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화
처음부터 언노운의 검집은 언노운과 공명할 거라 생각했다.
애초에 ‘방출계 영웅’의 아티팩트였으니까.
검과 검집에서 나오는 마나가 공명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는 생각이었다.
실제로 그러한 추측이 들어맞은 것이고, 나는 손쉽게 잡동사니 사이에 숨어 있던 검집을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역시나 언노운의 외형만큼이나 투박한 검집의 생김새.
게슈탈트의 꿈에서 본 한스는 이 검을 ‘장식용 검’이라고 했지만 이미 장식용 검이라고 하기엔 외관이 형편없었다.
아무래도 세월이 많이 흐른 탓이겠지.
나는 검집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드디어 마지막 아티팩트를 모은 건가.”
“아티팩트? 그게 뭔데?”
옆에서 팔짱을 끼고 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이올렛 테오니르가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그녀에게 생긋 미소를 보였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나저나 혹시 저 이거 가져가도 될까요?”
“그래. 맘대로. 어차피 이곳에 있던 건 처분하기 곤란해서 놔둔 거라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흔쾌히 검집을 준 이올렛 테오니르에게 연신 고개를 꾸벅였다.
그러자 이올렛 테오니르는 됐다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따지고 보면 애초에 이 물건은 테오니르 가문의 가보는 아니려나.’
다른 가보와는 달리 애초에 이 검집은 테오니르의 가보라기보다는 ‘엘가시아’의 아티팩트였다.
아니, 그 이전에 ‘한스’의 보물이기도 했다.
여러모로 사연이 복잡한 검인 것이다.
“그럼 나는 이만 가 볼게. 사실 농땡이 좀 피울 겸, 바람 좀 쐴 겸 나온 거라서 다시 들어가 봐야 되거든.”
“바쁘시네요.”
“그럼. 역시 전쟁이잖니.”
역시 전쟁이라.
그 말에는 뭔가의 울림이 있었다.
이올렛은 나의 깍듯한 인사도 본체만체하고는 이내 사라졌다.
나는 그녀의 모습이 완전히 보이지 않을 때까지 기다리다가 이내 검집을 언노운에 씌웠다.
띠링―
[영웅의 아티팩트 ‘엘가시아의 검’을 수집하였습니다.]
〈히든 이벤트 : ‘영웅의 아티팩트’ 진행 상황〉
(버밀리온의 로브, 게슈탈트의 꿈, 골드버그의 회중시계, 그린월드의 사탕, 세이피어의 부적, 엘가시아의 검, 아메드의 반지)
진행 상황의 내역이 깔끔하게 아티팩트의 이름으로만 채워졌다.
뭔가 지금까지 열심히 노력한 게 드디어 결실을 맺었다는 사실에 뿌듯해졌다.
“그나저나, 이게 끝? 아무것도 없는 거야?”
이런 내 불만을 시스템이 알아들었는지, 원래 있던 화면이 새로 고침 되더니 새로운 화면이 나타났다.
[‘히든 이벤트 : 영웅의 아티팩트’를 모두 진행했습니다.]
[보상은 (???) 입니다.]
“음?”
시스템 창은 거기까지였다.
더 이상의 메시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뭐야…이게……. 뭔가 알 수 없지만 보상을 받은 건가?”
혹시나 해서 나는 매직 미사일을 시전해 보기도 하고, 감지 마법도 사용해 봤다.
심지어는 아티팩트를 강화하는 효과인가 싶어서 영웅의 아티팩트들을 하나하나 확인까지 해 봤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게… 말이 돼……?”
보상이 없다니.
일곱 개의 영웅의 아티팩트를 전부 모아 왔건만 보상이 없다니.
“허.”
살짝 기가 찼다.
어쩌면 이 보상을 얻음으로써 지금의 전쟁과, 앞으로 있을 블랙잭의 침공을 타개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리 이것저것 시도해 봐도 유의미한 변화를 느낄 수 없었다.
“보상이 물음표라니…….”
물론 이 영웅의 아티팩트들만 해도 나에겐 충분한 보상일 수 있었다.
어쩌면 나를 위해 준비해 둔 것처럼 얻는 과정이 많이 어렵지도 않았다.
그래도 보상이 없는 건 살짝 아쉬울 뿐이었다.
