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정신계가 소환계에 상성인 이유 중 하나로는, 정신계 마법으로 소환계의 사역마를 지배할 수 있다는 점이 있었다.
그러나 내 사역마들은 보통의 사역마가 아니었다.
무려 ‘골드버그의 회중시계’로 소환한 영웅의 사역마들.
그럼에도 저렇게 쉽게 지배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정신계의 권좌, 히터 데이즈나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방증이겠지.
“마침 잘됐네. 이참에 서열 정리 해 보자고.”
물론 딱히 녀석들이 잘못한 점은 없었다.
그럼에도 뭔가 녀석들과의 힘의 격차를 이번 기회에 제대로 확인하고 싶은 느낌이었다.
“그럼, 봐주지는 않을게.”
나는 곧바로 매직 미사일을 모으기 시작했다.
「마지아 미실레(magía míssĭle)」
「마지아 미실레(magía míssĭle)」
「마지아 미실레(magía míssĭle)」
……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볼 리 없는 녀석들은 이내 달려들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푸르의 눈 마법이 까다로웠다.
“다른 녀석들의 공격은 점멸로 피하면 그만인데, 저 눈 마법은 피할 수가 없네.”
조금만 멈춰 있어도 온몸에 맺히는 눈송이들.
아마 대상에게 누적되어 움직임을 느리게 하는 종류의 마법인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내 몸에 눈덩이가 누적되는 시간보다, 매직 미사일 수천 개를 생성하는 시간이 훨씬 빨랐다.
그야 한 번 주문을 외울 때마다 여덟 개씩 불어나는, 엄청난 속도였으니까.
“그럼, 간다!”
나는 외침과 동시에 매직 미사일을 날리기 위해 왼쪽 손가락을 튕겼다.
탁―!
그런데,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물론 매직 미사일은 평범하게 녀석들을 향해 날아갔다.
이상한 점은, 내가 손가락을 튕기는 동시에 잠시 몇 초 정도, 녀석들의 움직임이 멈췄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 찰나의 순간에 번쩍인 하얀빛도 수상쩍었다.
콰과과과과광!!
날아간 수천 개의 매직 미사일은 그대로 녀석들에게 박혔다.
폭발에 큰 대미지를 입은 녀석들은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방금 느꼈던 감각은 뭐지……?”
방금 전 손가락을 튕길 때 나타났던 기묘한 감각.
착각이 아니라면 분명 ‘영웅의 아티팩트’를 쓸 때 발생하는 느낌과 비슷했다.
“설마 ‘아메드의 반지’의 능력인 건가.”
나는 혹시나 해서 다시금 손가락을 튕겨 봤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그 이유가 일종의 쿨타임, 지연 시간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발동 조건은 손가락을 튕기는 것, 효과는 ‘일시적으로 상대를 정지시킨다.’라는 건가.”
사실 ‘아메드의 반지’를 얻자마자 효과를 알아보기 위해 여러 방법으로 사용을 시도해 봤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빈번히 실패.
아무래도 지금껏 ‘아메드의 반지’ 능력을 밝혀내지 못했던 것은 ‘손가락을 튕긴다.’라는 발동 조건이 붙어 있었기 때문인 듯했다.
“그런데 이상하네. 윈터 아메드의 고유 마법은 빙결계 원소 마법이잖아.”
방금 일어난 효과는 엄밀히 따지자면 ‘빙결’ 보다는 ‘정지’에 가까웠다.
“설마 시간을 얼린다, 뭐 그런 건 아니겠지…….”
어쨌든 그 엇비슷한 효과인 것은 확실했다.
나는 새삼 ‘아메드의 반지’ 능력에 감탄하게 되었다.
- 끼루욱…….
- 파르…….
- 푸르르…….
내 매직 미사일 폭격을 맞고도 녀석들은 아직 소환 해제 되지 않았다.
다만, 심각한 대미지를 입었는지 쉽사리 일어나지는 못했다.
“거의 풀파워로 공격했는데, 이 정도면 소환 해제 될만한 거 아니었나.”
나는 그런 녀석들을 보며 다음 공격을 하기 위해 매직 미사일을 준비했다.
그런데 그때, 또다시 동굴 안에서 히터 데이즈나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 뭔가 착각하는 거 같은데. 내가 내건 조건은 사역마를 죽이는 것. 정신 지배를 받은 사역마는 소환 해제를 당하지 않지. 너는 네 손으로 너의 사역마를 죽여야만 하는 것이다.
