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의 무속성 마법사-130화 (130/175)

130화

지난 일주일간 내가 만들어 놓은 캠핑장에는 여러 손님이 방문했었다.

그중에는 루비 버밀리온도 있었다.

루비는 2일 차에 내 베이스캠프를 발견했다.

외각에 있어서 쉽게 발각되지 않으리라 생각했었는데 중력 마법으로 하늘에 떠 있던 루비 버밀리온이라 빠르게 발견된 듯싶었다.

“여기서 뭐 해?”

루비 버밀리온은 발견한 캠프파이어의 주인이 나인 것을 파악하자 곧바로 지면으로 착지했다.

지금은 중간고사 테스트 기간이기에 사실상 적대 관계.

그럼에도 별 의심 없이 다가오는 게 참 그녀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싸우자고 온 건 아니겠지?”

“설마. 2일 차인데 벌써부터 너랑 붙으려는 사람은 아마 없을걸?”

“뭐야. 해 보지도 않고 겁먹은 거야?”

“뭐어?!”

루비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발끈했다.

그런 그녀의 변함없는 모습을 보니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나저나 여기서 뭐 해? 점수 안 벌어?”

“지금 싸워 봤자 힘 빼기밖에 더 하겠어. 어차피 트로피를 차지하면 점수에 상관없이 1등인 건데.”

“점수는 내버려 두고 트로피만 노리겠다고? 물론 그것도 어떻게 보면 정공법이긴 하겠다. 그래도 마지막 날에 트로피를 쟁취하는 건 아무리 너라도 힘들지 않을까.”

“아니. 이미 트로피는 내 거나 다름없어.”

“…뭐야 그 자신감은.”

내 확신에 찬 목소리에 루비 버밀리온은 조금 당황한 기색을 내비쳤다.

다만, 나는 자신이 있었다.

애초에 트로피는 떼놓은 당상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지금은 마지막 7일 차를 기다리는 거밖엔 딱히 할 게 없는 것이다.

나는 간만에 찾아온 손님이 반가워, 담소도 나눌 겸 화제를 돌렸다.

“휴교 기간 동안은 잘 지냈어?”

“응. 맞다. 소식은 들었어. 세오린 산에서 마인화 사건이 있었다면서. 게다가 세오린 산의 마나 억제도 해제되었다던데?”

역시 루비는 달시와 잦은 교류가 있었던 만큼 세오린 산의 마나 억제에 대한 정보도 알고 있는 듯했다.

그녀의 말에 나는 씨익 미소를 보였다.

“그거 내가 했어.”

“뭐를?”

“마나 억제 해제시킨 거. 내가 했다고.”

“뭐어?!”

루비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떡 벌렸다.

세오린 산에 대해서 알고 있는 만큼, 200년간 유지됐던 마나 봉인을 해제시킨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거겠지.

“어떻게……? 그건 이미 아카데미 학생의 수준을 넘어선 거 아니야?”

“그럴지도.”

사실 이제는 아카데미 학생 수준을 넘어서 웬만한 협회, 마경 소속 인원보다 강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이런 중간고사 수준은 조금 시시할 수밖에.

“그러고 보니 내가 준 로브는? 그건 어떻게 했어?”

“응? 아아. 그게 이거야.”

나는 입고 있는 로브를 두 손가락으로 살짝 당겼다.

“그게 내가 준 로브라고……?”

“응. 알고 보니까 색이 변하는 기능이 있더라고.”

“뭐야, 난 10년 동안 입고 있어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루비 버밀리온은 조금 의아하다는 듯이 내가 입고 있는 로브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녀의 벙찐 모습에 장난기가 발동했다.

“설마 다시 돌려달라는 건 아니겠지? 아무리 그래도 줬다 뺏는 건 너무하다?”

“그, 그럴 리가 없잖아!”

발끈하는 루비 버밀리온.

나는 그런 그녀를 보고 피식 웃었다.

역시 루비 버밀리온은 타격감이 좋은 듯싶다.

“그나저나 언제 7일 차가 되려나.”

“진짜 여기서 가만히 있게?”

“두고 봐. 어떻게 되는지. 그때 동안 열심히 점수나 모으는 게 좋을 거야. 어차피 트로피는 내 차지니까.”

또다시 시작된 호언장담에 루비는 질색한 표정을 지었다.

다만, 나는 그러한 반응쯤은 무시했다.

어차피 마지막 날에 증명될 테니까.

* * *

그리고 중간고사의 7일 차.

콰과과광—!

화르르륵—!

마지막 날이라서 그런지 학생들은 더욱 격렬하게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흡사 전쟁과도 같은 소리를 경청하던 나는 슬쩍 감지 마법을 통해 전황을 살폈다.

곧 눈 앞에 드러나는 학생들과 트로피의 위치.

