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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의 무속성 마법사-140화 (140/175)

140화

분명 내 뒤를 따라 들어온 사람은 없었다.

그러니 갑자기 나타난 세 명의 꼬마들에 당황스러울 수밖에.

“우와아아!”

“뭐야. 이거 왜 이런 거야. 기분 나빠.”

“뭘 봐?”

백발의 소복을 입고 있는 여자아이와 무표정한 얼굴의 남자아이.

그리고 중절모를 쓰고 있는 여자아이까지.

셋 다 초등학생, 아니 유치원생으로도 보일 정도로 매우 작은 꼬마들이었다.

“설마…….”

나는 녀석들의 모습을 넋을 놓고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백발의 여자아이가 내 품 안으로 와락 안겼다.

“주인!!”

나는 엉겁결에 그 꼬마 아이를 안게 되었다.

“주인이라니. 너 설마…….”

처음 본 순간부터 떠올랐던 생각.

그러나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던 말.

“…매기야?”

“응!”

백발의 소녀는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조금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니까, 저 무뚝뚝한 남자애는 파르고. 날 째려보는 중절모 쓴 여자애는 푸르라는 거지?”

“응! 맞아!”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갑작스러운 녀석들의 인간화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이내 찬찬히 되짚어 보기로 했다.

“원래 인간화를 할 수 있는 거였어?”

“아니!”

“우리도 이런 건 처음인데.”

“천 년 동안 이런 경우는 없었잖아.”

아니 수백 년도 아니고, 천 년 동안?

나는 상상치 못한 수치를 듣고는 흠칫 놀라게 되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들의 나이가 아니었다.

“그렇다는 것은… 결국 이 영역이 문제라는 건가.”

녀석들이 인간화를 한 시점은, 결계 안으로 진입하고 나서부터였다.

그렇다면 결론은 그거밖에 없었다.

“그래도 인간화가 딱히 문제랄 게 있나?”

내 혼잣말에 팔짱을 끼고 째려보던 푸르가 대답했다.

“문제긴 하지. 힘을 잃어버린 것 같거든.”

“맞네. 힘을 사용할 수 없는 거 같아.”

파르도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고작 초등학생 수준의 꼬마들이 심각한 얼굴로 논의하고 있는 걸 지켜보자니 나름 귀엽게도 느껴졌다.

“그럼 소환 해제를 해 볼게.”

나는 곧바로 골드버그의 회중시계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녀석들의 몸은 사라지지 않았다.

“뭐지? 이 영역은 대체…….”

사역마를 인간화시키는 것에 모자라 힘까지 봉인시키는 영역.

게다가 소환 해제까지 할 수 없게 만들다니.

모르긴 몰라도 이 영역에 구축한 결계가 그만큼 강력한 듯싶었다.

다행인 것은 사역마에 관련된 마법만 사용할 수 없을 뿐, 점멸이나 매직 미사일 등의 다른 마법과 아티팩트는 멀쩡히 사용 가능했다.

“그럼, 이 녀석들이랑 당분간은 같이 다녀야 한다는 건가.”

“뭐, 불만이야?”

“난 좋아!”

틱틱대는 푸르와 마냥 신나 있는 매기.

그리고 그들 사이에 조용히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파르.

영락없는 애 돌보기 같은 느낌이었으나 어쩔 수 없었다.

소환 해제가 되지 않는 이상 동행할 수밖에.

“어쨌든 출발하자.”

하는 수 없이 나는 그들과 함께 오솔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득 녀석들이 인간화를 했다는 것은, 대화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너흰 왜 사이가 안 좋은 거야?”

“아냐! 우리 사이좋아!”

“아니. 나쁜 게 맞지.”

“이 자식들이 배신을 때렸거든.”

“배신?”

나는 푸르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푸르는 양옆의 매기, 파르를 번갈아 째려보았다.

“원래는 이 녀석들이랑 같이 정령계로 복귀할 계획이었거든. 더 이상 인간계는 지긋지긋해서 말이야. 그런데 둘 다 약속 장소에 오지 않았어. 무려 200년 동안이나 말이지.”

“난 애초에 안 간다 했잖아.”

