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달빛을 반사하며 빛나는 수백 개의 부유하는 검(劍).
나는 그 웅장한 모습에 입을 떡 벌리며 감탄했다.
‘이 사람의 고유 마법은 대체…….’
강화계라 하기엔 상대는 검을 강화시킨 것이 아니었다.
물질계라 하기엔 없던 검이 갑자기 허공에서 튀어나온 것이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설마 소환계인 건가요?”
“맞아. 소환계. 그래서 검을 ‘빌려’ 쓴다는 거지.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검을 소환할 수 있거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검을 소환한다라.
그렇다는 것은 언노운 같은 전설급의 검들을 얼마든지 소환하여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정도의 고유 마법이라면 케이든 교수님의 ‘인류 최강’이라는 말이 빈말이 아니었을지도.’
나는 눈앞의 남자를 인정하기로 했다.
그만큼 방금의 퍼포먼스가 주는 임팩트가 컸다.
노아는 내 감탄한 모습을 지켜보다가 잠시 후 아무렇지 않게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그와 동시에 하늘에 부유하던 수백 개의 검이 사라졌다.
“이 정도면 충분한 대답이 됐겠지.”
“네. 그런 거 같네요.”
“그래서, 용건은 그게 다인 거냐.”
“아뇨, 제가 당신을 찾아온 이유는… 언노운의 의식을 되찾을 방법을 알고 계시지 않을까 해서 찾아온 겁니다.”
“의식을 되찾다니.”
노아는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나 이내 내 말의 의미를 파악한 듯싶었다.
“그 녀석을 다룬 지도 7년이 넘었으니 깜빡하고 있었네. 그러고 보니 그 검. 사용할 때마다 의식이 희미해지는 에고 소드였었나.”
“예. 당신이라면 알고 있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흐으음……. 뭐, 내가 아무리 이 세상의 모든 검을 다룬다고는 하지만, 다 아는 건 아니라서.”
“방법이… 없는 건가요.”
“아니, 하나 있긴 하지.”
노아의 긍정적인 대답에 나는 희망을 품고 그를 바라보았다.
한참을 턱을 쓰다듬던 노아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히터 데이즈나.”
“예?”
“그 녀석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네.”
“그게 누구죠.”
“내 동기. 옛날에도 종종 내 에고 소드를 봐주곤 했던 녀석이야. 아마, 그 녀석이라면 언노운의 의식을 되찾아 줄지도 모르겠네. 그 녀석, 최연소 정신계 권좌기도 하고.”
정신계 권좌라니.
게다가 최연소라니.
사실상 실력은 보장되어 있다는 소리였다.
“그래서 그 ‘히터 데이즈나’라는 사람은 어딜 가야 만날 수 있다는 건가요.”
“그건 나도 몰라.”
“아니, 그걸 모르면 어떡합니까.”
“당연하잖아. 난 이곳에 7년 넘게 처박혀 있었는데. 그 녀석 소식이야 알 방법이 없지.”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그럼 결국 그 ‘히터 데이즈나’라는 사람을 찾으려면 캐서린의 도움이 필요하겠네.’
골드버그 가문의 도움을 받으면 찾는 거야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캐서린이 먼저 언노운의 의식을 회복할 방법을 찾아준다 했으니.
다만, 한 가지 걸리는 점은 최근 들어 캐서린에게서 느끼는 묘한 어색함이었다.
‘별문제 없겠지…….’
사실 따지고 보면 내가 딱히 캐서린에게 잘못한 것은 없었으니까.
나는 당당했다.
“그나저나 온 김에 한잔할래?”
어느새 술병을 들고 있는 노아.
나는 또다시 시작된 그의 권유에 질색을 했다.
“안 마신다니까요.”
“쳇. 참 모범생 납셨구만. 거 아카데미 수석이라도 된다는 거냐?”
“…수석 맞는데요.”
“응? 맞아? 그러고 보니 학생치고는 꽤나 하던 녀석이었지.”
노아는 내 어이없다는 표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술을 들이마시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그는 무시한 채 생각에 잠겼다.
‘일단은 내일 캐서린에게 물어봐야겠네.’
* * *
다음날.
나는 강의가 끝나는 쉬는 시간에 맞춰 캐서린 골드버그를 찾았다.
캐서린은 어제와 같은 무뚝뚝한 태도로 나를 맞이했다.
“무슨 일이시죠.”
