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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의 무속성 마법사-136화 (136/175)

136화

코 대신 꽂혀 있는 당근.

머리 위에 쓰고 있는 중절모.

나는 녀석을 보자마자 옳다구나 싶었다.

‘저 녀석, 맞겠지?’

외형으로 봐서는 틀림없었다.

저 녀석은 골드버그의 동상 밑에 있던 눈사람이 분명했다.

게다가 나는 녀석의 이름을 이미 알고 있었다.

녀석의 이름은 바로 ‘잭 프로스트’, 흔히 동장군이라고 불리는 녀석이다.

물론, 녀석이 도깨비불의 한 종류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매기, 파르와 관련이 있는 것은 확실했다.

나는 눈사람을 보자마자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어이, 눈사람!”

그런데, 눈사람은 대답 대신 냉기 브레스를 뿜었다.

점멸로 빠르게 반응해서 다행이지, 하마터면 녀석의 브레스에 꼼짝없이 얼어붙을 뻔했다.

“뭐야, 저 녀석. 아직 매기와 파르를 발견하지 못해서 그런 건가.”

녀석의 공격적인 대응은 내가 단독으로 접근했기에 그런 걸 수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매기와 파르를 녀석에게 보냈다.

그런데 눈사람을 마주한 매기와 파르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 파,파르…….

- 끼루욱…….

분명 서로 아는 사이 같기는 한데, 뭔가 죄를 지은듯한 느낌.

게다가 파르는 그렇다 쳐도, 매기까지 저자세로 나올 줄은 몰랐다.

그리고 그 둘을 본 눈사람은 아까보다도 더욱 거센 공격을 퍼부었다.

- 푸르으으으!!

매기와 파르가 있던 자리를 훑고 지나가는 냉기 브레스.

그리고 곧 시야를 가리는 눈보라가 그치자 보이는 것은 어느새 사신 폼을 하고 있는 파르였다.

- 파르.

그러더니 곧 파르와 눈사람이 서로 맞붙기 시작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죠?”

“글쎄. 뭔가 사연이 있는 거 같긴 한데.”

사실 제일 당황스러운 건 나였다.

분명 파르처럼 저 눈사람도 쉽게 사역마로 영입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매기와 파르를 보자마자 더욱 공격적인 자세로 나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사신 폼으로 변한 파르는 눈사람에 맞서 싸웠고, 그 모습을 매기는 안절부절못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분명, 매기와 파르가 저 눈사람에게 뭔가 잘못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나저나 저거 괜찮은 건가?”

눈사람은 주변의 눈을 자유자재로 조종하며 파르를 압박하고 있었다.

피닉스를 상대로도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 주던 파르가 밀리고 있다니. 결코 만만한 상대로 볼 수 없었다.

“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데.”

나는 개입할 여지가 없나 곰곰이 생각해 봤다.

그러다 마침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이러면 되는 거겠지.”

나는 회중시계를 꺼내든 뒤에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팟―!

점멸을 사용하여 눈사람 등 뒤로 순간 이동했다.

그리고 동시에 눈사람의 몸에 회중시계를 가져다 댄 뒤 마나를 불어 넣었다.

우우우웅―!

순식간에 회중시계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거대 눈사람.

그리고 잠시 후, 눈사람이 온전히 사라지고 주변이 잠잠해졌다.

녀석을 회중시계 안으로 완전히 봉인시킨 것이다.

“됐다. 넌 이제부터 내 거야.”

- 파, 파르…….

내 음흉한 미소를 보며 당황스러워하는 파르.

그러나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금 회중시계에 마나를 불어넣어 아까의 눈사람을 꺼냈다.

- 푸르으!

나오자마자 요란하게 악을 지르며 아등바등하는 눈사람.

다만, 녀석은 아까와는 다르게 몸통이 없었다.

오직 눈사람의 머리만이 둥둥 떠다닐 뿐이었다.

“반갑다. 새로운 사역마.”

- 푸르르!!

“그래그래, 갑작스레 납치해서 미안해.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 시간은 충분하니까 옛 동료들과는 천천히 화해하라고.”

- 푸르으……!

눈사람은 부들부들 댔지만 딱히 반항할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뭐, 반항해 봤자 어쩌겠어. 이미 꼼짝없이 내 사역마가 돼 버렸는데.

나는 녀석의 이름이 ‘푸르’가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푸르!!

- 파, 파르…….

- 끼루욱…….

