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너도 마법부의 앞잡이였던 건가.”
“아니.”
“그럼 도대체 왜 이딴 짓을 벌인 거야.”
“실라이 교감이 꽤나 재밌는 걸 계획하고 있더군. 그래서 나도 동참하겠다 했지.”
배에서 흐르는 피는 아랑곳하지 않고 실실 웃어 대는 에이체스.
녀석은 단단히 미친 것 같았다.
‘애초에 저 녀석이 남았을 때부터 불안했었는데.’
아우레인 기숙사에서 남은 학생은 열 명 조금 넘는 정도.
그중에는 저 에이체스도 포함되어 있었다.
항상 붙어 다니던 벅스는 고향으로 내려갔는데 혼자 이곳에 남아 있는 것이 의아하던 참이었다.
거기에는 이런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당혹스럽지? 두렵지? 이제 너흰 꼼짝없이 죽을 목숨인 거다!”
“…왜 그런 거야.”
“그저 네 녀석이 절망하는 꼴을 보고 싶었다. 마지막까지, 최후까지 비참하게 울부짖으며 죽어라!”
쿨럭.
배에 뚫린 상처를 부여잡던 에이체스의 입가에 선혈이 흘러내렸다.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목에 핏대를 세우며 열변을 토해 내는 에이체스.
나는 차게 식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안쓰럽네.”
“뭣?!”
“불쌍하다고.”
“불쌍해? 내가? 불쌍한 건 너희들이라고! 친구들이 비명을 지르며 죽어 가는 걸 아무것도 못하고 지켜볼 수밖에 없을 거야!”
녀석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머리가 냉정해졌다.
오히려 당혹스러움보다는 이 상황이 필연적이라는 생각조차 들었다.
그리고 나는, 진심으로 녀석이 불쌍했다.
“글쎄. 동료들 없이 이곳에서 홀로 죽어 가는 네가 제일 안쓰러운 것 같은데.”
“그 잘난 입 어디까지 나불대나 보자!”
“게다가 애초에 내 친구들은 죽지도 않을 거거든.”
나는 녀석을 보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그야 내가 있잖아.”
나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점멸을 사용해 강당으로 향했다.
버밀리온의 로브를 사용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본 에이체스의 얼굴은 멍한 표정이었다.
“…정말이지.”
실라이 샌드윅스, 그리고 에이체스.
처음부터 추한 사람들은 끝까지 이 모양인 건가.
결국 그들은 최후의 최후까지도 정의에 반하는 것을 택했다.
“아니지. 그냥 저 녀석들이 저런 것뿐인 거지.”
사람은 변한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변할 기회는 주어진다.
단지, 저 녀석들은 그 기회를 잡지 못했을 뿐, 아니 않았을 뿐이다.
나는 더 이상 녀석들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숲속에 포탈이 열렸다는 것이었다.
상태로 보아 앞으로 몇 분 뒤면 완전히 포탈이 열려 마법 안드로이드들이 들이닥칠 것이다.
강당으로 들어선 나는 황급히 단상 위로 올라가 랑켄 슈타이너에게 방금 있었던 일을 보고했다.
“랑켄 슈타이너 교수님. 현재 아카데미 숲에 마법부의 포탈이 연결되었습니다. 신속히 전투를 준비해야 될 것 같습니다.”
- 어째서? 누가 포탈을 연결한 거지?!
“실라이 샌드윅스 교감이 벌인 짓입니다.”
- 그 여자가? 왠지 볼 때마다 기분 나쁘더라니. 알았다. 이미 벌어진 일, 돌이킬 방법은 없을 거 같군.
그리고 랑켄 슈타이너는 단상 아래 학생들에게 힘껏 소리쳤다.
- 다들 들었겠지. 현재 아카데미 내부에 마법부 쪽의 포탈이 연결되었다. 현재로서는 포탈을 봉인할 방법이 없으니 싸움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남은 학생들과 교수들은 몇몇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같이 전쟁을 각오한 자들.
더 이상 물러설 사람은 이곳에 남지 않았다.
- 비록 너희들이 학생이라고는 하지만 이곳은 전쟁터, 전쟁에는 나이와 성별이 의미가 없다. 오로지 승자와 패자가 전장에서 나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 이곳에서 승리한다. 알아들었나.
“예!!”
모두가 합창하여 대답했다.
이미 충분히 각오한 일이었기에 겁먹고 내빼려는 이는 보이지 않았다.