“아니 그게… 저번에 언노운의 의식을 되찾을 방법을 알아봐 준다 했었잖아.”
“아, 그랬었죠. 바빠서 확인을 못하고 있었네요.”
여전히 쌀쌀맞은 어투.
게다가 바쁘다니.
물론 저번 주만 해도 중간고사로 일주일간 던전 안에서 생활했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런 태도를 보이니 조금 서운했다.
“아무튼 그거 관련해서 부탁할 게 있는데.”
“뭔데요.”
“정신계의 권좌님 위치를 알고 싶거든.”
“그래요. 한번 알아볼게요.”
“진짜? 고마워.”
다소 냉랭한 태도와는 달리 흔쾌히 부탁을 받아들이는 캐서린.
그녀의 대답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 나는, 내친김에 캐서린과의 오해를 풀고자 했다.
“미안.”
내 뜬금없는 사과.
그러나 캐서린의 얼굴엔 여전히 표정 변화가 없었다.
“뭐가 미안해요.”
“그냥. 내가 뭔가 잘못한 거 같아서.”
“됐어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은 나는 구구절절하게 사연을 읊기로 했다.
뭔가 구차해 보였지만 어쨌든 사실이었으니까.
“다시 말하지만 주말에 샬롯과 갔던 던전은 진짜 샬롯만이 갈 수 있는 던전이었어. 애초에 이곳 칼루스 아카데미에 아메드 가문의 영웅, 윈터 아메드의 던전이 있었다니까? 게다가 거기는 아메드 가문의 핏줄만이 입장할 수 있었던 거고. 진짜야, 믿어 줘.”
“…….”
캐서린은 여전히 무표정이었다.
하긴, 어째서 아카데미 내부에 굳이 ‘아메드 가문의 영웅’이 만든 던전이 있는 것이고, 게다가 그곳을 아메드의 핏줄만이 입장할 수 있다니.
나조차도 그 이유가 궁금할 지경인데 생판 남이 어떻게 믿어 주겠는가.
캐서린은 한참 동안 조용히 있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되게 구구절절하시네요.”
“그, 그런가.”
“알겠어요. 믿어 줄게요.”
“정말……?”
그러고는 캐서린은 등을 휙 돌렸다.
“그럼, 저는 다음 강의가 있어서 이만. 정신계의 권좌는 알아볼게요.”
“고마워 캐서린!”
나는 멀어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에 감사의 손 인사를 보냈다.
그리고 그녀의 모습이 온전히 사라지자, 갑자기 이상함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나, 왜 설명했던 거지. 이래서야 마치…….”
나는 입 밖으로 나올뻔한 말을 도로 삼켰다.
아무래도 나 스스로도 조금 헷갈리기 시작한 것 같다.
* * *
다음날 점심시간.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고 있는 내 옆에 캐서린이 식판을 가지고 왔다.
“앉아도 될까요?”
“당연하지.”
다행히도 어제 오해(?)를 푼 이후로 캐서린과의 관계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온 듯싶었다.
나는 그런 캐서린의 모습을 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저, 알아봤어요.”
“진짜? 벌써 찾은 거야?”
“네. 골드버그 가문의 정보력은 매우 뛰어나니까요.”
“그래서. 그 사람은 지금 어디 있는데?”
“그게…….”
캐서린은 살짝 말끝을 흐렸다.
그녀의 말에 나는 조금 불안해졌다.
“현재 은둔 중이라고 하네요.”
“은둔 중이라고?”
“몇 년 전부터 본인의 영역에 결계를 치고 은둔하고 있나 봐요. 접근하는 사람들은 모조리 정신계 마법에 당해 반송된다고 해요. 그래서 사실상 현재로서는 그 사람과의 연락 수단은 없는 것 같아요.”
본인의 영역에 결계를 치고 은둔 중이라.
마치 누군가가 생각나는 내용이었다.
“위치는 확실히 아는 거지?”
“예. 아마 이곳에서 반나절이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에요.”
반나절이라.
사실, 언노운의 의식을 되찾는 것이 현재 우선순위는 아니었다.
애초에 지금의 나에게 주어진 최우선 과제는 하루빨리 ‘영웅의 아티팩트’를 수집하는 것.
다만, 지금 당장은 히로빈 교장도 외출 중이고 ‘만다린’과 ‘엘가시아’의 아티팩트는 단서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럼, 한번 가 볼까.’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언노운이 의식을 되찾는 것만 해도 ‘영웅의 아티팩트’ 못지않은 큰 전력이었다.
