츠리며 방어태세를 취했다.
그러나 매직 미사일은 궤도를 비틀었고, 거인의 몸을 피해 뒤쪽으로 날아갔다.
“애초에 노린 곳은 그곳이 아니거든.”
나는 손가락을 휘저어서 매직 미사일을 조종해 괴물의 목 부근에 일제히 박아 넣었다.
콰과과과광―!
공기를 통해 귀를 찢는듯한 파열음이 들려왔고, 대지가 흔들렸다.
녀석이 아무리 단단하다고 해 봤자 수천 개의 매직 미사일은 어지간한 방어력으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게다가 녀석의 신체에서 가장 약해 보이는 목 뒷부분을 노렸으니 제대로 된 유효타였다.
대미지를 감당하지 못한 거인은 이내 몸의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쿠우웅―!
간신히 쓰러지는 몸을 무릎으로 지탱한 거인.
무릎을 꿇고 주저앉은 거인은 멍한 눈동자로 나를 응시할 뿐이었다.
“그래도 아직 끝나진 않는다는 건가.”
소환 해제가 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제대로 된 치명타는 아니었는 듯싶다.
다만, 애초에 한 방에 보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골드버그 가문 가주의 사역마를 이런 식으로 압도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 충분히 놀라운 일이었다.
게다가 몇 방만 더 먹인다면 완전히 쓰러트릴 수도 있을 것도 같았다.
“꽤 하는구나.”
멀리서 고개를 끄덕이는 율리안 골드버그.
그러나 거인이 무릎을 꿇었음에도 그의 얼굴엔 여전히 여유가 보였다.
‘아직 숨겨 놓은 패가 있다는 건가.’
전혀 당황하지 않은 태도로 보아, 율리안 쪽도 본격적인 힘을 발휘하진 않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곧 그 이유가 드러났다.
치이이이익―
무릎을 꿇은 거인에게서 물이 끓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곧 증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저건 또 뭐지.”
나는 녀석에게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 다시금 매직 미사일을 시전해 하나씩 차곡차곡 쌓기 시작했다.
그런데,
화르르르륵―!
갑자기 거인의 입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뭐야?”
그 엄청난 불길에 당황한 나는 빠르게 점멸을 사용해 거리를 벌렸다.
그러나 찰나의 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옷자락이 살짝 타 버리고 말았다.
그만큼 불의 속도가 빨랐던 탓이다.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건가.”
그래도 녀석의 불길에 대항할 방법은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곧바로 ‘골드버그의 회중시계’에 마나를 불어 넣었다.
그러자 곧 파르가 눈앞에 튀어 나왔다.
“파…르?”
녀석은 살짝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그야 항상 파르를 소환할 때는 매기와 세트로 소환했었으니까.
이렇게 단독으로 파르만 부른 것은 처음이었다.
“펌프킨 모드. 알지?”
“파르…….”
알았다는 듯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파르.
녀석의 툴툴대는 태도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곧바로 파르를 머리 위에 썼다.
그러자,
퍼엉―!
온몸에서 순간 빛이 나더니, 사신 폼의 복장으로 바뀌었다.
“당연히 화염 저항도 있는 거겠지.”
이미 ‘펌프킨 모드’ 상태에서는 빙결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었다.
그러나 화염 공격도 통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어느 정도는 도박 수인 것이다.
다만, 어차피 거인의 화염 공격을 정면으로 맞아 줄 리도 없었고, 일종의 보험으로 펌프킨 모드로 변한 것이기에 그다지 걱정은 되지 않았다.
“그럼, 다시 가 보실까.”
거인은 끊임없이 화염을 뿜어 댔다.
아마도 이 흙으로 가득 찬 넓은 공터는 저 거인에 의해 한차례 구워진 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곧바로 매직 미사일을 시전하여 다시금 거인에게 유효타를 먹일 준비를 했다.
그런데,
“잠깐! 멈춰라!”
갑자기 큰 소리로 내게 공격 중지를 요청하는 율리안 골드버그.
그리고 동시에 눈앞의 거인도 연기와 함께 소환 해제되어 모습을 감추었다.
이에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시전하던 매직 미사일을 취소했다.
“으응……?”
