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둘이 사귀었었다고요?”
“그것도 그냥 사귄 게 아니야. 저 자식 때문에 난 가문도 등지고 나왔었다고.”
“아하. 듣고 보니 맞을 만했네요.”
그러고 보니 노아는 평민 출신.
따라서 골드버그 가문이었던 이자벨의 입장에서는 노아와 교제하기 위해 가문을 등질 정도의 각오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데 차 버리고 7년이나 잠적하다니. 이자벨 님 따귀 한대로 되겠어요? 솔직히 반 죽여도 무죄일 거 같은데.”
“네가 생각해도 그렇지? 그래도 뭐, 7년이란 세월 동안 대부분의 감정이 무뎌졌거든. 덕분에 산 줄 알아.”
“미안하다니까. 그리고 어쨌든 헤어졌던 건 헤어졌던 거잖아.”
“…….”
노아의 말에 순간 침묵이 흘렀다.
연애 경험이 없는 내가 생각해도 방금 멘트는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
뒤늦게 사과하는 노아.
하지만 타이밍이 많이 늦은 것 같았다.
이미 둘 사이에는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딱히 둘 사이의 관계에 끼어들고 싶진 않았지만, 어찌 됐든 같이 있는 입장에서 이 얼어붙은 분위기는 불편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급하게 화제를 전환해서 분위기를 돌려보고자 했다.
“하하하……. 그나저나 노아 교수님 동기들은 하나같이 대단한 사람들이네요. 사실상 케이든 교수님이랑 노아 교수님도 권좌급이니 권좌가 총 네 명 아니에요?”
“그렇지. 우리 학번 대에는 인재가 많았으니까. 오죽하면 우리 세대를 ‘축복받은 세대’라고 불렀었다니까.”
의외로 내 말에 답변한 것은 이자벨이었다.
다만, 아무렇지 않은 말투임에도 불구하고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 있었다.
그래도 나는 더 이상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어쨌든 둘 사이의 관계는 둘이 알아서 풀어야 할 문제일 테니까.
‘그나저나 ‘축복받은 세대’라.’
7년 전의 세대를 ‘저주받은 세대’라고 부르는 것은 어쩌면 이들 세대와 상반되는 느낌의 네이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히터 데이즈나는 어떻게 권좌가 된 거예요? 물론 실력은 있어 보이지만 사람이 영 아니던데. 권좌는 인성은 안 보는 거예요?”
“뭐, 권좌를 뽑는 기준은 마법부 마음이니까.”
“그 녀석은 운이 좋았지. 때마침 정신계 권좌가 돌아가셔서 어린 나이에 권좌를 받을 수 있었거든.”
“그러고 보니 노아 교수님은 졸업하자마자 권좌가 되셨다면서요. 히터 데이즈나보다 더 빨리 권좌가 되신 거 아니에요?”
“나는 실력이 있었으니까. 정정당당하게 권좌 자리를 얻은 거지.”
“저 자식이 권좌의 자격을 얻을 때 당시 권좌가 우리 아빠였거든.”
“그래. 그 영감에게 내가 졸업하자마자 대결을 신청했고, 가볍게 승리해서 권좌가 될 수 있었던 거다.”
“네?”
권좌가 이자벨의 아버지였다니.
이자벨이 골드버그 쌍둥이랑 사촌 관계였으니까, 이자벨의 아버지는 아마도 율리안 골드버그의 형인 거겠지.
그나저나 왠지 사연을 들으면 들을수록 둘과 골드버그 가문의 묘한 관계를 눈치챌 것만 같았다.
“그래서 아빠가 저 자식을 끔찍하게 싫어한 거야. 소환계 영웅의 가문, 골드버드가 소환계의 권좌 자리를 뺏긴 것도 모자라 그걸 차지한 녀석이 듣도 보도 못한 평민이었으니 말이야.”
“뭔 느낌인지 알 거 같아요.”
사실 ‘인류 최강’급의 남자라면 아무리 평민이라도 딸의 교제 상대로 인정해 줄만 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골드버그 가문의 반대가 이해되지 않던 참이었다.
알고 보니 이런 사연이 있던 것이다.
“그래서 가문을 나온 거예요?”
“응. 어쩔 수 없잖아. 저 녀석이랑은 절대 안 된다는데.”
“가문은 잘 나왔지. 거기 있어 봤자 뭐해. 그곳 가문 사람들 하나같이 다 재수 없는데.”