“혹시 이미 보상이 적용된 거 아닌가? 그냥 알 수 없을 뿐일 수도.”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을 가졌다.
그러나 곧바로 뜨는 시스템 창의 메시지가 그런 내 희망을 차단시켰다.
[보상 (???)은 ‘메인 이벤트 : 멸망의 구원자’를 완료하면 적용됩니다.]
[다가올 최후의 멸망에 승리를 쟁취하세요.]
“메인 이벤트를 완료하면 적용된다니…….”
그 말인즉슨 내게 주어지는 보상은 모든 것이 끝나고 난 뒤에 지급된다는 것이었다.
“잠깐. 애초에 모든 게 끝나고 나서의 보상이라는 것은…….”
지금까지의 보상은 전부 내가 ‘메인 이벤트’를 클리어하는 데 도움을 주는 보상들이었다.
그러나 이번 보상은 성격과 결이 달랐다.
애초에 그 ‘메인 이벤트’가 끝나고 난 뒤의 보상.
단순하게 생각하면 집으로의 귀가였다.
하지만 거기서 좀 더 고차원적으로 생각한다면…….
“예를 들어 신이 들어주는 소원이라던가.”
애초에 이곳에 온 지도 수개월이 지났다.
이 정도면 꿈이라기엔 너무 길고, 그렇다고 트루먼쇼 혹은 몰래카메라일 가능성은 없었다. 또한 게임사의 가상 현실이라기에도 말이 되지 않았다.
남은 가능성은 진짜 마법에 걸린 것이거나 혹은 ‘신’의 장난.
이 모든 것이 ‘신’이라는 존재가 마련해 둔 것이라면.
흔한 클리셰처럼 모든 것이 끝난 뒤에 내 소원을 이뤄 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 알았다고.”
나는 수긍하기로 했다.
뭐가 됐든 일단은 나중 일이었다.
지금 당장 무슨 소원을 빌지 고민하는 것은 기만이었다.
현재 바깥 상황은 전시 상황인데 벌써부터 헤벌쭉해 있으면 안 되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까지의 추세로 봤을 때는, 내가 임무에 성공할 가능성은 상당히 높았다.
아니, 나는 틀림없이 내게 주어진 미션을 성공적으로 완수할 것이다.
“신이란 게 만약 존재한다면, 아마도 내가 메인 이벤트를 클리어한다는 쪽에 걸었겠지.”
당연하다.
이미 내가 이곳에서 받은 지원이 많았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나를 위해 준비된 것들이 너무 많은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이 시스템 창 뒤의 알 수 없는 존재조차 나를 돕고자 한다는 뜻.
“까짓거 해 주겠어.”
나는 힘차게 각오를 다졌다.
그런데 그때, 내 말에 딴지를 거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뭘 하겠다는 거냐.
나는 단번에 머릿속의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알아챘다.
“언노운 님!”
이게 얼마 만에 듣는 언노운의 목소리인지.
너무나도 반가웠다.
“언노운 님, 아니 엘가시아 님 이제 괜찮은 건가요? 더 이상 소멸하지 않는 건가요?”
- 아니, 나는 소멸한다. 그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
단호한 엘가시아의 목소리.
나는 그 말에 조금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결국 소멸은 확정인 거군요…….”
- 지금 내가 네게 말을 걸 수 있는 이유는, 아마도 검집 쪽에 있던 내 의식이 연결되어서겠지. 머지않아 나는 소멸한다. 다만, 잠시 얘기를 할 여유 정도는 있을 거 같군. 더 얘기하고 싶다면 나의 공간으로 오너라.
그리고 더 이상의 말은 없었다.
“나의 공간이라.”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처음 언노운과 계약을 원했을 때 갔었던 그 무의 공간.
그곳이 바로 ‘엘가시아의 공간’인 것이다.
“그럼, 해 볼까.”
현재 위치는 이올렛의 방문 앞 복도.
다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복도에 그대로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애초에 다들 훈련 중이라 지나가는 사람도 없거니와 딱히 이 모습을 발각당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눈을 감고 언노운을 쥐었다.
그리고 서서히 언노운에 마나를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후우.”
심호흡 뒤에 마음속으로 세기 시작한 숫자.
3.
2.