두세 번만 더 유효타를 먹이면 거인을 쓰러트릴 수 있을 거 같았는데 뭔가 갑작스레 상황이 종료돼 떨떠름해졌다.
“끝난…건가.”
대련의 결말을 마무리 짓지 못해 살짝 아쉽긴 하지만, 어쨌든 상대방이 중지를 요청한 것이니까.
아무래도 내 승리인 거겠지.
나는 머리에 씌워진 파르를 벗었다.
그와 동시에 몸에 걸쳐진 거적때기도 소환 해제 되었다.
그런 나에게 율리안 골드버그가 달려오고 있었다.
살짝 격양된 얼굴의 율리안.
나는 살짝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자네가 그 사역마를 소환한 것인가?”
“예?”
나는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저 눈을 깜빡이며 율리안과 파르를 번갈아 가며 살필 뿐이었다.
그리고 곧 상황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아하, 그렇게 돌아가는 건가 보네.’
나는 머릿속에 떠오른 그 ‘설마’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예. 제가 이 ‘잭 오 랜턴’을 소환했습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 것이지……?”
“제페토에게서 ‘골드버그의 회중시계’를 넘겨받은 뒤로부터 소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역시 이 ‘잭 오 랜턴’은 영웅 골드버그의 사역마가 맞는 건가요.”
“놀랍군…….”
몇십 분 전까지만 해도 나에게 싸늘한 태도로 일관했던 율리안 골드버그가 아니었다.
이미 그의 눈빛에는 나를 인정한다는 의사가 느껴지고 있었다.
그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골드버그의 가보가 자네를 선택했다는 건가…….”
“예?”
“아닐세. 인정하지. 자네는 그 가보를 지니기에 충분한 자격을 가지고 있네.”
‘흐으음.’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예전부터 생각했던 가설.
‘매기’와 ‘파르’가 영웅 골드버그의 사역마였다는 것.
율리안의 태도로 보아 파르는 확실히 영웅 골드버그의 사역마가 맞는 것으로 보였다.
다만 나는 좀 더 확실하게 알고 싶었다.
그리하여 이왕 파르가 정품임을 인증받은 김에 매기 또한 확인받고 싶어졌다.
우우우웅―!
나는 ‘골드버그의 회중시계’에 마나를 불어 넣어 매기를 소환했다.
- 끼룩!
여전히 반갑게 맞이하며 볼을 비벼 대는 매기.
그러나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저 혹시 이 녀석도 영웅 골드버그의 사역마인가요?”
“그것도 자네의 사역마인가? 그건 잘 모르겠다만.”
- 끼룩?
우리의 대화에 고개를 갸웃하는 매기.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표정의 매기를 품 안으로 끌어안고 쓰다듬었다.
‘역시 매기는 아닌 건가.’
그래도 일단은 ‘파르’가 영웅 골드버그의 사역마라는 확인은 받았다.
역시 군주급 마물을 압도했을 때부터 평범한 녀석은 아닐 거라 생각했지만 막상 확인을 받으니 느낌이 새로웠다.
‘그럼 나중 가면 정말 정령왕을 소환할 수도 있다는 거잖아.’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내가 다소 무례했네. 미안하네.”
율리안은 살짝 목을 숙여 사과를 표했다.
다만 온전한 사과라고 하기에는 어투가 다소 냉랭했다.
‘아직 나를 완전히 인정하지는 않았다는 건가.’
그러나 나는 이쯤에서 넘어가기로 했다.
어쨌든 상대는 캐서린과 제페토의 아버지니까.
“저도 다소 무례했던 발언 용서 바랍니다. 아버님.”
나는 머리를 숙여 그에게 정중하게 말했다.
그러자 율리안은 등을 돌리며 말했다.
“다음 주면 휴교가 끝난다지. 그때까지는 편하게 머물도록.”
“예. 감사합니다.”
그리고 뚜벅뚜벅 출구로 나가는 율리안.
나는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냐?!”
“괜찮아요?”
뒤늦게 내게 접근한 캐서린과 제페토.
제페토는 살짝 복잡해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느 정도는 통과한 거 같은데?”
“설마 아버지가 패배를 인정한 건 아니지……?”
“뭐, 사실상 내 판정승인 건 맞지.”
“말도 안 돼!”
