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의 무속성 마법사-131화 (131/175)

131화

“어, 그러고 보니.”

도서관의 입구에 앉아 있는 주황 머리의 소녀.

어딘가 낯설지 않았다.

눈 앞의 소녀는 분명 아우레인의 동급생 중 한 명인 듯싶었다.

“아우레인, 맞지?”

내 말에 소녀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초점 없이 어딘가 몽롱한 눈빛.

어디서 본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긴가민가했던 것은, 수업시간에 매일 엎드려서 자고 있던 녀석이라 그런 듯싶었다.

주황 머리의 소녀는 이내 나에게서 고개를 돌려 읽고 있는 책으로 시선을 향했다.

나는 소녀를 가만히 지켜보다가 문득 머리에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설마 이 녀석이 만다린 가문인 건 아니겠지?’

딱히 근거는 없었다.

추측의 이유라고는 소녀가 정신계 마나를 의미하는 주황색의 머리라는 것.

그리고 아우레인 기숙사의 동급생이라는 것이었다.

다만 그것뿐임에도 묘하게 의심이 들었다.

애초에 이 세계는 ‘아카마’라는 게임의 연장선.

그렇기에 단순히 주황 머리라는 이유, 그리고 상대가 아우레인의 동급생이라는 이유만으로 만다린 가문임을 추측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우연의 일치인지 지금까지의 여섯 가문이 모두 아우레인 기숙사의 동급생이었다.

따라서 만다린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나는 소녀의 이름을 물어보았다.

“혹시 이름이 어떻게 돼?”

그러자 소녀는 내 말에 반 박자 늦게 반응하여 느릿느릿하게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대답 대신 왼쪽 가슴 부근의 명찰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메이브’라는 이름 석 자가 적혀 있었다.

‘메이브? 평민인 건가.’

나는 아쉬운 마음에 입맛을 다셨다.

그래도 뭐, 지금 당장 만다린 가문 사람을 찾는 것이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으니까.

어차피 지금은 만다린 말고도 찾아야 할 영웅의 아티팩트들이 수두룩했다.

“혹시 마계 대전 관련 자료는 어디서 찾아보면 될까?”

내 말에 메이브는 또다시 느릿느릿한 반응으로 도서관의 구석에 위치한 책장을 가리켰다.

“고마워.”

그리고 나는 소녀가 가리킨 방향으로 가서 원하는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꽤나 많은 서적들이 있었지만 마계 대전 관련 자료는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찾던 나는, 간략하게 정보가 요약된 자료 하나를 겨우 찾을 수 있었다.

‘마계 대전과 일곱 영웅’

굉장히 간결한 제목의 서적.

나는 책 위에 쌓인 먼지들을 한번 후 불고 나서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태초에 마계와 인간계는 공존했다라.”

책의 내용에 따르면 사실 마계와 인간계는 연결되어 있었고 마족들과 인간들 사이에 제법 교류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결국 마족들은 점차 인간들을 지배하길 원했고, 급기야 인간 측과 갈등이 생겼다고 한다.

그리고 그 마계와 인간들의 전쟁, 마계 대전에서 결국 일곱 명의 영웅을 필두로 인간 측이 승리할 수 있었고, 마족들은 그 이후로 마계의 입구를 봉인당해 영영 인간계로 올 수 없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여기까지는 뭐,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내용이었고.”

나는 곧바로 페이지를 여러 번 넘겨 일곱 영웅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영웅들의 정보가 담긴 페이지를 찾은 나는,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내용에 살짝 놀라게 되었다.

“아텔라… 버밀리온?”

물질계의 영웅 버밀리온은 아텔라 교수님과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고유 마법조차 같았다.

“공간조작 마법이라니. 아텔라 교수님도 공간조작 마법사잖아.”

우연이라기에는 상당 부분 일치하는 점이 많았다.

삽화에 있는 영웅 버밀리온은 아텔라 교수님과 비슷한 붉은 머리칼을 가지고 있었다.

“애초에 이 세계에서 영웅의 이름으로 작명하는 게 흔한 일인 건가. 하긴, 그럴 수도 있겠네.”

어쨌든 아텔라 가스트로디아 교수님은 물질계의 마법사.

그렇다면 같은 물질계의 영웅인 아텔라 버밀리온의 이름과 같다고 해서 딱히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원래 세계에서도 위인이나 영웅들의 이름으로 작명하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었으니까.

나는 계속해서 영웅들의 정보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정신계의 영웅, 게슈탈트 만다린. 고유 마법, ‘불명’.]

[소환계의 영웅, 피너클러스 골드버그. 고유 마법, ‘정령왕 소환’.]

