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결국 던전에 입장하지 못한 나는 다시 아카데미로 복귀했다.
시간은 어느덧 점심시간이 거의 마무리되어 가는 시간.
이른 아침부터 서쪽 숲으로 들어갔으나, 노아의 술주정을 듣느라 시간이 꽤나 흐른 것이다.
“샬롯은 아직 아카데미에 남아 있으려나.”
다음 주 월요일까지는 임시 휴강이었기에, 본가에 내려갔을 경우도 있었다.
다만, 아카데미 지침상 웬만하면 주말에도 아카데미에 머물기를 권장하고 있기에 아직 여기 남아 있을 가능성이 컸다.
“오직 아메드만이라니.”
던전의 터무니없는 입장 조건.
결국 아메드의 가보를 얻기 위해서는 샬롯의 도움이 절실한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먼저 식당으로 갔다.
이미 시간이 시간인지라 식사를 마친 학생들이 저마다 기숙사로 복귀하고 있는 참이었다.
그런데 문득 그 여러 명의 학생들 중에 무리를 따라 걷고 있는 루비와 달시가 눈에 들어왔다.
“마침 잘됐네.”
샬롯뿐만 아니라 루비에게도 나름 볼일이 있었으니까.
그리하여 나는 곧장 둘에게로 달려갔다.
“안녕!”
나를 보자마자 달시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고 보니 아카데미에 복귀하자마자 중간고사가 시작됐기 때문에, 달시와는 세오린 산 이후로 처음 보는 듯했다.
“어젠 잘 봤어. 괜한 자신감이 아니었나 보네.”
“그러게, 중간고사 내내 코빼기도 보이지 않더니만 마지막에 트로피를 차지할 줄은 몰랐잖아.”
“운이 좋았던 거지. 그보다 달시 너는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트로피를 차지할 수 있었던 거 아니야?.”
“응? 그게 무슨 소리야?”
“글쎄에. 모르겠네.”
내 말에 달시는 모르는 척 시선을 피했다.
다만, 나는 빈말을 한 게 아니었다.
실제로 달시가 그녀의 고유 마법 ‘계승’을 사용하고 트로피를 쟁취했더라면, 아무리 점멸을 사용한다 해도 탈취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저 녀석, 지금까지 아카데미 내에서는 한 번도 ‘계승’을 사용한 적 없단 말이지.’
그게 단순히 힘을 숨기는 건지, 아니면 뭔가 까다로운 조건이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건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보다 나 루비 너한테 할 말이 있는데.”
“무슨 할 말?”
루비의 반문에 나는 달시를 흘끔 쳐다보았다.
“그게… 달시가 있으면 조금 그래서.”
“그래그래. 그럼 둘이 잘 얘기해 봐.”
달시는 내 등을 툭툭 두드리더니 먼저 기숙사로 가 버렸다.
그렇게 단둘이 남게 된 나와 루비.
나는 일단 그녀에게 골목으로 들어갈 것을 제안했다.
“여긴 조금 사람이 있어서 그러니까. 식당 골목으로 들어가서 얘기하자.”
“으슥한 곳에 가서 할 정도의 얘기야?”
“응. 매우 중요한 얘기야.”
식당 옆 골목 안은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마무리되어서 다들 기숙사로 복귀한 거겠지.
나는 영문도 모르는 채 나를 쳐다보고 있는 루비 버밀리온을 보며 살짝 망설였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어쨌든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잖아.’
단순히 그녀의 가정사로 그치는 주제라면 굳이 얘기할 내용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러한 내용을 알게 된 걸 당사자에게 말하는 것은 무례한 행위일 수도 있었다.
다만, 그녀의 오빠 얘기는 아카데미의 침공 이벤트, 나아가 블랙잭과의 연관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기에 적어도 확인해야 할 문제였다.
그리하여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내가 부른 이유는…….”
“무슨 일인데?”
“…지크 버밀리온에 관한 얘기를 하고 싶어서.”
“…….”
‘지크 버밀리온’의 이름을 듣자마자 루비는 입을 다물었다.
그만큼 쉽게 말하기 민감한 사안인 거겠지.
“역시 지크 버밀리온은 네 오빠가 맞는 거겠지.”
“…어떻게 알았어? 딱히 말한 기억은 없는 거 같은데.”
“우연찮게 들었어. ‘지크 버밀리온’도, 그리고 ‘저주받은 세대’에 관한 내용도. 그래서 너한테 사실 여부를 확인받고 싶었던 거야. 게다가 너라면 좀 더 그 사건에 관해 자세히 알고 있을 수도 있는 거고.”
“그럼… 7년 전 있었던 일은 대충 아는 거지?”
“응.”