현재 트로피는 제페토 골드버그의 품 안에 있었다.

“뭐야. 저 녀석, 꽤 하잖아?”

‘아카마’에서 제페토는 제이드에게 밀리는 2인자.

저렇게 활개 치는 걸 보면 제이드에게 밀려서 그렇지 녀석도 대단하단 생각이 든다.

뭐, 그래 봤자 제이드가 진심을 다 하면 상대가 안 될 테지만.

“슬슬 찾으러 가 볼까.”

이제 중간고사가 종료되기 전까지 남은 시간은 대략 3분 남짓이었다.

나는 마감 시간이 다가오는데도 아직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슬아슬해질 때까지 좀 더 참기로 했다.

그저 느긋하게 종료 시간을 확인할 뿐이었다.

1분.

그리고 30초.

던전의 하늘 위에 떠 있는 카운트다운이 째깍째깍 소리를 내며 중간고사 종료의 임박을 알리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덧 표시된 숫자가 10이 되었을 때.

팟—!

나는 점멸을 사용해 제페토가 들고 있던 트로피를 낚아챈 뒤, 그대로 땅바닥을 굴렀다.

“뭐야아?!”

도철을 타고 한창 도망치고 있다가 나에게 트로피를 빼앗긴 제페토는, 분노보다는 어이가 없어서 당황한 기색이었다.

10초만 버티면 되는 찰나에 내게 트로피를 뺏겼으니 녀석의 반응은 당연했다.

바닥을 빙그르르 구르던 나는 어느새 멈춰 선 뒤, 제페토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미안! 이건 잘 가져갈게!”

물론 그저 예의상 말했을 뿐, 애초에 내 것이나 다름없다 생각했으니 딱히 미안한 감정은 없었다.

그리고 내가 소리치는 동시에 제페토와 제페토를 쫓던 학생들이 동시에 나에게 달려들었다.

경기 종료까지 무려 3초도 되지 않는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어림도 없지.”

팟—!

땅바닥에 누워 있던 내 몸은 어느새 상공 위에 떠 있었다.

어차피 3초만 버티면 되었기에 그저 하늘을 바라보고 점멸을 시전했던 것이다.

나를 쫓으려던 학생들은 멍하니 하늘 위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개중에는 하늘로 순간 이동한 내 위치를 찾지도 못해 어리둥절해하며 주위를 살피는 녀석들도 더러 있었다.

- 그만! 중간고사는 종료다 애송이들아.

던전을 쩌렁쩌렁 울리는 케이든의 목소리.

나는 종료와 동시에 다시금 점멸을 사용해 지면에 사뿐히 착지했다.

- 이번 중간고사의 수석은…….

케이든의 이어지는 말과 동시에 나에게 쏠리는 학생들의 시선들.

나는 그런 그들에게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 ‘제로’다.

어찌 보면 당연한 승리였다.

* * *

“드디어 끝났어요?”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 강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턱을 쓰다듬으며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던 케이든 교수는 그 인기척에 살짝 뒤를 돌아보았다.

“오자마자 이렇게 어두컴컴한 곳에서 일주일 동안 처박혀 계시다니 참 대단하시네요. 케이든 교수님.”

“아, 예. 오랜만입니다. 아텔라 교수님.”

케이든은 상대의 얼굴을 확인하자 고개를 까딱하여 인사했다.

전등이 꺼진 강의실 안을 두리번거리던 아텔라는 모니터 옆에 쌓여 있는 빈 그릇을 확인했다.

“일주일 동안 식당에 코빼기도 보이지 않으시더니 설마 여기서 숙식하신 겁니까?”

“예, 뭐. 그렇습니다.”

케이든은 머쓱한 듯 어깨를 한번 으쓱했다.

그러자 아텔라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일어나셨으면 한 번쯤 인사차라도 찾아왔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랬어야 되는 겁니까?”

“당연하죠! 기억 안 나세요? 애초에 케이든 교수님이 위자드 협곡에서 혼자 남으셨을 때 제가 같이 있었잖아요. 얼마나 걱정했는데요.”

“아, 그랬었죠. 죄송합니다. 오랜만에 아카데미에 복귀해서요. 학생들의 발전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앞섰나 봅니다.”

‘그랬었죠.’ 라니.

아텔라는 살짝 어이가 없었다.

“저 병문안도 자주 갔었다고요.”

“실베르에게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무뚝뚝한 케이든의 태도에 아텔라는 더더욱 어이가 없었다.

물론 상대방은 나름의 감사를 표하고 있는 거겠지만 묘하게 신경이 거슬렸다.

그러나 이내 아텔라는 이해하기로 했다.

케이든은 원래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그나저나 뭘 그렇게 보고 있었어요? 중간고사는 종료된 거 아니었나요?”

