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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의 무속성 마법사-148화 (148/175)

148화

밖의 마을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엘가시아를 쫓아 뛰어나간 나는, 이내 쌓인 눈을 밟으며 성큼성큼 걸어 나가는 소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곧 그녀의 옆을 걸으며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엘가시아, 아니 언노운 님…….’

어찌 됐든 간에 엘가시아가 내일 희생한다는 것은 변함없었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 본인들의 행위가 실패할 거라는 말을 듣게 되다니.

지금 이 순간, 내 머릿속에는 아까 전 들어왔던 방대한 정보에 대한 생각보다는, 그저 쓸쓸할 엘가시아의 마음을 헤아리는 생각뿐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하잖아.’

어차피 실패한다 해서 엘가시아의 희생도 의미가 사라지는 것일까.

아니, 그녀의 희생으로 향후 200년간 이 세계에는 평화가 찾아올 것이다.

그것을 실패로 폄하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살짝 멈춰서서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다시 엘가시아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엘가시아는 어깨와 머리 위에 쌓이는 눈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어딘가로 걸어갔다.

새하얀 도복을 입고 있는 엘가시아, 고결한 그녀와 순백의 흰 눈이 참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그녀가 도착한 곳은 마을 아래가 보이는 절벽이었다.

그곳 끄트머리에 걸터앉은 엘가시아는 아직 꺼지지 않은 마을의 조명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부질없다.”

갑자기 엘가시아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 소리는 멀리 떨어져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에게까지 충분히 들려왔다.

‘당신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어.’

나는 그녀에게 그렇게 말해 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때, 뒤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서 뭐 하십니까 엘가시아 님.”

엘가시아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군지 아는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지그시 눈을 감으며 말했다.

“너야말로 여기서 뭐 하는 거냐 한스. 곧 몇 시간 뒤면 최후의 전투다. 냉큼 돌아가서 휴식을 취해라.”

“하하, 잠이 안 오지 말입니다.”

한스는 아까 전 엘가시아와 대화하던 영웅단 소속 병사였다.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엘가시아에게 다가가더니 그의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의 머리 위에도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부질없다니요.”

“다 듣고 있던 거냐. 취미가 고약하군.”

“그렇게 큰 소리로 얘기하셨으니 저 마을 사람들도 다 들었을 겁니다.”

“시답잖은 농담은 집어치워라.”

한스는 갑자기 파하― 심호흡을 뱉더니 그대로 뒤로 대자로 뻗고는, 팔베개를 베고 누웠다.

그의 갈색 머리가 눈으로 젖어 들어갔다.

“저는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수에 찬 한스의 눈빛.

그의 눈동자엔 상관을 대하는 것 그 이상의 감정이 담겨 있었다.

“엘가시아 님의, 당신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고요.”

“…….”

그 말을 들은 엘가시아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나는 그의 말에 흠칫 놀라게 되었다.

그야 그 말은 내가 엘가시아에게 하고 싶던 말이었으니까.

잠시 후, 엘가시아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래. 고맙군.”

여전히 눈은 끊임없이 내렸고, 뒤로 누운 한스의 얼굴에 눈송이가 녹아내렸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눈을 감는 엘가시아.

곧 그녀의 몸에서 남색의 방출계 마나가 뿜어져 나왔다.

“에…….”

갑작스런 그녀의 돌발 행동에 놀란 한스가 두 손으로 땅을 짚고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뭡니까……?”

“받아라.”

이윽고 눈을 뜬 엘가시아가 한스의 손 위에 무언가를 올렸다.

한스는 엉겁결에 그것을 받아들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호두만 한 두 개의 씨앗이었다.

“그것을 네놈에게 맡기지.”

“이게 대체…….”

“그것은 내 아이다.”

“아이라고요?!”

한스는 갑작스러운 말에 두 눈이 튀어나올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모습에 엘가시아가 피식 웃음을 지었다.

“나는 마족과 인간 사이에 태어난 이레귤러이자 ‘고결한 마족’. 따라서 인간처럼 잉태하지 않지. 그것은 이른바 그 대신이다. 그 씨앗은 자란 뒤 내 후손이 될 것이야.”

한스는 잠시 어안이 벙벙한 듯했다.

그러더니 이내 씨익 미소를 짓고 페이스를 되찾았다.

“프러포즈라도 하는 겁니까? 뭐, ‘내 아이를 낳아도.’라도 하는 건가요? 이렇게 일방적인 고백은 조금 곤란한데요.”

