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의 무속성 마법사-152화 (152/175)

152화

“전쟁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냐. 도대체 밖이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 건데?!”

지금껏 시큰둥하게 반응하던 노아의 목소리 톤이 매우 높아졌다.

아무리 저런 한량일지라도 ‘전쟁’의 무게는 외면할 수 없는 것이다.

“현재 마법부가 마법 안드로이드를 사용해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협회와 마경이 연합하여 마법부와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고요.”

“마법 안드로이드라……. 나 때는 전설로만 돌던 말이었는데 그게 진짜 있었나 보군.”

“게다가 중요한 것은…….”

나는 잠시 말을 끊고 노아의 표정을 살폈다.

확실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모습.

게다가 ‘이’ 이야기를 꺼낸다면 그는 더 이상 이곳에 머물지 못할 것이다.

“그 전쟁을 일으킨 주동자가 바로 당신의 7년 전 제자들입니다.”

“뭐라고?!”

노아가 들고 있던 꼬치를 바닥에 던지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는 그런 그를 물끄러미 올려다봤다.

“너… 그게 무슨 소리야…….”

“7년 전 히로빈 그린월드 교장을 피습하고 도주한 당신의 제자들이 전쟁을 일으켰다고 했습니다.”

“걔네가… 왜……?”

“그거야 당신도 알다시피 ‘마계의 부활’ 때문인 거죠.”

“그게 진짜였다고……? 도대체 바깥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던 노아는 다시금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무래도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아 다리에 힘이 풀린 모양이었다.

“그래서 당신께 부탁드리러 왔어요. 당신이 정말로 인류 최강이라면…….”

이 전쟁은 그의 힘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곳에서의 안빈낙도보다는 세상을 위해 힘써 주시지 않겠습니까.”

내 말에 노아는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시선을 회피하지 않고 진지한 눈빛으로 그를 마주했다.

“…그래.”

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다.

“그래야지. 그것이 내 과오고.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을 기다려 왔는지도 모르겠군. 잠시만 기다려라.”

말을 마치자마자 갑자기 허공을 휘휘 젓기 시작한 노아.

그러자 허공에서 손바닥만 한 길이의 작은 칼이 나타나더니.

서걱서걱―

그의 덥수룩한 머리를 깎기 시작했다.

허공을 날아다니는 칼은 강약 조절 없이 순식간에 머리털을 뭉텅뭉텅 잘라 냈다.

나는 그 모습을 조용히 감상했다.

‘어검술…인 건가.’

그저 이발하는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거기에서 보이는 노아의 실력은 대단했다.

머리를 짧게 깎은 노아는 이어서 지저분한 턱수염도 자르기 시작했다.

이윽고 드러난 그의 맨얼굴을 본 나는 짧게 감탄했다.

‘멀쩡하게 생겼… 아니, 엄청 잘생겼잖아?’

제이드가 소년미가 가득한 미남이라면 노아는 날카로운 인상의 미남.

아까 전 까지만 해도 거지꼴을 하고 있던 남자의 얼굴에서, 지금은 남성미가 느껴지고 있었다.

“자, 가자.”

자신의 턱에 묻은 잔털들을 아무렇지 않게 스윽 털어 내는 노아.

“바깥세상은 7년 만이군.”

그의 표정에서는 여러 복잡한 심경이 느껴지고 있었다.

* * *

아직 해가 지지 않았지만 칼루스 아카데미의 거리엔 사람이 없었다.

아마도 다들 아까 강당에서 들은 내용 덕분에 건물 내부에 있는 듯했다.

“정말 오랜만이군.”

“그런데 진짜 7년 동안 단 한 번도 나온 적 없으셨던 건가요.”

“어.”

“대단하시네요.”

노아의 말은 본인이 7년 동안 사람과 대화한 적도 없다는 뜻이었다.

그의 서식지에는 딱히 애완동물을 키운 흔적도 보이지 않았었으니 진짜 완벽한 혼자였을 것이다.

참 다른 의미로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마법 안드로이드라니. 그거 내가 알기로는 죽은 자의 마력으로 움직이는 걸 텐데.”

“예, 맞아요. 아마 제 예상으로는 ‘블랙잭’이 마법부에 침투해서 마법부 인원들을 정신계 마법으로 조종하고 있는 것 같아요.”