사역마가 됐음에도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은 듯한 푸르는 파르와 매기에게 따져 댔다.

나는 계속되는 셋의 말싸움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가 없어 일단은 소환 해제시켰다.

그러자 가만 지켜만 보고 있던 샬롯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든 해결됐네요?”

“그러게. 사실 반쯤 예상하고 있었지만.”

애초에 빙결계 던전을 입장했을 때부터 나는 골드버그의 동상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마찬가지로 용암 던전에서 합류했던 파르를 생각한다면, 골드버그의 동상 발밑에 있던 눈사람은 이 빙결 던전에서 나타날 거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결국, 내 예상대로 녀석이 합류했다.

매기가 격투 계열, 파르가 검사 계열이라면 저 눈사람은 마법 계열.

나름 든든한 사역마 조합이 아닐 수 없었다.

“어쨌거나 이제 진짜 보스만이 남은 건가.”

던전의 구조는 용암 던전 때와 비슷해 보였다.

보스 방을 지키고 있는 문지기.

그 뒤에 있는 것이 바로 이 던전의 진짜 보스겠지.

“그럼, 갈까?”

“네!”

그리하여 우리는 조심스레 얼음 궁전 안으로 들어갔다.

마치 투명한 크리스털 같은 얼음 조각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궁전.

빼어난 조각가의 작품인 것처럼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그나저나 이런 곳에 보스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 못 하겠는데.”

“그러게요. 보스가 등장하기에는 공간이 너무 협소한데요.”

궁전의 크기는 마물이 아닌, 사람을 기준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사람보다 거대한 마물은 이곳에 존재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계속해서 궁전 안으로 나아갔다.

한참을 걸었을까, 곧 굳게 닫힌 거대한 문이 보였다.

“궁전의 알현실 같은 건가.”

“왠지 진짜 보스 방인 거 같은데요.”

“그러게. 그래도 뭐, 이왕 여기까지 온 거 들어가야겠지?”

“네. 한번 들어가 보죠.”

나는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육중해 보이는 문은 보기와는 다르게 별 힘을 들이지 않아도 쉽게 열렸다.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것은 알현실 끝에 위치한 얼음으로 된 왕좌와 그 왕좌에 앉은 여왕 조각상이었다.

보스가 기다리고 있을 것으로 예상했던 나는 살짝 의아한 눈으로 여왕 조각상을 바라보았다.

“아무도 없는 건가……?”

그런데 그때, 알현실 내부에 차가운 한기가 휘몰아쳤다.

그러고는,

- 어서 오너라.

얼음 조각상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 웅장한 목소리에 나는 살짝 경계하며, 조심스레 매직 미사일을 충전하기 시작했다.

그런 나를 보고 얼음 조각상은 손을 휘저었다.

- 마나를 거두거라. 딱히 그대를 해할 생각은 없으니.

녀석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매직 미사일을 취소했다.

어쨌든 녀석에게선 적의가 보이지 않고 있었다.

“당신은 누구지?”

사실 반쯤은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확인차 질문을 던진 것이다.

그리고 녀석의 대답은 역시나.

- 나는 윈터 아메드이니라.

내가 생각했던 그대로였다.

“어떻게 당신이 아직도 존재할 수 있는 거죠?”

분명 마계 대전으로부터 200년이 지났다.

이곳의 평균 수명은 80세이기에 지금까지 살아 있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물론, 히로빈 그린월드처럼 예외는 있는 거지만.

- 그래. 그대의 말이 맞다. 나는 진즉에 죽은 몸, 이곳에 남은 것은 오직 내 마나의 흔적뿐인 게지. 아마 지금의 대화가 끝난다면 여기 남아 있는 마나마저도 곧 사라지게 될 것이니라.

역시 본체, 윈터 아메드는 죽은 지 오래인 것으로 보였다.

다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사후 200여 년간 유지되는 마나라니.

역시 보통의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 그쪽에 있는 자는 내 후손인가?

“예, 윈터 아메드 님. 샬롯 아메드라고 합니다.”

- 그렇다면 그 옆에 있는 자는 누구인가. 나는 분명 아메드의 핏줄만이 이곳에 도달할 수 있게끔 설계했는데 말이다.

“저는 제로라고 합니다.”

- 제로라. 가만, 그 로브와 회중시계, 그리고 품 안에 있는 부적. 설마 네가 그 예언의 아이라도 된다는 것인가.

