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내가 마을 주민들에게 계속해서 악수를 청하는 모습을 보자 매기가 고개를 갸웃했다.
“뭐 해, 주인?”
그러나 나는 대답보다는 머릿속의 생각을 정리하기 바빴다.
‘역시 마나를 흘려보냈을 때 머릿속에 들려오는 음성들은 이 녀석들의 진짜 목소리인 건가.’
처음에 호랑이 이장의 ‘고기가 먹고 싶어.’라는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기분이 섬뜩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을 하나둘씩 확인하면서 확실해졌다.
적어도 이곳 마을 사람들은 본인의 의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 그러고 보니 캐서린이 그랬었지. 이 숲은 ‘히터 데이즈나’의 정신계 마법으로 둘러싸여 있다고.’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나는 문득 매기 녀석들 쪽으로 시선이 갔다.
갑자기 인간화한 녀석들.
처음에는 단순히 ‘골드버그의 회중시계’에 뭔가 문제가 생긴 것으로 여겼었다.
‘설마.’
이곳 ‘동물의 숲’의 마을 사람들.
원래 알고 있던 수인이라기에는 뭔가 이상했다.
그저 의인화한 동물일 뿐이었다.
그리고 갑자기 사람으로 변한 사역마들.
거기서 추론할 수 있는 결론은 하나였다.
‘이 결계 안에서는 인간이 아닌 것들이 인간화가 되는 것인가.’
게다가 생각해 보면 ‘정신계 마법’은 무언가를 변신시키는 마법이 아니었다.
정신계 마법은 말 그대로 정신을 조작하는 마법.
그 말인즉슨 나는 이미 ‘히터 데이즈나’의 정신계 마법에 걸려들었다는 것이 되었다.
‘그래도 아직 단정할 수는 없잖아.’
애초에 상대는 ‘정신계의 권좌’.
따라서 적일 가능성은 현저히 적었다.
물론, 동물들에게 정신계 마법을 걸어서 저렇게 조종하는 것은 상당히 악취미라고 볼 수 있었지만, 딱히 인간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나는 다시금 호랑이 이장이 있는 움막으로 들어갔다.
이장은 여전히 앉아서 커피를 홀짝이고 있었다.
“다시 오셨군요.”
“제대로 된 의사소통은 기대할 수 없겠지? 어차피 꼭두각시일 뿐이니까.”
“무슨 일이신가요.”
내 진지한 말에도 호랑이 이장은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굉장히 사무적인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애초에 이들을 조종하고 있다는 거는, 지금 내 말도 들린다는 거 아냐? 히터 데이즈나 씨. 나는 당신을 찾아왔어!”
나는 자리에서 번뜩 일어나 큰소리로 외쳤다.
또다시 내 입에서 ‘히터 데이즈나’라는 말이 나오자 호랑이는 무표정한 얼굴로 침묵했다.
‘아무래도 ‘히터 데이즈나’라는 이름을 언급하면 프로세스에 과부하가 걸리는 것 같은데.’
그리고 그러한 반응의 이유는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녀석은 지금 이곳에 자신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지 않은 것이다.
왜 이곳에서 동물들을 데리고 소꿉놀이를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녀석은 자신의 존재를 감추려 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이곳에 들어오려는 자들의 기억을 매번 지웠던 것이겠지.
나는 히터 데이즈나가 모습을 드러내게끔 하기 위해선 좀 더 강력하게 주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히터 데이즈나! 나는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서 당신을 찾아왔어. 이미 이곳에 당신이 있다는 것을 알고 온 것이라고. 애초에 이 정도의 정신계 마법을 할 사람은 당신밖에 없잖아!”
또 한 번의 외침.
그러나 이번엔 소득이 있었다.
무표정으로 침묵하던 호랑이가 갑자기 고개를 돌리더니,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감히.”
그리고 움막 밖에 있던 사슴이 이어서 말했다.
“나를.”
또 그 옆에 있던 거북이가 이어서 말했다.
“부르는가.”
나는 그 행태에 피식 웃고 말았다.
“아니, 그냥 말할 거면 호랑이로 말하면 되지. 이건 좀 유치하잖아요.”
마치 공포 영화에 나올 법한 연출이었지만, 나에게는 그저 장난으로 보일 뿐이었다.