나는 루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녀는 뭔가 결심한 듯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실은 나, 7년 전 실종됐던 지크 오빠를 최근 보게 됐어.”
“뭐? 어디서?”
“블랙잭이 습격했던 그날, 숲에서.”
“뭐어?!”
눈동자가 튀어나올 듯 팽창했다.
설마 했지만 역시나. 7년 전 있었던 사건과 블랙잭 사이에 연결고리가 있었던 것이다.
“숨기려고 해서 숨겼던 건 아니야. 다만, 그때 당시에는 타이밍이 좋지 않았어. 7년 만에 만나게 된 오빠가 안티 매지션이 되었다는 거에 충격받지 않을 사람이 없잖아.”
“설마 너희 오빠가…….”
“블랙잭이라는 조직을 만든 건 지크 오빠야.”
잠시 말문이 막혔다.
7년 전 있었던 사건과 블랙잭 간의 연결고리는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아예 루비의 오빠가 블랙잭의 설립자라니.
“…이 얘기, 마경 측에는 전달한 거야?”
“아니. 말했다시피 그때 당시는 충격이 커서 말하지 못했었어.”
“그럼 나한테 로브를 준 것도…….”
“맞아. 그 로브, 오빠가 물려준 거였거든. 사실을 알고 나니 꼴 보기도 싫어서. 그래서 버리다시피 한 거였어.”
루비는 조금 담담한 어투로 얘기했다.
아무래도 지난 한 달 동안 오빠에 대한 생각을 나름 정리했던 거겠지.
“그날, 오빠는 나에게 같이 가자고 했어. 당연히 거절했지만.”
“그 녀석들의 목적이 뭔데?”
“마계의 문을 연다 했어.”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녀석들의 목적은 마계의 문을 열어 마족들을 인간계로 불러들이는 것이었다.
다만, 아직 모든 의문이 풀린 것은 아니었다.
“그 이유가 도대체 뭘까. 잘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마족들은 인간의 적이잖아. 녀석들을 소환한다면 결국 또다시 전쟁이 일어나는 거 아니야?”
“그건 모르겠어. 나도 왜 지크 오빠가 마계의 문을 열고자 하는지 이해가 안 돼.”
“세상을 멸망시키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내가 이 세계로 오면서 받게 된 메인 이벤트의 이름은 ‘멸망의 구원자’였다.
결국 나는 마계의 문을 열어 이 세계를 멸망시키려는 블랙잭이라는 조직을 막아내야 하는 사명을 떠맡게 된 것이다.
‘그나저나 이거 ‘아카데미의 멸망’ 수준이 아니잖아. 자칫하다간 세계의 멸망이 될 수도 있는 거겠네.’
현재 상황을 파악하자면 일단 마계의 문 역할을 하는 ‘큐브’, 그 중에서도 ‘흑의 큐브’는 이미 블랙잭의 손에 넘어갔다고 한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백의 큐브’와 ‘열쇠’.
‘나머지 큐브의 행방이야 히로빈 교장에게 확인을 받으면 되는 거고, 문제는 열쇠가 무엇이냐인데.’
그 ‘열쇠’에 관하여 조금 알 것만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아카데미를 습격했던 당시 블랙잭의 목표는 히로빈 교장과 제이드였으니까.
‘제이드가 뭔가 열쇠와 관련이 있다는 건가.’
지금으로써 내가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이 정도뿐이었다.
‘아무튼 좋다 이거야.’
이젠 좀 더 목표가 명확해졌다.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마계의 부활을 막는 것.
나는 절대 녀석들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게끔 최선을 다할 것이다.
* * *
루비와 헤어진 뒤 나는 곧바로 샬롯을 기숙사 앞으로 불러냈다.
아무래도 이제는 과제의 윤곽이 명확히 드러났다 보니, 그만큼 ‘영웅의 아티팩트’ 수집도 속도를 올려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부르셨어요?”
이내 기숙사에서 내려온 샬롯 아메드.
방금 일어났는지 눈이 살짝 부어 있었다.
다만, 그 와중에도 나름 빗질은 하고 나왔는지 그녀의 백금발 머리가 매우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혹시 아메드의 가보에 대해서 관심 있지 않아?”
“저희 가문 가보요?”
뜬금없는 얘기에 고개를 갸웃하는 샬롯 아메드.
다만, 지금의 나는 여유가 없었다.
하루빨리 모든 영웅의 아티팩트를 수집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뻔뻔하게 나가야 하는 것이다.
“어차피 다음 주 월요일까지는 할 것도 없잖아. 나랑 같이 아메드 가문의 가보를 찾으러 가자.”
“그건 맞지만… 근데 저희 가문 가보는 왜요?”
