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의 무속성 마법사-156화 (156/175)

156화

집으로 돌아가는 모든 학생들의 배웅이 끝난 뒤.

남은 인원들은 각자 담당 기숙사 사감의 집합이 있었다.

당연하게도 아우레인 1학년생들을 강의실로 불러 모은 건 케이든 교수님이었다.

“이 정도가 남은 건가.”

케이든 교수는 스윽 강의실을 둘러보았다.

강의실 안에 있는 학생들은 대략 열 명이 조금 넘는 정도.

원래 인원수의 상당 인원이 빠져나간 것이다.

특이한 점은 남은 인원들 대부분이 하나같이 영웅의 가문 자제들이라는 것이었다.

‘어라, 쟤도 남았네.’

그중에는 메이브 만다린도 있었다.

평상시에는 학생들 사이에 숨어 있어 잘 보이지 않던 녀석.

지금의 텅 빈 강의실에는 그녀의 주황 머리가 눈에 잘 띄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메이브는 살며시 묵례를 했다.

“앞으로 상황이 나아질 때까지는 대부분 함께 움직일 거다. 그리고 수시로 인원수 파악을 할 예정이다. 이의 없겠지.”

당연한 말이었다.

그러나 그 당연한 말이 전시 상황을 더욱 실감 나게 해 주었다.

“그러나 강의는 계속될 예정이다.”

강의를 계속한다고?

나는 케이든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나 케이든의 말은 농담이 아닌 모양이었다.

“강의라기보단 훈련이라는 말이 적절한 거 같군. 너희는 이미 전쟁에 투입된 거다. 더 이상 학생이 아닌, 소년병에 가깝겠지. 앞으로 닥쳐올 녀석들에 대비해서 너희들은 하루하루 내 지휘 아래 전투 훈련을 할 것이다. 불만은 없겠지.”

케이든 교수의 말에 다들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차가운 말투가 현재 닥쳐온 상황의 무게를 더욱더 와닿게 해 주는 듯했다.

“그럼, 훈련 장소로 이동하지. 다들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평소의 설렁설렁한 강의 시간을 생각하면 오산일 테니까.”

케이든 교수의 말에 불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 *

훈련은 각자 파트너와 대련을 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내 파트너는 메이브 만다린.

어차피 나야 이미 실전 경험이 충분했고 메이브 만다린은 비전투 전력이었기에, 사실상 우리 둘에게 전투 훈련은 그다지 의미가 없었다.

따라서 우리 둘은 설렁설렁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훈련을 관전했다.

“그나저나 너는 고유 마법이 뭐야?”

“비밀입니다.”

“굳이 나한테까지 숨길 이유가 있어……?”

“그것도 비밀입니다.”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메이브.

그녀의 대답에 조금 얼떨떨해진 나는, 이내 관심을 끄고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려 다른 학생들의 훈련을 구경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났을까.

갑자기 메이브 만다린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히로빈 교장님이 당신에게 할 말이 있는 거 같네요.”

“어? 나를 찾는다고?”

이곳은 훈련용 던전 안.

그런데 뜬금없이 히로빈 교장님 얘기라니.

그녀의 말에 나는 조금 어리둥절해졌다.

그런데 그때,

“일어나라. 교장님이 찾으신다.”

케이든 교수가 나를 불렀다.

게다가 그 내용은 메이브가 말한 대로.

‘뭐지? 어쩌면 고유 마법과 관련 있는 건가.’

생각을 읽는다던가.

텔레파시라던가.

여러 가지 가능성은 있었다.

어쩌면 미래 예지일 가능성도 있었다.

“예예, 갑니다.”

어찌 됐든 메이브의 고유 마법은 궁금하긴 했으나 딱히 중요한 부분은 아니었으니까.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훈련용 던전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곧바로 교장실로 향했다.

교장실 문을 두드리자 히로빈 교장이 기다렸다는 듯 나를 반겼다.

“들어와.”

커피를 홀짝이고 있는 히로빈 그린월드.

여전히 그의 책상에는 업무 보고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무슨 일인가요?”

“별건 아니고, 자네에게 말해 줄 게 있어서.”

“뭔데요?”