[변신계의 영웅, 히로빈 그린월드. 고유 마법, ‘원하는 대상으로의 변신.’]

[강화계의 영웅, 클라우드 세이피어. 고유 마법, ‘불명.’]

[방출계의 영웅, 엘가시아. 고유 마법, ‘마나 방출.’]

[원소계의 영웅, 윈터 아메드. 고유 마법, ‘빙결.’]

개중에는 고유 마법에 대한 정보 없이 ‘불명’인 영웅들도 있었다.

내용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다름 아닌 방출계 영웅 ‘엘가시아’였다.

“성이 엘가시아가 아니라 이름이 엘가시아였네. 설마 평민이었던 건가.”

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였다.

아무래도 200년 전 마계 대전의 영웅이다 보니까 후에 귀족으로 인정받은 거겠지.

귀족과 평민의 차이는 마법 사용의 유무.

200년 전만 하더라도 평민 출신 마법사는 많지 않았고, 지금보다도 평민과 귀족 사이의 신분 격차가 훨씬 큰 시기였다.

그런데 평민 출신 영웅이라니.

조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하는 대상으로의 변신이라.”

영웅들의 고유 마법 중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역시나 히로빈 그린월드의 고유 마법.

아무래도 그가 200년간 젊음을 유지하는 이유는 그의 고유 마법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그게 왜 하필 어린아이의 모습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영웅들의 정보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한 가지 확신이 들고 있었다.

“역시 영웅의 아티팩트는 그 영웅의 고유 마법을 사용하는 효과인 건가.”

내가 가지고 있는 아티팩트는 현재까지 세 개.

그중에서 ‘버밀리온의 로브’는 영웅 버밀리온의 고유 마법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골드버그의 회중시계’는 잘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율리안을 통해 어느 정도 비슷한 점이 있다는 것을 확인받았다.

그리고 비록 이 자료에 영웅 세이피어의 고유 마법 자체는 적혀 있지 않았지만, 이미 세이피어 가문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계승’의 힘과 ‘세이피어 부적’의 능력이 유사하다는 것을 확인했었다.

결국 영웅의 아티팩트는 영웅의 고유 마법을 빌려서 사용하는 마도구인 것이다.

“그렇다면 히로빈 교장님의 아티팩트는 상당히 기대가 되는데.”

원하는 대로 변신할 수 있는 고유 마법이라니.

물론 어느 정도는 제약이 있겠지만 상당히 기대가 되는 부분이었다.

“그래도 지금 당장은 히로빈 교장님을 뒤 순번으로 미뤄 둬야겠네.”

그린월드의 아티팩트는 따로 에메릴 그린월드에게 물어볼 것도 없이 히로빈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면 되는 문제.

다만, 지금 당장은 히로빈 교장님이 부재중이라 어쩔 수 없었다.

그리하여 다음으로 만만한 것이 바로 샬롯 아메드, 아메드 가문의 아티팩트였다.

“샬롯 아메드도 나름 공략하기 쉬울 듯한데.”

인간 자체가 선한 샬롯은 아무래도 거리낌 없이 아티팩트의 정보를 알려줄 가능성이 높았다. 어찌 보면 달시 보다도 난이도가 낮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지금 당장의 목표는 아메드 가문의 아티팩트를 획득하는 것이 되었다.

“빙결 마법이라.”

사실 원소계, 자연계 마법에 있어서 ‘빙결’이라는 것은 가히 최강의 원소라 일컬어지는 것이 보통이었다.

최강의 공격력과 최강의 방어력을 동시에 자랑하는 우월한 원소.

게다가 마계 대전 영웅의 빙결 마법이라니 상당한 능력일 게 분명했다.

“그나저나 자료는 이게 끝인가.”

200년 전 마계 대전에 대한 자료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다시금 메이브를 불렀다.

“저기, 메이브?”

느릿느릿하게 고개를 들어 몽롱한 눈빛으로 시선을 마주하는 메이브.

“혹시 마계 대전에 대한 자료는 이게 다야?”

내 말에 메이브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녀의 대답에 잠시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뭐지. 천 년 전 일도 아니고 고작 200년 전 일일 뿐이잖아.’

그에 관련된 자료가 고작 이것뿐이라니.

애초에 이 자료 자체도 영웅에 대한 정보는 수박 겉핥기식이었다.

나는 그 점에 조금 의아함을 느꼈다.

“뭐, 어쩔 수 없지.”

그래도 나름 유익한 정보를 많이 얻긴 했었다.

나는 이 정도로 만족하기로 하고 도서관을 나섰다.

