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의 무속성 마법사-145화 (145/175)

145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인물을 보게 된 나는 그저 눈을 깜빡일 뿐이었다.

그런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 온 것은 랑켄 슈타이너였다.

- 일어났나.

“아, 예…….”

대답과 동시에 머릿속에 서서히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마주친 블랙잭의 일원. ‘계승의 힘’을 사용했던 것.

그리고 마지막에 캐서린에게 연락했던 것까지.

‘그 녀석은 구속됐으려나.’

내 의문스러운 표정을 잠자코 지켜보던 실베르가 넌지시 말을 걸어 왔다.

“너 말이야. 도대체 얼마 동안 잠들어 있었던 건지는 아냐?”

“얼마나… 지났는데요……?”

“너 일주일 동안 여기 누워 있었다고.”

“…일주일이요?”

그렇구나.

또 일주일이 지나간 거구나.

역시 ‘세이피어의 부적’은 어쩔 수 없이 큰 리스크를 짊어질 수밖에 없는 듯했다.

200년 전 영웅의 힘, 아니 세이피어 가문을 통합한 강대한 힘을 빌릴 수 있는 것.

그에 따른 리스크는 사용자가 감내해야 하는 것이 당연했다.

다만, 그럼에도 일주일은 조금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렇게 말하는 너도 일어난 지는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시끄러.”

갑자기 투덕대기 시작한 둘.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뭐지? 둘이 원래 알던 사이인가.’

항상 방독면을 쓰고 있었기에 랑켄 슈타이너의 나이를 가늠할 수는 없었지만, 둘의 자연스러운 대화를 듣고 있자니 어쩌면 동기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둘 사이의 대화 내용이 뭘 의미하는지는 아직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실베르 차장님은 여기 왜 계세요?”

“그게…….”

- 저 녀석, 일주일 넘게 이곳에 누워 있었다.

“일주일이 넘게요? 왜요?”

- 네가 처리한 녀석한테 당했었거든.

“…….”

창피한지 시선을 회피하는 실베르 라인하르트.

다만, 나는 랑켄 슈타이너가 하는 말이 무슨 내용인지 이해하는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내가 처리한 녀석한테 당했었다고? 설마…….’

- 그 녀석한테 당한 걸로 모자라 마기를 일부 주입 당했다. 다행히 빠르게 조치해서 망정이지 하마터면 강제적으로 마인화 반응을 일으켰을지도 모르지.

“그렇구나.”

이제야 실베르 라인하르트가 이곳에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 녀석에게 당하셨던 건가.’

그러고 보니 케이든이 말했던, ‘민간 지역을 습격하는 안티 매지션으로 인한 마경의 피해’는 어쩌면 부상으로 인해 이곳에 누워 있었던 실베르를 의미하는 말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차장급 인사가 부상을 당해 누워 있다는 것까지는 말할 수 없던 거겠지.

‘그 ‘글리치’ 마법을 쓰는 녀석이라면 충분히 당할 만하지.’

강화계 권좌, 실베르 차장이 녀석에게 당한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상대의 도플갱어로 변신해 상대보다 두 배로 강력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고유 마법.

나처럼 아티팩트의 의존도가 높은 마법사가 아니라면 녀석을 이길 자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실력 있는 마법사 중에서 아티팩트 의존도가 높은 자도 없을 것만 같고.

결국 나는 녀석과 상성이 좋았기 때문에, 실베르 차장이 패배한 녀석을 상대로 이길 수 있던 것이다.

“그 녀석은 어떻게 됐어요?”

- 출동한 마경에 의해 구속되어 지금쯤 구치소에 있을 거다. 그나저나 대단하군. 저 녀석이 처참히 발렸던 상대를 제압해 내다니.

“하하……. 운이 좋았죠.”

“쳇…….”

실베르는 멋쩍은 듯 괜스레 혀를 찼다.

하긴, 마경의 차장급, 그것도 강화계의 권좌가 고작 아카데미 학생 하나한테 제압당한 상대에게 당했었다니. 자존심이 상할 만도 했다.

얼굴이 살짝 붉어진 실베르는 이내 헛기침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 녀석, ‘아스틴 클라우스’는 7년 전 칼루스 아카데미를 탈주한 ‘저주받은 학생들’ 중 한 명이었다.”

