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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의 무속성 마법사-164화 (164/175)

164화

나는 이미 이곳이 현실이라는 것을 직시하고 있었기에 두렵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 이곳에서 죽으면 틀림없이 죽는 것이다.

그러나 큰 책임감 앞에서 공포심은 조금 무뎌질 수밖에 없었다.

내 뒤에는 나를 믿고 있을 동료들이 있을 테니까. 물러설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게다가 이미 나는 안드로이드 한 대를 격파하기도 했다.

“생각보다 빈 깡통이잖아.”

목이 잘린 마법 안드로이드가 치지직 소리를 내며 몸을 부르르 떨더니 이내 멈추었다.

“공격만 어떻게 피하면 해볼 만하겠는데.”

‘권좌급’의 공격력을 가지고 있다는 마법 안드로이드.

그러나 방어력까지도 권좌급은 아니었다.

적어도 풀 파워의 언노운으로 급소를 노린다면, 공격은 먹혀들어 가는 것으로 보였다.

나는 스으윽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제 남은 마법 안드로이드는 다섯 대.

녀석들은 안드로이드답게 동료의 죽음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또다시 공격을 퍼부었다.

지이잉!

지이이이잉!!

일제히 나를 향해 쏘아지는 녀석들의 광선.

그리고,

팟―

나는 여유롭게 점멸을 사용해서 회피했다.

“사실 상성이 꽤나 좋은 것 같기도 하네.”

마법 안드로이드의 패턴은 이미 파악했다.

녀석들의 공격 패턴은 단순히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선 공격이 끝.

‘버밀리온의 로브’를 통해 쓸 수 있는 ‘점멸’이라는 상당히 훌륭한 이동기를 가지고 있는 이상, 방심만 하지 않으면 녀석들의 공격이 통할 리 없었다.

게다가, 나는 혼자 싸우는 것이 아니었다.

녀석들의 공격 직후에 생기는 공백의 시간에,

휘이이이익!

- 끼룩!

- 파르.

- 푸르으.

사역마들이 녀석의 발목을 붙잡고 나는 그사이에 녀석들의 급소를 노린다.

사아아아악!

또다시 언노운의 검날이 마법 안드로이드의 목을 베어 냈다.

조금만 힘을 덜 주어도, 조금만 타이밍이 어긋나도.

녀석들의 내구도를 뚫을 수 없었기에 한 번 한 번이 마지막이라는 일념으로 베어 냈다.

방금의 공격으로 한 대를 또 베어 냈기에 이제 남은 것은 네 대.

그런데 녀석들의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다.

“벌써 둘이나 없어졌으니 슬슬 긴장되나 봐?”

나는 여유롭게 녀석들의 공격에 대응할 준비를 했다.

그런데 곧 이어지는 녀석들의 행동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치지지지직―

마법 안드로이드 네 대가 갑자기 김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고작해야 또다시 광선 공격이 날아올 거라 생각했던 나는, 변화한 패턴에 바로 대응하기 위해 상황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척―!

척―!

마법 안드로이드들이 한데 뭉쳐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존의 사람과 닮은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곧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3m가 넘는 장신의 거인이었다.

“꼴에 로봇이라고 합체한다는 건가.”

살짝 당황스러웠다.

분명 합체 전의 마법 안드로이드는 명백히 이음부의 급소가 눈에 보였었다.

그런데 합체하고 나서의 마법 안드로이드는 온몸이 장갑으로 둘러싸여 있어 급소가 보이지 않았다.

마치 로봇 만화의 육중한 거대 로봇 같았다.

치이이이익―!

녀석은 이내 김을 뿜어내는 것을 멈추고 달려오기 시작했다.

쿵― 쿵― 쿵―

한 발짝 한 발짝 발이 지면에 닿을 때마다 거대한 땅울림이 느껴졌다.

“더 이상 원거리 견제로 하지 않고 육탄전으로 가겠다는 건가.”

아무리 그래도 녀석들은 학습이라는 걸 하는 모양이었다.

지금껏 아무리 광선 공격을 퍼부어도 전부 회피하니, 이제는 근접해서 공격하겠다는 방식을 취한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육탄전도 마찬가지일 거 같은데.”

합체한 개체의 속도는 매우 빨랐다.

그러나 그것은 일반적인 관점에서였다.