“갑자기 생각났는데, 그 내가 말했던 남자 있잖아. 나에게 엘가시아 님의 자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 준 남자.”

“한스 말하는 거죠.”

“응. 그래 한스.”

히로빈은 그제야 이름이 떠올랐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그의 기억이 가물가물한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년을 넘게 살아왔다면 온전히 정신을 유지하는 것만 해도 기적일 것이다.

“그 한스라는 남자의 후손이 이곳에 있네.”

“예? 설마… 한스의 후손이 칼루스 아카데미의 학생이라는 소리신가요?”

“그래. 그것을 자네한테 알려 주려고 했네.”

그리고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인물이 하나 있었다.

게슈탈트의 꿈속에서 봤던 한스의 외형과 닮은 인물.

“이름이 뭐였더라……. 아네락샤 기숙사였는데…….”

“유진. 유진 아닌가요?”

“오 그래 맞아. 유진이었어. 자네 이미 알고 있었나?”

왠지 게슈탈트의 꿈속에서 한스를 봤을 때부터 누군가와 닮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이 세계 사람들과 이질적인 그의 동양적인 외모와 갈색 머리 등이 유진과 상당 부분이 닮은 것이다.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래. 또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말해 주게.”

나는 히로빈 교장에게 꾸벅 인사를 한 뒤 교장실을 나왔다.

“한스의 후손이 이곳에 있었다니.”

한스도 유진도 성이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평민이라는 것.

평민 출신들은 보통 마법을 사용할 수 없지만, 이렇게 드물게도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그게 바로 한스의 후손 유진인 것이다.

어쩌면 그 후손은 한스가 가지고 있던 언노운과 언노운의 검집의 행방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나는 곧바로 아네락샤의 훈련이 이루어지고 있는 훈련용 던전으로 향했다.

* * *

유진이 한스의 후손이라는 것을 들었을 때만 해도 빨리 유진을 찾아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깜빡 잊고 있던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아네락샤의 담당 교수가 바로 실라이 샌드윅스 교감이라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시죠? 현재 모든 학생들은 각 기숙사 지도 교수 인솔하에 훈련을 하고 있을 텐데요.”

여전히 기분 나쁜 얼굴과 표정, 말투로 나를 대하는 실라이 샌드윅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만큼은 실라이 샌드윅스에게 시간을 뺏기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히로빈 교장님을 팔기로 했다.

“히로빈 교장님이 아네락샤 기숙사의 학생 한 명을 호출해서요.”

물론 반은 맞는 말이었다.

어찌 됐든 나에게 한스의 후손을 알려 주었던 것은 히로빈 교장이었으니까.

그리고 이 칼루스 아카데미에서 교장의 명령을 듣지 않을 사람은 내가 알기론 없다.

“흠흠. 그래요? 데려가세요.”

역시나 딱히 태클 걸지 않고 순순히 허락하는 실라이 샌드윅스.

아무리 그녀가 시비를 걸고 싶어도 히로빈 교장의 직함 앞에서는 별수 없는 것이다.

조금 기다리자 곧 유진이 내게로 다가왔다.

나는 그녀에게 조용한 곳으로 가기를 권했다.

“어……. 히로빈 교장님이 저를 찾는다고…….”

“맞습니다. 그런데 본인이 직접 찾으시는 게 아니라 저와 얘기를 나누라고 하셨거든요.”

“예? 그게 무슨 말이죠……?”

유진은 어리둥절해하면서도 나를 곧잘 따라왔다.

그렇게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으로 유진을 데리고 온 나는 이내 본론을 꺼냈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볼게요. 혹시 ‘한스’라고 아시나요?”

“한스…라면은. 예, 알아요. 저희 조상님이에요.”

다행히도 그녀는 한스를 알고 있었다.

200년 전 사람이니 벌써 먼 조상인 건가.

그래도 ‘한스’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은 좋은 소식이었다.

어찌 됐든 나는 희망을 품고서 계속해서 질문을 이어 나갔다.

“혹시 가문에 대대로 내려오는 물건 같은 게 없을까요. 조상님께서 남기신 가보 같은 거요.”

게슈탈트의 꿈에서 봤을 때 ‘언노운’은 애초에 한스가 부적처럼 가지고 다니던 장식용 검이었다. 게다가 그 장식용 검을 아버지께 선물 받았다고 했었고.

