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단상 위의 케이든 교수의 몸 상태는 매우 양호해 보였다.
안 그래도 아텔라 교수님을 통해 케이든 교수님이 괜찮다는 말을 전해 듣긴 했었지만, 이렇게 멀쩡한 상태로 다시 볼 수 있게 되다니 감회가 새로웠다.
‘다행이다.’
케이든 교수님이 쓰러진 지 고작 두 달.
그 짧은 기간 안에 모든 부상을 회복하다니 역시 평범한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상 위의 케이든 교수는 헛기침을 두어 번하더니 마이크에 입을 가까이 대고 말을 이었다.
- 내가 없는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고 들었다. 보다시피 이젠 멀쩡하니 안심하도록.
케이든 교수는 짧게 인사말을 한 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 안티 매지션 녀석들 덕분에 중간고사가 엉망이 됐었다지. 그래서 1, 2학년들의 중간고사를 다시금 시행하기로 했다. 물론 통합 시험 방식으로 진행될 거다.
케이든 교수의 말에 학생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별로 내키지 않아 하는 이유야 뻔하다.
이전 통합 시험에 있었던 안티 매지션들의 습격 때문에 불안함도 있었고, 또다시 중간고사를 봐야 한다는 짜증도 섞여 있는 것이다.
케이든은 학생들의 차가운 반응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 안심해라. 이번 통합 시험용 던전은 내가 직접 제작하고 검수했으니까 저번 같은 일은 발생하지 않을 거다. 이번 중간고사 과제의 이름은 ‘트로피 쟁탈전’이다.
트로피 쟁탈전.
케이든 교수의 설명에 의하면 던전 안에 숨겨 놓은 트로피를 마지막에 쟁취하는 사람이 가장 큰 점수를 얻는 진행 방식이라고 했다.
당연하게도 섬 내부에는 마물이 도사리고 있고, 트로피를 쟁탈하는 과정에서 서로 간의 전투가 허용된다고 했다.
아무래도 대인전과 대 마물전을 같이 평가하는 진행 방식인 듯싶었다.
- 리스폰 방식으로 진행되고 마물을 사냥하거나 너희들끼리의 전투에서 승리하게 된다면 추가 점수가 부여된다. 물론 마지막에 트로피를 차지한 사람은 추가 점수와는 상관없이 무조건 만점을 부여할 예정이다.
마지막에 트로피를 차지한 사람은 무조건 만점이라.
나는 그 말을 듣고 턱을 살짝 쓰다듬었다.
‘이거 너무 쉬운 거 아닌가?’
이미 머릿속에는 이번 중간고사에 대한 계획이 서고 있었다.
- 참고로 이번 중간고사 던전에는 버프 시스템이 전혀 없다. 나는 그런 방식은 선호하지 않아서 말이지. 오로지 너희들의 순수한 실력을 마음껏 뽐내 봐라. 중간고사는 7일 동안 진행되니까 안에서 알아서 살아남도록.
그 말을 끝으로 케이든 교수는 강당의 인원들을 해산시켰다.
그리고 1학년들과 2학년들은 각자 시험이 진행되는 던전으로 이동했다.
‘뭔가 갑작스럽긴 하네.’
아카데미의 정상 운영이 시작되자마자 바로 또 시험이라니.
게다가 히로빈 교장은 강당의 집합에 있어서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었다.
‘왜 안 보였던 거지.’
항상 단상 위에 서서 모두를 내려다보던 히로빈 그린월드.
그래도 어차피 별일 아닐 테니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어느덧 1학년 무리들은 중간고사가 펼쳐질 던전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우리를 이끌고 간 케이든 교수는 잠시 대기를 시켰다.
휴식 시간이 생기자 오랜만에 만난 학생들은 저마다 회포를 풀며 수다를 떨었다.
나도 적당히 쉴만한 곳을 찾아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런데 그때, 난데없이 눈앞에 시스템창이 나타났다.
띠링―
〈서브 이벤트〉
[트로피의 주인]
* 달성 조건: 중간고사의 메인 과제인 ‘트로피 쟁탈전’에서 트로피를 차지하여 승리한다.
* 제한 시간: 일주일.
* 실패 조건: 기간 내 조건 미달성.
* 보상: 마법 주문서(더블 캐스팅)
내용을 읽은 나는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젠 아예 더블 캐스팅으로 밀어주시겠다?’
이미 내 매직 미사일은 더블 캐스팅 주문서 두 개를 적용시켜 한 번에 네 개씩 사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조금 입이 아프지만 빠르게 시전한다면 몇 분이면 수천 개를 시전할 정도였다.
그런데 여기서 더블 캐스팅을 적용한다면 한 번에 여덟 개.
이젠 저 ‘더블 캐스팅’ 마법 주문서를 얻을 때마다 파괴력이 배로 증가하는 경지에 다다른 것이다.
