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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의 무속성 마법사-133화 (133/175)

133화

상대방은 자신을 ‘노아’라고 소개했다.

성을 밝히지 않는 것을 보아하니 평민 출신인 것으로 보였다.

‘칼루스 아카데미의 전 검술 교수였다라.’

어쩐지 그의 검술 실력이 예사롭지 않다 했었다.

딱히 그의 주장에 대한 근거는 없었지만, 나는 그가 검술 교수였었다는 게 어느 정도 사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그 정도로는 아직 모든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당신이 정말 칼루스 아카데미의 전 교수라면, 왜 이곳에서 그런 꼴로 계시는 거죠.”

“대충 설명하자면 그냥 속세를 벗어나 자연인으로 살고 싶었다.”

“이유가 뭔데요?”

“그건 말하기 싫은데.”

“당신은 승부에서 패배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대답하겠다는 조건을 내걸었고요. 이제 와서 말을 바꾸시겠다는 건가요?”

나는 양보할 생각 없이 남자, 노아를 노려봤다.

그러자 노아는 한참 동안 내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역시 보통 녀석은 아니네. 좋아. 따라와라.”

그러더니 노아는 등을 돌려 숲속 깊은 곳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디 가요!”

그리고 나는 그런 노아의 등 뒤를 쫓아갔다.

그렇게 한참을 걸었을까, 잠시 후 발견하게 된 것은 숲속 한가운데에 있는 오두막집이었다.

“숲속에 오두막집이라니…….”

오두막 앞에는 모닥불이 타닥타닥 피어오르고 있었다.

숲속에 떡하니 있는 오두막, 그리고 심지어는 불까지 피우고 있는데도 이곳이 발견되지 않고 있는 이유는 아마 이곳의 결계 때문이리라.

나를 이곳으로 안내한 노아는 모닥불 근처에 있는 바위에 아무렇게나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어이, 너도 적당히 앉아.”

“왜죠.”

“잔말 말고 앉아. 내가 이곳에 살고 있는 이유를 듣고 싶다 하지 않았어? 내가 지금부터 할 얘기를 전부 들으려면 시간이 좀 걸려서 말이야.”

나는 노아의 말에 어이없다는 듯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얘기가 길어진다니 왠지 괜히 따라왔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만, 일단 이유나 들어보자는 심정으로 노아가 앉은 곳 맞은편에 있는 통나무에 걸터앉았다.

노아는 이내 앉은 자리의 오른쪽에 있는 공간을 손으로 헤집더니 술병을 하나 꺼내 들었다.

“누군가와 이렇게 대화하는 것도 오랜만이네. 게다가 ‘그 얘기’를 원한다니. 술이 빠질 수야 없겠지. 한잔할래?”

“…저 학생인데요.”

“요즘 애들은 술도 안 마시는 샌님들만 있는 건가.”

물론 현실의 내 나이는 스물두 살이기에 술을 마셔도 상관은 없었다.

게다가 딱히 술을 못 마시는 편도 아니었다.

다만, 지금은 그다지 술이 끌리지 않았다.

‘아직 해도 지지 않았는데 술이라니.’

지금 시간은 해가 지기는커녕 햇빛이 쨍쨍한 이른 아침.

대낮부터 술판을 벌일 정도로 술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술은 됐고. 그래서 왜 이곳에 살고 계시는 겁니까?”

내 말에 남자는 술병째로 입에 대고 원샷을 때렸다.

그러고는 타닥타닥 타오르는 모닥불을 보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벌써 햇수로는 7년쯤 지났으려나…….”

“7년이요?”

나는 해 봤자 1~2년 살았겠거니 했는데 이곳에서 노숙한 지 7년이라니.

물론 이곳에는 먹고살 만한 자원이 풍부하기에 가능은 하겠다만, 그래도 7년이라는 세월은 터무니없이 길었다.

“어이, 너.”

“예.”

“7년 전 있었던 ‘저주받은 학생들’ 사건은 알겠지?”

‘저주받은 학생들’이라.

얼핏 스쳐 가며 들어본 네이밍이었다.

다만, 그것에 관련된 내용은 지금껏 들어본 적도 없었고 관심을 갖지도 않았었다.

“처음 듣는 얘기입니다만.”

“뭐야, 꽤나 시끌벅적한 사건이었는데. 그럼 처음부터 설명해야 하나.”

그러더니 남자는 또다시 술병을 잡고 술을 들이켰다.