지금껏 나를 걱정하고 있었으면서도 막상 내가 율리안 골드버그를 상대로 전혀 밀리지 않자 질투하는 듯싶었다.
그에 반해 캐서린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올려다봤다.
“당연히 이길 줄 알았어요.”
“그래도 이렇게 될 걸 알고서 초대한 건 좀 너무한데.”
“그건… 미안해요. 그래도 당신이라면 분명 아버지의 인정을 받을 줄 알았으니까요. 대신 남은 일주일 동안은 최상의 서비스를 대접해 드릴게요.”
“최상의 서비스라.”
아카데미로 복귀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일주일.
율리안 골드버그의 인정도 어느 정도 받았겠다, 일주일 동안은 그 ‘최상의 서비스’라는 것을 충분히 즐겨야겠다.
* * *
그날 저녁.
“휴우우…….”
나는 탕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얼마나 오래 몸을 담갔는지 피부가 살짝 빨개져 있었다.
“역시 골드버그야.”
무려 일반 공중목욕탕만큼이나 넓은 개인 목욕탕.
심지어 탕 자체도 금으로 만들었는지 죄다 노란빛을 뿜어 내고 있었고, 물도 은은한 노란빛이 감돌았다.
사실 이 목욕 시설에는 두세 명의 집사들이 들어와 시중을 드는 게 보통이라 했다.
다만, 그 정도까지의 서비스는 너무 부담스러워 내가 극구 만류했었다.
굳이 양손 양발이 멀쩡한데 목욕탕 안에서까지 시중을 들일이 있나 싶기도 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싶었던 것도 있었다.
“그래도 마사지는 좀 아쉽네. 다음에 한 번 부탁해 봐야지.”
정말 캐서린의 말마따나 이곳 골드버그의 저택은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듯했다.
“슬슬 가 볼까.”
나는 탕을 나와 목욕 가운을 둘러 입었다.
그냥 이대로 잠옷 대용으로 입고 자도 될 것만 같은 고급스러운 원단의 목욕 가운이었다.
나는 욕실을 나와 영웅 골드버그의 동상이 있는 정원으로 향했다.
그런 내 손에는 언노운이 쥐어져 있었다.
정원에는 은은한 달빛이 감돌고 있었다.
나는 정원의 벤치에 털썩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러고는 무릎 위에 언노운을 올리고 말을 걸었다.
“언노운 님.”
여전히 대답 없는 언노운.
“언노운 님 지금 안 나오시면 후회하실 텐데요. 여기는 무려 골드버그 가문의 저택이라고요. 지금이라면 언노운 님이 좋아하시는 초콜릿을 잔뜩 먹을 기회라니까요.”
그러나 여전히 답이 없다.
원래의 언노운이었으면 지금쯤 튀어나와야 정상이었다.
아무리 귀찮다고는 해도 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다는, 게다가 최상급 초콜릿과 디저트들이 잔뜩 준비되어 있는 골드버그 가문의 저택에서 등장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분명 무슨 문제가 생긴 게 분명했다.
“왜 이러지……. 원래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물론 원작에서는 애초에 언노운을 사용할 일도, 대화할 일도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지금 언노운의 무응답은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때 뒤쪽에서 누군가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언노운 때문에 걱정되시나요?”
캐서린이었다.
잠옷 차림의 캐서린은 뚜벅뚜벅 다가오더니 내 옆자리에 사뿐히 앉았다.
“들었어?”
“미안해요. 오다가 그만 들어 버렸네요.”
애초에 캐서린과 언노운이 아예 접점이 없진 않았다.
예전에 누블랑 매장에서 둘이 같이 있었던 적도 있었으니까.
따라서 나는 그녀에게 숨기는 기색 없이 털어놓았다.
“갑자기 언노운 님이 응답이 없으시네.”
나는 마치 혼잣말하듯 담담하게 언노운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이에 캐서린은 한참 동안 말없이 내 말을 묵묵히 들어주었다.
그러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죄송해요. 숨기려고 숨긴 게 아니었는데.”
“응? 뭐가…….”
“언노운 님은 곧 소멸할 거예요.”
“뭐?”
나는 살짝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시선을 피하지 않고 내 눈동자를 또렷이 마주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