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띠링―
[영웅의 아티팩트 ‘게슈탈트의 꿈’을 수집하였습니다.]
〈히든 이벤트 : ‘영웅의 아티팩트’ 진행 상황〉
(버밀리온의 로브, 게슈탈트의 꿈, 골드버그의 회중시계, ???, 세이피어의 부적, ???, 아메드의 반지)
나는 멍하니 허공에 보이는 시스템 창을 응시했다.
“꿈이… 아티팩트라니.”
지금껏 ‘개념’이나 ‘추상적인 어떤 것’이 아티팩트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가졌었다.
그러나 막상 ‘꿈’ 자체가 아티팩트라는 것을 알게 되니 조금 얼떨떨했다.
“효과는… 게슈탈트 만다린과의 소통인가.”
사실 지금껏 얻은 아티팩트와는 성격이 조금 달랐다.
어찌 됐든 다른 아티팩트들이 직접적 전투나 보조에 관련됐던 것이라면, ‘게슈탈트의 꿈’은 영웅에게서 직접적으로 정보를 얻는 것이라 볼 수 있었다.
“꿈은 어떠셨나요.”
여전히 무표정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메이브 만다린.
나는 조심스레 책상 위에서 내려와 그녀를 마주했다.
“나쁘진 않았어. 고마워.”
나쁜 꿈이라기엔 많은 도움이 되었다.
좋은 꿈이라기엔 조금 울적해졌다.
“엘가시아 님…….”
나는 그녀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조심스럽게 언노운을 쓰다듬었다.
이제 남은 영웅의 아티팩트는 단 두 개.
하나는 히로빈 그린월드 본인이 가지고 있을 것이고, 또 하나는 지금 내가 들고 있는 이 언노운의 반쪽이 될 것이다.
이젠 이 지긋지긋한 영웅의 아티팩트 찾기도 곧 끝이 나는 것이다.
“그나저나 히로빈 교장님은 어디 계신 거지.”
호랑이도 제 말하면 나타난다고,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도서관 천장에 달린 스피커에 히로빈 그린월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다들 들리십니까! 비상입니다! 긴급히 공지할 사항이 있으니 모두 강당으로 신속히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다만, 그 내용이 석연치 않았다.
“비상? 긴급히 공지할 사항? 또 뭔 일이 벌어지는 거야.”
아카데미에 복귀하자마자 다급한 목소리의 히로빈 교장이라니.
이런 내 혼잣말에 옆에 있던 메이브가 눈웃음을 지었다.
지금껏 무표정하던 그녀의 처음 보는 미소였다.
“그 어떤 일이 발생하더라도 당신이라면 딱히 걱정 없지 않을까요.”
나는 그녀의 반응에 얼떨떨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씨익 미소를 지었다.
“당연하지.”
* * *
강당에는 전 인원이 모여 있었다.
어쩐 일인지, 항상 아카데미 외부에 출장 교육을 나가던 3학년생들도 있었다.
따라서 좌석이 부족한 나머지 서 있는 인원들도 꽤 많이 보였다.
얼추 모든 학생들이 모인 것을 확인한 히로빈 교장은 이내 비장한 표정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 여러분들. 이미 사정을 들으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곧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전쟁이… 벌어진다니.
나는 히로빈 그린월드의 말을 듣자마자 주위를 살펴 제이드의 행방을 찾았다.
다행히도 제이드는 내 뒤의 뒷자리에 앉아 있었고, 나와 눈이 마주친 그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 현재, 저희가 파악한 내용으로는 마법부 쪽에서 대규모 군대를 움직이고 있다는 모양입니다. 정확한 목적은 파악할 수 없으나 이미 마경과 협회 측은 마법부의 군대와 일부 전투를 벌이고 있다고 합니다.
마법부……?
마법부가 전쟁을 일으킨다고?
이 세계에 있는 세 개의 거대 권력.
협회, 마경, 그리고 마법부.
그중에서도 마법부는 전투 인력이 거의 없는 사무직 인원들로 구성된 조직이었다.
그런데 군대라니.
- 전쟁은 기정사실입니다. 아니, 이미 전시 상황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은 선택하셔야 합니다. 이곳 칼루스 아카데미에 남아 칼루스 아카데미를 지킬지, 아니면 각자 고향으로 돌아갈지 말입니다.