* * *

도서관을 나오자 하늘은 어느덧 검게 물들어 있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샬롯은 식당에 가면 찾을 수 있으려나.”

그렇게 생각한 나는 곧바로 식당으로 향했다.

그리고 곧 그곳에서 제이드와 함께 저녁을 먹고 있는 샬롯 아메드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얼른 배식을 받고 난 뒤 제이드의 옆자리에 앉았다.

“오늘도 둘이 같이 있네.”

“으응.”

“안녕하세요.”

나는 둘의 관계를 추궁하고 싶었지만 지금 당장은 그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에 잠시 미뤘다.

그러자 먼저 말을 걸어 온 것은 샬롯 아메드였다.

“오늘 정말 대단했어요. 도대체 어떻게 한 거예요?”

“그러게. 이젠 공간 조작 마법도 쓸 수 있는 거야?”

“응. 맞아.”

나는 살짝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제이드가 살짝 귓속말을 해 왔다.

“그것도 역시 ‘플레이어’로서의 특전이야?”

오랜만에 듣는 ‘플레이어’라는 말.

그러나 이 세계의 비밀을 공유하고 있는 제이드이기에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겠지.

“뭐,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

지금 당장은 샬롯 아메드가 눈앞에 있었기에 길게 설명할 여유는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대충 넘어가기로 한 뒤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물어볼 게 있는데 말이야.”

“물어볼 거?”

“아니, 너 말고 샬롯.”

“네? 저요? 얼마든지 물어보세요.”

“혹시 아메드 가문의 가보가 어딨는지 알고 있어?”

“가보요……? 아!”

샬롯은 뭔가 아는듯한 눈치로 감탄을 했다.

나는 그녀의 반응에 옳거니 싶었다.

“그러고 보니 저희 아메드 가문의 가보가 이곳 칼루스 아카데미에 숨겨져 있다는 걸 들은 것 같아요.”

“뭐?”

아니 이게 웬 횡재야.

멀리 갈 것도 없이 이곳 칼루스 아카데미에 있다니.

그런데 왜 가문의 가보가 아카데미에 있는 거지?

게다가 왜 아메드 가문에서 찾아 나서지 않았던 거지? 살짝 의아한 부분이 있었지만 단서를 잡은 나는 신난 어투로 계속해서 정보를 캐냈다.

“아카데미 어디에 있다는 건데?”

“으음……. 아마 아카데미의 서쪽 숲에 있는 던전에 있다고 들었어요.”

“서쪽 숲의 던전이라.”

샬롯이 알고 있는 정보는 상당히 구체적이었다.

덕분에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지 찾아 헤맬 시간이 꽤나 단축된 듯싶었다.

다만, 아티팩트가 던전 안에 있는 거라면 감지 마법을 통한 방법은 사용할 수 없었다.

그래도 생각보다 아티팩트를 찾는 것이 어렵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봤자 얼음 던전 같은 곳에 있겠지.’

아메드의 영웅, 윈터 아메드는 원소계 빙결 마법사.

아무래도 아카데미 숲에 있는 빙결계 던전에 윈터 아메드의 아티팩트가 숨겨져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근데, 아메드 가문의 가보는 왜 찾는 거야?”

옆에 있던 제이드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하여 나는 그에게 짧게 설명했다.

“아티팩트 수집.”

“아티팩…트?”

반쯤은 알 것 같다는 표정.

그러나 반쯤은 여전히 모르겠다는 반응.

나는 궁금해하는 제이드에게 씨익 미소를 보였다.

* * *

일주일간 진행됐던 중간고사가 종료되고, 칼루스 아카데미의 학생들에게는 며칠간의 휴식 기간이 주어졌다.

그리하여 다음날.

이른 아침부터 기상한 나는, 일어나자마자 아카데미의 서쪽 숲으로 향했다.

‘아카마’에서나 지금에서나 항상 아우레인 기숙사와 붙어 있는 동쪽 숲만 갔었기 때문에 서쪽 숲은 처음이었다.

그래도 어차피 동쪽 숲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나저나 왜 아무것도 안 보이지.”

서쪽 숲은 조금 깊숙이 들어가도 던전은 커녕 마물조차 보이지 않았다.

뭔가 이상함을 느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숲속 길을 걸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때,

띠이이잉―

갑자기 머릿속에 청명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언젠가 느껴 본 적 있는 듯한 감각이었다.

“뭐…지.”

나는 그 오묘한 기분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 뒤쪽에서 말을 걸어 왔다.

“여길 어떻게 들어온 거냐.”

톤이 매우 낮은 남자의 목소리.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 있는 것은 내 목에 검날을 겨누고 있는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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