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의 무속성 마법사-146화 (146/175)

146화

예언의 아이.

나조차도 최근에 윈터 아메드를 통해 처음 들은 말.

그러한 말을 같은 아우레인의 동급생일 뿐인 메이브 만다린이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너… 그걸 어떻게 아는 거야.”

양 갈래로 땋은 주황 머리의 소녀, 메이브 만다린은 여전히 나를 무표정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이윽고 입을 여는 메이브.

“꿈에서 계시를 받았습니다.”

“계시…라고?”

“저는 아시다시피 ‘만다린’ 가문의 핏줄, 저희 가문은 ‘게슈탈트의 꿈’을 꿀 수 있답니다.”

“게슈탈트라면…….”

게슈탈트 만다린, 200년 전 마족에 맞서 싸운 정신계의 영웅.

메이브가 의미하는 ‘게슈탈트의 꿈’은 그 영웅 게슈탈트와 관련 있는 내용으로 보였다.

“쉽게 말하자면, 영혼 링크 같은 거랍니다. 만다린 가문은 선조 게슈탈트 님과 소통할 수 있는 거죠. 그리고 게슈탈트 님께서는 예언의 아이가 찾아올 것이라는 계시를 내렸습니다. 그게 당신인 거겠죠.”

“내가 찾아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얘긴가.”

기분이 묘했다.

예언의 아이, 그 네이밍이 의미하는 것은 내가 이곳에 빙의되어 마계의 부활을 막아 낼 것을 200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뜻이 될 테니까.

‘이 모든 게 전부 계획된 일이었다니.’

그러고 보면 지금껏 이곳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것들이 살짝 작위적, 편의적이라는 생각이 든 적이 몇 번 있었다.

‘설마 내 눈앞에 나타나는 시스템 창도…….’

그것마저도 200년 전 영웅들이 계획하고 준비해 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으나, 일단은 메이브의 말을 좀 더 들어보기로 했다.

“너, 도대체 어디까지 아는 거야.”

“글쎄요. 게슈탈트 님께서는 만다린 가문의 마법을 푼 예언의 아이가 찾아오게 된다면, 본인의 꿈속으로 안내하라는 계시만 남겼을 뿐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것은 그게 전부입니다.”

“꿈속으로 들어가라고? 어떻게 하는 건데.”

“그건 어렵지 않습니다.”

말을 마친 메이브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도서관의 구석진 자리에 위치한 책상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기에 누워줄 수 있으신가요.”

“…혹시 다른 사람이 들어오면 어떡하려고.”

“이미 당신이 들어온 순간부터, 도서관에는 제 마법이 걸려 있었습니다. 아마, 보통의 사람이라면 이곳으로 들어올 생각조차 갖지 못할 거예요.”

나는 메이브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본인이 만다린 가문이라는 걸 숨기는 마법을 아카데미 전 인원에게 건 녀석이었다.

게다가 그 영향은 케이든 교수님조차도 벗어나지 못할 정도.

녀석의 마법 실력 하나만큼은 믿을 수 있었다.

나는 곧 메이브가 가리킨 책상 위에 누웠다.

뭔가 독서를 위한 책상 위에 버젓이 눕는다는 게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럼, 눈을 감아 줄 수 있으실까요.”

나는 대답하지 않고 곧장 눈을 감았다.

그러자 메이브가 내 이마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당신은 게슈탈트 님의 꿈속으로 들어갈 거랍니다.”

“거기서 뭘 하면 되는 건데?”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게슈탈트 님께서는 본인의 꿈속에서 당신이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을 거라 하셨습니다.”

내가 원하는 거라.

내가 원하는 거라면 당연히 ‘영웅의 아티팩트’.

아마 게슈탈트가 내 조력자가 맞고, 내가 그 ‘예언의 아이’라는 게 맞는다면, 꿈속에서 만다린의 아티팩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준비되셨나요.”

“응.”

내 대답과 동시에 메이브는 점점 더 거세게 내 이마를 쓸어내리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점점 몸이 부유하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정신이 육신을 빠져나오려 하는 듯한 느낌.

그리고 곧 나는 정신을 잃게 되었다.

* * *

“닥쳐라. 내 앞에서 감히 주둥이를 함부로 놀려?”

“어머나, 꼬맹이가 입만 살았구나?”

“내가 그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면 분명 가만두지 않겠다고 경고했을 텐데.”