히로빈 그린월드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그러고 보니 항상 입안에 굴리고 있던 사탕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지금의 그의 모습에서 꿈속에서 봤던 200년 전 히로빈 그린월드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전쟁의 아픔에 안타까워하던 히로빈 그린월드.
지금 그의 마음속에선 아마도 그때의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 여러분들. 강요는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아직 성인도 아니고, 아카데미의 학생 신분입니다. 게다가 이곳에서 아카데미를 지키며 싸우는 것이 더 안전한 일일지, 아니면 가족이 있는 집으로 가는 것이 더 안전할지도 장담하지 못하겠습니다. 전적으로 이번 일은 여러분들 개인의 판단에 맡길 뿐입니다.
히로빈 그린월드는 말을 마친 뒤 단상 아래의 학생들의 얼굴을 잠시 훑어보았다.
그의 표정에선 복잡한 심경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런데 왜 마법부 녀석들이 전쟁을 벌이는 거지?’
그것도 갑자기 이 시기에.
결국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결론은 하나였다.
‘블랙잭.’
이번 일에는 녀석들의 개입이 있을 것이 분명했다.
나는 아예 녀석들이 이번 일을 꾸민 것이 기정사실인 것처럼 확정 짓고 생각을 이어 나갔다.
‘그렇다면 녀석들이 전쟁을 일으켜서 얻고자 하는 것이 뭘까.’
지금껏 조용하던 녀석들이 갑자기 ‘이 시기’에 전쟁을 일으킨 것도.
그리고 전쟁을 왜 일으켰는지도 미스테리였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그 전쟁의 여파가 이곳 칼루스 아카데미에도 닥쳐올 것이 분명하다는 점이었다.
- 오늘 하루 종일 강의를 듣느라 다들 바깥 소식을 잘 모르시겠죠. 다들 해산 이후에는 각자 부모님과 친인척들께 연락을 하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지금 바깥은 꽤 심각한 상황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일단 일차적인 집합은 해산되었다.
학생 개개인들이 집으로 복귀할지, 아니면 이곳에 남을지는 오늘까지 정하라고 히로빈 교장은 말했다.
그리고 만약 집으로 복귀하는 것을 선택한다면 교수들로 이루어진 경호대를 붙여, 안전하게 귀가 조치 시키겠다고 약속했다.
그게 아니라면 이곳에 남아 일종의 소년병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고 했다.
아무리 이곳에 교수들이 있다지만, 결국 적이 침입하게 된다면 교수들만으로는 안전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전쟁이라.”
멀리 보자면 낯선 것은 아니었다.
나도 원래 세계에서 이미 군대를 다녀온 예비군이었으니까.
항상 전쟁 발발의 위기에 놓여 있었으니까.
“그래도 진짜 전쟁을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원래 세계에서야 조금 태평한 부분이 있었다.
설마 전쟁이 일어나겠어, 라는 안일한 생각.
그런 전쟁이 지금 이곳에서 현실로 일어나고 있었다.
“전쟁이란 무엇일까.”
작은 의미의 전쟁이란 나의 의지를 실현하려고 적에게 굴복을 강요하는 폭력 행위.
그리고 큰 의미의 전쟁은 결국 피와 희생을 야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사상자가 많이 발생하더라도 이들은 싸울 것이고, 싸워야 한다.
애초에 이 전쟁에서 패배하게 된다면 전쟁보다도 더 끔찍한, 마계의 부활과 함께 마족의 지배로 절망 가득한 세상이 될 것이다.
“마족이 지배하는 세계라.”
마족이 지배하는 세계의 풍경은 이전에 도서관에서 대략적으로 확인한 적이 있었다.
사실 마족이 지배한다고 해서 세계가 멸망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실태는 멸망에 가까웠다.
인류는 마족의 가축, 그 이하의 신세.
인간을 먹는 마족들에게 달마다 어린 소녀들을 바쳐야 했고, 인적 자원 외에도 마족들은 수탈과 착취를 반복했다.
지나가던 인간을 심심풀이로 죽이는 것은 물론이고 그들 앞에서는 항상 미소를 유지하게끔 강요받았다.
보는 앞에서 자식을 죽여도, 그 악마들을 웃으며 찬양해야 하는 것이다.
그게 바로 마족이 지배하는 세계.
“그렇게 되도록 절대 놔둘 수 없지.”
그러기 위해서 내가 존재하는 것.
