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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의 무속성 마법사-132화 (132/175)

132화

‘뭐지, 이 사람은.’

다 낡아빠진 거적때기를 걸치고 있는 남자.

오랜 시간 동안 자르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덥수룩한 수염과 머리를 보아하니 마치 이 숲속에서 수년 동안 살아온 듯한 모습이었다.

‘설마 블랙잭인가.’

분명 블랙잭은 아카데미의 숲에 포탈을 설치해서 한차례 습격한 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상대가 그때부터 이곳에 숨어 있던 블랙잭 소속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상대는 지금 내 목에 칼을 겨누고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반격을 위해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주문을 속삭였다.

「마지아 미실레(magía míssĭle)」

곧 등 뒤에 숨긴 손에서 발산하는 하얀색 마나.

나는 남자의 동향을 살피며 매직 미사일을 충전시켰다.

물론 목에 칼날이 들어온 상황에 대범한 행동이었지만, 여차하면 점멸로 회피하면 그만이었으니까.

역시나 남자는 내 등 뒤에 숨긴 손을 수상하게 여겼다.

“너, 뭐 하는 거냐?”

“당신, 정체가 뭐지?”

“아니 정체고 나발이고 지금 뭐 하는 거냐고.”

그러면서 남자의 칼날이 목 아래로 바짝 들어왔다.

대충 대화하면서 시간을 끌 생각이었던 계획은 실패한 것이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남자의 말에 대답하지 않은 채, 곧바로 남자의 등 뒤로 점멸을 사용했다.

팟―!

그와 동시에 남자의 등 뒤에 고출력 매직 미사일을 박아 넣었다.

아니, 박아 넣으려 했었다.

콰과과과광!!

남자의 검날에 튕겨져 나가 숲에 처박혀 버린 고출력 매직 미사일.

내가 등 뒤로 점멸을 사용하자마자, 남자는 몸을 돌려 매직 미사일을 튕겨 낸 것이다.

‘점멸을 반응했다고? 아니 그보다 고출력 매직 미사일을 튕겨 내는 게 가능한 건가?’

나는 당황스러움에 살짝 얼어붙었다.

그러나 곧바로 다시 점멸을 사용해 도주하려 했다.

그런데 남자의 손이 내 멱살을 부여잡더니 그대로 땅에 찍어 눌렀다.

나는 목에 느껴지는 압박감에 캑캑대며 남자의 손을 부여잡았다.

남자의 손에서 느껴지는 힘이 매우 거세서 내 힘으로는 도저히 뿌리칠 수 없었다.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나. 남의 영역에 들어와 놓고선 다짜고짜 공격을 하고 말이야.”

나는 남자의 말에 대꾸하기보단 당황스러움이 컸다.

‘왜 점멸을 사용할 수 없는 거지……?’

어째선지 아무리 시도해 봐도 점멸이 사용되지 않았다.

‘젠장.’

블랙잭의 간부도 격파했었고, 영웅의 아티팩트도 꽤나 많이 모아서 조금 자만하고 있던 것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눈앞의 남자는 내가 지금껏 만났던 어떤 이보다도 강했다.

‘그걸 써야 하나.’

현시점에서는 ‘그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가슴 부근에 있는 ‘세이피어의 부적’에 서서히 마나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어지는 남자의 말에 나는 황급히 마나 부여를 취소하게 되었다.

“이거 언노운이잖아?”

“에?”

남자는 언노운에 대해 안다는 듯 내 허리춤에 있는 언노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게다가 남자는 내 몸을 지그시 누르고 있을 뿐, 딱히 공격의 의사는 내비치지 않았다.

그리하여 나는 일단 남자와 대화를 시도하기로 마음먹었다.

‘세이피어의 부적’은 강력하지만 상당한 리스크가 있으니, 최후의 최후까지 미루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언노운을… 아나?”

“어이, 어른을 상대로 말버릇이 그게 뭐냐. 복장을 보아하니 특별할 거 없는 아카데미의 학생 같은데.”

상대는 여전히 내 멱살을 짓누르고 있었다.

다만, 딱히 적의는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남자의 대화에 어울려 주기로 했다.

“당연히 아카데미의 숲에 들어올 만한 사람은 아카데미의 학생밖에 없는 거 아닌가?”

“최근에 숲에 불청객이 있어서 말이야. 경계를 안 할 수가 있어야지.”

숲에 불청객?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그게 한 달 전 있었던 블랙잭 얘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맥락상 이 남자는 그 이전부터 아카데미의 숲에 살고 있었다는 것이 되었다.

“당신은 도대체 정체가 뭐지? 왜 여기 있는 거야.”