“…뭐라고?”
녀석의 말을 들은 나는 갑자기 어이가 없어졌다.
“아니 이거 완전 또라이잖아?”
녀석이 내세운 말도 안 되는 조건.
소환 해제면 충분할 줄 알았는데, 자신의 손으로 직접 사역마를 죽이라니.
마을의 동물들을 꼭두각시 취급하는 것도 모자라 선을 넘은 악취미였다.
“…미친놈. 내가 할 거 같냐?”
- 그럼 포기하던가. 다만, 포기하고 싶어도 포기할 수 없을걸. 나는 저 사역마가 죽을 때까지 지배를 풀 생각이 없으니까.
하.
나는 녀석의 말에 기가 찼다.
아무리 은둔 생활을 하고 있다고는 해도 어쨌든 상대는 마법부가 인정한 ‘정신계의 권좌.’, 딱히 나쁜 녀석은 아닐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상상 이상으로 미친 자식이었다.
“…어이, 당신. 그거 알아? 본체를 노리면 어차피 지배는 풀리기 마련이라는 것.”
- 자신 있으면 얼마든지 해 보거라. 어차피 이 영역 안에서 내 위치를 절대 찾지 못할 것이다. 너는 눈앞의 사역마를 죽이기 전까지 영역 밖으로 못 나갈 거라고! 크하하하!!
절대 찾지 못한다라.
나는 그 말에 씨익 미소를 지었다.
“내 손에 잡히면 당신은 내 에고 소드를 봐줘야 할 거야.”
- 어림도 없는 소리. 너야말로 평생 내 꼭두각시가 되어 저 마을에 처박히게 될 것…….
녀석은 말을 잇지 못했다.
내가 녀석을 찾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3초.
「프레시스코(præscísco)」
감지 마법을 외우고,
팟―!
녀석의 등 뒤로 순간 이동 하여,
녀석의 머리 뒤에 충전된 매직 미사일을 들이밀기까지.
고작 3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잡았다.”
“어, 어떻게 이럴 수가?!”
녀석은 전형적인 흑마법사의 모습이었다.
마치 며칠을 굶었는지 피골이 상접한 몰골.
누더기만 하나 걸친 채 수정구를 보며 앉아 있는 영락없는 폐인이었다.
녀석이 들고 있는 수정구에 비치는 사역마들의 모습으로 보아, 아마 저 수정구는 이 영역 내를 관찰할 수 있는 아티팩트인 것으로 보였다.
“글쎄. 대답할 의무는 없겠는데. 아무튼 내가 이긴 거 맞지?”
“이, 이렇게 끝날 수는 없지!”
녀석은 곧바로 등을 휙 돌리더니 내 팔목을 붙잡았다.
“뭐야…….”
그와 동시에 충전되어 있던 매직 미사일이 소멸하고 온몸에 힘이 빠져나갔다.
‘정신계 마법인가.’
상대는 일개 허접한 정신계 마법사가 아니었다.
무려 정신계의 최고 권위자라 할 수 있는 ‘정신계의 권좌.’
보통,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정신계 마법은 잘 통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고, 게다가 나는 보통 사람보다도 뛰어난 정신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녀석의 정신계 마법에는 저항하지 못했다.
게다가 이렇게 신체 접촉까지 한 상황에서 더더욱 상대의 마법은 효과적일 수밖에 없었다.
“크하하하! 네 녀석의 모든 기억을 모조리 빨아들이겠다! 그리곤 너는 저 동물 우리의 새로운 족장이 될 것이다.”
“조…족장이라…니.”
정신이 희미해져 가는 순간에도 나는 녀석의 말에 어이가 없어졌다.
우우웅―!
내 몸에서 빠져나가는 주황색의 마나는 계속해서 녀석의 몸으로 빨려들어 갔다.
아무래도 내 마나량 자체가 방대하다 보니 모든 기억을 흡수하는 데 꽤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뭐야?!”
히터 데이즈나는 갑자기 내 손을 뿌리쳤다.
그와 동시에 정신적 속박에서 풀려난 나는 곧바로 반격의 준비를 했다.
다만, 히터 데이즈나는 더 이상 공격 의지를 상실한 것으로 보였다.
마치 뭔가 못 볼 것을 본 듯 얼이 빠진 모습.
“너……. 이 세계가……. 이게 진짜란 말이냐?!”
“아아. 그런 거였군.”
나는 당황스러워하는 히터 데이즈나에게 씨익 미소를 보였다.