예언의 아이?

나는 처음 듣는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 그대가 이곳에 나타났다는 것은, 마계의 부활이 머지않았다는 얘기겠군.

“예언의 아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죠?”

- 나도 자세히는 모른다. 다만, 아텔라 버밀리온이 그러더군. 우리가 봉인했던 마계는 200년 뒤 다시금 부활을 도모할 것이고, 예언의 아이가 나타나 그것을 저지할 것이라고.

아니, 이게 다 무슨 소리야.

내가 말문이 막힌 것은 충격 때문이 아니었다.

사실 이 세계가 게임이라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내용이었다.

다만, 조금 갑작스럽다는 생각이었다.

- 그대가 가지고 있는 아티팩트들. 전부 200년 뒤 그대를 위해 우리가 마련해 놓은 일종의 보험인 것이다.

옆을 흘끔 보니 샬롯이야말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눈치였다.

그야 샬롯은 아예 마계가 부활할지도 모른다는 사실 자체도 모르고 있었으니까.

- 자, 이걸 받거라.

윈터 아메드가 손가락을 튕기자, 그녀의 목에 걸려 있던 목걸이에서 반지가 튀어나와 내 손에 안착했다.

나는 말없이 그것을 받아 들었다.

- 그것이 내가 그대를 위해 준비해 놓은 선물인 게다. 지금껏 오직 이 순간만을 위해 기다리고 있었지. 그럼 이제 슬슬 사라지겠구나…….

“잠시만요!”

나는 점차 희미해져 가는 윈터 아메드를 붙잡았다.

200년 전의 영웅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 게다가 진실을 알고 있는 자와의 대화인데 이렇게 쉽게 놓아줄 수는 없었다.

“정말, 큐브가 마계의 문인 건가요?”

- 그래…….

“그렇다면 열쇠는 무엇이지요?”

- 열쇠는…….

이미 반지를 넘겨줬을 때부터 윈터 아메드의 몸은 점차 눈보라로 변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200년간 저 모습을 유지하는 데만 해도 고작이었던 거겠지.

그러나 다행히도 나는 윈터 아메드의 마지막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 엘가시아. 엘가시아의 핏줄이 열쇠이니라.

“엘가시아의 핏줄이 열쇠라고요? 그렇다면 큐브를 모은 뒤 엘가시아의 핏줄과 함께라면 마계가 부활한다는 건가요?”

휘유우웅―!

그러나 나는 그 뒤의 대답을 듣지 못했다.

이미 윈터 아메드의 얼음 조각상이 완전히 눈보라로 증발해 사라지고 만 것이다.

“가 버렸네…….”

나는 아쉬운 마음에 입맛을 다셨다.

좀 더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고작 아티팩트를 넘겨주기 위해 이곳에서 200년 동안 기다리고 있었다니 가성비가 맞지 않았다.

물론, 상대는 그저 마나만을 각인시켜 놓은 것이겠지만.

‘그나저나 엘가시아의 핏줄이 열쇠라니. 엘가시아 그 자체만으로도 열쇠의 역할을 한다는 건가?’

지금까지는 제이드가 무언가 열쇠가 될만한 것을 찾을 단서가 되는 줄로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제이드 그 자체가 열쇠였다니.

다만, 어째서 마계의 문을 여는데 엘가시아의 핏줄이 열쇠 역할을 하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입을 떡 벌린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샬롯 아메드.

나는 그런 그녀의 등을 툭툭 두드렸다.

“들은 대로야. 뭐, 지금 당장은 조금 갑작스럽겠지만. 어쨌든 이건 내가 갖는다. 불만 없지?”

나는 샬롯의 눈앞에서 반지를 흔들어 보였다.

사실 ‘아메드의 가보’를 미끼로 샬롯을 이곳으로 데려온 이상. 살짝 미안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윈터 아메드 본인이 직접 나에게 반지를 넘겼으니 설득할 수고를 덜게 되었다.

“예에.”

샬롯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런 그녀를 보며 어깨를 한번 으쓱했다.

‘그나저나 이젠 정말 진실이 코앞으로 다가왔네.’

이제 나에게 남은 것은 나머지 영웅의 아티팩트를 수집하는 것.

그리고 마계의 부활을 막아 내기 위해, 큐브를 사수하고 제이드를 지켜 내는 것.

‘반드시 지켜 내겠어.’

나는 내게 주어진 최후의 사명을 생각하며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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