“…….”
노아의 눈치 없는 말에 또다시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나도 더 이상 이 분위기를 타개할 방법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도 머지않아 히터 데이즈나의 숲이 보였다.
매기를 반나절 동안 타고 가서 겨우 도착했던 숲을 고작 몇 시간 만에 도착할 수 있다니.
그만큼 이자벨의 사역마, 주작이 빨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 거의 다 도착한 거 같네요. 히터 데이즈나는 아마 저 숲에 있을 거예요.”
“…그래. 착륙할게.”
이자벨은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말없이 주작에게 명령을 내렸다.
곧 우리를 태운 주작은 서서히 고도를 낮추며 숲에 접근했다.
“저기 보이는 동굴 방향으로 가면 돼요.”
내 말에 이자벨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주작의 방향을 돌렸다.
‘아마 히터 데이즈나는 저곳에 있겠지.’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감지 마법을 사용했다.
「프레시스코(præscísco)!」
우우웅―
순식간에 숲 전역의 마나 정보가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을 옆에서 신기하다는 듯 지켜보던 노아가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너 설마 감지 마법으로 히터의 위치를 찾는 거냐?”
“예.”
“역시 보통내기가 아니군.”
숲은 나름 넓은 공간이었다.
그런 곳에서 고작 감지 마법으로 사람을 찾다니.
아무리 인류 최강일지라도 감탄할 만하겠지.
사실 원래의 감지 마법 효과가 뭔지 잘 모르는 내 입장에서는 크게 와닿지 않지만, 어쨌든 노아의 반응으로 보아 보통의 일은 아닌 것이 확실했다.
“히터는 동굴 안에 있어요.”
“알았어. 동굴 앞으로 내려갈게.”
이윽고 주작은 동굴 앞에 내려앉았고, 타고 있던 모두가 내리자 주작은 갑자기 팟 하는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그럼 오랜만에 녀석을 보러 갈까.”
성큼성큼 동굴 안으로 들어가려는 노아.
나는 그런 그를 황급히 말렸다.
“잠시만요. 동굴은 저 혼자만 들어갈게요.”
“왜?”
“아까 말했다시피 히터가 당신을 많이 싫어해서요.”
“그러고 보니 노아 이 자식이 아카데미 시절에 히터를 꽤나 괴롭히긴 했었지.”
“내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의 노아.
그럼에도 어쩔 수 없었다.
히터가 노아를 싫어하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니까.
“그럼 갔다 올게요.”
나는 그들을 뒤로한 채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감지 마법 덕분에 얼마 지나지 않아 히터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히터!!”
거적때기를 걸치고 동굴 안에 벽을 보며 누워 있는 히터 데이즈나.
그 모습이 조금 처량해 보였다.
“으음……. 뭐지?”
나는 순간 그에게 말을 꺼낼 때 반말을 해야 하나 존댓말을 해야 하나 헷갈렸다.
물론 저번에 만났을 때야 조금 감정적이 되어서 반말을 했었지만.
어쨌든 상대는 연장자였고 정신계의 권좌.
고심 끝에 나는 그에게 존댓말을 사용했다.
“저 왔어요.”
“아아, 네 녀석이 왔군.”
히터는 머리를 긁적이며 멍한 표정으로 일어났다.
그는 딱히 내가 존댓말을 하든 반말을 하든 신경 쓰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본인에게 존중을 보이지 않아도 상관하지 않는 모습은 나름 권좌라는 직위치고는 열린 마인드인 듯했다.
‘그나저나 정말 여기서 계속해서 살고 있던 건가.’
아까 주작을 타고 있을 때 얼핏 봤더니, 역시 히터 데이즈나는 동물을 조종하지 않기로 한 약속을 지키는 듯했다.
결국 이곳에서 홀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모양이었다.
“약속은 지키셨나 보네요.”
“당연하다. 계약은 철저하게 지키는 게 내 신념이니까.”
“그럼 이곳에서 뭐 하고 계셨는데요?”
“그냥 여러 기억들을 곱씹으면서 지내고 있는 거지.”
“…음. 그렇군요.”
조금 히터 데이즈나라는 사람이 불쌍해지기 시작했다.
얼마나 인생의 낙이 없으면 이곳 동굴에 처박혀서 남의 기억이나 돌려 보고 있는 걸까.
이 사람도 나름 정신계의 권좌인데 이러고 있는 걸 보면 조금 동정심이 생기기까지 했다.