“그러고 보니 아텔라 교수님의 고유 마법은 공간 조작이셨죠. 한번 보시겠습니까.”

그리고 케이든은 방금 전까지 보고 있던 중간고사의 녹화본을 다시금 재생시켰다.

그것은 중간고사가 종료되기 직전 마지막 15초 정도의 짧은 동영상, 그것도 ‘제로’의 개인 화면이었다.

화면 속의 제로는 종료되기 직전 15초 남짓한 순간에도 트로피와 먼 곳에서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10초 정도에 트로피의 위치로 순간 이동하여 트로피를 낚아채더니, 또 5초 정도에 다시금 점멸을 사용하여 상공으로 순간이동 했다.

“이건…….”

“이 정도의 공간 조작, 아텔라 교수님이라면 가능하겠습니까?”

“글쎄요. 저도 저 정도로 단시간에 재빨리 움직이는 건 불가능할 거 같은데요. 게다가 좌표 위치도 매우 정확하고요. 제 공간 조작을 뛰어넘는 것으로 보이네요.”

15초 정도의 동영상은 중지 버튼을 누르지 않아 계속해서 화면에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그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아텔라는 입을 떡 벌리며 제로의 움직임에 감탄할 뿐이었다.

물론 순수하게 감탄이었을 뿐이지 딱히 제로가 어떻게 공간 조작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갖진 않았다.

아텔라는 이미 제로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 중 하나였으니까.

“저는 저 녀석을 처음 봤을 때부터 보통 녀석이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게다가 아카데미에 있었던 습격도 제로가 활약했다고 들었습니다만.”

“예. 맞아요. 제로가 없었더라면 아마 블랙잭의 습격을 쉽게 막지 못했을 거예요.”

아텔라 교수의 맞장구에 케이든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뚫어져라 보고 있는 모니터에는 계속해서 제로의 활약이 반복되고 있었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화면을 보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이 이상하다고 느낀 아텔라 교수가 다시금 입을 열어 대화를 이어 나갔다.

“저 녀석은 앞으로도 더 성장할 거예요.”

“동의합니다. 아마 이 정도의 성장 속도라면 권좌를 넘어서 200년 전 마계 대전 때 활약했던 영웅급의 마법사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연하죠. 제 제자잖아요.”

아텔라 교수의 마지막 발언에 케이든은 잠시 침묵했다.

그러더니 살며시 입을 열었다.

“…제 제자기도 합니다.”

그 어울리지 않는 발언에 아텔라는 조금 의외라는 듯 케이든을 바라보다가 이내 피식 미소를 지었다.

* * *

[서브 이벤트 ‘트로피의 주인’을 완료하였습니다.]

[보상 ‘마법 주문서(더블 캐스팅)’를 획득했습니다.]

[보상 ‘마법 주문서(더블 캐스팅)’를 사용하시겠습니까?]

눈 앞에 뜬 시스템 창.

나는 망설임도 없이 수락의 선택지를 골랐다.

“이제 한 번에 여덟 개를 시전할 수 있는 건가.”

사실상 이제는 단순한 ‘매직 미사일’이 아니었다.

과장을 좀 더 보태자면 ‘매직 뉴클리어’에 가까웠다.

“여기서 한 번만 더 ‘더블 캐스팅’을 얻게 된다면 난리 나겠는데.”

매직 미사일은 네 번일 때도 충분히 강했다.

여덟 번은 더 상당한 파괴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아마 열여섯 번쯤 되면 아마도 상상을 초월한 위력을 발휘하리라.

그리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슬슬 나가 볼까.”

중간고사가 종료된 학생들에게는 남은 주말까지의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방 안에 누워 있던 나는 슬슬 몸을 일으키기 위해 기지개를 켰다.

“일단은 교장님을 먼저 뵈어야겠네.”

사실 아카데미에 복귀하자마자 히로빈 교장과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다만, 일주일간 진행되는 중간고사가 겹쳤기에 미처 찾아가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곧바로 교장실로 이동했다.

그런데 도착한 교장실 문에는 ‘외출 중’이라는 팻말이 걸려 있었다.

“역시 어디 가셨던 건가.”

강당의 연설 때부터 모습을 보이지 않는 히로빈 그린월드였기에 설마 했는데 역시인 모양이었다.

다만, 지금 당장은 그의 행방을 알 방법이 없었다.

“도서관이나 가 볼까.”

도서관에서의 정보 확인 또한 아카데미에 복귀하자마자 하고 싶었던 것 중 하나였다.

나는 바로 도서관을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곧 도착한 아카데미의 도서관.

안으로 들어가자 도서관의 사서가 안경을 치켜올리며 나를 흘끔 쳐다보았다.

그녀는 주황 머리의 소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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