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조명이 깜빡이는 실험실 안.
두 명의 남녀가 커피를 마시며 대화하고 있었다.
그중 안경을 쓴 여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요즘 들어 아스틴 녀석이 영 보이질 않네.”
“글쎄. 밖에 마실이라도 나갔나 보지.”
남자, 지크 버밀리온의 무성의한 대답에 다프네 브륀힐드는 한쪽 눈썹을 치켜세웠다.
“뭐야 그 말투는. 뭔가 아는 것 같은데.”
다프네가 째려보는 듯한 시선이 느껴지자 지크는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너무 걱정하진 마. 그 녀석이야 뭐 어차피 막으려야 막을 수도 없는 녀석이고. 그래 봤자 계획엔 차질이 없을 테니까.”
“…확실한 거지?”
“당연하지.”
지크 버밀리온은 다시금 커피를 홀짝이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머릿속에는 그의 동급생, ‘아스틴 클라우스’의 모습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 녀석은 확실히 위험하지.’
본래의 고유 마법에 마기를 더한 녀석의 ‘글리치’ 마법은 도플갱어.
마주한 상대의 마법을 흡수하고 두 배로 증폭시켜 사용할 수 있는 강력한 능력.
녀석을 막을 자는 아마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거라 지크 버밀리온은 생각했다.
* * *
“매직 미사일 더미에 마주한 느낌이 이런 거였구나.”
항상 매직 미사일을 날리는 입장이었지, 이렇게 수천 개의 매직 미사일과 마주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나는 일단 도플갱어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기보다는, 저 매직 미사일로부터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먼저였다.
녀석은 매직 미사일이 허공을 빼곡히 메우자 검지 손가락을 내가 있는 자리에 조준했다.
“그럼, 잘 가라.”
녀석의 말을 신호로 날아오는 엄청난 수의 매직 미사일들.
나는 급한 대로 하늘을 향해 고개를 치켜든 뒤, 눈을 찌푸려 최대한 가시거리를 늘리고는 그 끝 지점을 향해 점멸을 사용했다.
팟―!
콰과과과과광!!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내 몸이 사라진 자리에 커다란 굉음이 울려 퍼졌다.
나는 하늘에서 아래의 광경을 확인한 뒤 입을 떡 벌렸다.
“저건… 내 매직 미사일보다도 강한 거 아닌가?”
그리고 어느 정도 폭발이 잠잠해지자, 나는 다시금 점멸을 사용해 지면에 착지했다.
“이상하네. 그런 마법은 이 몸에 각인되어 있지 않은 것 같은데.”
나를 보며 중얼거리는 또 다른 나.
녀석을 보면 볼수록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나는 곧바로 녀석과의 대화를 시도했다.
“어이, 너 정체가 뭐냐.”
“굳이 말할 이유는 없을 거 같은데.”
“그래, 굳이 대답할 이유는 없겠지. 다만, 나는 네 녀석의 정체를 알 것만 같아서 말이야. 역시 블랙잭이잖아, 너.”
내 말에 녀석은 정곡을 찔렸는지 입꼬리가 살짝 움찔거렸다.
물론 그 놀라는 표정은 결과적으로 내 얼굴이었기에, 보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블랙잭을 알고 있네?”
“당연하지. 그 빌어먹을 마인화는 이미 경험해 봤으니까.”
“뭔가 착각하는 거 같은데, 이건 마인화가 아니거든. 이건 ‘글리치’다.”
“글리치……?”
어디선가 들어본 용어였다.
잠깐 곰곰이 생각하던 나는 이내 ‘글리치’라는 말의 용례가 떠올랐다.
글리치.
시스템의 일시적인 오류를 일컫는 말.
주로 비디오 게임과 같은 프로그램에서 발생하는 오류를 뜻한다.
“스스로를 ‘오류’라고 인정하는 건가.”
녀석은 분명 마기를 뿜고 있으나 ‘마인화’와는 결이 달랐다.
‘글리치’라는 것은 어쩌면, 녀석들이 발견한 ‘마기’를 활용하는 궁극의 마법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카론도 마인화라기엔 조금 이질적인 부분이 있었지.”
세오린 산에서 맞닥뜨린 카론 세이피어도 마인화라기엔 온전히 의식을 갖고 있는 부분이 이상했었다.
그리고 마인화를 풀고 다시 온전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 점도 이상했고.
