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언노운의 모습을 확인한 순간 드는 생각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언노운이 여길 왜?’라는 단순한 의문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역시 그랬던 건가.’라는 자기 확신이었다.
사실 최근 들어 의심하고 있던 참이었다.
언노운이 바로 엘가시아 가문의 영웅, ‘엘가시아’라는 것을.
그리고 언노운이라는 에고 소드 자체가 ‘엘가시아의 아티팩트’의 일종이 아닐까 하는 것을.
그렇게 생각했던 이유야 간단했다.
애초에 언노운의 능력 자체가 방출계 마법의 능력과 상통하는 면이 있었으니까.
다만, 그렇다기엔 언노운을 쥐어도 전혀 시스템 창이 나타나지 않았기에, 그저 ‘아카마’에서 스쳐 지나가는 맥거핀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 녀석이 진짜로 영웅 엘가시아였다니.
나는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그녀가 내가 있는 방향을 빤히 바라보며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뭐야, 설마 내가 보이는 건가……?’
나는 당황스러움에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그런 착각도 잠시, 내 뒤를 돌아보자 각종 디저트가 쌓여 있는 선반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저것 좀 가져오거라.”
언노운, 아니 엘가시아의 명령에 그녀의 앞에 앉아 있던 남자가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이윽고 남자가 뻗은 손은 내 몸을 관통하여 선반에 있는 초콜릿을 한 움큼 집어 들었다.
나는 순간 그가 게슈탈트 만다린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야, 이제 남은 영웅이라곤 그밖에 없었으니까.
게다가 엘가시아와 단독으로 대화할 정도라면 아무래도 게슈탈트가 유력한 게 당연했다.
그러나 곰곰이 그를 관찰해 본 결과 게슈탈트는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아닌 건가.’
애초에 게슈탈트 만다린은 주황색 머리를 가지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러나 그는 갈색 머리, 게다가 외모도 동양인에 가까웠다.
‘이곳에서 오랜만에 보는 동양인 외모네.’
계속 지켜볼수록 그는 그저 영웅단에 속한 마법사 중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면 되겠습니까.”
남자는 들고 온 초콜릿을 테이블 위에 전부 부었다.
그러자 엘가시아는 우아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초콜릿을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저 단 거 좋아하는 취향은 200년 전에도 여전하셨네. 그나저나 언노운이 엘가시아였다니……. 그러면 사실상 제이드는 언노운의 후손이라는 건가.’
그와 동시에 머릿속에는 의문이 하나 생기고 있었다.
‘왜 지금껏 나에게 말하지 않았던 거지?’
지금까지 언노운과 함께 제이드를 만난 적도 있었고, 같은 마계 대전의 영웅인 히로빈 그린월드를 만난 적도 있었다.
심지어 ‘아카마’에서 언노운은 제이드의 검인 적도 있었다.
그런 그녀가 왜 지금껏 본인의 정체를 밝히지 않은 채, 조용히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하고 있는 사이, 그녀의 앞에 앉아 있는 남자가 조심스레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런데 엘가시아 님.”
“뭐냐.”
“그 소문이 진짭니까?”
남자의 말에 엘가시아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뭔가 거슬린다는 듯한 느낌이었다.
다만,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정말 엘가시아 님이 ‘마족’인 겁니까?”
아니 이게 또 무슨 소리야.
엘가시아가 ‘마족’이라니.
“반 정도는.”
“…소문이 사실이었군요.”
“그래. 내일이 되면 다 부질없을 얘기니 전부 말해 주도록 하지. 어차피 나는 내일 소멸할 테니까.”
“아니, 왜요?!”
나의 반응은 남자와 같았다.
‘아니, 이번엔 또 소멸한다고?’
계속해서 들어오는 정보가 범람을 일으켜 머릿속이 조금 복잡해지고 있었다.
다만 지금 당장은 잠자코 둘의 대화를 듣는 수밖에 없었다.
“마계의 문을 봉인하기 위해선 ‘큐브’를 작동시켜야 하고, 큐브를 작동시키기 위해선 ‘고결한 마족의 희생’이 필요하지.”
“고결한 마족의 희생이라니. 애초에 고결한 마족이란 게 존재하긴 합니까?”
남자의 질문에 엘가시아는 남자를 은근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 표정에는 어딘가 씁쓸함도 느껴지고 있었다.
