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눈을 감고 언노운에 주황색 마나를 주입하는 히터 데이즈나.
한참 뒤, 눈을 뜬 히터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거 방법이 없겠는데. 이 에고 소드에 담긴 정신력은 아무리 나라도 뚫을 수 없을 거 같아.”
“뭐야. 당신 정신계 권좌잖아.”
히터의 말은, 언노운의 정신력이 정신계 권좌의 정신력을 뛰어넘는다는 것이다.
권좌급이 무슨 동네 아저씨도 아니고, 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정신계 마법사를 일컫는 칭호일 텐데도 불가능하다니.
“그래도 방법은 있을 듯하네. 아마 이 에고 소드에는 짝이 있을 거야. 그걸 찾으면 잠들어 있는 의식을 깨울 수 있을지도.”
“짝이라니. 뭘 말하는 거야?”
“당연히 검의 짝이라면 검집 아니겠냐.”
검집이라.
지금껏 언노운에 따로 검집이 없다는 것에 대해 의구심을 품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애초에 검집의 존재 의의는 날카로운 칼날을 보호하는 역할이고 언노운은 둔기에 가까운 뭉뚝한 검날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 검집을 찾으면 언노운을 깨울 수 있다는 거지.”
“아마 의식을 깨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온전히 회복시킬 수도 있을 거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런 구조인 것 같네.”
“그 검집은 어디서 찾는데?”
“그건 모르지.”
당당한 히터의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정신계의 권좌’라는 높은 자리에도 불구하고, 은근히 허접해 보이는 느낌이었다.
“그럼, 여기까지 온 보람이 없잖아.”
기껏 현장 학습을 신청하고 여기까지 왔더니 결국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물론 헛수고는 아니었다. 정신계의 권좌, 히터 데이즈나를 아군으로 얻은 것은 차후 큰 힘이 될 테니까.
다만, 본래의 목적.
언노운의 의식을 되찾지 못한 것이다.
“그래도 영 헛수고는 아닐걸. 온 김에 너에게 걸려 있는 정신계 마법을 제거해 주지.”
“또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아니, 내가 한 짓이 아니다. 그저 원래부터 너에게 걸려 있던 정신계 마법일 뿐. 아마 걸린 지는 대략 두세 달 정도 지난 것으로 보이는군.”
두세 달 전에 걸린 정신계 마법이라.
나는 그때 당시의 상황을 곰곰이 되짚어 봤다.
‘두세 달 전이라면 칼루스 아카데미에 입학했을 때……?’
그때 당시 걸린 정신계 마법이라니.
도무지 추측할 수 없었다.
“별건 아니다. 딱히 위협적이진 않은 것으로 보이니까. 다만 효과는 별거 없어도, 마법 자체는 강력하다. 아마 매우 뛰어난 정신계 마법사의 소행으로 보이는군. 가만있어 봐라.”
히터 데이즈나는 잠시 눈을 감은 뒤 내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나는 이미 녀석을 신뢰하게 되었기 때문에 믿고 정수리를 내밀었다.
우우웅―!
잠시 주황색 빛이 번쩍이더니.
뭔가가 내 머리로부터 히터의 손으로 빨려들어 가는 느낌이 감돌았다.
“흐으음. 단순한 정보 제거 마법이었군.”
“정보 제거 마법이라니… 앗.”
나는 내게서 제거된 정보가 무엇인지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그야 히터의 마법 이후 내 머릿속에는 이질적인 정보가 하나 들어왔으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역시 그 녀석, 만다린 가문이었구나.”
메이브 만다린에 대한 정보였다.
아마 그 녀석은 자신이 만다린 가문의 여식이라는 것을 정신계 마법을 통해 숨기고 있던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나는 학기 초부터 녀석의 정신계 마법에 걸려 있던 것이다.
다만,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만다린 가문이라. 역시 영웅의 가문 녀석들은 하나같이 잘난 녀석들 뿐이군. 아카데미의 학생이 이 정도 실력이라면 졸업하고 나서는 아마 나를 뛰어넘을지도 모르겠네.”
“하긴. 학생들은 물론이고 교수들까지 전부 녀석의 마법에 걸려 있었으니까.”
분명 아카데미 내에서 녀석이 ‘만다린’ 가문이라는 걸 아는 자는 없었다.
그것은 케이든 교수 같은 사람들도 마찬가지.