‘예언의 아이’가 존재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어째서 그 개자식들이 마족의 부활을 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과연 ‘블랙잭’ 녀석들이 같은 인간인지 의심이 들었다.
분명 역사 공부를 하지 않은 녀석들이 분명했다.
나는 강당 구석진 곳에 기대어 발로 흙을 차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내게로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뭐야, 먼저 온 사람이 있었네.”
아텔라 가스트로디아 교수였다.
그러고 보니 이 구석진 골목은 아텔라 교수님이 선호하던 장소였었나.
나는 그녀의 얼굴을 확인하자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그러게. 오랜만이다. 소식은 들었었는데. 네가 블랙잭, 아니 ‘저주받은 학생’을 제압했다면서?”
“벌써 소문이 거기까지 퍼졌어요?”
“그럼. 케이든 교수님이 자랑스럽게 얘기하시더라고.”
뭐야. 자랑스럽게 얘기하셨다고?
왠지 케이든 교수님의 평소 이미지로는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그나저나 이젠 또 전쟁이라니. 이것도 알고 있던 건 아니겠지?”
“저도 이런 경우는 상상도 못 했어요.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고 생각해요. 마법부가 전쟁을 일으킨 배후에 ‘블랙잭’이 있을 게 분명해요.”
“역시, 또 블랙잭인가.”
아텔라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도 그럴 게 그 ‘블랙잭’의 정체가 본인의 학창 시절 동급생들이니 더더욱 미묘한 감정이 들 수밖에.
“그럼, 이제 남은 건 나머지 일곱 녀석을 검거하는 거겠지.”
“예. 그래도 저는 어차피 이곳에서 가만히 기다리면 될 거라 생각해요.”
어차피 녀석들의 목적은 교장님이 갖고 있는 ‘큐브’와 엘가시아의 핏줄인 ‘제이드’일 테니까.
‘잠깐, 그러고 보니 교장님이 정말 ‘큐브’를 갖고 계신 건 맞나……?’
문득 의구심이 들었다.
만약 이번 외출 기간에 히로빈 교장이 큐브를 어딘가 위탁하거나 숨겨 놓은 것이라면.
그리고 그것 때문에 블랙잭 녀석들이 마법부의 힘을 빌려 전쟁을 일으킨 거라면.
묘하게 퍼즐 조각들이 맞춰져 가는 기분이었다.
뭐, 자세한 건 히로빈 교장 본인에게 직접 여쭤보면 될 문제였지만.
학기 초에 히로빈 교장을 봤을 때 히로빈 교장은 ‘제이드’가 엘가시아의 핏줄인 것조차 숨겼었다.
그러나 이제는 진실을 말할 거라 생각한다.
그야, 이미 내 스스로가 진실에 많이 가까워져 있으니까.
“그동안 아티팩트는 많이 모았어?”
“이제 두 개 남았어요. 그 두 개마저도 이미 정체를 파악한 상태고요.”
“그럼 진짜 끝이 보이는 거네.”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이제 슬슬 이 세계의 진실과 마주할 시간인 것 같아요.”
그런데 문득 아텔라 교수님의 얼굴을 보니 궁금한 점이 생겼다.
아무리 봐도 아텔라 교수님은 게슈탈트의 꿈속에서 본 아텔라 버밀리온과 완전 동일한 사람으로 보였다.
‘이걸 말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아텔라 교수님에게 다른 궁금점이 생겼다.
“그나저나 아텔라 교수님.”
“응.”
“마법부는 비전투 기관 아닌가요? 어째서 이번 전쟁을 일으킬 수 있었던 거죠?”
목적은 제쳐 두고서도, 그 방식이 궁금했다.
어떻게 비전투 기관인 마법부가 협회, 마경과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지를.
“이 세계에 권력이 세 개로 나뉜 것은 알고 있지?”
“협회, 마경, 그리고 마법부잖아요.”
“그런데 마법부가 고작 비전투 기관에서 그칠 거면 그 셋을 한데 묶어 삼권이라고 부르는 게 이상하다 안 느꼈어?”
듣고 보니 그랬다.
행정 업무와 사무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이 실질적인 권좌를 비롯한 전력을 다루는 다른 기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것이 이상했다.
“마법부에는 ‘비대칭 전력’이라 일컫는 힘이 존재해.”
“비대칭 전력…이요?”
“그것은 바로…….”
마법 안드로이드.
아텔라 교수는 그렇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