“그래, 고결한 마족이란 말도 안 되는 소리지. 다만, 이 세계에는 그 말도 안 되는 고결한 마족이 하나 존재한다.”
“그게 설마…….”
“그래. 바로 나다. 마족과 인간의 혼혈이지만, 인간에 가깝다. 그러니 고결하다. 그게 바로 내 존재인 것이다.”
엘가시아는 갑자기 남자의 술잔을 빼앗았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잔을 들이마셨다.
그 돌발 행동과 엘가시아의 방금 발언에 얼이 빠진 남자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볼 뿐이었다.
“크. 쓰군. 역시 인간은 왜 이딴 쓰잘머리 없는 걸 마시는지 모르겠군. 아무튼, 내일 최후의 전쟁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어 마족 놈들을 마계로 쫓아내게 되면. 나는 이 세상을 떠나게 되는 게다.”
“스스로 희생하고자 하시는 겁니까. 그렇지만… 그래서는… 그런 식으로 엘가시아 님을 보내는 것을 저희는 납득할 수 없을 겁니다.”
“아서라. 이미 이 전쟁과 수탈에 희생된 자들이 터무니없이 많아. 고작 나 하나 희생하면 이 지긋지긋한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는 게지. 게다가 나도 이젠 더 이상 삶의 미련이 없다. 그저, 편히 쉬고 싶을 뿐이다.”
아까 전 술이 쓰다 말한 언노운은 테이블 위의 또 다른 술잔을 집어 들더니 다시금 입에 털어 넣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어쩐지 그녀의 얼굴엔 슬픔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이제, 이 지긋지긋한 삶도 끝이구나.”
짧게 탄식하는 엘가시아.
둘의 대화를 듣는 나도 덩달아 조금 침울해졌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엘가시아는 내일 있을 마계 대전의 최종전에서 소멸하지 않는다.
그야 200년 후에도 여전히 그녀는 ‘언노운’이라는 이름의 에고 소드로서 존재하고 있을 테니까.
‘그래서 결국 마계의 봉인을 풀기 위해선 또다시 ‘엘가시아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건가. 그게 지금의 제이드라는 거고.’
이제야 확실히 알게 되었다.
200년 전의 전쟁이, 지금 내 상황이, 지금 이 세계가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를.
‘그나저나 게슈탈트는 어째서 나에게 이런 것을 보여 주는 거지.’
물론, 이곳에서 본 것만으로도 이 세계에 대한 궁금증을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었기에 충분히 도움이 된 건 사실이었다. 다만, 어째서 게슈탈트 만다린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지 알 수 없었다.
만찬회는 밤이 깊도록 계속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게슈탈트 만다린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나는 그들의 파티가 끝나기를 그저 묵묵히 지켜볼 뿐이었다.
“다들 해산!”
이윽고 새벽이 찾아오고, 클라우드 세이피어의 명령과 함께 만찬회는 막을 내렸다.
영웅단의 병사들이 하나둘씩 막사로 복귀하고, 곧 주점에 남은 것은 여섯 명의 영웅들 뿐이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여전히 게슈탈트 만다린은 보이지 않고 있었다.
커다란 테이블을 중심으로 하나둘씩 착석하기 시작한 영웅들.
다 모인 것을 확인한 뒤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클라우드 세이피어였다.
“자네들. 드디어 내일 녀석들의 주둔지만 밀어낸다면 이 지긋지긋한 전쟁이 끝이 나잖나. 다들 자신 있는 거겠지.”
“당연합니다!”
“뭐, 이제 와서 어려울 것도 없죠.”
클라우드 세이피어의 말에 다들 하나둘씩 말을 덧붙였다.
들떠서 웅성거리는 영웅들을 클라우드는 잠자코 기다려 주었다.
곧 그들이 조금 잠잠해지자 이내 클라우드 세이피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다들… 알고 있는 게지? 엘가시아 님의…….”
그러나 클라우드 세이피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엘가시아가 그의 말을 중지시켰다.
“난 또 뭐라고. 적당히 하거라 클라우드. 이제 막 축제 분위기에 괜히 찬물을 끼얹어서야 되겠느냐. 다들 괘념치 말거라. 애초에 각오는 진즉에 끝난 일이거늘.”
엘가시아는 못마땅한 듯 혀를 차며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그녀의 말에 아무도 입을 여는 이가 없었다.