점멸을 사용할 수 있는 나에게는 한없이 느려 보이는 움직임이었다.

나는 달려드는 거대 안드로이드에게 언노운의 날을 세운 뒤.

촤아아아악!

한번 베어 내고,

팟―

점멸을 사용해 도망쳤다.

콰아아아아앙!!

내가 사라진 자리에 녀석의 공격이 들어가자 웅장한 소리를 자아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그래도 살짝 금은 갔네.”

내가 베어 낸 자리는 깊게 들어가진 않았지만 어쨌든 표면에 선명한 금이 새겨져 있었다.

그렇다는 것은 결국, 계속 베어 내면 언젠가는 표면의 장갑을 뚫어 낼 수 있다는 뜻이었다.

“언제까지고 베어 내 주겠어.”

나는 계속해서 방금의 행동을 반복했다.

녀석의 몸을 베고, 점멸을 사용하고.

베고 점멸로 회피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녀석은 꼼짝없이 야금야금 베어 내질 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계속해서 녀석의 몸을 갉아 먹었다.

제대로 된 유효타를 날릴 수 없는 지금, 이런 방식이 최선이었다.

한참 동안 몸을 웅크리며 방어하기 급급한 거대 안드로이드.

그런데 또다시 김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뭐지?”

그러더니 갑자기 안드로이드의 몸통 부분에 떠오르는 홀로그램 숫자.

10.

“응?”

9.

“이런.”

10에 이어지는 숫자를 보고 나서 나는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틀림없이 녀석은 자폭을 시도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최후의 수단이라는 건가.”

긴급한 순간, 나는 머릿속을 빠르게 회전시켰다.

‘버밀리온의 로브’ 점멸의 최대 사거리는 가시거리만큼.

따라서 녀석의 폭발은 손쉽게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에 따른 폭발력이었다.

아직 아카데미의 서쪽에는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고, 이 녀석의 자폭 공격이 그곳까지 닿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애초에 녀석의 기본 공격만 해도 ‘권좌급’.

그 여파를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생각, 생각해야 돼.’

지금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녀석과 함께 점멸한다?’

예전에 한번 해 본 적 있었다.

그때 당시에 같이 점멸했던 대상은 달시 세이피어, 페가수스.

‘그때도 아슬아슬했었잖아.’

그 둘과 함께했던 점멸도 엄청 무리한 것이었다.

눈앞의 거대 안드로이드를 데리고 같이 점멸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였다.

‘젠장, 어떻게 해야 되지?’

내가 생각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5.

4.

3.

‘젠장!’

더 이상의 시간은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목숨을 건 도박을 하기로 했다.

나의 선택은 점멸로 도망치는 것이 아니었다.

나의 선택은 바로 ‘보호막’ 생성이었다.

한 번도 배운 적 없고, 한 번도 사용해 본 적 없는 마법이었다.

‘그래도 도플갱어가 썼으면 나도 쓸 수 있다는 거잖아.’

그저 그러한 생각에서 착안한 도박이었다.

무모하다고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게 최선이었다.

나는 눈을 감고 필사적으로 보호막의 이미지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오비체 프레시디움 (óbice præsídĭum)!!」

내 입에서 나오는 것은 자동으로 변환된 주문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내 몸으로부터 강렬하게 뿜어져 나오는 백색의 마나가 거대 안드로이드를 뒤덮기 시작했다.

2.

1.

콰과과과과과과광!!

지금껏 본 적 없는 강렬한 힘이 눈앞에서 폭발했다.

그리고 동시에 내 몸이 충격파에 밀려 100m 바깥의 건물에 처박혔다.

콰아앙!

온몸이 부서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러나 단순한 타박상일 뿐이었다.

“해낸 건가…….”

잔해 무더기에 깔려 있던 나는 힘겹게 손으로 머리 위를 휘저어 잔해를 뚫고 나왔다.

그리고 조심스레 몸을 일으킨 뒤 상황을 체크했다.

보이는 것은 멀쩡한 아카데미의 풍경.

그리고 아까 전 거대 안드로이드가 있던 자리 주위에 움푹 파인 분화구가 보였다.

“해냈구나…….”

어쩌면 이 세계에 오고 나서 가장 무모한 행동이었다.

배워 본 적도, 본 적도 없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니.