게다가 이대로 언노운과 이별하는 것도 두고 볼 수는 없었으니까.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이내 결정을 내렸다.
“그럼, 정확한 위치를 알려 줘.”
“그건 별로 어렵진 않은 일이지만… 설마 직접 찾아가시게요?”
“응. 아무래도 직접 가 봐야 할 것 같아. 이대로 언노운을 보내기에는 좀 아쉽거든. 그래도 해 볼 수 있는 건 해 봐야지.”
“…당신답네요. 알겠어요.”
나는 곧 위치가 적힌 메모를 캐서린에게서 받을 수 있었다.
‘어차피 이제 또 주말의 시작이니까. 주말 내로 후딱 갔다 와야지.’
* * *
다행히도 내 현장 학습 신청은 별 이의 없이 승낙됐다.
역시, 담당 교수가 귀차니즘의 케이든 교수라는 것은 아카데미 생활에 있어서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다만, 케이든 교수가 당부하던 내용이 조금 마음에 걸렸다.
“최근 들어 민간 지역을 습격하는 안티 매지션들이 활개 치고 있다니 부디 조심하도록. 마경 측도 그로 인해 피해가 심하다고 들었다. 물론, 너라면 걱정 없겠지만.”
그렇게 말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 케이든 교수.
그만큼 학년 수석인 나를 믿는다는 건지, 아니면 그저 단순한 귀차니즘일 뿐인 건지.
아무튼 나는 그 ‘안티 매지션’의 언급에 조금 불안해졌다.
‘최근 들어 발생한 안티 매지션 습격 사건이라.’
그러고 보니 지난 아카데미 습격 이후로 영 ‘블랙잭’ 관련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녀석들이 슬슬 모습을 드러내도 이상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칼루스 아카데미에 ‘버밀리온의 로브’의 좌표를 찍어 둔 뒤, 뭔 일이 생기면 캐서린에게 연락하라고 부탁해 놨다.
“그나저나 마경의 피해가 심각하다니. 뭐, 마경에는 실베르 차장님이 계시니 걱정 없으려나.”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뒤, 아카데미의 정문을 나섰다.
그러고는 곧바로 ‘골드버그의 회중시계’에 마나를 불어 넣었다.
- 끼룩!
- 파르.
- 푸르으!!
기존의 두 녀석에 새로운 녀석이 하나 더해졌다.
다만, 푸르의 반응은 여전히 쌀쌀맞은 듯했다.
“아무튼, 매기야. 근두운 모드 좀 부탁할게.”
- 끼룩!
매기는 내 명령을 받고는 곧바로 몸을 부풀려 구름의 형태를 취했다.
그리고 곧 내 몸을 태운 매기가 위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사실, 굳이 매기를 타고 가지 않아도 됐다.
캐서린이 먼저 정신계의 권좌가 있는 곳까지 데려가 준다고도 했었다.
다만, 나는 매기를 타고 가는 편이 좀 더 운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럼, 나는 한숨 잘게.”
같이 탑승한 파르와 푸르가 또다시 티격태격하는 소리가 조금 신경에 거슬렸지만, 나는 이내 무시하기로 하고 잠을 청했다.
* * *
- 끼룩!
매기가 깨우는 소리에 나는 눈을 비비고 일어났다.
“도착했나……?”
아래를 확인하자 보이는 것은 안개가 드리운 숲이었다.
나는 일단 매기에게 아래로 내려갈 것을 명령했다.
“그래서 여기에 결계가 있다는 거지.”
마치 안개는 결계의 경계선을 의미하는 듯, 숲의 중심을 가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별생각 없이 안개 안으로 발을 들이밀었다.
띠이이잉―
청명한 소리와 함께 느껴지는 이상한 감각.
역시나 결계는 내 출입을 막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러한 능력은 ‘무속성 마법 특화’와 관련 있을 게 분명했다.
결계 안으로 들어오자 놀랍게도 시야를 가리던 안개는 보이지 않고 숲속 오솔길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오솔길을 따라 걸어가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등 뒤에서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사람은 또 어디로 가는 거지.”
“뭐야. 너네 모습이 이상해.”
“어, 진짜네? 우와아!”
인기척에 뒤를 돌아보자 보이는 것은 세 명의 꼬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