벌써 두 병째. 물론 한 손바닥에 들어올 정도의 작은 병이었지만, 마실 때마다 한 병을 비우다니. 어지간히 주량이 강한 듯 보였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 나는 그 ‘저주받은 학생들’의 담당 교수였다.”

노아는 마치 술주정을 부리듯 자신의 과거를 읊기 시작했다.

가감 없는, 전혀 쓸데없는 정보들이 가득했지만, 나는 그 ‘저주받은 학생들’이라는 것이 궁금해져 인내심을 갖고 경청했다.

7년 전, 그의 제자 여덟 명은 아카데미의 교장실을 폭파하고 도주했다고 한다.

결국 그 여덟 명의 학생들은 끝끝내 잡히지 않고 홀연히 자취를 감췄으며, 이후 그들 학번은 ‘저주받은 세대’, 그리고 도주한 학생들은 ‘저주받은 학생들’이 되었다고 한다.

사건이 발생한 뒤, 노아는 그 일에 책임감을 느껴 교직 생활을 청산한 채 남몰래 아카데미의 숲속으로 들어와 이렇게 매일 같이 술을 마시며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고 했다.

“나는 내 제자들을 믿었어. 그러나 내 믿음이, 내 교육이 틀렸던 거지. 그렇게 나는 교편을 놓고 이곳으로 들어온 거야.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지 못한 내 스스로가 부끄러웠거든.”

말을 마친 노아는 고개를 푹 떨궜다.

다만 아직도 모든 궁금증이 해소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 학생들이 왜 히로빈 교장을 노린 겁니까.”

“그 녀석들이 히로빈 교장을 노린 이유?”

내 말에 노아는 살짝 망설였다.

취한 기색이 완연히 내비침에도 고민할 정도라면 뭔가 중요한 걸 숨기고 있는 모양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노아는 이내 입을 열었다.

“녀석들이 찾던 건 ‘큐브’였어.”

“큐브…요? 그게 뭔가요?”

“그건 200년 전 마계 대전 승리의 기념품 같은 거야. 뭐, 세간에는 마계와 인간계를 연결하는 문이라고도 하지만.”

마계와 인간계를 연결하는 문이라니.

그리고 그것을 히로빈 그린월드가 가지고 있었다니.

흥미롭게 이야기를 경청하던 나는, 갑자기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왠지 노아의 얘기를 단순히 7년 전 있었던 일로 치부하기에는 최근에 있었던 습격 사건과 묘하게 연결 고리가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고 있었다.

내 심각한 표정을 본 노아는 손을 저었다.

“뭐야, 그 심각한 얼굴은. 걱정 마. 애초에 녀석들이 가져간 건 ‘흑의 큐브’뿐이고. 게다가 큐브 두 개를 모은다고 해도 결국 큐브는 문일뿐. 열쇠가 필요하니까.”

“그 열쇠라는 것을 얻게 되면 마계의 문을 열 수 있다는 건가요.”

“전설 속에나 전해지는 얘기야. 실제로 봉인된 마계의 문을 열 수 있을 리가 없지. 게다가 전설이 진짜라 해도 어쨌든 열쇠에 대한 정보는 알려지지 않았으니까.”

노아는 대수롭지 않은 듯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다만, 내 머릿속은 딴생각으로 조금 복잡해졌다.

“어쨌든 중요한 건 큐브나 열쇠 따위가 아니다. 결국 내가 가르쳤던 제자들이 엄연한 범법 행위를 저질렀다는 것. 그리고 도주했다는 것. 그 뒤로 나는 이곳에서 이렇게 술만 마시며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는 거다.”

아니, 큐브가 당신의 술주정 따위보다 훨씬 중요한 거 같은데.

나는 노아의 이어지는 술주정은 무시한 채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마계의 문과 열쇠라니.’

노아의 말에 따르면 히로빈 교장이 가지고 있는 ‘두 개의 큐브’가 결합하여 마계의 문을 소환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을 열기 위해선 또다시 ‘열쇠’라는 것이 필요하단 것이고.

‘우연이라기엔 너무 잘 들어맞잖아.’

블랙잭 녀석들이 칼루스 아카데미를 노린 이유.

그중에서도 히로빈 교장을 우선시해서 노린 이유는 그것밖에 없었다.

애초에 마계의 부활, 마족의 재림을 목표로 하는 빌런은 흔한 클리셰였으니까.