물론 위협적이지 않은 정신계 마법이기에 더욱 적용하기 쉬웠을 테지만, 아무래도 아카데미 전 인원에게 적용될 정도라면 대단한 게 분명했다.
“어쨌든 이 정도면 큰 소득이네. 사실상 만다린의 아티팩트에 대한 정보를 얻은 거니까.”
“그래, 응원한다 꼬마야. 너의 서사가 완성되는 날이 기다려지는구나.”
나는 히터의 말에 그를 잠시 쳐다보았다.
역시나 그는 이상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미친놈처럼 행세하던 자가 지금은 또 나를 열렬히 지지하고 있는 꼴이라니.
‘그래서 이런 곳에 혼자 처박혀 있던 건가.’
어쩌면 저렇게 정신 나간 모습도 정신계 마법으로 인한 일종의 부작용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렇게 내 이야기가 궁금하면 그냥 정신계 마법으로 지배하면 그만 아니야? 당신 정신계 권좌잖아. 충분히 가능할 텐데.”
“그럼, 이야기가 더 이상 진행되지 않잖아. 넌 이른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게지.”
녀석은 크하하하 거리며 걸걸하게 웃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녀석에 질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튼, 나를 돕겠다는 약속은 유효하겠지?”
“그럼. 넌 내 인생의 마지막 유흥인 게다.”
“그래. 부디 당신이 기다리는 영화가 해피 엔딩이길 빌지.”
“뭐, 나는 비극도 나쁘지 않다 생각하는데.”
“애초에 배드 엔딩으로 끝날 거면 당신은 그 서사를 보지도 못할 거거든. 아무튼 나는 이만 간다.”
나는 녀석에게 손을 흔든 뒤,
팟―!
점멸을 사용해 동굴 밖으로 나왔다.
“이상한 녀석.”
보통의 사람이라면 모자라지만 착한 녀석이라고 수식어를 붙일 수 있겠다.
다만, 녀석은 착하다고도 볼 수 없었다.
지금은 그저 이해관계가 맞아 아군이 됐을 뿐.
자칫하면 적이 될 수도 있을 녀석이었다.
“그래도 아군이 돼서 다행이네.”
아마 녀석이 내 기억에 흥미를 갖지 않았더라면, 기억이 흡수되는 순간 게임 오버였다.
그만큼 강력한 녀석인 것은 확실했다.
“그럼, 다시 돌아가 볼까.”
나는 이내 골드버그의 회중시계에 마나를 불어 넣었다.
그러자 예의 그 삼총사가 내 눈앞에 나타났다.
다만, 아까 전의 꼬마의 모습이 아닌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아무래도 결계의 영향이 풀린 탓인 것으로 보인다.
- 끼루우우욱!
매기는 소환하자마자 내 품 안에 안겨 얼굴을 비벼 대었다.
나는 그런 녀석을 쓰다듬었다.
“아까는 미안. 많이 아팠어?”
- 끼루욱…….
녀석은 괜찮다는 듯 고개를 저었지만 한편으로는 서운한 표정이었다.
사실 아까 이 녀석들과 상대했을 때는 전혀 봐주지 않고 풀파워로 가격했었다.
그야 녀석들이 치명적인 대미지를 입으면 바로 소환 해제 될 줄 알았으니까.
나는 녀석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매기는 물론이고 파르와 푸르까지 껴안았다.
- 파, 파르.
- 푸르으!
당황하는 파르와 질색하는 푸르.
그러나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미안하다. 얘들아. 다음부턴 그러지 않을게.”
이 녀석들을 너무 막대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진심을 다해 사과했다.
처음에 싫어하던 두 녀석도 계속 포옹을 받으니 내심 좋은지 얼굴을 흔들어 댔다.
“자, 그럼 갈까?”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매기는 이미 근두운 모드로 변해 있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미리 대령해 놓다니. 참 기특한 녀석이다.
나는 곧바로 녀석의 등 위에 올라탔고, 곧 매기는 하늘 위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안개가 걷힌 숲이 한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래를 내려다보자 히터의 마법이 풀려 본모습으로 돌아간 동물들이 마을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앞으론 저런 미친 녀석한테 걸리지 말아라. 응……?”
동물들의 모습을 흐뭇하게 보고 있던 나는, 아래에서 보이는 광경에 흠칫 놀라게 되었다.