“가만두지 않는다면? 항상 가지고 다니던 귀여운 솜털로 위협이라도 할 거니?”

“이 개자식이!!”

남자와 여자의 말다툼 소리에 깬 나는 살며시 눈을 떴다.

그리고 살며시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여긴 어디지…….’

장소는 매우 넓은 주점이었고, 내 앞에는 두 남녀가 신경질을 내며 싸우고 있었다.

160 가까이 되는 작은 키의 금발 남자와 장신의 백금발 여자.

그런데 장신의 여자 쪽이 매우 눈에 익었다.

‘저 사람은… 윈터 아메드잖아?’

분명 얼음 던전에서 봤던 윈터 아메드의 얼음 조각상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얼음 던전에서의 말투와 지금의 말투 사이에 미묘한 차이가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윈터 아메드 님!’

나는 곧 정체를 파악하자마자 윈터 아메드를 불렀다.

그러나 입에서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뭔가 이상하다 싶어 내 몸을 확인한 결과, 내 몸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가. 이건 꿈인 건가.’

비로소 모든 것이 떠올랐다.

내가 현재 있는 곳은 게슈탈트의 꿈속.

잘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그의 꿈속에서 벌어진 일들을 지켜보는 듯했다.

“이번엔 그냥 안 넘어가!”

자리를 박차고 큰소리로 외치는 남자.

곧 남자의 주위에선 노란색의 마나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함께 나온 것은…

- 끼룩!

다름 아닌 매기였다.

“푸하하하! 여전히 귀여워서 좋네. 그거 나 주면 안 될까? 갖고 싶은데 말이야.”

그리고 윈터 아메드는 눈앞에 나타난 매기의 모습을 보고는 깔깔대며 웃었다.

‘매기를 소환했다는 것은 저 남자가 바로…….’

키 160cm 정도 되어 보이는 단신의 남자.

남자의 정체는 아무래도 소환계의 영웅 ‘피너클러스 골드버그’인 듯했다.

‘뭐야, 뭔가 깨는데.’

권위적이고 무게감 있는 분위기의 골드버그 가문.

그런데 그 가문의 선조가 저렇게 목대에 핏줄을 세우며 바락바락 악을 지르는 남자라니.

피너클러스는 곧 매기에게 공격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씨걸, 공격해!”

- 끼룩!!

이내 매기는 근육 폼으로 변해서 아메드를 공격하려 주먹을 들었다.

그런데,

탁―

아메드가 손가락을 튕겼고, 순간 주변이 얼어붙었다.

그리고 아메드는 유유히 자리를 벗어났다.

콰아아아앙!!

매기가 내려찍은 것은 이미 아메드가 떠나간 빈 자리였다.

애꿎은 의자만이 매기의 주먹에 희생양이 되어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뭐해? 이번엔 그냥 안 넘어간다면서? 과연 그 귀여운 솜털로 나를 한 대라도 공격할 수 있을까? 역시, 우리 ‘피넛’이는 너무 귀엽다니까.”

“이 X같은 X아!!”

피너클러스 골드버그는 악에 받친 어투로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는 나는 조금 얼떨떨할 뿐이었다.

‘뭐지, 왜 둘이 갑자기 싸우는 거지. 것보다 피너클러스 골드버그의 사역마는 정령왕 아니랬나?’

그런데 지금 피너클러스가 소환한 것은 고작 매기뿐.

나는 그 모습에 살짝 의아했다.

반면, 역시나 윈터 아메드는 빙결계의 최상위 마법이라고 불리는 ‘타임 프리즈’, 일명 시간 정지를 사용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상하네. 분명, 피너클러스의 동상에는 매기의 모습이 없었는데.’

그런 의문도 잠시.

곧 둘의 싸움을 말리는 이가 등장했다.

“어이! 적당히들 하라고! 내일이면 마지막 전투가 일어날 테니까 오늘은 힘을 좀 아끼지 그래.”

갑자기 나타난 거구의 사내는 근육 폼의 매기와 윈터 아메드 사이에 서서 둘에게 손바닥을 보였다.

그러자 피너클러스는 하는 수 없다는 듯 매기를 소환 해제시켰다.

“쳇, 어쩔 수 없네. 대장님 명령이니 따르는 줄 알아.”

“어차피 질 걸 알아서 쪼는 건 아니고 꼬마야?”

“쓰읍. 윈터, 적당히 하랬지.”