결과적으로는 사용할 수 있었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도를 넘은 미친 행동이었다.

“…그래도 미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잖아.”

그것이 바로 전쟁.

지금의 상황이었다.

* * *

계속해서 합을 겨루고 있는 피너클러스 골드버그와 히로빈 그린월드.

어느새 승부는 판명 난 것으로 보였다.

“하아……. 하아…….”

피너클러스 골드버그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히로빈 그린월드의 공격에 계속해서 소멸되는 정령왕.

그리고 그 정령왕을 계속해서 재소환하느라 마나가 한계에 이른 것이다.

히로빈 그린월드는 힘겨워하는 피너클러스 골드버그를 보고 살짝 공세를 멈추었다.

“왜 그러는가? 역시 망자의 술로는 본래의 힘을 발휘할 수 없는 것인가?”

“아니. 틀려. 애초에 정령왕 소환은 내 고유 마법이 아니잖아.”

고유 마법은 대부분이 선천적으로 정해져 있다.

그리고 피너클러스 골드버그의 고유 마법은 도깨비불 소환.

그 도깨비불 소환을 할 수 없는 지금, 피너클러스 골드버그는 본래의 힘을 발휘할 수 없는 것이다.

“고유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니. 그거 다행이구먼.”

애초에 변신계와 소환계는 상성이다.

피너클러스가 고유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더라면 이렇게 쉽게 승부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슬슬 마무리하겠네.”

“그래. 제대로 목숨을 끊으라고. 이 사령술은 피술자를 죽이지 않는 이상 계속되는 모양이니까.”

“…알겠네.”

고개를 끄덕인 히로빈 그린월드는 그대로 피너클러스 골드버그에게 뚜벅뚜벅 다가갔다.

그러자 피너클러스 골드버그가 주먹을 쥐고 달려들었다.

마나가 고갈되어서 맨몸으로 달려드는 마법사.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꼴이었지만, 정신계 마법에 의해 상대를 죽이라는 명령을 받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히로빈 그린월드는 그저 슬픈 눈으로 옛 전우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곧 팔을 서서히 들더니,

푸우욱―

달려드는 피너클러스의 배를 오른손으로 관통했다.

그러자 피너클러스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히로빈 그린월드는 차가운 지면에 배를 웅크리며 엎어진 피너클러스를 아련한 눈빛으로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피너클러스가 피식 미소를 보였다.

“고마워. 이제 가 봐. 동료들을 도와야지.”

“그래. 편히 쉬게.”

“…지금의 너는 꽤나 어깨가 무거워 보이네. 그래도.”

피너클러스는 히로빈 그린월드를 올려다보며 눈웃음 지었다.

“어울려.”

“…고맙네.”

히로빈 그린월드는 곧 다른 동료들을 지원하러 가기 위해 등을 돌려 떠났다.

피너클러스는 멀어지는 히로빈의 모습을 확인하다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마지막으로 그 녀석이 보고 싶네.”

생전에 피너클러스는 굉장한 자격지심이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고유 마법이 고작 귀여운 도깨비불을 소환하는 것이라는 게 자존심이 상했었다.

마계 대전 이후에는 아예 새로운 사역마를 소환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까지 했었다.

그런 지금, 최후의 순간에 녀석이 보고 싶은 것이다.

눈을 감은 피너클러스는 계속해서 피가 흐르는 배를 움켜쥐며 조용히 영면에 들 준비를 했다.

그런데,

- 끼룩.

점점 의식이 멀어지는 피너클러스 골드버그의 귓가에 희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녀석…인가……?”

그러나 이내 피너클러스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럴 리가 없잖아.”

애초에 처음에 소환을 거부한 녀석이다.

이제 와서 주문도 외우지도 않았는데 나타날 리 없었다.

그런데 다시금 울리는 목소리.

- 끼룩!

그리고 뺨에서는 사람보다 큰 혀가 핥는 듯한 촉감이 느껴졌다.

“…뭐야. 진짜잖아.”

눈이 떠지지 않아, 얼굴을 확인할 수 없지만, 지금 옆에 있는 녀석은 그 녀석이 맞는다고 피너클러스는 확신했다.

“미안해.”

죽기 전 마지막 말.

“그리고 고마워.”

그 말을 끝으로 피너클러스는 다시 한번 숨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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