“미안……. 그렇지만 전 주인이 부탁해서…….”

전 주인?

영웅 피너클러스 골드버그를 말하는 건가.

가만 듣고 보니 상황이 이랬다.

마계 대전 이후 셋은 정령계로 복귀하려는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그런데 매기는 피너클러스 골드버그의 부탁으로 골드버그의 회중시계에 종속된 것이고, 파르는 그저 인간계를 떠돌아다니면서 유흥을 즐기고 있었다고 한다.

“너네가 잘못했네. 푸르가 화낼 만하지.”

물론 이 녀석들에게 200년이란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는 체감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인간의 기준으로 200년이라는 세월은 터무니없이 길었다.

“이제야 좀 말이 통하는 사람이 나타났네. 어쨌든 상황은 그런 거야. 저 배신자들이 죽을죄를 지은 거지.”

“미안해…….”

“그… 나도 미안.”

둘의 사과에도 푸르는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이런 일이 있었구나.’

푸르의 사정을 알게 된 나는 더 이상 그들의 관계에 개입하지 않기로 했다.

어쨌든 이들의 사과를 받아 주는 건 푸르에게 달린 일이었으니까.

‘그나저나 소환계는 조금 특이하네.’

애초에 소환계 마법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마법이 아니었다.

실체가 있는 대상을 불러들이는 것.

따라서 저들은 피너클러스 골드버그가 사망한 이후로 주인을 잃고 이 인간계를 떠돌고 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다른 애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푸르 너는 거기 왜 있던 건데?”

“그곳이 정령계의 입구와 가까워서.”

“칼루스 아카데미가 정령계의 입구와 가깝다는 거야?”

뭔가 알면 알수록 칼루스 아카데미의 부지는 조금 특이한 듯싶었다.

애초에 마물과 던전이 가득한 숲의 중심에 위치한 아카데미라니.

게다가 정령계의 입구도 존재한다니.

역시 보통 아카데미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엇, 저기!!”

그때 앞서가던 매기가 갑자기 어딘가로 쪼르르 뛰어가기 시작했다.

“마을이다!”

“마을?”

곧 오솔길의 끝에 도착하자 보이는 것은 작은 숲속 마을이었다.

그런데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아니, 그곳에 있는 것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뭐야, 저게……. 수인인 건가?”

마을에 있는 자들은 하나같이 동물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판타지 세계에서 흔히 수인으로 여기는 모습이 아닌, 그저 이족 보행을 할 뿐인 동물들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 와서는 인간 외의 종족은 본 적 없는 것 같은데.”

물론 지성이 없는 몬스터나 마물들은 많이 봤었다.

그러나, 인간 이외의 지적 생명체를 보는 것은 처음인 것이다.

“아닌가, 따지고 보면 얘네들도 지적 생명체인 건가.”

조금 헷갈렸지만 어쨌든 나는 곧 마을 주민에게 다가가 대화를 시도했다.

내가 처음으로 말을 건 것은 토끼 수인이었다.

“저기요?”

“안녕하세요! 이방인이신가요! 여기는 동물의 숲입니다!”

역시나 수인은 대화가 통했다.

게다가 내가 말을 건 토끼는 밝은 하이 톤으로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무슨 용건으로 찾아오셨나요!”

“어, 그러니까… 히터 데이즈나를 찾아 왔는데.”

그런데, 내가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갑자기 주변이 조용해졌다.

게다가 ‘히터 데이즈나’라는 말을 하자마자, 주변에 돌아다니던 동물들이 하나 같이 내 얼굴을 뚫어져라 보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뭐야, 이 분위기는.’

그들의 반응에 뭔가 싸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토끼는 다시금 빙긋 웃으며 하이 톤으로 말을 이어 갔다.

“그러시군요! 그렇다면 마을의 이장님께 안내해 드릴게요!”

“으응.”

나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몰라 살짝 당황스러웠지만, 곧 토끼의 안내를 받아 이장의 집으로 향하게 되었다.

마을의 집은 하나같이 버섯 모양의 움막집이었다.

뭔가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만 같은 허술한 느낌.

실제로 거주하는 동네라기엔 뭔가 허접해 보였다.