아무래도 내 기억을 읽는다면 역시나 ‘아카마’와 원래의 세계에 관한 기억을 읽을 수밖에 없을 테니까.
“이 세계가 진짜 게임이라고……?”
“글쎄. 이 세계가 진짜 게임일지 아닐지는 확실하게는 모르지. 그건 단순히 ‘내 기억’일 뿐이니까.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내 기억’이 조작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는 거다.”
“확실히. 그건 맞는 거 같군…….”
히터는 내게서 얻은 기억들을 곱씹는 것으로 보였다.
다만 더 이상의 공격 의지는 보이지 않았기에 나는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봤다.
‘어째 원래 세계에 대해서 알게 된 사람이 한 명 더 늘어 버렸네. 뭐, 이번에는 어쩔 수 없는 거였지만.’
그러나 딱히 숨길 것도 없었다.
원래 세계를 알든 말든, 지금 당장 이 세계가 멸망할 위기에 처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니까.
“너, 예언의 아이로군.”
“뭐, 그렇다던데.”
“지금까지의 여정들, 성장 과정들. 정말 흥미로워! 이토록 재밌는 얘기는 처음이다.”
“뭐야, 남의 기억을 소설 취급이라도 하는 거야?”
실제로 히터 데이즈나는 매우 들떠 있었다.
마치 장난감을 얻은 아이처럼 실실 웃어댔다.
“좋다. 너를 돕도록 하지.”
“갑자기?”
“이 세계가 게임이든 아니든 간에 상관없다. 나는 단지 너의 서사가 마음에 들었다.”
“내 팬이라도 됐다는 건가. 그건 조금 꺼림칙한데.”
“내가 지금껏 원해 왔던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너는 앞으로 내 삶의 마지막 유희가 될 것이야.”
마치 미친놈처럼 실실거리며 웃기 시작한 히터 데이즈나.
나는 그 모습이 조금 꺼림칙했지만 어쨌든 그리 나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게 아닌 듯 보였다.
“단, 조건이 있다.”
“조건?”
갑자기 나에게 얼굴을 바짝 들이대는 히터 데이즈나.
비실비실한 녀석의 몰골은 조금 역겹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너를 돕는 대신, 너의 모든 여정이 끝나면 기억을 읽게 해 줘. 그게 내 조건이다.”
“기억을… 읽게 해 달라고?”
녀석의 제안에 나는 곰곰이 생각해 봤다.
‘딱히 내 손해랄 게 있나?’
녀석이 지금까지의 내 여정을 마치 영화 보듯 보는 것은 조금 꺼려졌지만, 어찌 됐든 간에 딱히 나에게 불리한 조건은 없었으니까.
오히려 이득이라면 이득이었다.
상대가 아무리 정신 나간 사람처럼 굴어도 그 본모습은 다름 아닌 ‘정신계의 권좌’였으니까.
“좋아. 그럼 나도 조건을 붙이겠어.”
“뭐냐.”
녀석의 실실 웃는 눈빛을 보아하니 무슨 부탁을 하더라도 다 들어줄 듯 보였다.
다만, 나는 녀석에게 크게 바라는 것은 없었다.
“저 아래의 동물의 숲. 해방시켜.”
“숲을… 해방하라고……? 어째서?”
“동물 학대잖아.”
딱히 동물 애호가는 아니었지만, 어찌 됐든 간에 숲의 동물들은 나에게 ‘살려 줘’라는 메시지를 보냈었다.
불쌍하다기보단 기분이 나빠서 저 행위를 그만두게 하고 싶었다
“그럼 난 뭘 하며 지내지?”
“그건 당신 알아서 할 일이지. 아무튼 숲을 해방시킨다는 조건과 내 부탁을 계속해서 들어준다는 조건하에 당신과 계약하도록 하지.”
내 말에 히터 데이즈나는 곰곰이 생각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역시 상대는 나를 포기할 수 없는 듯했다.
“좋아. 계약 성립이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히터 데이즈나는 눈을 감더니 손을 휘젓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점차 주변의 마나가 히터를 향해 빨려들어 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내 몸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감각.
나는 그것이 곧 결계를 해제했다는 신호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럼, 이걸 봐 줘.”
나는 녀석에게 언노운을 건넸다.
사실 언제부터 말을 놨는지는 모르겠다만, 이미 익숙해져 계속해서 말을 놓게 되었다. 딱히 상대방도 내 말투를 의식하지 않는 것 같았다.
언노운을 받아든 히터는 마나를 방출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