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무슨 생각해?”
“아무것도 아니에요.”
나는 이내 잡생각을 떨쳐 내고 목검 손잡이를 다잡았다.
사실 내심 이 시간을 기다린 것도 있었다.
아텔라 교수님과의 마지막 대련은 블랙잭이 습격하기 전.
벌써 한 달 넘게 지난 지금 시점에서 더욱 성장한 모습을 보여 주고 싶던 것이다.
‘게다가 나름 여기저기서 인정받은 검술이기도 하고.’
레온 선생, 그리고 인류 최강이라 일컬어지는 노아에게서의 칭찬까지.
물론 다 눈앞에 있는 스승 덕분이긴 하지만, 그만큼 아텔라 본인에게서도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럼, 갑니다!”
나는 자신 있게 아텔라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아무리 성장해 봤자 아텔라 교수님 발끝도 못 미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깨닫는 시간이었다.
15분 뒤.
“그래도 꽤 늘었네. 꽤나 오래 버티잖아.”
“그만…할까요?”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아텔라 교수에게 겨누어진 목검을 내렸다.
쉬는 시간 없이 15분, 몰아치는 아텔라 교수님의 검격을 받아내느라 온몸에 성한 구석이 없었고 탈진 상태가 된 것이다.
“그래,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아텔라 교수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내게서 목검을 받아 냈다.
나는 목검을 건네자마자 그대로 바닥에 대자로 뻗었다.
“역시 교수님은 강하네요.”
“그럼. 당연하지.”
예전부터 느낀 거지만 저 사람, 정말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내가 단기간에 검술 실력이 향상된 것도 다 아텔라 교수가 강한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님은 검술뿐만 아니라 고유 마법도 사기잖아요.”
“그렇긴 하지. 공간 조작은 물질계 중에서도 희귀한 마법이니까.”
가만, 그러고 보니 아텔라 교수님에게 물어보고 싶던 것이 있었다.
저번에 도서관에 갔을 때부터 머릿속을 맴돌았던 생각.
“그런데 아텔라 교수님. 혹시 물질계 영웅에 대해서 아세요?”
“그럼, 당연하지. 내 이름도 그분의 이름에서 따온 거니까.”
“어라, 알고 계셨네요.”
물질계 영웅 아텔라 버밀리온.
그리고 눈앞의 검술 교수 아텔라 가스트로디아.
둘은 비단 이름만 같은 것이 아니었다.
고유 마법도, 심지어 새빨간 머리색도 같았다.
“이름뿐만 아니라 고유 마법도 같아서 뭔가 신기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러고 보니 너도 공간 조작 마법을 사용하던데. 중간고사 때 영상은 잘 봤어.”
“보셨나요.”
중간고사 때 영상이라면 아마 내가 트로피를 낚아채던 순간을 말하는 거겠지.
사실 아텔라 교수님과는 모든 비밀을 공유한 사이라 딱히 숨길 이유는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영웅의 아티팩트’에 대해서 서슴없이 터놓았다.
“아시다시피 저는 고유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잖아요. 사실 그 공간 조작 마법, 영웅 ‘아텔라 버밀리온’의 아티팩트를 사용한 거예요.”
“아티팩트? 설마 전설급 아이템보다도 더 희귀하다는 그 아티팩트를 말하는 거야? 게다가 ‘영웅’의 아티팩트라고?”
아텔라 교수는 짐짓 부러운 눈치였다.
그야 전설급도 희귀한데 아티팩트급의 아이템이라니.
웬만한 사람이었다면 그냥 넘어가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유물이었다.
그나마 일반적인 사람에게는 그저 ‘가보’정도로만 알려져 있는 게 다행이지, 그 가치가 알려졌더라면 쉽게 수집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실 모든 영웅의 아티팩트들을 수집하러 다니고 있거든요.”
“영웅의 아티팩트라……. 그것도 일종의 퀘스트? 미션? 같은 거야?”
“네. 맞아요. 제 경우에는 이벤트예요. 일단 그게 지금 당장의 제 목표, 이제 세 개 정도 남았네요.”
“부럽네. 영웅의 아티팩트를 하나도 아니고 여러 개를 소유할 수 있다니. 가만 보면 정말 부럽다니까.”
아텔라 교수의 부러워하는 시선에 나는 살짝 뒷머리를 긁었다.