설사, 두려움에 떨고 있을 자도 분위기에 휩쓸려 도망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윽고 랑켄 슈타이너는 조를 나누기 시작했다.
각 기숙사별로 나누어진 전투조들.
그리고 그곳에는 남아 있는 교수들이 각각 배치되었다.
어느 정도 전열을 갖추자, 랑켄 슈타이너는 내 쪽을 바라보았다.
- 너, 어느 정도 할 수 있지?
“어느 정도라는 말은…….”
- 마법 안드로이드 몇 대까지 맡을 수 있냐는 말이다.
“일단은 한 번에 다섯 대 정도는 가능할 것 같습니다.”
사실 다섯 대도 엄청나게 올려 말한 것이었다.
한 대의 파괴력이 권좌와 맞먹는 급.
그런 마법 안드로이드를 고작 아카데미 학생이 다섯 대를 상대하겠다니.
그럼에도 랑켄 슈타이너는 딱히 태클을 걸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신뢰하고 의지하는 느낌이었다.
- 그래. 좋은 각오군. 내 예상으로는 적이 운용할 수 있는 마법 안드로이드 대수는 총 열 대 정도로 추측된다. 그렇다면 네가 반을 맡고, 내가 지휘하는 학생단들이 나머지 다섯 대를 맡겠다.
랑켄 슈타이너의 추측의 근거는 지금까지 소모된 마법 안드로이드를 계산한 것으로 보였다.
- 이런, 벌써 포탈을 넘어온 거 같군.
랑켄 슈타이너는 손에 든 화면을 잠시 보더니 나를 쳐다보았다.
- 적은 북쪽과 서쪽으로 나뉘었다. 북쪽 여섯 대, 서쪽 여섯 대, 총 열두 대. 예상보다 두 대 더 많다. 네가 감당할 수 있다는 숫자보다 하나가 더 많지만, 네 녀석에게 북쪽을 맡기지.
“예. 알겠습니다.”
- 서쪽 상황이 종료되는 대로 지원을 가겠다. 부디 버텨 주어라.
“네.”
나는 딱히 랑켄 슈타이너의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지금 상황에서 못한다고 발을 뺄 수도, 그렇다고 허세를 부릴 수도 없었다.
이젠 진짜 눈앞에 닥쳐온 ‘전쟁’인 것이다.
- 그럼 출발해라.
“예.”
나는 대답과 동시에 점멸을 사용했다.
팟―
튀어나온 곳은 아카데미의 북쪽.
상공에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마법 안드로이드들이 보였다.
“뭐야. 진짜 안드로이드처럼 생겼잖아.”
그것이 마법 안드로이드를 처음 본 감상이었다.
인형이라기에는 기계에 가까웠고, 골렘이라기에는 사람의 외형에 가까웠다.
마법 안드로이드라는 것은 그 이름에 걸맞게 마치 감정 없는 사람의 외관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주저 없이 언노운에 마나를 부여하여 검기를 발산시켰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빠르게 이 녀석들을 처리하고 본대와 합류해야 했다.
현재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아티팩트는 ‘버밀리온의 로브’와 ‘엘가시아의 검’과 ‘골드버그의 회중시계’ 세 개뿐.
‘아메드의 반지’는 아까 사용해서 쿨타임이었고, ‘세이피어의 부적’은 리스크가 있었기에 웬만하면 아끼고 싶었다.
그리고 ‘그린월드의 사탕’ 또한 일회용이기에 섣불리 사용할 수 없었다.
나는 곧바로 ‘골드버그의 회중시계’를 발동시켜 사역마들을 소환했다.
- 끼룩!
- 파르.
- 푸르으.
곧 모습을 드러내는 삼총사들.
다만, 녀석들은 지금까지 중 가장 진지한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소환하기 전부터 골드버그의 회중시계 안에서 현재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던 듯했다.
“그럼, 잘 부탁한다.”
나는 녀석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인 뒤, 곧바로 매직 미사일의 주문을 외웠다.
「마지아 미실레(magía míssĭle)」
「마지아 미실레(magía míssĭle)」
「마지아 미실레(magía míssĭle)」
……
순식간에 매직 미사일들이 미친 듯이 불어나기 시작했고, 나는 손가락으로 상공을 날고 있는 마법 안드로이드를 가리켰다.
그리고,
콰과과광!!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날아간 매직 미사일들이 마법 안드로이드들에게 폭격을 가했다.