‘그렇다면 블랙잭과 그 7년 전의 ‘저주받은 학생’들 사이에 관련이 있다는 건가.’

나는 좀 더 정보를 얻기 위해 어느새 또다시 술병을 들이키고 있는 노아에게 말을 걸었다.

“저 혹시 그 ‘저주받은 학생’들의 이름을 알 수 있을까요?”

“응? 내 제자들?”

이미 노아의 얼굴은 시뻘게져 있었다.

하긴, 그렇게 술을 병째로 연거푸 마셨으니 멀쩡하지 않을 수밖에.

“그 녀석들 이름은…….”

노아는 살짝 감상에 젖은 듯이 자신의 옛 제자이자 ‘저주받은 학생’들의 이름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덧 마지막 두 명.

“…닉스, 그리고 지크 버밀리온.”

“지크… 버밀리온이요?”

“닉스와 지크 버밀리온은 학년의 투톱이었지. 그 녀석들을 내가 지극히 아꼈건만…….”

버밀리온이라니.

그러고 보니 예전부터 루비 버밀리온이 자신의 오빠에 대해서 얘기하려 했던 것이 기억났다. 아마 지크 버밀리온은 그녀의 오빠인 거겠지.

‘저주받은 세대’라는 명칭도 다름 아닌 루비 버밀리온에게서 들은 듯싶었다.

‘루비의 오빠가 ‘저주받은 학생’이었다라. 그러고 보니 이 로브도 그 오빠가 물려준 거랬나.’

결국 좀 더 알아보기 위해선 루비 버밀리온에게 직접 듣는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루비 버밀리온은 협회장의 딸.

7년 전 있었던 자신의 오빠에 관한 일을 더욱 자세히 알고 있을 법도 했다.

“그나저나 넌 왜 이곳에 들어온 거냐? 나 때는 숲에 절대 들어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었는데.”

“지금은 딱히 금지까지는 아니긴 해요.”

“그래서 들어온 목적이 뭔데.”

“던전을 하나 찾으러 들어왔어요.”

“던전?”

술에 거나하게 취했는지 노아는 새빨개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수염과 더벅머리로 뒤덮인 얼굴이지만 나름 준수한 외모를 가지고 있는듯했다.

“혹시 이곳에서 빙결계 던전을 보신 적 있나요?”

“빙결계 던전? 알다마다.”

노아는 자신의 등 뒤 방향을 엄지손가락으로 콕콕 가리켰다.

“저쪽 방향으로 쭉 10분만 걸으면 나온다. 그나저나 빙결계 던전은 왜?”

“아… 이제 곧 여름이잖아요. 더워서요.”

“그래?”

내 말도 안 되는 헛소리에도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는 노아.

역시 거나하게 취해서 사리 분별이 되지 않는 듯싶었다.

나는 이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볼게요.”

“왜? 벌써 가게? 담소 좀 더 나누지. 오랜만에 사람을 봐서 반가운데 말이야.”

“죄송해요. 지금은 할 일이 있어서요. 종종 놀러 올게요.”

나는 노아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그래. 알겠다. 다음에 올 땐 꼭 술 한잔하자고.”

“예예.”

기어코 학생과 술을 마시겠다니.

7년 전 일과는 별개로 역시 교수 자격에 살짝 미달인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다시금 노아에게 인사한 뒤, 아까 전 노아가 가리킨 방향으로 향했다.

사실 지금 당장 기숙사로 돌아가서 루비 버밀리온과 방금 나눴던 내용을 얘기하고 싶었지만, 온 김에 던전을 확인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었다.

노아가 말한 대로 10분 정도 걷자, 곧 던전의 입구가 보였다.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도 한기가 느껴지는, 누가 봐도 빙결계 던전이었다.

“일단은 빠르게 클리어 해 볼까.”

루비 버밀리온과의 얘기는 돌아가서 해도 늦지 않았다.

그리하여 나는 던전 안으로 한 발짝 발을 뻗었다.

그런데,

콰아아앙!

던전이 내 몸을 튕겨 냈다.

그리고 내 몸은 던전 입구의 얼어붙은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게 되었다.

“뭐지, 들어갈 수 없는 건가?”

나는 다시금 몸을 일으켜 세우고 던전 입구를 살폈다.

그리고 던전 입구 벽면에 적혀져 있는 글을 발견했다.

[오직 아메드만.]

“오직 아메드만이라니.”

나는 터무니없는 던전의 입장 조건에 기가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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