아무튼 중요한 건 히터 데이즈나의 히키코모리 생활이 아니었다.
게다가 애초에 히터 데이즈나는 나에게 했던 짓이 있었으니까.
그냥 업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아무튼 당신에게 부탁드리고자 하는 것은……. 혹시 마법 안드로이드에 대해 알고 계신가요?”
“마법 안드로이드? 죽은 자의 마력으로 기동하는 금단의 인형들을 말하는 거잖아. 마법부에 있다고 들었었는데.”
“맞습니다. 혹시 이미 죽은 자의 마력이 깃든 마법 안드로이드를 해제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당신의 정신계 마법으로요.”
“해제한다……?”
내 말에 히터 데이즈나는 턱을 쓰다듬으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곧 고개를 끄덕였다.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할 거 같군. 어쨌든 마법 안드로이드라는 것은 죽은 자의 마력과 죽은 자의 정신이 빙의되어 움직이는 것이니까. 그 반대로 정신을 이탈시키는 것도 가능하겠지. 그런데 그걸 묻는 이유가 뭐냐.”
“그래서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현재 마법부가 그 마법 안드로이드를 기동시켜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따라서 수십 대의 마법 안드로이드를 막기 위해선 당신의 힘이 필요합니…….”
“싫다.”
딱 잘라 거절하는 히터 데이즈나.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저를 도와주신다고 계약하시지 않았습니까……?”
“네 녀석을 도와준다 했지 전쟁에 나선다고는 하지 않았다.”
“남이 아니지 않습니까. 전쟁입니다. 모든 사람이 죽는다고요. 결국 전쟁의 영향은 당신에게까지 미칠 수도 있는 겁니다.”
“그래서? 어쩌라고.”
내 말을 듣는 히터 데이즈나는 귀를 후벼 댔다.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것으로 보였다.
“귀찮아. 난 이 동굴 밖을 나가지 않을 거야.”
“만약 당신이 돕지 않는다면 당신이 원하는 저의 기억도 볼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누가 사망할지 모르는 재앙. 그게 바로 전쟁이지 않습니까.”
“…그건 좀 아쉽군. 그래도 안 돼. 난 이곳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겠다.”
그럼 그렇지.
처음 히터 데이즈나의 모습을 봤을 때 생겼던 동정심이 사라지고 있었다.
역시 이 자식은 이런 꼴을 당해도 싼 녀석이었다.
‘그나저나 어떻게든 설득해야 하는데.’
마법 안드로이드를 해제할 수 있다는 것을 안 이상, 히터 데이즈나는 이 전쟁의 방향을 바꿀 핵심 인물이었다.
어쩌면 그의 개입으로 인해 이 전쟁을 끝낼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일단은 차근차근 설득하기로 했다.
“일단은 계약대로 제 기억을 먼저 보여 드리죠.”
“그래? 나야 좋지.”
나는 그에게 정수리를 보였다.
그러자 히터 데이즈나가 내 머리 위에 손을 올리더니 곧 주황색의 마나를 방출하기 시작했다.
우우웅―
내 기억을 읽고 있는 히터 데이즈나의 입가엔 기분 나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마치 고급 요리를 음미하는 미식가의 모습이었다.
한참 동안 기억을 더듬는 히터 데이즈나.
그런데 갑자기 외마디 비명과 함께 머리 위에 얹은 손을 떼 버렸다.
“너, 너 이 자식……! 그 새끼를 데려온 거야?!”
“아……. 보셨군요.”
이걸 어쩐다.
아마 히터 데이즈나의 경멸하는 반응은, 밖에 있는 노아의 모습을 확인해서 나온 듯했다.
“그, 그 새끼가 내 영역 안으로 들어왔다고……?!”
“예.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전쟁을 막기 위해선 그의 힘이 필요하잖아요.”
“썩 돌아가라! 난 그 녀석 얼굴을 볼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까.”
이럴 줄 알았지.
히터 데이즈나의 반응은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나는 이대로 돌아갈 수 없어 열심히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히터 데이즈나의 반응이 이상했다.
“응……? 설마 이자벨도 온 거야……?”
“예?”
이자벨의 이름을 언급하는 히터 데이즈나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그 모습은 마치 그리운 사람을 본 듯한 얼굴.
그를 멀뚱히 바라보던 나는 이내 그가 그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곧 그것을 이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