그들의 관계에 대해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모두는 내일 있을 그녀의 희생을 안쓰러워하는 듯했다.
아마, 알게 모르게 그들은 매우 돈독한 전우애를 가지고 있는 거겠지.
잔뜩 가라앉은 분위기.
그런데 그 침묵을 깨고 입을 연 것은 아텔라 버밀리온이었다.
“잠깐 화제를 돌려도 될까요. 잠시 할 말이 있거든요.”
그리고 아텔라는 뒤집어쓴 로브를 뒤로 넘겼다.
그러자 그녀의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아텔라의 얼굴을 확인한 나는, 동시에 입을 떡 벌렸다.
‘아텔라… 교수님? 아텔라 교수님이잖아?!’
아텔라 버밀리온은 아텔라 가스트로디아 교수님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은 외모였다.
단순히 닮았다기엔 둘은 마치 복제 인간처럼 아예 같은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다만, 일단은 그녀와 아텔라 가스트로디아 교수님과의 관계보다는 당장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얘기가 훨씬 더 중요했다.
“우리는 결국 마계를 봉인시키지 못할 거예요.”
“실패할 거라니.”
그녀의 말에 딴지를 건 것은 다름 아닌 피너클러스 골드버그였다.
제일 먼저 아텔라의 말에 화를 내는 것이 피너클러스라는 게 조금 의외였다.
어쩌면 제페토 골드버그의 성격을 닮은 것 같다는 느낌도 얼핏 들었다.
“물론, 내일은 봉인에 성공하겠죠. 이제 마족들의 주둔지가 코앞이니까요. 다만, 제가 말하는 것은 200년 뒤. 200년 뒤 또다시 마계는 부활하고 인간계를 점령할 거예요.”
“그걸 어떻게 장담하지?”
“제게 어떤 남자가 찾아왔어요. 그 사람이 그러더군요. 자신은 미래에서 왔다고. 당신들은 실패할 것이라고. 결국 마계는 또다시 부활한다고 하더군요.”
그녀의 말에 반박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야 아텔라 버밀리온의 능력은 공간 조작을 넘어, 시공간의 조작.
다들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고 있는 듯했다.
“저는 그 남자에게 어찌하면 좋을까 물어봤어요. 그러더니 그 남자가 그러더군요. 200년 후 마계의 부활을 막기 위해선 저희의 능력이 필요하다고. 그리하여 저희의 마력을 담은 아티팩트를 각자 만들어 달라고요.”
“마력을 담은 아티팩트? 그딴 걸 어디에다 쓰는데.”
이번에도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피너클러스 골드버그였다.
“남자는 이렇게 얘기했어요. ‘예언의 아이’가 당신들의 마법을 이어받을 것이라고. 그리고 당신들이 실패하게 될 마계의 봉인을 그 아이가 해결할 것이라고요.”
“예언의 아이?”
“예언의 아이라.”
영웅들은 ‘예언의 아이’라는 말에 술렁이기 시작했다.
아텔라는 잠시 말을 멈추고는 침을 삼켰다.
그러고는 각오를 다지는 눈빛으로 모두를 훑어보았다.
“여러분. 제 말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여러분들께 제안 아닌 부탁을 드립니다. 다들 지금 이 순간, 본인의 소장품에 마력을 넣어 아티팩트로 만들어 주세요.”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대충 어떻게 흘러가는지는 짐작이 갔다.
다만, 아텔라 버밀리온의 외모. 아텔라 버밀리온에게 찾아온 미래의 남자. 그리고 예언의 아이까지.
이해가 가지 않는 정보들에 머릿속이 혼잡했다.
그런데 그때, 언노운, 아니 엘가시아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싫다. 그런 시시한 짓거리에 어울리고 싶지 않다. 무엇보다 귀찮아.”
그리고 엘가시아는 문을 박차고 나섰다.
나는 잠시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텔라는 그런 엘가시아의 모습을 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엘가시아 님은……. 이해해요. 그럴 수 있죠. 다만, 다른 분들만이라도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엘가시아가 나간 자리를 멍하니 보고 있던 모두는 아텔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하나둘씩 아티팩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아티팩트를 만드는 것 따위 관심 없었다.
‘엘가시아, 아니 언노운 님…….’
나는 엘가시아가 나간 문을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이내 엘가시아를 쫓아 주점 밖으로 달려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