수백 개의 매직 미사일을 맞았음에도 멀쩡해 보이는 안드로이드들.
그러나 본래의 목적, 시선을 끄는 것은 성공한 모양이었다.
안드로이드들은 본인들을 공격한 내 위치를 찾은 뒤, 이내 일제히 지면을 향해 내려왔다.
“그럼, 해 보실까.”
나는 곧바로 검을 들고 안드로이드들 중 하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런데,
지이이이이이잉!!
마법 안드로이드가 입을 떡 벌리더니 입에서 광선을 날렸다.
팟―!
그리고 나는 녀석의 공격을 보자마자 점멸을 사용했고.
사라진 내 위치를 그대로 뚫고 간 광선은,
콰과과과광!!
뒤쪽에 있던 아카데미 건물을 아예 흔적도 없이 분해시켰다.
“…이게 마법 안드로이드 하나의 파괴력이라는 건가.”
순식간에 건물 하나를 통째로 분해시키는 힘.
만약 스치기라도 했다면 보통 사람은 죽는 게 당연했고, 아무리 권좌급이라도 정통으로 맞는다면 즉사가 확실했다.
그나마 건물 안에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게 다행이었다.
내가 녀석의 어마어마한 파괴력에 살짝 긴장하고 있는 사이, 마법 안드로이드의 뒤쪽 숲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휘이이이이익!
동시에 그 소리의 주인은 마법 안드로이드를 그대로 덮쳤다.
그것은 다름 아닌 피닉스였다.
“뭐야. 생각도 못했는데.”
그러고 보니 숲에 방치한 뒤 잊고 있었던 피닉스.
녀석이 방금 전 요란한 소리를 듣고 숲에서부터 나온 모양이었다.
어쩌면, 내가 위급한 상황이라는 것을 깨닫고 본능적으로 날아온 것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피닉스의 모습을 확인하자 내 사역마들도 일제히 달려들기 시작했다.
- 끼룩!
- 파르!
- 푸르!
각자 근육 폼, 사신 폼, 눈사람 폼으로 변하여 마법 안드로이드들에게 달려드는 녀석들.
애초에 피닉스는 무적이었고, 사역마들은 내 마나가 감당할 수 있는 한, 계속해서 소환해 낼 수 있었다.
“그럼, 어디 해 보자고.”
나는 언노운에 맺힌 검기로 마법 안드로이드를 힘껏 베어 냈다.
* * *
한편, 연합 본부 건물 안.
두 명의 남자가 아무도 없는 빈 복도를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었다.
“아무리 권좌 연합이라 할지라도 저 정도의 마법 안드로이드는 무리겠지.”
“당연하지 피터. 무려 50대잖아.”
피터라 불리는 남자는 등에 커다란 장총을 메고 있었다.
그 외관으로 봐서는 저격용 라이플에 가까웠다.
그리고 피터의 옆에 있는 붉은 머리카락의 남자.
다름 아닌 지크 버밀리온이었다.
둘은 권좌급 전력들이 바깥의 마법 안드로이드를 상대하는 동안 몰래 내부로 침입한 것이다. 예상했던 대로 내부에는 경비가 없었다.
당장 마법 안드로이드 50대를 상대하는데 모든 전력을 쏟아부어야 하기에 내부 인원을 전부 바깥으로 내보낸 것이다.
“덕분에 ‘큐브’는 쉽게 가져가겠어.”
이미 ‘큐브’의 대략적인 위치는 그들의 정보력으로 파악해 두었다.
위치는 이곳 연합 임시 거처의 지하실.
그리하여 둘은 곧바로 지하로 향했다.
그렇게 도착한 지하실.
그 앞에는 거대한 문이 달린 금고가 놓여 있었다.
“피터, 가능하겠지?”
“그럼. 물론이지.”
피터는 이내 자신의 어깨 위에 두른 장총을 앞을 향해 조준했다.
그리고,
콰과과과과광!!
총구에서부터 뿜어져 나온 거대한 검은 마나가 금고의 문을 강타했다.
그것은 단순히 저격용 라이플의 힘이 아니었다.
“역시 대단한 괴력이네.”
“과찬이군.”
여유롭게 총구를 후 부는 피터.
그리고 지크는 금고 안으로 들어서려 했다.
그런데,
“어딜 가려는 거냐.”
그를 저지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 목소리를 들은 지크 버밀리온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이네요. 아.버.지.”
그를 막아 세우는 것은 다름 아닌 지크의 아버지, 아이작 버밀리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