1.
띵―
귓가를 울리는 맑은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내가 있던 공간이 바뀌었다.
발목까지 차오르는 물과 그 끝을 알 수 없는 무의 공간.
하늘은 검고 빛은 보이지 않으나 앞이 훤히 보일 만큼 밝은 곳.
“어쩐지, 그립네.”
처음 이곳에 왔을 때가 생각났다.
그때만 해도 나는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이 세계가 그저 게임 속 세계인 것처럼 행동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이곳은 틀림없는 현실이라는 것을.
“오랜만이군.”
나와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엘가시아.
최근에 게슈탈트의 꿈에서 봤던 그 모습 그대로, 그리고 내가 원래 알고 있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오랜만이에요.”
나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방긋 웃어 보였다.
물론 착잡하고 울적했다.
이제 엘가시아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니.
이게 마지막이라니.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것 또한 틀림없는 현실이었다.
“그래. 나에게 궁금한 게 많을 것 같구나.”
“예.”
물어보고 싶은 것은 산더미였다.
그리하여 나는 가장 궁금했던 것부터 물어보았다.
“어째서 당신이 엘가시아인 것을 말씀해 주지 않았습니까.”
“물어보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렇긴 하지만요…….”
그렇게 대답하면 할 말이 없었다.
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에 엘가시아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농담이다. 사실 나는 엘가시아인 것을 너에게 밝히고 싶지 않았다. 제로, 아니 예언의 아이야.”
“…역시 다 알고 계셨네요.”
“다만, 내가 네게 모든 것을 밝히지 않은 것은 더 이상 옛 과거에 얽히고 싶지 않은 이유였다.”
“옛 과거라면…….”
“닉스. 그 녀석에 관한 얘기지.”
역시나.
엘가시아는 닉스와 이미 만났었다.
그리고 골동품점에 언노운을 팔아넘긴 것도 닉스겠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어째서 닉스는 마계를 부활시키려 하는 거죠?”
“천천히 얘기하도록 하지. 적어도 지금은 여유가 있으니까.”
그러면서 엘가시아는 손가락을 탁 튕겼다.
그러자 찰랑거리는 바닥의 물에서부터 탁자와 의자가 튀어 나왔다.
그리고 그 위에는 각종 디저트들이 차려져 있었다.
“들거라. 내 최후의 만찬이다.”
“이게 다 뭐예요?”
“이것은 허상이 아닌 틀림없는 실물이다. 내가 하나하나 수집하여 이 공간에 저장시킨 거지. 마지막, 최후의 소멸 전에 먹으려고 준비해 둔 것이다.”
최후의 만찬이라.
어찌 보면 소박하다고도 볼 수 있었다.
죽기 전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게 고작 초콜릿 디저트를 먹는 거라니.
엘가시아는 탁자에 앉자마자 게걸스럽게 차려진 것들을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역시 마지막까지 그녀다웠다.
“알다시피 내게는 두 자식이 있다. 그리고 두 녀석은 상반된 성향을 갖고 있었지. 한 녀석은 마족의 성향이 짙고. 또 한 녀석은 인간의 면모가 강했다.”
언노운은 먹으면서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 마족의 성향이 짙은 게 바로 닉스군요.”
“그래. 사실 처음에는 몰랐었다. 그저 내 자식이라는 생각뿐. 알다시피 그 둘이 내 유일한 혈족이었고, 자식을 갖는 것은 처음이었으니까.”
처음이라.
사실 누구나 자신의 자식을 갖는 경험은 낯선 일이다.
다만, 언노운의 경우에는 그 자식을 갖기까지의 기간이 매우 길었고, 방식이 조금 달랐을 뿐이었다.
“나는 닉스의 곁에서 그를 보살펴 주려 했다. 애초에 내가 한스에게 부탁한 것도 그거였고. 다만, 닉스는 조금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처음부터 싸하다는 생각을 가졌지만, 설마 싶어서 넘어갔었지.”
“이상한 부분이란 게 뭔가요?”
“닉스는 마족을 그리워한다.”
“마족을… 그리워한다고요?”
그게 마계를 부활시키려는 목적이라는 건가.
나는 드디어 밝혀지려 하는 닉스의 저의에 침을 꿀꺽 삼키며 경청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