결국 녀석들은 ‘마기’를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한 게 분명했다.
“그나저나 저 녀석, 분명 도플갱어의 능력인 게 확실한데.”
나는 내 얼굴로 히죽 웃고 있는 녀석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분명 녀석의 능력은 변신계. 그것도 ‘글리치’를 사용한 ‘도플갱어’의 마법.
녀석은 마법 주문서로 증폭된 내 매직 미사일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보였다.
다만, 그 위력이 이상했다.
물론 내가 사용하는 매직 미사일도 충분히 강력한 위력을 자랑했으나, 녀석이 사용하는 매직 미사일은 그 배가 되는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설마, 단순히 카피할 뿐만 아니라 위력을 증폭시켜서 사용할 수 있다는 건가.”
“정답이야. 이런, 왠지 네 녀석으로 변신하니 맞장구를 쳐 주고 싶어지는데.”
“…뭐라고?”
나는 술술 불어 대는 녀석의 대답에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나 그 이유가 사실 ‘나’로 변신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조금 기분이 언짢아졌다.
“말하는 김에 하나 더 말해 줄게. 내 ‘글리치’ 마법은 상대의 마법을 두 배 증폭시켜서 사용할 수 있게끔 하는 거야.”
“두 배로 증폭시킨다라.”
“이른바 최강이라는 거지. 이 세상에 날 뛰어넘을 자는 아무도 없어. 그야 간단한 수학 공식이잖아. 아무리 뛰어난 마법사인들 나는 그보다 두 배 더 강하거든.”
단순히 말하자면 상대와 같은 마법을 쓰지만 상대보다 두 배 더 강한 능력.
녀석 스스로가 말한 ‘최강’이라는 수식어가 전혀 근거 없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럼, 너무 많은 걸 알아 버렸으니 바로 보내 줄게.”
녀석은 곧바로 매직 미사일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생성되는 매직 미사일들.
물론 단순한 물량이라면 나도 그에 지지 않는다.
다만 위력이 달랐다.
정면 대결로는 절대 저 녀석을 이길 수 없었다.
그래도 나는 아까 녀석의 말 속에서 살짝 힌트를 얻은 참이었다.
“…아무래도 그 ‘최강’을 꺾을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네.”
녀석은 분명 내 점멸을 보고는 ‘이 몸에는 그런 마법이 각인되지 않았다.’라고 했었다.
나는 그 말을 떠올리고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다만 미소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어서 녀석의 매직 미사일이 내가 있는 곳을 덮쳤기 때문이었다.
팟―!
“이크.”
나는 최대한 먼 곳으로 점멸을 사용했다.
그런데, 다음으로 보이는 광경에 살짝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뭐야, 방향을 틀었다고?”
매직 미사일은 내가 있던 자리에서 폭발하지 않았다.
그대로 방향을 꺾어 현재 점멸을 사용한 위치로 곧장 날아오고 있었다.
“설마… 감지 마법인 건가.”
틀림없었다.
녀석이 점멸을 사용한 위치를 바로 추적할 수 있는 수단은 감지 마법밖에 없었다.
애초에 감지 마법의 성능 자체도 두 배로 증폭된 효과일 테니, 녀석에게서 도망치는 건 아무리 점멸을 사용한다 해도 무리였다.
“여간 까다로운 능력이 아니네.”
적으로 상대하니 비로소 그 진가를 알 수 있었다.
사실 나는 고유 마법만 사용 못 한다 뿐이지 상당히 강력한 마법사였던 것이다.
물론 상대는 오리지널의 내가 아닌, 위력이 두 배로 증폭된 ‘나’라는 게 더 무서운 점이었지만.
“어쨌든, 이대로는 못 이기겠는데.”
녀석과 나의 차이는 바로 ‘영웅의 아티팩트’ 사용 유무.
녀석이 아무리 두 배로 강하다고 해 봤자, 아티팩트까지 복사한 것은 아니기에 영웅의 아티팩트는 사용할 수 없었다.
그것은 이미 녀석의 말로써 증명된 사실이었다.
문제는 ‘점멸’을 사용하는 ‘버밀리온의 로브’도, ‘사역마’를 소환할 수 있는 ‘골드버그의 회중시계’도 당장으로써는 그다지 큰 효용을 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답은 하나였다.
그것은 바로 ‘세이피어의 부적’이었다.
“역시 ‘계승’을 쓰는 수밖에 없겠는데.”