내가 목격한 것은, 다름 아닌 호랑이가 다른 동물들을 포식하는 장면이었다.
“결국 저렇게 되는 건가.”
사실 히터 데이즈나의 마법이 계속됐더라면, 결국 저 녀석들은 서로 싸우지 않고 영원히 꼭두각시놀이에 갇혀 있었을 것이다.
자유를 박탈당하지만 거짓된 평화가 옳은 것인가.
자유가 존재하지만 그 과정에서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나는 잠시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아니, 전제가 틀렸잖아. 어쨌든 자유를 박탈당하는 것만으로 모두가 피해자일 텐데.’
나는 이내 생각을 떨쳐냈다.
어차피 저것은 자연의 법칙.
자연의 굴레에 인간이 억지로 개입하거나 도덕성을 부여하려 해서는 안 된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 * *
몇 시간 뒤.
나는 근두운 위에서 팔을 베고 누워 있었다.
딱히 잠은 오지 않아 그저 맑은 하늘만 올려다볼 뿐이었다.
그런데 그때, 아래에서 폭발음이 들려왔다.
콰과과광―!
그리고 함께 들려오는 고통에 젖은 신음소리들.
아래를 내려다보자 보이는 것은 불타는 마을이었다.
“뭐야 저건.”
지금껏 하늘만 보고 있었기에 아래의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불타는 마을을 보다가 문득 케이든 교수가 한 말이 떠올랐다.
“최근 들어 민간 지역을 습격하는 안티 매지션들이 활개 치고 있다니 부디 조심하도록.”
“저 정도의 공격이라면 역시 안티 매지션이겠지. 매기, 고도를 낮춰 줘.”
- 끼룩!
예전 같았으면 그냥 넘어갔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지금은 달랐다.
지금의 나에겐 힘이 있었고 힘이 있다는 것은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마을에 테러를 가하고 있는 녀석들을 가만둘 수 없었다.
게다가 안티 매지션이라 함은, 역시 ‘블랙잭’과의 연관성을 무시하지 못할 테니까.
“뭐야.”
그러나 내가 한가지 틀린 것이 있었다.
마을에 테러를 가하고 있는 것은 ‘녀석들’이 아니었다. 한 ‘녀석’이었다.
매기를 타고 지면에 착지한 나를 돌아보는 녀석은 20대 후반,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주위로 둥둥 떠다니는 돌덩이들을 보아하니 분명 ‘부유’에 관련된 고유 마법을 가진 물질계 마법사가 분명했다.
“뭐 하는 거야 이 자식.”
“어머나, 방해꾼이니?”
나는 곧바로 녀석을 제압하기 위해 매직 미사일을 충전시켰다.
「마지아 미실레(magía míssĭle)」
「마지아 미실레(magía míssĭle)」
「마지아 미실레(magía míssĭle)」
……
자칫하면 죽일 수 있으니까 적당히 수백 개 정도.
순식간에 불어난 매직 미사일을 확인한 나는, 이내 멀찍이 떨어진 여자를 매직 미사일로 폭격하기 시작했다.
콰과과광!
그리고 잠시 후 흙먼지가 걷히고 보인 것은 부유하는 돌들로 자신의 몸을 감싸 방어에 성공한 여자의 모습이었다.
“괜히 죽을까 봐 적당히 했네.”
“너, 꽤나 강하구나? 후후훗.”
여자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우우웅―
여자의 몸에서 녹색의 마나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비단 녹색의 마나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검은색 마나? 설마 마인화?”
녀석의 몸은 곧 검녹색의 마나로 뒤덮였다.
그리고 잠시 후 마나가 걷히고 보인 것은,
“마인화라니. 고작 그렇게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건가.”
바로 ‘나’였다.
나와 똑같은 얼굴. 똑같은 복장. 똑같은 목소리까지.
“이건… 도플갱어?”
“정답.”
그러더니 녀석은 곧바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주문은 내 귀에 너무나도 익숙한 것이었다.
「마지아 미실레(magía míssĭle)」
「마지아 미실레(magía míssĭle)」
「마지아 미실레(magía míssĭle)」
……
녀석이 연달아 외치는 주문.
동시에 녀석의 몸 주위로 수없이 불어나는 것.
그것은 다름 아닌 수천 개의 ‘매직 미사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