“예?”

상대가 블랙잭일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저주받은 학생들’ 중 하나일 줄이야.

‘그렇다면 앞으로 저만한 녀석이 일곱 명 더 남았다는 건가.’

이번엔 말 그대로 운이 좋았다.

말도 안 되는 상대의 능력이 하필 나와는 상성 관계라 쉽게 제압할 수 있었다.

게다가 단독 행동을 하고 다녔다는 것도 어찌 보면 행운이었다.

그런데 앞으로 저만한 녀석들이 일곱 명이나 더 남았다니.

‘그래도 이제 일곱 명밖에 안 남았다고 봐야 되나.’

조금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어쨌든 그중 한 명을 구속시켰다는 생각에 조금 기분이 좋아졌다.

“마경에서 조사한 결과 그 녀석, 블랙잭이더라고. 사실 지금 활개치고 있는 블랙잭이라는 조직의 배후가 바로 7년 전 실종되었던 ‘저주받은 학생들’이었던 거지.”

“어, 그런가요.”

“…뭐야, 그 반응은 설마 원래 알고 있었던 거야?”

“…어쩌다 보니까요.”

실베르는 조금 얼떨떨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런 그에게 씨익 미소를 보였다.

“아무튼, 그럼 이제 나머지 일곱 명만 더 잡으면 되네요.”

“으응. 그렇지.”

“절대로 녀석들의 뜻대로 되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예요.”

“어어……? 그, 그래야지.”

내 혼잣말에 당황스러워하는 실베르 라인하르트.

나는 그런 그의 반응에 고개를 갸웃하다가 이내 뜨끔해졌다.

‘맞다, 나 고작 아카데미의 학생일 뿐이었지.’

방금 전 내 발언은 조금 오해의 소지가 있는 듯했다.

그러나 나는 딱히 수정하지 않았다.

어쨌든, 내가 블랙잭의 진짜 간부 중 하나를 처리한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으니까.

나는 조금 얼떨떨한 표정의 실베르를 흘끔 쳐다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혹시라도 관련된 소식을 알게 되면 알려 주실 수 있으신가요?”

“응……?”

“아시다시피, 저는 큰 도움이 될 수 있잖아요.”

내 무언의 눈빛을 읽은 실베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더 이상 얘기하다가는 본인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못할 것 같다는 표정이었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봐도 될까요?”

- 그래. 상태를 확인하니 몸은 괜찮은 거 같군.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나는 둘에게 꾸벅 인사를 한 뒤 연구소 밖을 나섰다.

* * *

“이제 여름인 건가.”

내가 의식을 잃은 지도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고 했다.

고작 일주일이라고도 볼 수 있으나, 거리의 풍경은 일주일 전과도 확연히 차이가 났다.

가장 큰 변화는 학생들의 복장이었다.

반팔인 하복을 입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

그러고 보니 날씨가 조금 후덥지근하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다만,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는 것 치고는 크게 덥진 않았다.

“설마, 온도 조절 기능도 있는 건가?”

확실히 지금 상태에서 덥지 않은 이유는 오직 로브의 기능 덕분인 것으로 보였다.

도색 변화에 이어 온도 조절 기능이라니.

참으로 편리한 아티팩트인 듯싶다.

“그나저나 오늘은 좀 쉬고 싶은데.”

시간대를 보아하니 이제 막 오후가 시작되는 시간.

아무래도 지금 깨어났으니, 오후 강의에는 출석하는 게 정상이었다.

다만 이왕 일주일간 결석한 거, 오늘 하루 더 빠져도 별 차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사실 강의와 학점은 더 이상 나에게 중요한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어차피 내가 블랙잭을, 그것도 저주받은 학생을 제압했다는 것이 이미 교직원들 사이에 알려졌을 것이다.

따라서 오히려 칭찬을 받으면 받았지, 수업을 빼먹었다고 딱히 징계를 받을 일도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러고 보니 중요한 걸 잊은 것 같은데.”

일주일 동안 누워 있다 보니 그 전 기억이 조금 가물가물했다.

그리고 그 기억을 곰곰이 되짚어 보니, 무언가 중요한 사실이 떠오르고 있었다.

