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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의 무속성 마법사-155화 (155/175)

155화

“이자벨 님을 동경하셨나 보죠?”

“크흠.”

연신 헛기침을 하는 히터 데이즈나.

당황스러워하는 얼굴을 보아하니 정곡을 제대로 찌른듯싶었다.

자세한 둘의 관계는 모르겠지만, 결국 이 점을 잘만 이용한다면 녀석을 데리고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자벨 님이 보고 싶지 않으신가요?”

“흐, 흐으음. 딱히 상관없다!”

“제 기억을 읽으셨다면 둘이 깨진 것도 보셨을 텐데요. 만약 당신이 연합을 돕게 된다면, 이자벨 님과 가까워질 기회가 생길지도 모르는 겁니다.”

“…….”

“게다가 이제 슬슬 혼인 적령기잖아요. 더더욱 찬스는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요.”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히터 데이즈나의 표정을 슬쩍 보니 이미 내 말에 반쯤 넘어온 듯했다.

한참 동안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하던 히터 데이즈나.

결국 그는 사랑을 선택했다.

“그, 그럼 도와줄까……?”

“좋습니다.”

이로써 이 전쟁의 핵심 카드.

히터 데이즈나가 참전하게 되었다.

‘휴우. 다행이네.’

이걸로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적어도 이 두 명이라면 전황을 바꾸기에 충분할 것이다.

히터와 함께 밖으로 나가자 팔짱을 낀 이자벨과 그에게 뭐라 뭐라 말하고 있는 노아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까보다 한결 괜찮아진 둘의 분위기.

언뜻 보기에도 쌓여 있던 오해를 어느 정도 해소한 듯싶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그것은 단 한 사람에게만큼은 나쁜 소식이 되겠지만.

“어라, 안녕 히터.”

“어, 으응…….”

노아의 인사에 쭈뼛대며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는 히터 데이즈나.

처음엔 그 모습이 노아에게 겁먹어서 그런가 싶었다.

그러나 히터의 쭈뼛거리는 태도는 노아가 아닌 옆에 있던 이자벨 때문이었다.

“오랜만이다, 히터. 도와줘서 고마워.”

이자벨이 악수를 청하자 히터는 덜덜 떠는 손으로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더니 황급히 떼어 냈다.

나는 그 모습에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려 부단히 애를 썼다.

‘방구석 히키코모리에 모태 솔로라니.’

시너지를 발휘하는 조합이라 볼 수 있었다.

권좌의 자리를 차지하면 어쨌든 하나의 분야, 하나의 계열 마법에서 최고라고 볼 수 있는데 저런 하찮은 모습이라니.

‘오히려 다행이려나.’

한편으로는 저런 인간적인 모습이 있기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저 사이코가 인간의 감정조차 저버렸다면 자신의 마법을 이용해서 어떤 짓을 벌였을지 모르는 일이니까.

오히려 한때 동물의 정신을 조종해서 소꿉놀이를 하던 게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 히터. 내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어쨌든, 지난 시간 동안 나에게 유감이 있다면 진심으로 사과한다.”

“으응.”

노아의 말은 진심인 듯했지만, 뭔가 말투에서 비아냥거림이 느껴졌다.

그러나 히터 데이즈나는 노아의 사과는 신경도 안 쓰는듯했다.

이미 그의 정신은 이자벨에게 꽂혀 있었다.

‘노아랑은 절대로 상종도 하지 않겠다더니. 결국 다 의미 없는 소리였네.’

계속해서 이자벨을 힐끔거리는 히터.

그 모습을 보니 적어도 셋의 불화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이제 어떡할 거니?”

실실거리며 기분 나쁜 미소를 짓고 있는 히터를 뒤로한 채, 이자벨이 넌지시 물어봤다.

나는 그녀에게 씨익 미소를 보였다.

“그럼, 전쟁은 여러분에게 맡길게요. 저는 저만의 일을 할 테니까.”

나에게 주어진 임무.

그것은 어쩌면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전쟁보다도 더 중요한 임무였다.

물론 지금 당장 사람이 죽어 나가는 전쟁도 끔찍하다.

그러나 이 세계가 아예 마족의 손에 넘어가는 것은 더욱더 끔찍한 일이니까.