“뭐, 그거야 굳이 내가 설명할 이유는 없고. 그보다 너, 어떻게 결계를 뚫고 들어온 거냐. 보수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결계를 고작 아카데미의 학생이 뚫을 수 있을 리가 없을 텐데.”

생각해 보니 이 남자를 마주치기 전 느꼈던 이상한 느낌.

이전에 마인화한 캐서린이 만들어 놓은 결계로 진입했을 때와 같은 감각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상하네. 결계란 게 그렇게 쉽게 침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닐 텐데. 그 부분도 무속성 마법 특화랑 관련이 있는 건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지만 지금 당장은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일단은 눈앞의 남자가 적인지 아군인지 판별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결계를 뚫고 온 게 중요한가?”

“나름 중요한데. 내 자존심 문제라서 말이지. 그것보다 너, 그딴 식으로 말하지 말라니까?”

“당신이 누군 줄 알고. 나야 평범한 아카데미의 학생이지만, 내 입장에서는 당신이야말로 수상한 사람이잖아. 도대체 칼루스 아카데미의 숲에 있는 이유가 뭔데?”

나는 눈앞의 남자를 당당하게 쳐다보았다.

그러자 남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내 멱살을 스르륵 놓고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칼루스 아카데미의 교수다.”

“교수……? 당신 같은 교수는 본 적 없는 거 같은데… 아니 같은데요.”

나는 서서히 몸을 일으켜 세우고는 옷에 묻은 흙을 털어 냈다.

그러고는 여전히 경계한 채로 남자를 쳐다보았다.

다만, 눈앞의 남자가 교수라고 주장하는 만큼 존댓말로 고쳐 말했다.

“지금도 교수라기엔 관둔 지는 오래됐지. 벌써 몇 년은 지난 일이니까.”

“몇 년은 지난 일이라고…요? 그걸 어떻게 믿죠? 당신은 다짜고짜 나에게 칼을 들이밀었잖아.”

“그거야 네가 내 결계 안을 침범했으니까.”

“이 숲이 당신 거라도 된다는 겁니까.”

“그건 아니지만 어쨌든 내 결계를 침범할 정도의 녀석이니 경계하는 게 당연하잖아.”

남자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다만 아직까지는 칼루스 아카데미의 교수였다는 말을 온전히 신뢰할 수 없었다.

그런 사람이 도대체 왜 이곳에서 거지꼴을 하며 살고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그래서 당신이 칼루스 아카데미의 전 교수였다면 왜 이곳에서 이러고 있는 거죠.”

“그것까지는 말해 줄 수 없겠는데.”

“그걸 말하지 않겠다면 제가 당신을 믿을 방법 또한 없겠는데요.”

나는 절대 남자에게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계속해서 경계심을 풀지 않은 채 남자를 노려볼 뿐이었다.

그러자 남자가 한숨을 쉬더니 말을 돌렸다.

“…너, 검 좀 치냐?”

“그게 무슨 말이시죠.”

남자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더니 허공에 손을 뻗었다.

그러자 갑작스레 남자의 손에 목검 두 개가 나타났다.

그러더니 나에게 목검 하나를 던지는 남자.

나는 얼떨결에 그 목검을 받아 들었다.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 목검으로 나를 한 대라도 맞힌다면 알려 주도록 하지.”

나는 남자의 말에 순간 멍했다.

그야 갑자기 목검 대련을 하자는 건 너무 뜬금없었으니까.

다만, 나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지난 휴교 기간 동안 꾸준히 검술을 단련했었고, 또 레온 스승님께 인정받았던 검이었다.

딱히 꿀릴 이유는 없는 것이다.

“좋습니다.”

그리하여 갑작스레 성사된 목검 대련.

나는 양손으로 목검의 손잡이를 잡고 상대를 탐색했다.

‘너무 허술한데.’

상대는 딱히 검을 들지도, 그렇다고 방어할 자세를 취하지도 않았다.

그저 공격을 기다리는 듯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제가 당신을 한 번이라도 맞히는 데 성공한다면 당신의 정체를 말해 주시는 거겠죠.”

“그래. 대신 털끝조차 스치지 못한다면 그냥 돌아가라 꼬마야.”

“알겠습니다. 물론 그냥 돌아갈 일은 없을 거지만요.”

애초에 정식으로 진검 승부를 보는 것도 아니고, 애초에 내가 일방적으로 공격하면 되는 입장.

따라서 거리낄 것 없는 나는 곧장 검을 들고 남자를 향해 돌격했다.

그리고 여전히 가만히 서 있는 남자를 향해 검을 일 자로 내리쳤다.

그러자 남자는 목검을 가볍게 들더니 내 검을 막아 냈다.

다만, 거기까지도 내 노림수였다.