“맞다. 만다린. 메이브 만다린.”

아우레인의 동급생이자 아카데미의 임시 사서.

그녀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든 나는 이내 도서관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문득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우우우웅―

“응? 뭐지.”

나는 아무렇지 않게 주머니에서 휴대용 송신기를 꺼냈다.

나에게 메시지를 보낸 것은 역시나 캐서린 골드버그였다.

[캐서린(방금 전) : 일어났어요? 지금 어디예요?]

나는 그녀의 문자를 끔뻑끔뻑 보다가 문득, 의식을 잃었을 당시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캐서린에게 연락했었지.”

사실 그때 당시 왜 마경의 차장 실베르 라인하르트가 아닌, 그저 아카데미의 동급생일뿐인 캐서린 골드버그에게 연락했었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손이 그쪽으로 갔을 뿐이었다.

“많이 걱정했겠네.”

나는 곧바로 캐서린에게 현재 위치를 알리는 답장을 보냈다.

그리고 곧 그녀는 3분도 채 걸리지 않아 모습을 드러냈다.

“괜찮아요?”

“강의는 끝났어?”

“공강이에요. 그것보다 괜찮냐고요.”

어딘가 따지는 듯한 말투.

게다가 표정은 걱정으로 인해 잔뜩 상기돼 있었다.

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내 입가에는 괜스레 미소가 지어졌다.

“괜찮아.”

“도대체 뭘 하고 다니길래 마을 한복판에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어요?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아세요?”

“미안.”

하긴.

갑자기 전화를 걸어 놓고선 아무 말도 없으면 나라도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듯싶었다.

다행히도 캐서린은 그 이후로 곧바로 내 위치를 추적해 마경에 신고한 모양이었다.

“아니요. 미안하다고 끝날 게 아니에요. 당신이 뭐 하고 다니는지는 꼭 알아야겠어요.”

캐서린의 표정에선 절대 양보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엿보였다.

언뜻 보면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분명 그녀는 조금 화나 있었다.

‘설명하자기엔 좀 긴데.’

그렇다고 그냥 넘어가기엔 캐서린의 표정이 무서웠다.

나는 이내 살며시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세계를… 구하는 중이야.”

“세계를 구한다니.”

내 말에 기가 찬다는 듯한 표정의 캐서린.

나는 씨익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그러니까 좀 봐줘라.”

“…이런 식으로 넘어갈 거예요?”

다만 다소 틱틱대는 말투와는 달리, 그녀의 입가에는 살짝 미소가 엿보였다.

“…알겠어요. 이번엔 봐 드릴게요. 그래도 다음부터는 꼭 무슨 일 생기기 전에 먼저 연락하셔야 돼요. 알겠죠?”

“응. 알겠어. 약속할게.”

나는 그녀가 내민 새끼손가락에 내 손가락을 포갰다.

‘이런 관계도… 나쁘진 않네.’

그러고 보니 그녀와 약속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 * *

캐서린과 헤어진 뒤, 나는 곧바로 아카데미의 도서관으로 향했다.

아직 강의가 한창인 오후였지만, 다행히도 메이브는 그곳에 있었다.

도서관의 카운터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메이브, 아니 메이브 만다린.

나는 이내 그녀에게 성큼 다가가 그녀의 정신계 마법에 대해 따지려 했다.

그러나 먼저 입을 연 것은 오히려 메이브 만다린이었다.

“제 마법을 푸셨군요.”

읽고 있던 책을 덮고는 쓰고 있던 안경을 무심하게 벗어 내리는 메이브.

그리고 나와 눈을 마주쳤다.

나는 갑작스러운 그녀의 태도 변화에 조금 혼란스러워졌다.

그리고 메이브의 입에서 나오는 다음 말은 더욱더 나를 놀라게 했다.

“예언의 아이시여. 당신이 제 마법을 풀고 이곳에 도달했다는 것은 때가 됐다는 소리겠군요.”

“너… 그걸 어떻게 아는 거야?”

그저 아카데미의 동급생일 뿐이잖아.

그런데 나보고 ‘예언의 아이’라니.

나는 할 말을 잃은 채 그저 멍하니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