“아서라. 어차피 네 녀석이 죽기 전까지 내 아이는 볼 수 없을 테니까. 아마 그 씨앗에 싹이 트려면 적어도 백 년은 넘게 걸릴 게다.”

씨앗이 싹이 트려면 백 년은 걸린다고?

나는 엘가시아의 말을 설마 하는 심정으로 귀 기울여 들었다.

“단지, 네놈이라면 그 씨앗을 죽을 때까지 잘 간직해 줄 거라 생각한다. 그저 그뿐이다.”

“예예. 그러시겠죠. 엘가시아 님의 마음은 잘 알았습니다. 그럼 엘가시아 님이 주신 이 씨앗은 평생토록 가보로 간직해 두겠습니다.”

“그래. 그거면 된 거다.”

둘 사이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둘은 그저 서서히 꺼져 가는 마을의 불빛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눈바람이 휘몰아치는 소리만이 가득한 절벽.

그 정적을 깬 것은 누군가의 울컥하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 소리의 주인은 지금까지 장난기가 가득하던 한스였다.

“엘가시아 님…….”

“칠칠치 않게 우는 것이냐.”

“이대로… 이대로 정말 가시는 겁니까.”

“인간은 누구나 죽는 법이다. 그리고 나는 인간이 아니니 조금 더 오래 살았을 뿐. 그저 그뿐인 게다.”

“다른 방법은… 없는 겁니까.”

“그래.”

그러고는 엘가시아는 조용히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녀가 앉은 자리에는 눈이 가라앉아 자국을 남기고 있었다.

일어난 엘가시아는 한스의 머리 위에 쌓인 눈을 털어 냈다.

“가자. 이제 정말 몇 시간 남지 않았다. 어서 들어가서 자거라.”

“엘가시아 님…….”

엘가시아는 다시 막사로 복귀하려 했다.

그런데 몸을 돌리려던 그녀의 시선이 어딘가로 꽂혀 있었다.

“그 우스꽝스러운 검은 언제까지 들고 다닐 거냐.”

“예… 예에? 이거 말입니까……? 비록 평민의 집안이지만, 저희 아버지가 물려주신 장식용 검입니다. 제게는 일종의 부적 같은 거죠.”

“…그러냐.”

한스는 눈물을 훔치고는 자신의 허리춤에 있던 것을 검집째로 꺼내 들더니 자랑스럽게 내보였다. 그러고는 곧 검집에서 검을 뽑아냈다.

그 검을 보는 나는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야 그 검이 바로 ‘언노운’이었으니까.

“잠시 줘 봐라.”

“예. 얼마든지요.”

날이 다 빠지고 길이가 1m도 채 되지 않는, 검의 기능이라곤 전혀 수행할 수 없는 장식용 검.

엘가시아는 그것을 검집과 함께 들고는 한참을 쓰다듬더니, 갑자기 눈을 감고 마력을 주입하시기 시작했다.

“에, 엘가시아 님? 또 무슨 일인 겁니까.”

이윽고 남색 마나를 모두 주입한 엘가시아는 눈을 떴고, 한스에게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손을 휘저었다.

“괘념치 마라. 그저 마지막 변덕일 뿐이니. 자, 어서 가자.”

그리고 엘가시아는 이내 한스와 함께 눈보라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들이 사라지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며 절벽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렇게 된 거였나.’

또 하나의 의문이 풀렸다.

역시 엘가시아의 아티팩트는 ‘언노운’이 맞았다.

다만, 언노운은 검뿐만 아니라 검집이 함께 있어야 비로소 온전한 아티팩트의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어째서 엘가시아는 죽지 않고 언노운 안으로 들어가게 된 거지?’

아직 의문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커다란 궁금증을 해소한 듯싶었으나 다시금 새로운 의문들이 생긴 것이다.

나는 갑자기 들어온 방대한 정보들을 해석하기 위해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그러면서 터벅터벅 걷고 있던 나는 어느새 다시금 주점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이미 다들 해산했는지 아무도 보이지 않는 주점.

모두가 사라진 빈자리.

나는 그 공허함에 주점을 한 바퀴 빙 돌았다.

그러다 문득 거울을 보게 되었다.

‘엇.’

그런데 거울 속에 있는 것은 내가 아니었다.

그 안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는 주황 머리의 남자.