“예예. 그만하죠 뭐.”

대장이라.

나는 거구의 사내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구릿빛 피부에 마치 고릴라 같은 엄청난 근육질의 남자.

누군가를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은… 클라우드 세이피어겠네.’

클라우드 세이피어.

강화계의 영웅.

불리는 호칭으로 보아 아마도 ‘200년 전 영웅’들을 이끄는 실질적 대장 역할을 맡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 사람이 클라우드인 것까지 확인이 되자 나는 좀 더 주점 안을 두리번거렸다.

주점에는 영웅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그들을 따르는 일반 마법사들까지 함께 이곳에서 음주 가무를 즐기고 있는 듯했다.

‘마지막 전투랬나.’

아까 전 클라우드 세이피어의 말을 떠올려 보자면, 아마도 현재 이곳의 시점은 아마도 ‘마계 대전’의 마지막 날, 그 전날인 것으로 보였다.

최후의 전투를 위해 다들 목을 축이며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겠지.

‘그렇다는 것은 내일 드디어 마계를 봉인시킨다는 것인가. 그런데 왜 나를 이곳으로 부른 것이지?’

아직까진 게슈탈트가 나에게 이 장면을 보여 주는 목적을 파악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주점 안에 있는 사람들 중에 게슈탈트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애초에 게슈탈트 만다린의 인상착의를 알지 못할뿐더러, 물어보려 해도 실체가 없기 때문에 이곳 사람들에게 직접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일일이 넓은 주점 안을 직접 돌아다니며 게슈탈트의 행방을 찾아야 했다.

그런데 문득 반가운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저건… 히로빈 교장님?’

주점의 구석에서 누군가와 얘기를 나누고 있는 히로빈 그린월드.

그 앞에 있는 사람은 새빨간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어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 사람이 누군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 사람은 아텔라 버밀리온인 거 같네.’

그녀가 뒤집어쓰고 있는 로브가 현재 내가 입고 있는 로브와 같기에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히로빈 교장은 열심히 그녀에게 무언가를 얘기하고 있었고, 아텔라 버밀리온은 그의 말을 들으며 묵묵히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보아하니 둘의 사이가 꽤나 각별한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이때 당시에도 저 모습이었네, 저 인간은.’

히로빈의 모습은 200년 후인 지금의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영락없는 초등학생의 모습.

나는 혹시나 저 초등학생 외관의 히로빈 교장이 술을 마시고 있나 싶어 앞자리를 살펴봤으나 그의 앞에는 딱히 술잔이 보이지 않았다.

‘이때는 정말 초등학생이었던 건가.’

그의 나이를 정확히 모르는 나는, 그저 그렇게 추측할 뿐이었다.

둘의 대화 내용을 가만히 들어보니 역시나 내일 있을 최후의 전쟁에 관한 내용이었다.

“전쟁이 끝나면 뭐할 거야?”

“글쎄. 너는?”

“난 아카데미나 차릴까 싶은데.”

“아카데미라니. 너답기도 하네.”

“그렇지. 전쟁에 너무 많은 아이들이 희생됐잖아. 뭔가, 아카데미를 지으면 그들에게 용서 대신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좋은 생각이네. 잘 부탁한다, 히로빈 교장님.”

“교장이란 말은 너무 이른 거 아니야? 아무튼 전쟁이 끝나면 도움 좀 구할게. 모두의 도움을 받아서 아카데미를 짓는 게 내 꿈이거든. 어디 보자. 이름은…….”

칼루스.

칼루스 아카데미.

나는 이미 저 히로빈 그린월드가 지을 아카데미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나저나 모두의 도움을 받아서 아카데미를 짓는다니.’

던전과 몬스터, 마물이 가득한 알 수 없는 공간의 중심에 위치한 아카데미.

그것의 정체는 바로 모든 영웅들의 힘이 들어간 공간인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영역 안에 윈터 아메드의 던전이 있는 것도, 파르가 있던 용암 던전이 있던 것도 어느 정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 잔 받으시죠.”

“시끄러.”

“왜요. 모습은 그러셔도 이미 성인의 나이를 훌쩍 뛰어넘으신 거 아니십니까.”

“그딴 쓴 걸 먹느니 차라리 혀를 자르는 게 좋겠군.”

자신 앞의 남자에게 독설을 서슴없이 내뱉는 소녀.

그녀의 정체는 다름 아닌 언노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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