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어느덧 취침 시간.
불침번을 서는 인원을 제외한 모든 인원들은 강의실에 모여 잠이 들었다.
아무래도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각자의 방에서 자는 것보다는 모여 자는 게 좋겠다는 히로빈 교장님의 의견을 반영한 것이다.
강의실 안에는 몇몇이 코를 고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나 나는 잠이 오지 않아 팔베개를 한 채 천장을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마법사라.’
오후에 있었던 유진과의 대화.
그녀는 언노운의 검집이 엘가시아의 원래 가문 쪽에 있다고 했었다.
그리고 한스가 남겨 둔 힌트는 바로 ‘마법사’란 단어.
‘도무지 모르겠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알 수 없었다.
애초에 이 세계는 마법의 세계.
마법사는 차고 넘친다.
고작 ‘마법사’란 힌트 하나만으로 특정 마법사 가문을 찾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다.
‘어쩌면 마법사란 이름 자체에 중요 포인트가 있는 걸까.’
그러나 도저히 ‘엘가시아’라는 이름과 ‘마법사’의 연관성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도 나는 방법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역시, 게슈탈트 님에게 물어보는 수밖에 없겠네.’
게슈탈트의 아티팩트는 다름 아닌 ‘꿈’.
잠이 든다면 꿈속에서 게슈탈트를 만나 대화도 나누고 조언도 여쭤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잠이 쉽게 오지 않았다.
한참을 고민하며 뒤척이다가 내가 잠에 빠진 것은 그로부터 몇 시간 후였다.
* * *
“흐아암.”
나는 하품과 동시에 기지개를 켜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주위를 둘러보자 원래 있던 강의실은 온데간데없었다.
“이곳은… 도서관?”
주변에 보이는 책장들로 보아 도서관이 분명했다.
다만 평범한 도서관이 아니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책들과 하얀빛을 뿜어내는 바닥과 천장.
“꿈속…인 건가…….”
나는 곧바로 이곳이 현실 세계가 아님을 자각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곧 잠들기 전 기억을 떠올렸고,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을 떠올릴 수 있었다.
“…게슈탈트 님. 거기 계시겠죠.”
“예. 저를 찾으셨습니까 예언의 아이님.”
게슈탈트 만다린은 책장들 사이에서 스으윽 나와 모습을 드러냈다.
저번에 봤을 때는 그저 거울 속에 있는 얼굴뿐이었다.
전신으로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그는 훤칠한 키를 가진 미남이었다.
“물어볼 게 있어서 찾아뵈었습니다.”
“얼마든지요. 제가 아는 것은 상세하게 답변드리겠습니다.”
“혹시 엘가시아 님의 모친 혹은 부친의 정보를 아시나요?”
“모친 혹은 부친이라면…… 마족이 아닌 인간 쪽을 얘기하는 것이겠죠? 글쎄요. 엘가시아 님은 저희에게 그런 얘기를 해 준 적이 없습니다.”
그런가.
이전에 게슈탈트의 꿈에서 봤을 때도 엘가시아는 다른 영웅들과 어울리는 거 같지 않아 보였다.
오히려 엘가시아가 함께했던 사람은 영웅단 소속의 병사, 한스가 유일했다.
역시나 그녀에 관한 정보는 ‘한스’만이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엘가시아 님의 원래 가문이 뭔지를 찾고 있었거든요.”
“으음. ‘마법사’가 힌트인 건가요.”
“예?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설마 제 생각을 읽고 계시는 건가요?”
“그렇다기보다는 애초에 저는 예언의 아이님의 기억을 공유받고 있습니다.”
“그런가요…….”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저는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닌, 고작 게슈탈트의 사념일 뿐이니까요. 게다가 제가 대화할 수 있는 상대는 오직 예언의 아이님뿐이고요.”
“네에.”
그래도 조금 꺼림직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나와만 대화할 수 있는 유령이라 할지라도 내 은밀한 기억까지 공유하고 싶지는 않은 법이니까.
아무튼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혹시 마법사가 의미하는 바를 알 수 있을까요. 도대체 ‘엘가시아’라는 이름과 ‘마법사’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는지 알 수가 없네요.”
“잠시만요. 알 것도 같은데요.”
게슈탈트는 빙긋 웃더니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허공에 날아다니던 책 중 하나가 그의 손에 안착했다.
책의 제목은 ‘단어와 유래.’
평범한 백과사전인 것으로 보였다.