나는 곧 그가 ‘게슈탈트 만다린’임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예언의 아이님.”

이윽고 거울 속의 게슈탈트가 나에게 말을 걸어 왔다.

그리고 지금까지 실체가 없어 말을 할 수 없던 나는, 이내 입을 열 수 있었다.

“당신은… 게슈탈트 만다린이 맞는 거겠죠.”

“예, 그렇습니다.”

싱긋 웃어 보이는 게슈탈트.

그는 굉장히 미소년이었다.

“저에게 이 꿈을 보여 준 이유가 무엇인가요.”

“당신에게 이날의 모습을 보여 준 이유는, 그저 당신의 이해를 돕고자 한 것입니다. 당신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준비했는지, 마계를 봉인하던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당신에게 200년 후의 미래를 떠맡긴 우리의 일종의 변명 같은 겁니다.”

“변명이라니. 당신들은 변명하지 않아도 됩니다. 애초에 마계 부활의 위협은 200년 후의 일. 당신들에게는 그 어떠한 책임도 없는 거잖아요.”

“물론 그렇게 볼 수도 있겠습니다마는, 어찌 되었든 간에 저희는 ‘실패했다’라는 말을 들었거든요. 그리고 그 말에 어느 정도는 공감하고 있고요.”

200년 후에 벌어질 일을 선조들에게, 그것도 목숨을 걸고 싸웠던 영웅들에게 책임 전가하다니.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영웅들의 입장과 행동도 마찬가지였다.

왜 굳이 200년 후의 일에서까지 책임을 느끼려 하는가.

‘그래서 ‘영웅’이라는 건가.’

나는 조용히 속으로 중얼거릴 뿐이었다.

희생, 책임, 투쟁.

어쨌든 범인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가치였다.

“궁금한 게 있으신가요. 물어보시면 얼마든지 말씀드리죠.”

“일단 첫째로, 언노운, 아니 엘가시아는 어떻게 죽지 않고 에고 소드가 된 것이죠?”

“그녀는 분명 죽었습니다.”

“죽었다고요?”

“다만, 제 정신계 마법으로 죽기 직전에 의식만을 끄집어내어 에고 소드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렇구나. 그녀는 이미 200년 전 그날 희생한 거였구나.

어째서 언노운의 의식이 흐릿해져 갔는지도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야 정신계 마법을 건 당사자도 이미 죽었으니까.

마법의 힘이 200년에 걸쳐 서서히 약해지고 있던 것이다.

“그럼, 아텔라 버밀리온 님의 정체는 도대체 뭔가요?”

“무슨 말씀이시죠?”

“제가 현재 있는 200년 후의 세계에서도 아텔라 버밀리온 님과 똑같이 생기고, 같은 능력을 사용하는 사람이 존재합니다. 게다가 예언의 아이는 또 어떻게 된 얘기입니까?”

“글쎄요. 환생이라도 하신 거 아닐까요. 그 부분은 잘 모르겠네요.”

환생이라.

나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예언의 아이’ 같은 경우는 사실 저희도 자세히는 그 내막을 모릅니다. 누가 그녀에게 찾아와서 미래를 예언했는지. 어째서 당신이 ‘예언의 아이’인지도요. 다만, 확실한 것은 그녀의 말은 틀림없는 진실이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제 정신계 마법으로도 검증했었거든요.”

“그런가요.”

그 남자는 도대체 누구일까.

어째서 그 남자는 ‘예언의 아이’가 200년 후 마계의 부활을 막아 낸다고 예언한 것이고. 어째서 그게 나인 것일까.

여전히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다만, 게슈탈트의 꿈에서 얻은 정보는 사실상 지금껏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의문을 해소시켜 주었다.

“자, 그럼 슬슬 꿈에서 깰 시간입니다.”

“잠시만요. 당신의, 당신의 아티팩트는요?”

내 다급한 말투에 게슈탈트는 빙긋 미소를 보였다.

“이미 당신은 제 아티팩트를 가지고 계십니다. 이 꿈이 바로 제 아티팩트거든요.”

“꿈이 아티팩트라고요……?”

“앞으로 당신이 원하실 때 언제든 꿈속에서 저를 찾아오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저는 이만.”

탁―

거울 속의 게슈탈트는 손가락을 튕겼다.

그리고 동시에,

“일어나셨나요.”

눈을 뜨자 보이는 것은 옆에서 읽고 있던 책을 덮는 메이브 만다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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