그러고는 내친김에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해서 털어놓았다.
“교수님, 혹시 ‘저주받은 학생’들에 대해서 아세요?”
내 말을 듣자마자 순간 눈빛이 달라진 아텔라 교수.
방금 전까지 부러워하던 눈빛은 온데간데없고 조금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응.”
매우 짧고 간결한 대답이었지만 그 말 속에는 알 수 없는 복잡한 감정들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 ‘저주받은 학생’들이 만든 조직이 바로 블랙잭이에요.”
“그렇구나.”
아텔라 교수는 별다른 감정의 동요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조금은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계속해서 큐브와 열쇠, 그리고 녀석들이 ‘마인화’를 다룰 수 있다는 정보까지 전부 그녀에게 공유했다.
모든 얘기를 경청하고 있던 아텔라 교수는 이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럼, 그 ‘큐브’와 ‘열쇠’를 지켜 내고, 영웅의 아티팩트를 모두 모으게 되면 끝인 거야? 그 뒤는? 이 세계는 어떻게 되는 거야?”
나는 그 말에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이 세계가 정말 게임 속 세계에서 그친다면, 결국 모든 이야기가 끝났을 때 게임은 거기서 종료되는 게 아닐까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건, 저도 잘 모르겠네요……. 죄송해요.”
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내 애매한 대답에 아텔라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밝은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래.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자. 지금 당장은 이 세계가 멸망되는 것부터 걱정해야지. 나중 일을 생각하기엔 너무 이르잖아.”
“하하……. 그렇죠.”
역시. 이런 면 때문에 아텔라 교수를 존경하는 거였지.
다만, 나는 모든 진실을 알고 있는 그녀의 마음이 공감돼서 조금 씁쓸해졌다.
* * *
수업이 모두 끝났을 때는 이미 해가 진 상태였다.
저번 주엔 중간고사가 진행돼서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
나는 풀 강의를 들어야 하는, 꼬인 시간표를 가지고 있던 것이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땐가.”
다른 과목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과학’, ‘수학’ 강의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이제 곧 세계가 멸망할 수도 있는데 한가하게 과학, 수학 강의를 듣고 있다니.
하지만 불평한들 어차피 매주 강의를 들어야 하는 것은 변함없었다.
어찌 됐든 이 모든 것이 끝나기 전까지 나는 아카데미 학생의 신분으로서 있어야 되는 것이니까.
그리하여 해가 지고 어두컴컴한 지금.
나는 노아를 만나기 위해 서쪽 숲으로 향했다.
사실 밝은 빛을 내는 매기를 따라 걷고 있으니, 어둠은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곧 온몸에 기묘한 감각이 퍼지는 것을 느끼고, 나는 곧 노아의 영역에 들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디 계세요?”
“…뭐야. 이번에 또 보수했는데 도대체 어떻게 들어온 거냐.”
갑자기 등 뒤에서 나타나는 얼떨떨한 표정의 노아.
나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농담 삼아 말했다.
“글쎄요. 다른 건 모르겠지만 결계 실력은 조금 형편없으신 거 아닐까요.”
“…그럴 리가 없는데. 너무 숲에 틀어박혀 있어서 그런 건가.”
수북한 머리를 긁적이는 노아.
나는 다시 한번 눈앞의 사람이 ‘인류 최강’이 맞는지 의심이 들었다.
“아무튼 여긴 왜 다시 온 거냐 꼬마야.”
“당신이 저번에 다시 오라 했잖아요.”
“…그랬나. 또 술에 취했나 보군.”
노아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나를 자신의 오두막으로 안내했다.
곧 모닥불이 타닥거리고 있는 오두막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저번 때처럼 노아는 모닥불 주변에 앉기를 권유했다.
그러나 나는 앉지 않고 내 허리춤에 있는 언노운을 보였다.
“저, 이거 아시죠.”
“응? 그러고 보니 너. 언노운을 가지고 있었지.”
노아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내가 그를 찾아온 이유는 언노운이었기에 나는 이어서 용건을 말했다.
“언노운을 어떻게 아시는 거죠.”
“그야 이전에 사용했었으니까.”
이전에 사용했었다라.
눈앞의 남자가 언노운의 전 주인이라는 사실에 나는 살짝 놀랐다.