내 대답에 이자벨은 어이없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아니 네가 돌아가서 숙제를 하든, 공부를 하든 알 바 아니거든. 그것보다 다시 데려다주면 돼?”

“아니요. 혼자 가겠습니다.”

“미쳤어? 지금 상황이 애들 장난인 줄 알아?”

“애들 장난은 아니죠.”

나는 싱긋 웃어 보인 뒤에 골드버그의 회중시계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그리고 내 눈앞에는 매기와 함께 파르, 푸르가 소환되었다.

“그렇지만 저는 더 이상 ‘애’가 아니거든요.”

이미 영웅의 아티팩트도 일곱 개 중 여섯 개를 모았다.

게다가 블랙잭의 일원 중 한 명도 이겼었다.

고작 ‘애’, 고작 ‘아카데미의 학생’이라고 불리기에는 이미 많이 성장한 것이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말과 동시에 구름 폼으로 변신한 매기 위에 올라탔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매기와 함께 하늘 높이 상승했다.

점점 멀어져 가는 모두의 모습.

그리고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올려다보는 이자벨의 얼굴.

그런 그들을 향해 나는 손을 흔들어 보였다.

‘정말 잘 부탁드립니다.’

이 전쟁이 종식되기 위해선 그들이 필요하다.

권좌들에게는 권좌의 역할이.

‘예언의 아이’에게는 예언의 아이의 역할이 있는 법이니까.

* * *

다행히도 이동하는데 마법부 인원이나 마법 안드로이드를 마주치진 않았다.

물론 맞닥뜨렸으면 위험한 상황은 맞았으나.

애초에 한 대 정도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여러 대면 버밀리온의 로브로 도주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어쨌든 전시 상황에 홀로 행동하는 것은 조금 안일할 수도 있으나, 더 이상 연합 측 인원들의 시간을 뺏고 싶지도 않은 것이다.

‘이제야 도착했나.’

아카데미에 도착한 것은 반나절 뒤, 이른 아침이었다.

그런데 아카데미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꽤 많은 인파들이 아카데미의 입구에 모여서 북적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집으로 갈 인원들을 데려다준다 했었지.’

얼핏 봐도 꽤 많은 인원이 짐을 들고 있었다.

대략적으로 아카데미 인원의 반 이상은 넘는 듯싶었다.

‘집으로 간다 해도 안전이 보장되는 것은 아닐 텐데. 뭐 어쨌든 그건 개인의 선택이니까.’

언뜻 들은 말로는 남부에 쉘터 같은 곳이 있어서 그곳에 숨을 수 있다고 했었다.

아마도 복귀하는 인원들 중 상당수는 가족과 함께 쉘터로 이동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리고 남은 인원들은 칼루스 아카데미에 남아 아카데미를 지키게 되는 것이다.

‘분명 아카데미에도 녀석들이 쳐들어오겠지.’

애초에 녀석들의 목적이 ‘마계의 부활’인 이상 제이드를 노리고 제이드가 있는 아카데미를 습격할 것은 뻔했다.

그 과정에서 꽤 많은 마법 안드로이드들이 투입될 것이고, 아마 이 중에서도 사상자가 발생할 것이다.

물론 이곳에 남은 이들은 ‘제이드’의 존재, 그와 블랙잭 간의 관계를 모르지만.

‘그래도 마법 안드로이드가 아카데미를 습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쯤은 생각하고 있겠지.’

이들은 각오한 것이다.

설령 죽는 한이 있어도 이곳에 남아 칼루스 아카데미를 지켜 내겠다는 것을.

‘아직 성인도 되지 않은 미성년자들인데 말이지.’

고작 미성년자들이 전쟁을 마주하고 있다니.

어찌 보면 슬픈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그들이 대견스러웠고 같은 아카데미 학생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나도 최선을 다해야겠네.’

미적지근하게 행동했다가는 칼루스 아카데미 인원들의 목숨이 위험하다.

앞으로는 조금 무리하는 한이 있더라도 감지 마법을 최대한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기, 슬슬 내려 줘.”

- 끼룩!

나는 일부러 입구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매기를 착륙시켰다.

사람들 다 모여 있는 곳에 내리기에는 살짝 부담스럽다는 생각이었다.

지면에 도착한 나는 매기를 소환 해제 시키고 천천히 아카데미의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곧 입구의 인파 중에서 떠나는 학생들을 배웅하고 있는 골드버그 쌍둥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뭐야, 너넨 남는 거야?”