‘게다가 이번 과제는 너무 쉬운데.’
나는 이미 이 트로피 쟁탈전을 쉽게 우승할 방법을 알고 있었기에 사실상 저 더블 캐스팅 주문서는 거저 주는 거나 다름없었다.
오히려 시스템이 내가 쉽게 우승할 것을 알고, 일부러 ‘더블 캐스팅’을 보상으로 내걸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왜 또 갑자기 퍼 주는 거지. 불안하게.’
보통 시스템 창이 이렇게 나올 때는 이유가 있는 법.
아무래도 나를 강화시키는 만큼 더욱 강력한 상대가 나타난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뭐, 어쨌든 좋은 게 좋은 거니까.’
나는 이번 특전을 순수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차피 이젠 딱히 블랙잭 녀석들이 걱정되지 않았으니까.
내가 나무 밑동에 걸터앉아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내게로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무슨 생각해?”
다름 아닌 제이드였다.
제이드는 내 쪽으로 다가오더니 옆에 있는 바위에 털썩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는 그런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휴교 기간 동안 잘 지냈냐?”
“응.”
문득 제이드의 얼굴을 보니 말하고 싶은 부분이 생겼다.
저 녀석은 이제 칼루스 아카데미의 멸망을 함께 막을 파트너였으니까.
“블랙잭 녀석들, 아직 끝난 게 아니더라고. 이번 휴교 기간 동안 녀석들의 흔적을 발견했어. 오히려 저번에 아카데미를 침공했던 녀석들은 피라미였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
“역시 아카데미에 멸망을 불러오는 건 블랙잭이라는 건가.”
나는 제이드에게 세오린 산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카론 세이피어가 마인화를 사용한 것.
그리고 그를 마인화시키기 위해 마기를 주입한 것이 바로 블랙잭이라는 것.
“그럼 이제 마인화를 사용할 수 있는 녀석들이 아카데미를 습격해 올 수도 있겠네.”
“그렇겠지. 그래서 저번에 녀석들이 피라미라 생각하는 거야. 적어도 그 녀석들은 마인화를 사용하지 않았었으니까.”
제이드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턱을 쓰다듬었다.
그러고는 나와 시선을 마주하며 입을 열었다.
“사실 나도 휴교 기간 동안 히로빈 교장님에게 들은 게 있어.”
“너 휴교 기간 동안에도 아카데미에 있었던 거였어?”
“응. 히로빈 교장님이 먼저 같이 있자 하셨어. 아무래도 혼자 있으면 위험하다나 봐. 사실 블랙잭 녀석들이 노리는 게 나였거든.”
“뭐? 그게 정말이야?”
블랙잭이 노렸던 사람은 나, 제이드, 루비 셋 중에 한 명.
그중 녀석들이 노리는 게 나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명확한 이유와 근거는 없었지만, 어쨌든 녀석들은 내 방문 앞에 폭탄을 설치했었으니까.
그런데 녀석들이 노리는 게 제이드였다니.
“너도 알다시피 나는 엘가시아의 핏줄이잖아.”
“어?”
순간 당황스러웠다.
제이드 본인이 엘가시아 가문임을 알고 있었다니.
그러나 조금 생각해 보자 이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제이드는 수없이 ‘아카마’를 반복한 회귀자.
그리하여 본인이 엘가시아의 핏줄이라는 것을 당연히 알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그는 한때 내가 조종했던 ‘아카마’의 주인공이었기에, 내가 ‘아카마’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는 제이드도 알 수밖에 없었다.
“블랙잭 녀석들은 엘가시아의 핏줄인 나를 노리고 있는 거래. 다만, 목적은 알아도 이유는 모른다 하셨어. 물론 교장님 본인은 어느 정도 추측하고 있는 듯했지만 나에게 따로 말해 주시지는 않았고. 어쨌든 녀석들의 목표가 나인 건 확실해.”
“그렇단 말이지.”
블랙잭 녀석들의 목적.
그 첫 번째는 엘가시아의 핏줄.
그리고 그 두 번째는 히로빈 교장.
둘의 연관성이라고는 ‘영웅’과 관련이 있다는 정도밖에 없었다.
‘뭐, 일단은 나중에 생각하도록 할까.’
어차피 여기서 계속 머리를 싸매고 생각해 봤자 답을 내리긴 어려웠다.
결국 진실을 알기 위해선 히로빈 교장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한번 찾아뵈어야겠네.’
애초에 히로빈 교장님과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니었고, 교장 본인도 얼마든지 찾아오라 했으니 딱히 거리낄 부분도 없었다.
“아무튼 그럼 조심해야겠네.”
“응.”
물론 제이드 녀석이라면 스스로를 지킬 정도는 되니까 안심할 수 있었다.