“블랙잭?”

“그 ‘저주받은 학생들’이 만든 조직이에요. 뭐 이름만 다를 뿐 목적은 같아요. 어찌 됐건 간에 그 녀석들은 지금 마계의 부활을 도모하고 있어요.”

“마계의 부활이라.”

노아가 어이없다는 듯 혀를 찼다.

‘전쟁’이 일어났다는 말은 쉽게 믿을 수 있어도 ‘마계의 부활’을 도모한다는 사실은 납득이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긴, 자신이 가르쳤던 제자들이 마계를 부활시키려 한다는 터무니없는 상황.

나라도 쉽게 믿기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있으면 전황이 달라질 거예요.”

“그럼, 당연하지. 모르긴 몰라도 한 번에 열 대 정도는 거뜬히 상대할 수 있을 거다.”

“은근히 자신감 넘치시네요. 마법 안드로이드 한 대가 권좌급의 파괴력이라고 들었었는데.”

“글쎄. 소문이 과장됐겠지. 아무리 생명을 매개로 움직이는 금단의 마법일지라도 권좌급 파괴력일 리는 없잖아.”

노아는 뭔가 본인을 직접 띄우는 스타일은 아닌 듯한데 자신감은 넘쳐 보였다.

나는 그 이유가 ‘인류 최강’이라는 칭호가 붙을 정도인 그의 실력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인류 최강’이시면서 왜 권좌가 아니에요?”

“당연히 권좌였었지. 그것도 아카데미 졸업하자마자 최연소로.”

“권좌였었지 라는 말은 지금은 아니라는 얘기네요. 은둔하고 계셔서 자격이 박탈당한 거예요?”

“아니. 권좌 자리는 주고 왔어.”

“주고… 와요? 권좌 자리를 누구한테 넘기고 그럴 수 있는 거예요?”

“아무에게나 그럴 수 있는 건 아니고. 받을 만한 사람한테 넘겼어.”

받을만한 사람이라니.

그러고 보니 나머지 권좌들은 대부분 만나거나 알고 있는데 ‘소환계의 권좌’만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게 누군데요?”

“이자벨.”

“이자벨……?”

어디서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었다.

곰곰이 생각하던 나는 이윽고 그 이름의 출처를 알 수 있었다.

“이자벨이라면 이자벨 골드버그?”

“맞아. 가문을 나와서 골드버그는 없어졌지만.”

가문을 나왔다니.

그러고 보니 골드버그 가에서 캐서린의 아버지도 이자벨을 매우 싫어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던 게 기억났다.

뭔가의 사연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어느새 교장실에 도착했기에 그에 대한 질문은 할 수 없었다.

똑똑―

“들어오게.”

나는 먼저 교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인가?”

“제가 누구를 좀 데려왔습니다.”

“누구…….”

이윽고 내 뒤로 들어오는 노아.

노아의 모습을 확인한 히로빈 교장의 눈동자가 동그래졌다.

“자네……”

“오랜만입니다. 히로빈 교장님. 모습은 여전하시네요.”

“그동안 어디 있었던 건가.”

“뭐, 사정이 있어서 은둔 생활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노아는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태연하게 말했다.

아무래도 히로빈 교장에게는 7년 동안 숲에 처박혀 있었다는 것을 밝히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게다가 그 이유가 7년 전 있었던 ‘저주받은 학생들’ 때문이라는 것은 더더욱.

“아무튼 교장님. 전쟁이 일어났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래. 예언의 아이가 말했던 방법이란 게 바로 자네였군.”

“예언의 아이요?”

처음 듣는 말에 노아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빙긋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자네가 참전한다면 큰 전력이 될 수 있을걸세. 지금 당장 연합 측에 연락하겠네.”

“감사합니다.”

히로빈은 즉시 어딘가로 전화를 한 뒤 노아가 연합에 합류해도 될지의 여부를 물었다.

전화를 받은 상대방의 목소리는 매우 놀란 듯 연신 하이톤이었다.

그만큼 이 세계에서 ‘노아’ 이 두 글자가 가지는 의미가 매우 큰 모양이었다.

이윽고 수화기를 내려놓은 히로빈 그린월드가 입을 열었다.