그 기조에는 아무렴 정신계의 권좌인데 설마 공격해 오겠어, 라는 심리가 깔려 있었다.
다만, 그것은 너무 안일한 생각이었는 듯하다.
어흥!
갑자기 눈앞에 있던 호랑이 이장이 달려들었다.
방심하고 있던 나는, 그대로 호랑이에게 붙들리고 말았다.
상대가 비록 정신계 마법으로 인해 수인으로 보일지라도, 본체는 호랑이.
사람인 이상 호랑이의 힘을 뿌리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점멸로 벗어나려 해도 사용되지 않았다.
‘설마. 접촉 상황에서는 점멸을 사용할 수 없는 건가……?’
저번에 노아를 만났을 때도 이런 경우가 있었다.
사실 지금껏 누군가와 접촉 상태에서 점멸을 사용할 기회가 없다 보니 이런 큰 페널티를 모르고 있던 것이다.
내 몸을 붙잡은 호랑이는 이내 움막 밖으로 나를 끌고 가더니, 다른 동물들과 가세해서 내 사지를 붙들어 어깨에 걸쳤다.
“뭐 하는 거야?!”
대답하지 않는 녀석들.
물론 버밀리온의 로브를 사용하지 못한다 해서 방법이 영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상대가 상대인 만큼 일단은 지켜보자는 태도였다.
“뭐야, 이거 놔!”
“이건 또 뭐람.”
“좋은 말 할 때 이 손 놓으시지.”
아니나 다를까 매기 녀석들도 수인들에 의해 꼼짝없이 잡혀 버렸다.
나를 어깨에 들쳐 멘 녀석들은 이내 어딘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뭐야, 히터 데이즈나씨. 어디로 데려가는 거야?”
“…나를.”
“만나러 왔다.”
“하지 않았나.”
나를 어깨에 들쳐 멘 녀석들이 하나둘씩 대답했다.
그 모습에 조금 어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렇긴 한데…요. 저도 발이 있거든요?”
그냥 안내만 하면 될 것인데, 굳이 들쳐 메고 가다니.
어차피 이래 봤자 딱히 포박하는 것도 아니고, 이 상태로도 충분히 마법은 사용할 수 있을 텐데 굳이 이렇게 비효율적인 방식을 행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내 잡생각을 떨쳐 버리고 그냥 편하게 누워 버렸다.
“에라, 모르겠다. 안전 운행 부탁합니다.”
그러자 대답 없는 녀석들.
그렇게 나는 마치 어깨에 진 관짝처럼 녀석들에 의해 이동하게 되었다.
* * *
잠시 후.
동물 녀석들은 사역마들과 나를 동굴 한가운데에 던지더니 이내 동굴 밖으로 나갔다.
“아니, 이럴 거면 걸어오는 걸로 충분한 거 아니었나? 애초에 포박도 안 하잖아.”
나는 녀석들의 행동 방식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엄밀히 따지자면 녀석들의 행동 방식이라기보다는 ‘히터 데이즈나’의 명령이었겠지만.
“그나저나 이 안에 계신다는 겁니까. 히터 데이즈나 님.”
나와 사역마들은 조심스레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굴 안쪽에서 사람의 그림자를 볼 수 있었다.
곧 그림자는 입을 열기 시작했다.
- 나를 찾아온 건가.
“당신이 히터 데이즈나인 겁니까.”
다만, 여전히 녀석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녀석의 조심스러운 태도에, 어지간히 나를 경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렇다.
“이 마을은 도대체 뭐죠? 왜 이런 짓을 하는 겁니까.”
사실 개인의 사생활은 존중하자는 마인드였지만, 이건 사생활이라기엔 너무 악취미였다. 그래서 이유를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 지루했거든.
“예?”
- 나는 인간이 싫어 이곳으로 온 것이다. 다만, 그럼에도 심심한 건 어쩔 수 없더군. 따라서 이 숲의 동물들로 유흥을 즐기는 것이다.
인간이 싫어 은둔한 사람이, 이러한 마을을 만들었다니.
그 누구보다도 인간을 그리워하는 듯한 묘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딱히 내가 신경 쓸 문제는 아니었다.
나는 바로 본론을 꺼냈다.
“당신에게 부탁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 무슨 부탁.
“제 에고 소드가 의식을 잃었습니다. 당신이라면 제 에고 소드의 의식을 되찾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찾아온 것입니다.”