다만, 그럼에도 살짝 불안한 점은 ‘아카마’ 속 제이드야 지금의 나처럼 마법 주문서와 마도구들로 강화된 제이드였기에 문제없었지만, 지금의 제이드는 아무것도 없는 그냥 제이드.
살짝 불안한 점이 없지 않아 있었다.
‘뭐, 일단은 아카데미 내부에서는 문제없겠지.’
어쨌든 한차례 블랙잭이 습격했었으니 경비도 더욱 강화했을 거고, 무엇보다도 든든한 전력인 케이든 교수가 복귀했으니까.
“다들 모여라.”
나와 제이드가 얘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어느덧 중간고사 시험의 준비가 끝난 모양이었다.
1학년생들은 케이든의 지도하에 던전 앞으로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고, 전부 모인 것을 확인한 케이든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출발해라 애송이들아.”
케이든 교수의 말을 신호로 학생들은 하나둘씩 던전 안으로 입장했다.
던전의 지형지물은 지난번 통합 시험 던전과 비슷한 구조인 듯했다.
들어가자마자 상공이었고, 이내 몸은 지면으로 추락하게 되었다.
“또 떨어지는 건가.”
던전 안으로 입장한 학생들은 차례대로 지면에 보이는 섬을 향해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참을 떨어지던 학생들은 곧 공기 저항 마법으로 낙하산을 펼친 것처럼 서서히 활공하기 시작했다.
나는 낙하산이 펼쳐지자마자 감지 마법을 사용했다.
「프레시스코(præscísco)」
그러자 곧바로 강렬한 마나를 뿜어내는 트로피가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역시 생각했던 대로네.”
트로피의 위치는 감지 마법으로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것이 내가 이번 중간고사와 서브 이벤트를 거저먹을 수 있겠다 생각한 첫 번째 이유였다.
그러나 나는 트로피 쪽으로 향하지 않았다.
오히려 몸을 돌려 트로피의 반대 방향.
섬의 가장자리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럼, 일주일 동안 느긋하게 자연 생활을 즐겨 볼까.”
지난 일주일간은 골드버그의 저택에서 최상의 서비스를 받으며 충분한 힐링을 즐겼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도심 속의 힐링.
이번에는 일주일 동안 캠핑을 하며 자연 속의 힐링을 즐길 차례였다.
낙하산을 타고 활공하던 나는 어느덧 섬의 바닷가 근처로 도착했다.
아무리 던전이라지만 자연환경이 전부 구현되어 있었기에 파도가 찰랑이는 소리와 갈매기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지면에 도착하자마자 빠르게 텐트장을 꾸미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시간 뒤.
나는 바닷가 근처에 그럴싸한 야영지를 구성할 수 있었다.
- 끼룩!
다 끝마쳤다는 듯이 손뼉을 치는 근육질의 매기.
녀석이 캐 온 땔감들이 모닥불 옆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이 정도면 일주일 동안은 걱정 없겠네. 뭐 모자라면 더 가져오라 시키면 되니까.”
사실 한 시간이라는 시간 동안 딱히 힘쓴 부분은 없었다.
그저 매기와 파르에게 지시를 내려 필요한 물품들을 구비했을 뿐이었다.
이렇게 전투 외에도 사역마를 부려먹을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소환계의 편리한 점이 아닐까 싶다.
‘애초에 나는 소환계 마법사는 아니지만.’
게다가 불을 피우는 것도 그리 어려운 부분이 아니었다.
“파르야, 알지?”
- 파르.
내 말에 모닥불 근처로 다가가서 몸을 비벼대기 시작한 파르.
역시나 3초도 되지 않아 모닥불의 불씨가 살아났다.
나는 타닥타닥 타오르는 모닥불을 보며 기지개를 켰다.
“그럼, 이따가 낚시라도 해 볼까.”
마침 내 베이스캠프 근처에 낚시하기 좋은 터도 있었다.
그래도 일단은 이왕 텐트장을 꾸민 거, 이대로 낮잠을 자도 좋겠다 싶었다.
그리하여 나는 마치 이불처럼 깔아 둔 나뭇잎 위에 양손을 베고 몸을 뉘었다.
콰과광―!
퍼어어어엉―!
섬의 중심 부분에서 들려오는 학생들의 전투 소리.
간간이 들려오는 비명 소리와 마물들의 울부짖는 소리.
“한창 좋을 때다.”
나는 그 백색 소음을 경청하며 살며시 눈을 감았다.
그렇게 일주일간의 중간고사 기간 동안 나는 계속해서 풍류를 즐겼다.
다른 학생들이 치고받고 싸우든, 트로피를 차지하기 위해 몸부림치든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얘기였다.
그렇게, 하루.
또 이틀.
삼일.
마침내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