의외였다.

사실 골드버그 쌍둥이 입장에서는 아카데미에 남을 이유가 없었다.

골드버그 가문은 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가문.

따라서 골드버그 가문 저택의 경비가 이곳 아카데미보다 훨씬 좋을 것이다.

어쩌면 이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내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캐서린이 아닌 제페토였다.

“당연하다! 고작 기계 따위에 겁먹어서 내뺄 수는 없지.”

그런 건가.

참으로 제페토다운 마인드였다.

‘그래도 고작 자존심으로 남기에는 전쟁의 무게가 그리 가볍지는 않은데.’

다소 걱정은 됐지만, 어쨌든 이것도 나름 전쟁을 대하는 생각들 중 하나일 테니까.

나는 제페토는 내버려 둔 채 캐서린을 바라보았다.

“너는? 왜 여기 남은 거야?”

내 질문에 캐서린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당신이 남았으니까요.”

나는 그녀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라도 무슨 일 생기면 내가 지켜 줄게.”

“그래요. 당신이라면 아무래도 믿을 만하겠죠.”

“흥! 어차피 내가 있으니 마법 안드로이드 수십 대가 온들 아무런 걱정 없다!”

“그건 아무리 그래도 좀 오버하는 것 같은데. 마법 안드로이드 한 대 정도면 모를까. 과장도 적당히 해야지. 근데 그러고 보니 둘 다 부모님은? 뭐라 안 하셔?”

애초에 둘의 잔류를 허락할 사람들이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 예상은 맞았다.

“뭐, 어쩔 수 없죠. 두 분 다 반대하셨긴 했는데. 오라버니가 워낙 강경하게 나와서 덕분에 잔류할 수 있었네요.”

“아무리 아버지가 반대한다 할지라도 겁먹고 후퇴하는 모양새는 참을 수 없지. 훈계는 나중에 전쟁이 끝나고 받기로 했다.”

“…그래. 잘했네.”

살짝 그 이유가 어이없긴 했지만, 어쨌든 남들처럼 도망치기보다는 남아서 싸우기로 결심한 것이니까. 지탄받을 이유는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자 루비 버밀리온과 달시도 있었다.

그들도 마찬가지로 잔류하는 듯싶었다.

“너네도 잔류하는 거야?”

“응.”

“안녕!”

달시야 남을 걸 예상했지만 루비 버밀리온은 의외였다.

애초에 아버지가 협회장인 이상, 남지는 않아도 적어도 연합 쪽에 합류할 줄 알았다.

내가 그 이유를 물어보자 루비는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아버지는 바쁘시잖아. 게다가 내가 연합에 합류한다 하더라도 크게 도움이 될만한 실력은 안 되고. 그냥 나는 남아서 아카데미를 지키기로 했어. 아버지는 아버지의 책임을 다하고. 나는 나대로 내 의무를 다해야지.”

루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어디서 많이 들은 말 같은데.’

루비가 하는 말은 내가 이자벨에게 했던 말과 비슷했다.

그 사실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왜 웃어?”

고개를 갸웃하는 달시.

나는 그런 그녀의 등을 두드렸다.

“아냐. 아무것도. 아무튼 다들 잘 부탁해.”

결국 나와 친했던 아우레인의 사람들 대부분이 이곳에 남았다.

이곳을 꼭 지켜야만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생긴 것이다.

‘제이드는 어디 있지.’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곧 멀지 않은 곳에서 샬롯과 함께 서 있는 제이드가 보였다.

‘역시 샬롯도 남았나 보네.’

마지막으로 샬롯의 모습까지 확인한 나는 입술을 깨물며 각오를 다졌다.

‘분명 녀석들은 이곳에 오겠지.’

제이드가 있는 한 녀석들은 아카데미를 노릴 것이 확실했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

자칫 잘못하면 이들이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도, 다들 강하니까.’

남은 사람들은 다른 학생들보다도 월등히 강했다.

하나같이 영웅의 가문들.

게다가 이들뿐만 아니라 다른 교수님들도 계시니까 아카데미는 쉽게 함락되지 않을 것이다.

‘부디 아무 일 없기를.’

나는 각오를 다지며, 또 한편으로는 전쟁이 무사히 종식되기를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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