- 그런 거면 돌아가라. 나는 그럴 능력이 없다.
녀석의 말에는 진심이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귀찮아 보이는 어투였다.
따라서 나는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당신이라면 에고 소드를 봐줄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 어떤 녀석한테.
“노아 전 교수님…….”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동굴 안의 분위기가 갑작스레 바뀌었다.
싸늘한 바람이 불어오더니 쿠르르릉 하는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 노…아… 라고?
“예. 학창시절 때도 종종 당신께 에고 소드를 부탁했다고…….”
- 그 빌어먹을 녀석이 일방적으로 시킨 것이었다! 나는 하기 싫었다고!
뭐야. 이게.
나는 히터 데이즈나의 북받쳐 오른 듯한 어투에 살짝 당황스러웠다.
‘그러니까… 셔틀? 학교 폭력이었다고?’
아무래도 말을 잘못 꺼낸 듯싶었다.
아니, 애초에 그 노아라는 사람이 그런 인물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 그 녀석은 항상 부탁이라는 말로 되도 안 되는 걸 나한테 시켰지. 실실 웃으면서 말이다! 아직도 그 빌어먹을 녀석의 얼굴을 떠올리면 치가 떨린다!
“그, 그러니까…….”
젠장.
이거 좀 크게 잘못된 것 같은데.
다만, 이미 한번 내뱉은 말을 돌이킬 수는 없었다.
- 그래서, 너도 부탁이라는 이름으로 나에게 되도 안되는 걸 맡길 셈이냐?
“그, 그건 아닌데…….”
- 그에 대한 보수는 충분히 준비해 놨겠지?
“그건…….”
나는 입을 다물었다.
사실 딱히 이번 일에 대한 보수로 지불할 것을 준비해 오진 않았었다.
어찌 보면 이러한 행위가 히터 데이즈나의 끔찍한 학창 시절 기억을 자극한 것일 수도 있겠다.
“저, 돈이라면 얼마든지 드리겠습니다!”
물론 그만큼 돈이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일단은 던지고 보자는 심정이었다.
여차하면 캐서린에게 빌리면 되니까. 갚는 것은 나중에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히터 데이즈나는 돈에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였다.
- 고작 돈? 돈으로 나를 매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것보다 나는 즐거움이 필요해. 심심하단 말이다.
“즐거움이요? 얼마든지 드리겠습니다!”
- 얼마든지라.
히터 데이즈나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더니 히죽히죽 웃음소리와 함께 음성이 다시 동굴 안을 쩌렁쩌렁 울렸다.
- 그럼, 내 시험에 통과하거라.
“예. 좋습니다.”
- 내 시험은…….
갑자기 동굴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육안으로 보일 정도의 짙은 주황색 마나가 동굴 안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내 뒤에 있던 사역마들의 모습이 갑자기 변하기 시작했다.
근육 폼으로 변하는 매기.
사신 폼으로 변하는 파르.
그리고 눈사람 폼으로 변하는 푸르까지.
그들의 눈에는 하나같이 주황색 마나가 번쩍이고 있었다.
그리고,
콰아아아앙!
갑자기 내가 있던 자리를 주먹으로 내리찍는 매기.
나는 아슬아슬하게 매기의 공격을 점멸로 피할 수 있었다.
이어지는 파르의 낫 베기 공격.
그리고 푸르의 브레스까지.
나는 녀석들의 공격을 피하는 데 급급했다.
“이게 대체…….”
- 내 시험은 하나. 너의 사역마를 네 손으로 직접 죽여라.
내 손으로 사역마를 죽이라니.
‘이게 무슨 개같은 소리야.’
근데 따지고 보면 딱히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어차피 사역마는 대미지를 입어도 죽지는 않으니까.
그저 소환 해제될 뿐이니까.
그리고 지금 녀석들은 정신계 마법에 당해 이성을 잃은 상태이기에 딱히 걸리는 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지금의 행태는 충분히 악취미라 볼 수 있었다.
‘역시 정상인은 아닌 것 같네.’
나는 녀석의 사이코스러운 면모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고는 눈앞의 사역마들을 마주했다.
녀석들의 눈에서 하나같이 뿜어져 나오는 주황색의 마나들.
“당신의 시험. 받아들이죠.”
나는 곧 매직 미사일의 주문을 읊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