“됐네. 곧 연합에서 자네를 데리러 올 걸세.”

“혼자 가도 되긴 하는데요.”

“그래도 밖은 전시 상황이지 않나.”

히로빈 교장의 말에 노아는 어깨를 으쓱했다.

사실 노아는 ‘인류 최강’의 호칭을 가지고 있는 전설적인 마법사이자 전 소환계의 권좌.

아무리 전시 상황이라지만 혼자 다니는 그가 위험할 일은 없었기에 그의 반응이 이해가 갔다.

‘저것 또한 자신감이겠지.’

이전의 거지꼴을 하고 있던 모습을 뇌리에서 잊을 수 없는 나는, 조금 괴리감이 느껴졌다.

“이번에는 반드시 실수하지 않겠습니다.”

“그래.”

뭔가 의미심장한 둘의 대화.

나는 방금의 대화가 7년 전 있었던 일에 대한 얘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이로써 전쟁의 방향을 바꿀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우선 참전하게 됐네.’

애초에 노아는 내가 계획했던 인물 중 하나였다.

그리고 노아 다음으로 이 전쟁을 위해 필요한 인물은 역시나…….

‘히터 데이즈나.’

정신계의 권좌였다.

* * *

“후아…….”

금발의 여자가 한숨을 내쉬며 땀을 닦아 냈다.

그리고 그녀의 먼발치에는 치직 거리는 소리를 내는 사람을 닮은 기계와 그 기계를 감싸고 있는 ‘용’이 있었다.

푸른 비늘의 용, 필시 드래곤보다는 동양에서 묘사하는 ‘용’의 모습에 가까웠다.

“이걸로 끝인 건가.”

오늘 마법부 녀석들이 운용한 마법 안드로이드 개수는 총 세 대.

다행히도 협회장, 마경청장, 실베르, 이자벨 등으로 나뉜 각각의 팀들은 성공적으로 마법 안드로이드를 격파할 수 있었다.

다만 고작 세 대임에도 불구하고 피해가 꽤 심각했다.

부상자는 물론이고 사상자도 다수 있었다.

그만큼 마법 안드로이드의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진짜 권좌급일 줄이야……. 게다가 이거, 누가 봐도 정찰용인 거잖아.”

고작 세 대를 보냈다는 것은 그저 상대의 전력을 파악하기 위한 용도로 보였다.

아마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면 열 대, 아니 그 이상이 순식간에 기동 될 것으로 보였다.

“심각하네.”

당장 열 대 정도만 온다고 하더라도 피해가 극심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런데 그 이상이라니.

협회 내부 분석으로는 아마도 마법부의 마법 안드로이드 개수는 100대에 가깝다고 한다.

그렇다면 결국 마법부 측이 진심을 다할 때, 이 세계에 멸망이 도래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휴우……. 어쨌든 오늘은 이걸로 끝이겠지.”

이자벨은 조금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하고 팔을 쭉 뻗어 기지개를 켰다.

그런데 이자벨의 부하가 다급하게 그녀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부회장님!!”

“응? 왜 또 무슨 일이야. 설마 아직 끝난 게 아닌 거야?”

“그게 아니라…….”

“뭔데?”

“노아 님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노…아…?”

노아라는 두 음절.

그 말을 들은 순간 이자벨은 심장이 덜컥 가라앉는 듯했다.

“…너 그게 진짜야?”

“예.”

“왜 갑자기 나타났대? 사라졌던 이유가 뭐래? 지금 어디 있대?!”

갑자기 정신이 든 이자벨은 부하의 양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평소에 조금 딱딱해 보이는 이미지의 이자벨이었지만 지금만큼은 얼굴에 흥분이 가득했다.

“지, 지금 칼루스 아카데미에 있다고 합니다. 게다가 연합팀에 합류한다고 합니다.”

“뭐? 진짜?!”

“예. 지금 당장 인원을 보내서 노아 님을 모셔 오겠습니다.”

“아니. 내가 갈게.”

“예?”

크르르르릉!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자벨 앞으로 거대한 호랑이가 나타나더니 이자벨이 탈 수 있게끔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이자벨은 그 위로 사뿐히 올라타더니.

“그럼, 데리러 간다!!”

“어어……?! 부회장님?!”

곧바로 칼루스 아카데미를 향해 사라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