“마법사를 의미하는 단어는 여러 개가 있죠.”
게슈탈트는 페이지를 한장 한장 넘겨 가며 말을 이었다.
“매지션, 위치, 위자드, 메이지, 소서러, 워록 등등. 저희 같은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위자드라고 부르고 있지요.”
계속해서 페이지를 넘기던 게슈탈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손을 멈췄다.
“찾은 것 같네요.”
“찾았다고요?”
“예. 저희가 찾는 마법사를 의미하는 단어. 그것은 바로 ‘씨어지스트’입니다.”
“씨어지스트…라고요?”
“처음 듣는 말이시죠? 조금은 생소한 단어에요. 지금은 안 쓰이지만 고대에 마법사를 일컫는 말이었죠. 한번 직접 보시겠어요? 아무래도 답은 이곳에 있는 듯하네요.”
“예에.”
나는 게슈탈트가 넘겨주는 백과사전을 받아 들었다.
그러고는 펼쳐진 페이지 중에서 ‘씨어지스트’에 관한 내용을 찾았다.
‘씨어지스트(Theurgist).’
씨어지(Theurgy)는 고대의 언어 테오(Theo)와 엘가시아(ergasia)에서 유래된 단어로, 신 또는 신성한 힘을 빌려 와서 사용하는 마법을 의미하며, 씨어지스트는 그것을 사용하는 마법사를 말한다.
“테오… 엘가시아……?”
여러 번 곱씹어 보며 내용을 확인한 나는 이내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깨달을 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내가 아는, 내 주변에 있던 인물 중 한 명의 가문이었다.
“테오니르. 이올렛 테오니르.”
테오니르 가문의 사람이라면 내가 이 세계에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만난 사람.
바로 칼루스 아카데미 2학년생 이올렛 테오니르였다.
“그러고 보니 방출계 마법사였지.”
그녀는 방출계 의료 마법사.
게다가 학년 수석이어서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랑켄 슈타이너를 대신해 아카데미의 보건 담당을 맡고 있기도 했었다.
그런 그녀가 바로 엘가시아 님의 먼 친척이라니.
“애초에 그리 멀리 있던 것도 아니잖아.”
지금껏 너무 어렵게 생각해서 뺑뺑 돈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살짝 허탈해하는 내 모습을 보며 게슈탈트가 빙긋 미소를 지었다.
“원하시던 건 찾으셨나 보네요.”
“네……. 감사합니다. 게슈탈트 님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전혀 상상도 못했을 거예요.”
“아닙니다. 결국 저의 아티팩트 ‘게슈탈트의 꿈’을 찾아내신 것도 예언의 아이님이 해내신 거잖아요.”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정말 ‘영웅의 아티팩트’를 전부 수집하는 게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나저나 엘가시아 님의 이름이 ‘마법사’란 단어의 유래였다니. 애초에 테오니르라는 가문은 원래 있던 가문이었으니, 어쩌면 엘가시아 님의 이름은 스스로 지으신 것일 수도 있겠네요.”
“어쩌면 그렇겠네요.”
애초에 마족과 인간 사이에 탄생한 존재.
곱지 못한 시선을 버텨 내기 위해 스스로 이름을 짓고 혼자서 쓸쓸하게 세상을 살아왔던 거겠지.
“이젠 정말 끝이 보이네요.”
“응원할게요. 예언의 아이님.”
나를 보며 싱긋 눈웃음 짓는 게슈탈트.
그러더니 그는 손가락을 튕겼다.
탁―!
“이제 깨어날 시간입니다.”
그의 말과는 반대로 나는 또다시 의식이 희미해져 잠에 빠져들게 되었다.
* * *
다음 날 아침.
나는 일어나자마자 의무실로 향했다.
그러나 이올렛 테오니르는 거기에 없었다.
“설마 집으로 돌아간 건 아니겠지……?”
나는 제발 아니길 빌며 다음으로 그녀가 있을 만한 장소, 바로 칼루스 아카데미의 지하 연구실로 향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이올렛 테오니르는 거기에 있었다.
먼저 나에게 말을 건 것은 오늘도 방독면을 쓰고 있는 랑켄 슈타이너였다.
- 무슨 일 있느냐, 꼬마야.
“아뇨. 오늘은 볼일이 따로 있어서요.”
그러고는 이올렛 테오니르를 부르려 했다.
그런데 호칭이 살짝 헷갈려서 멈칫했다.