그렇다면 대대로 가보로써 전해져 왔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말을 하면서 생각해 본 결과 그 생각은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애초에 언노운은 지금 나한테 있잖아? 게다가 이거 그저 골동품점에서 나뒹굴고 있던 거였고…….’

애초에 대대로 귀중하게 생각하던 물건이라면 언노운이 잔뜩 먼지 쌓인 채로 골동품점에 있었을 리가 없다.

내 생각이 맞았다는 듯이 유진은 고개를 저었다.

“딱히 물려받은 건 없는 것 같아요. 뭔가 찾으시는 물건이라도 있으신가요?”

“네. 그렇지만 역시 모르시는 거 같네요…….”

유진마저 ‘엘가시아의 아티팩트’의 행방을 모른다면 답은 없었다.

이젠 정말 찾을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유진이 뭔가 떠오른 게 있다는 듯이 손뼉을 쳤다.

“아! 그러고 보니 저희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는 전승 같은 건 있었어요. 아마 제 아버지 대에서 해결된 문제라 저는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기억날 것도 같아요.”

“전승이요? 뭔데요?!”

“대대로 집안에 내려오는 조상님의 유언 중에 ‘검’에 관련된 전승이 있었거든요.”

유진의 입에서 나온 ‘검’이라는 단어.

듣자마자 그것이 언노운에 관련된 내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음……. 전승에서는 그 검을 ‘그녀’라고 칭했어요.”

유진은 서서히 전승 속 언노운에 대한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검과 검집으로 나뉘는데 검 쪽은 ‘엘가시아의 자식’이 깨어나면 전해 주라 했어요. 그리고 제 아버지께서 그 검을 ‘엘가시아의 자식’에게 넘겨준 것 같고요.”

“엘가시아의 자식에게 넘겨줬다고요?”

“애초에 이상하죠?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 엘가시아 가문의 자식을 찾으라니. 게다가 아버지는 그 엘가시아의 자식이 누군지 알고 있던 것 같고요.”

나는 그 ‘엘가시아의 자식’이 칭하는 이가 누군지 알 것만 같았다.

‘닉스…겠지 분명.’

유진의 아버지는 닉스가 엘가시아의 자식인 것을 알고 있었고, 그에게 ‘언노운’을 넘겨준 모양이었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닉스는 언노운을 방치하다가 골동품점에 팔아넘긴 듯했고.

‘잠깐. 그렇다는 것은 이미 언노운, 아니 엘가시아 님과 닉스가 조우했다는 소리잖아?’

그렇다면 엘가시아가 모든 것을 닉스한테 말해 줬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리고 그 닉스라는 사람은 엘가시아한테 들은 말을 토대로 ‘마계의 봉인’을 해제하는 법을 알아낸 거고.

아직까지 그 이유 자체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정황상의 증거로는 충분했다.

“그렇다면 검집 쪽은요?”

“검집은 ‘그녀’의 원래 가문 쪽에 선물했다고 전해졌어요.”

“원래 가문이요?”

곰곰이 생각해 본 나는 곧 그 말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애초에 엘가시아는 마족과 인간의 혼혈이었지.’

그렇다면 그 ‘원래 가문’의 의미는 바로 엘가시아를 낳은 모친, 혹은 부친 쪽의 가문을 의미했다.

다만, 내가 알 방법은 없었다.

“혹시 그 가문의 이름을 알 수 있을까요?”

“음……. 전승에서는 그 가문의 이름이 ‘그녀’의 이름과 연관되어 있다고 했어요.”

“이름과 관련 있다고요……?”

“저도 자세한 것은 모르겠어요. 다만 ‘그녀’와 가문의 이름이 ‘마법사’와 연관이 있다는 것밖에는…….”

유진은 도움이 못 돼서 미안한지, 연신 내 눈치를 살폈다.

다만 내 머릿속은 다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법…사라.’

이제 그 ‘마법사’와 ‘엘가시아’의 연관성만 찾으면 드디어 이 ‘영웅의 아티팩트’ 찾기의 여정을 끝마칠 수 있다.

그러한 생각에 나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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