다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실례였기에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이장의 집은 마을의 중심에 있었다.

그리고 곧 그곳에서 마찬가지로 이족 보행을 하는 호랑이 한 마리가 나와 나를 반겼다.

“어서 오세요 이방인님! 반갑습니다.”

“아, 예.”

“이리 들어오시죠.”

나는 호랑이의 안내에 따라 움막 안으로 들어갔다.

안이 비좁았기에 매기, 파르, 푸르는 잠시 밖에 대기시켰다.

“여기 앉으시죠. 집이 협소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나는 바닥에 깔린 돌에 아무렇지 않게 앉았다.

다만, 내부 공간을 보자 아까의 의구심이 더더욱 증폭되고 있었다.

‘여기서 산다고?’

천장의 높이는 고개를 빳빳이 세울 수 없을 정도.

게다가 안은 사람 두세 명이 겨우 들어올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었다.

도저히 ‘집’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살짝 의문이 생긴 나는 이장에게 넌지시 질문했다.

“이곳에 직접 사시는 건가요?”

“그럼요!”

“그렇구나…….”

이장의 자신 있는 대답에 오히려 할 말을 잃게 되었다.

그러던 와중, 아까의 토끼가 움막집에 커피 두 잔을 가지고 왔다.

“드세요, 이방인님.”

“아, 예.”

집은 형편없었지만 나름의 손님 대접은 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누구를 찾아오셨다고요?”

“정신계 권좌. 히터 데이즈나를 찾아왔습니다. 이곳에 있다고 들었는데요.”

“…….”

또다시 정적이 흘렀다.

게다가 호랑이 이장의 웃는 얼굴이 묘하게 움찔움찔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장은 이내 커피를 홀짝이더니 입을 열었다.

“동물의 숲은 언제나 화목하고 즐겁습니다.”

갑자기 이게 무슨 뜬금없는 소리야.

나는 이장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쳐다보았다.

그러나 이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언제나 평화롭고 언제나 정의롭죠.”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그러나 이장은 내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말을 돌렸다.

“외부에서 오셨으면 당신은 마법사이신가요?”

“예. 마법사입니다.”

“그렇다면 잠시 확인을 해도 되겠습니까?”

“확인이요?”

그러더니 갑자기 호랑이는 손을 내밀며 내게 악수를 청했다.

나는 엉겁결에 호랑이의 손을 잡고 말았다.

“…저기요?”

그러나 이장은 손을 잡을 뿐, 아무런 말과 행동을 하지 않았다.

‘뭘 확인한다는 거지? 마법사라는 걸 확인하고 싶다는 건가?’

한참 동안 손을 잡힌 채 가만히 있던 나는 이장의 웃는 얼굴을 계속 지켜보다가 문득 마나를 흘려보내 봤다.

그러자 머릿속으로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

- 고기가 먹고 싶어.

순간 들려오는 소름 끼치는 말에 나는 이장의 손을 힘껏 뿌리쳤다.

그러자 이장은 무슨 일이 있냐는 듯 싱긋 웃어 보였다.

“괜찮으십니까?”

“이, 이게 무슨…….”

분명 방금 들은 내용은 내 착각이 아니었다.

나는 다시금 이장의 손을 잡고 마나를 흘려보냈고, 또다시 내 머릿속에는 아까와 같은 음성이 퍼져 나왔다.

“설마…….”

나는 이장은 내버려 둔 채 움막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러고는 근처에 있는 오리 수인의 손을 잡고 마나를 흘려보냈다.

- 지긋지긋해.

역시나.

머릿속에는 알 수 없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곧 내가 손을 떼자 오리는 무슨 일 있냐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그렇다면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나는 그런 오리의 말은 무시한 채 돌아다니는 동물들 하나하나 손을 잡고 마나를 흘려보내기를 반복했다.

- 구해 줘.

- 내 몸이 멋대로 움직여.

- 쉬고 싶어.

- 왜 이러는 거야.

그리고,

- 살려 줘.

마지막으로 토끼의 손을 잡고 흘러나온 음성을 들었을 때 나는 탄식을 자아냈다.

“이 마을은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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