원래 알고 있던 대로 교수님이라고 부르기엔 교수가 아니고, 누나라고 부르기엔 애초에 원래의 내가 연상인데 어색했다.
잠시 생각에 잠긴 나는 곧 제대로 된 호칭을 찾을 수 있었다.
“이올렛 선배님.”
“날 찾아온 거야?”
“예. 잠시 할 말이 있는데요. 혹시 선배님, 테오니르 가문의 가보 같은 걸 가지고 있으신가요?”
“가보? 글쎄. 그래도 아마 우리 가문에 가보라는 게 있으면 나한테 있을 거야.”
“정말요?”
“그럼. 애초에 테오니르 가문은 이제 나밖에 없거든.”
“에…….”
아무렇지 않게 본인이 가문의 유일한 생존자라고 말하는 이올렛 테오니르.
그녀의 말에 순간 당황스러웠다.
“선배님밖에 없다니…….”
“응. 다 죽어서 나밖에 없어. 그러니 가보란 게 있으면 아마 내가 가지고 있을 거야.”
그래도 이올렛 테오니르가 ‘검집’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녀에게는 미안하지만 내 입장에선 어떻게 보면 다행인 상황이기도 했다.
“그건 지금 어디에 있나요?”
“내 방에 있을걸?”
“그럼, 혹시… 방에 들어가 봐도 될까요……?”
“여자 방에 들어가겠다고?”
살짝 이상한 분위기로 한쪽 입꼬리를 올리는 이올렛 테오니르.
나는 그녀의 말에 어떻게 변명해야 하나 싶었다.
다만, 이올렛 테오니르는 이내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농담이야. 같이 가자.”
“감사합니다!”
사실 내가 테오니르 가문의 가보를 찾는 이유를 설명하자면 또 길어질 게 뻔했다.
이들에게 설명해야 하는 내용이 한두 개가 아니었으니까.
시원시원한 이올렛 테오니르의 성격 덕분에 수고를 덜게 돼서 다행이었다.
- 또 무슨 일을 꾸미는 거냐 꼬맹아.
그런 나를 탐탁지 않게 보는 랑켄 슈타이너.
나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설마 이올렛 선배 방에 간다고 질투하는 건 아니겠죠?”
“저 인간이 질투를 해? 설마.”
이올렛은 내 등을 툭툭 치며 어서 가자고 재촉했다.
그리하여 나는 이올렛과 함께 그녀의 방으로 갔다.
도착하니 방 안은 잡동사니로 가득했다.
“미안, 좀 더럽지? 사실은 내가 집에 있는 짐을 싹 다 이곳으로 가져왔거든.”
“왜요?”
“그야 어차피 가문에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까. 집은 처분하고 돈으로 바꿨지. 어차피 이곳에서 오래 머물 거 같기도 했었고.”
이올렛은 졸업하고도 랑켄 슈타이너 밑에서 배우며 보건 교사 역할을 수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아예 대학원생으로 말뚝을 박겠다니.’
다만 그녀의 계획도 전쟁이 무사히 종식되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어찌 됐든 그 가보라는 게 우리 가문에 있다면 분명 이 방 안에 있을 거야.”
잡동사니들이 가득한 방을 보더니 살짝 머쓱한지 어깨를 으쓱하는 이올렛 테오니르.
다만, 나는 찾을 방법을 알 것만 같았다.
“괜찮아요. 쉽게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그래서. 정확히 뭘 찾는 건데?”
“제가 항상 들고 다니는 검 있죠?”
나는 허리춤에 있는 언노운을 꺼내 들었다.
“이 검의 짝. 검집을 찾고 있었어요.”
“그게 우리 가문의 가보로 있다고?”
“설명하자면 긴데, 아마 오래전에 어떤 이로부터 선물 받았을 거예요.”
말 그대로 설명하자면 긴 사연이다.
따라서 나는 그녀에게 더 이상 얘기하지 않은 채, 검집을 찾기 시작했다.
이올렛 테오니르도 딱히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아 하는 눈치였다.
‘분명 검집은 검과 공명하겠지.’
그리하여 나는 언노운을 마치 탐지기처럼 휘휘 저으며 잡동사니들 속에 숨어 있을 검집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얼마 지나지 않아 검집을 찾아낼 수 있었다.
“찾았다.”
침대 바닥에 숨어 있던 검집.
나는 그 검집을 스르륵 뽑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