‘걸려들었다.’

세오린 산에서 생도와 대련했을 때 사용했던 검술, ‘빗겨 베기.’

나는 검격을 막아 내는 상대의 검을 물 흐르듯이 빗겨 내려 그대로 상대의 복부를 노렸다.

그런데,

탁―!

어느새 아래로 내려온 상대의 검이 내 검격을 막아 냈다.

다만 여유롭게 막아 낸 검과는 달리 상대는 살짝 당황한 듯한 어투였다.

“뭐야 너. 그거 어디서 배웠냐?”

“어디서 배우기는. 당연히 칼루스 아카데미에서 배웠겠죠.”

“…재밌네.”

파앗―!

남자는 손목을 휘둘러 내 목검을 쳐 냈다.

그러자 내가 들고 있던 목검이 날아가 공중을 회전하더니 땅에 툭 떨어졌다.

“움직임은 나쁘지 않은데 무엇보다 기초가 나쁘잖아. 근력이 너무 형편없다고.”

“그래도 당신은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패기는 좋네. 계속해 봐.”

다만 도발과는 달리, 나는 이미 상대와 나의 격차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저 사람, 만만치 않은데.’

이미 상대는 내 점멸 매직 미사일을 막아 냈었다.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실력자라는 방증이었고, 게다가 방금의 일격으로 확실히 깨달았다. 나와 상대의 실력 차는 도저히 근력 문제로 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괜히 공격을 한 대라도 성공시키면 된다는 조건을 내건 것이 아니다.

어떻게 저런 거지꼴을 한 남자가 저 정도의 검술을 뽐낼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대로는 승산이 없었다.

‘그렇다면 플랜 B, 점멸 공격이다.’

남자는 딱히 마법을 금지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물론 대련이라는 게 애초에 마법을 사용하지 않는 게 암묵적인 룰일 수도 있겠다만, 지금은 정식적인 대련이 아닌 조건이 붙은 특수한 대련.

애초에 마법을 사용하면 안 된다고 명시하지 않은 이상 내가 점멸을 사용한다고 해서 딱히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서도 점멸을 사용해도 될까 말까일 것 같긴 한데.’

이미 한차례 점멸에 반응하여 대응했던 상대.

게다가 내가 점멸을 사용할 수 있던 것을 모르는 상태였는데도 막아 냈다는 것은, 지금의 점멸 공격은 제대로 먹혀들어 갈 가능성이 현저히 적다는 것이었다.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했다.

그리하여 나는 주문을 외웠다.

「마지아 미실레(magía míssĭle)」

「마지아 미실레(magía míssĭle)」

「마지아 미실레(magía míssĭle)」

……

한 번에 여덟 번씩 시전되는 매직 미사일이었기에 순식간에 미친 듯이 많은 수가 생성되기 시작했다.

“어이, 장난하냐? 다시 말하지만 이거 목검 대련인데?”

“마법을 사용하면 안 된다는 말은 하지 않은 거 같은데요.”

“…그래 뭐, 마음대로 해라. 상관없으니까.”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눈앞에 보이는 수백 개의 매직 미사일 앞에서도 전혀 경계하거나 긴장하는 기색이 없었다.

허술해 보이는 자세 그대로였다.

탁―!

나는 손을 튕겨 매직 미사일을 일제히 남자를 향해 날려 댔다.

그러자 살며시 검을 드는 사내.

그러고는 검을 이리저리 휘두르더니,

날아오는 수백 개의 매직 미사일을 모조리 튕겨 냈다.

다만, 매직 미사일은 남자에게만 날린 것이 아니었다.

남자가 매직 미사일을 튕겨 내느라 정신없는 사이, 지면으로 뚫고 들어간 매직 미사일.

그리고 그와 동시에 땅속에 사람 하나 들어갈 정도의 공간이 마련되자,

팟―!

나는 곧바로 점멸을 사용해 땅밑으로 이동했다.

그러고는 남자의 발밑을 목검으로 툭 찔렀다.

“푸하아아! 제가 이겼습니다.”

나는 곧바로 흙을 뚫고 나와 가뿐 호흡을 내쉬었다.

한순간이지만, 땅속에 박혀 있는 감각은 그리 기분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허…….”

남자는 어이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순간이동을 사용할 거라고 예상은 했었는데……. 참, 나도 늙긴 했나 보네.”

“패배를 인정하시는 거겠죠.”

“좋아. 인정한다.”

남자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내가 들고 있는 목검과 남자가 들고 있는 목검이 사라졌다.

“그럼 자기소개를 하지, 나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누런 이를 내보이는 남자.

“칼루스 아카데미의 전 검술 교수 ‘노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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