“그냥 호기심. 너희 가문의 가보가 전혀 연관성 없는 아카데미의 부지 안에 있다는 게 뭔가 호기심을 자극하지 않아?”
“그렇네요. 이상하긴 하네요.”
사실 가보에 대해 먼저 얘기를 꺼냈었던 것은 나였기에, 지금의 설득은 말도 안 되는 궤변이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샬롯은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잠이 덜 깬 듯싶었다.
“사실 내가 가보가 있다는 던전의 위치는 발견했거든. 근데 던전에 조건이 있더라고.”
“조건…이라면.”
“아메드 가문의 핏줄만이 던전을 출입할 수 있다나 봐. 그러니까 가문의 후손인 네가 직접 들어가야 된다는 거겠지.”
“흐으음……. 저도 어렸을 때부터 들어왔던 내용이라 살짝 흥미가 생기긴 하네요.”
“그렇지?”
다행이다.
게다가 샬롯의 성격상 딱히 거절하거나 뺄 녀석도 아니었다.
“그럼, 지금 가자.”
“지금 바로요?”
“어차피 따로 준비할 것도 없잖아.”
“음……. 그래요. 그럼 가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는 샬롯 아메드.
그리하여 우리는 서쪽 숲으로 향했다.
그런데 가는 길에 우리를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둘이 어디 가요?”
캐서린 골드버그였다.
그러고 보니 캐서린도 중간고사 이후로는 처음 보는 듯했다.
“서쪽 숲에 있는 던전에 가던 중이었어.”
“안녕하세요.”
캐서린은 살짝 무뚝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던전이요? 저도 같이 가도 될까요.”
“아, 미안하지만 이번 던전은 샬롯만 갈 수 있어서. 다음에 같이 가자.”
“…샬롯 아메드만이 갈 수 있는 던전이라고요?”
살짝 말이 없어진 캐서린.
그러더니 이내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괜히 같이 가자고 해서 죄송해요. 그럼 이만.”
캐서린은 그 말을 끝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던 길을 갔다.
나는 그런 그녀의 뒤를 물끄러미 쳐다볼 뿐이었다.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캐서린의 고백 이후로 살짝 어색함을 느끼는 게 없지 않아 있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의도적으로 피한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이번 일은 정말로 ‘오직 아메드만’이라는 조건이 붙은 던전이었으니까.
‘뭐, 오해는 나중에 풀면 되겠지.’
일단 지금 당장은 ‘아메드의 아티팩트’를 얻는 게 중요하니까.
그리하여 계속해서 서쪽 숲으로 향하던 우리는 곧 빙결계 던전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침에 본 노아는 술에 취해 자고 있는지, 서쪽 숲 깊이 들어왔는데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저기 동굴 벽면에 쓰여 있는 글 보이지?”
“오직 아메드만…이라니. 진짜네요?”
“한번 들어가 볼래?”
“네.”
그리하여 조심스레 던전 안으로 몸을 들이미는 샬롯 아메드.
역시나 던전은 그녀를 튕겨 내지 않았다.
“확실히 정품은 맞나 보네.”
“네?”
“농담이야. 그나저나 아무리 그래도 혼자 던전 안으로 보낼 수는 없는데…….”
샬롯이 아무리 강하다지만, 내부에 뭐가 들어 있을지도 모를 던전 안으로 혼자 보낼 수는 없었다.
“뭔가 방법이 없으려나…….”
한참을 곰곰이 생각하던 나는 곧 방법을 하나 떠올렸다.
‘결국, 던전은 아메드의 마나를 인식해서 들여보내는 거겠지?’
그렇다면 답은 하나.
내 마나를 지우고 아메드가 들어갈 때 아메드의 마나와 함께 들어가는 것이다.
“스읍―!”
나는 곧바로 숨을 참기 시작했다.
아무리 숨을 참아 마나의 흐름을 정지시킨다고는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마나량 자체가 워낙 방대하기 때문에 전부 숨길 수는 없었다.
그래도 지금 당장의 방법은 이것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나는 숨을 참은 채로 샬롯의 손을 잡았다.
“에?”
살짝 놀란 듯 토끼 눈을 뜨는 샬롯.
그리고 나는 동시에 던전 안으로 몸을 던졌다.
다행히도 던전은 내 몸을 거부하지 않았다.
‘성공했나?’
그런데,
쿠르르르릉!!
갑자기 던전의 입구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거죠?”
“일단 잔말 말고 달리자!”
그리하여 우리는 던전의 동굴 터널 내부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차 빛이 새어 들어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동굴의 끝에 다다르자 보이는 것은,
“뭐야, 여긴.”
끝없이 펼쳐지는 새하얀 설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