“그럼, 언노운을 쓰다가 아카데미 근처의 상점에 팔아넘긴 건가요.”
“아니, 딱히 그런 건 아닌데. 나는 검을 ‘빌려’ 쓰거든.”
“빌려 쓴다고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는 노아.
그러더니 씨익 웃으며 누런 이를 보였다.
“재밌는 거 보여 줄까?”
말을 마치자마자 노아는 갑자기 손가락을 딱 소리 나게 튕겼다.
그러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우와아아…….”
하늘에 드리우는 수백 개의 검(劍)이었다.
* * *
“뭐? 마경의 말단 인원이 마을을 습격하고 있다고?”
실베르 라인하르트는 어이없다는 듯 되물었다.
다만, 황당하게도 그가 들은 내용은 사실인 듯했다.
“예. 그로 인해 피해가 심각하다고 합니다.”
“아니, 그래 봤자 말단 인원인 거잖아. 굳이 나까지 나서야 하는 거야?”
“이미 여러 번 출동 인원들을 보내 봤지만, 전부 사살되었다고 합니다. 이 이상 피해자가 발생하기 전에 차장님께서 직접 출동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도대체 어떤 녀석이길래…….”
실베르는 살짝 의아했다.
고작 마경의 말단 인원.
올해 들어온 마경의 신입 중에서는 딱히 특출난 녀석이 없었다.
그런데 그 녀석이 버젓이 마경의 신분을 지니고 사람들을 학살하고 있다니.
게다가 출동하는 인원들을 족족 압도하고 있다니.
“좌표는 준비되어 있는 거겠지?”
“예. 바로 출동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 곧 출발한다.”
실베르는 셔츠의 소매를 걷어 올렸다.
이제 슬슬 여름이 시작되기에 살짝 더위를 느낀 것이다.
다만, 아무리 덥다 해도 그의 은색 장발은 포기할 수 없었다.
“어떤 녀석인진 몰라도, 가만두지 않을 거다.”
감히 마경이라는 이름을 달고 범법 행위를 저지르다니.
그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그렇게 실베르 라인하르트는 곧바로 포탈을 타고 좌표로 이동했고, 목적지까지 이동한 시간은 고작 3분 남짓이었다.
“휴우. 여긴가.”
이미 한차례 불길이라도 지나갔는지 재가 일렁이는 벌판.
상대는 아무래도 폭발이나 불에 관련된 마법사일 게 분명했다.
실베르는 벌판을 돌아다니며 그 말단 녀석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녀석을 찾을 수 있었다.
벌판 위에 서 있는 녀석은 보란 듯이 마경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탕―!
“여깄었냐. 이 빌어먹을 자식아.”
실베르는 보자마자 하늘을 향해 위협 사격을 한 번 날렸다.
아무리 수십 명을 살해한 녀석이라지만, 마경의 규칙 때문에 선제공격을 날릴 수 없던 탓이었다.
총소리를 들은 녀석은 실베르 라인하르틀를 보더니 히죽 미소를 보였다.
그러더니,
스르르륵.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에게서는 검녹색의 마나가 뿜어져 나왔다.
“뭐냐, 그건.”
그리고 곧 모습을 드러낸 것은.
“글쎄. 대답할 의무는 없는데.”
다름 아닌 실베르 라인하르트였다.
그와 똑같은 얼굴에 똑같은 복장. 똑같은 목소리.
심지어는 한 손에 들고 있는 권총마저 같았다.
눈앞에 나타난 실베르는, 원래의 실베르가 당황한 틈을 타 본인의 허리춤에 있는 무전기를 집어 들었다.
“아아― 들리나. 지금부터 이곳에 있는 녹화 기록과 녹취 기록을 전부 삭제하도록.”
- 예! 알겠습니다. 차장님.
그 모습을 본 실베르는 어이가 없었다.
“뭐 하는 거냐, 이 빌어먹을 자식아.”
“풉.”
어이없어하는 실베르를 비웃는 또 하나의 실베르.
그리고,
탕―!
곧 총탄이 원래의 실베르 라인하르트의 어깨에 박혔다.
그의 어깨에 박힌 것은 단순한 총탄이 아닌, 그의 고유 마법 ‘은탄’이었다.
“말이 많다. 빌어먹을 자식아.”
당황한 실베르를 보며 또 다른 실베르, 그의 도플갱어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