지금 당장 저 녀석을 이기려면 ‘계승’의 힘을 빌리는 방법밖에 없었다.
다만, ‘계승’은 리스크가 있었다.
지금껏 ‘계승’을 사용했던 것은 단 한 번.
그러나 그마저도 고작 2~3분 정도밖에 사용하지 못했었다.
“3분이면 충분하려나.”
물론 이번이 두 번째 사용이기에 저번보다도 리스크가 감소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낙관적인 생각.
현실에서는 적어도 0.01초의 오차도 허용해서는 안 된다.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비로소 계산을 끝마쳤다.
“역시 할 수밖에 없잖아.”
물론 여기서 도망친다는 선택지도 있었다.
다만, 그것은 스스로가 용납하지 못했다.
어찌 됐든 저 녀석을 이대로 내버려 둔다면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더더욱 죽어 나갈 것이다.
“그렇게는 안 되지.”
어느새 내 손은 심장 부근에 맞닿아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부터 번져 나오는 하얀색 기운.
우우웅―
부적이 있는 가슴 부근에서 진동이 느껴지더니,
파아아아아―!
곧 전신에서 하얀 불꽃이 타올랐다.
“그건 또 뭐냐.”
나를 지켜보던 또 하나의 나는 이런 내 모습에 어이가 없다는 듯 입을 삐죽 내밀었다.
다만, 녀석의 감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팟―
녀석의 등 뒤로의 순간 이동.
그리고,
콰아아아아아앙!!
녀석을 그대로 땅바닥에 내리꽂았다.
당연히 녀석은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애초에 자신의 등 뒤에 순간적으로 튀어나오는 적을 상정하며 대치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껏 그런 게 가능한 사람은 오직 서쪽 숲에서 마주쳤던 ‘노아’밖에 없었다.
“이, 이게 대체…….”
지면에 박힌 채로 바들바들 떨고 있는 녀석.
겉보기엔 너덜너덜해 보여도 아직은 의식이 있었다.
아마 순간적으로 배리어를 펼쳐 충격을 최소화한 듯했다.
‘배리어? 나한테 그런 마법이 있었다고?’
그러고 보니 ‘매직 배리어’도 일종의 기초 마법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다만, 지금의 나에게 그다지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당장은 눈앞의 녀석을 3분 안에 해치우는 것이 중요했다.
나는 땅에 박힌 녀석을 향해 다시금 주먹을 꽂아 넣었다.
콰아아아아아앙!!
일전의 충격으로 움푹 팬 지면이 또다시 거대한 분화구를 남겼다.
그와 동시에 아예 지면 속으로 깊게 꽂혀 버린 녀석.
이내 녀석의 몸에서 검녹색의 마나가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곧 처음 보는 남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게, 원래의 모습인 건가. 쿨럭.”
나는 녀석의 기절한 모습을 보다가 문득 기침을 토해 냈다.
역시 ‘계승’의 힘은 아무리 사용해도 감당하기 어려운 힘인 듯했다.
점차 의식이 멀어져 갔다.
나는 그 순간 간신히 힘을 내, 주머니 속에 있는 ‘휴대용 마나 송신기’를 꺼냈다.
그러고는 빠르게 연결 가능한 주소 목록을 확인했다.
그곳에 있는 두 개의 주소.
[캐서린 골드버그]
그리고,
[실베르 라인하르트]
흐릿한 시야 속에서 내가 선택한 것은 다름 아닌… ‘캐서린 골드버그’의 연락처였다.
점차 의식이 멀어져 가던 와중, 내 귓가에 들려오는 다이얼 소리.
그리고 그 다이얼 한 번이 채 끝나기도 전에 휴대용 송신기에선 캐서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에요? 뭔 일이라도 생겼어요?!”
다만,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 * *
“으음…….”
조심스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곧 시야에 들어오는 곳은 왠지 매우 익숙한 장소였다.
“또… 여긴 건가…….”
눈을 뜬 장소는 다름 아닌 칼루스 아카데미의 지하 연구소.
이곳에서 눈을 떴다는 것은 아마 랑켄 슈타이너 교수가 나를 이곳으로 데려왔다는 소리겠지.
아니나 다를까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것은 랑켄 슈타이너 교수의 방독면이었다.
그런데 그 옆에 있는 사람은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었다.
“…실베르 차장님?”
그와 눈이 마주친 나는 눈을 깜빡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