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한편 연합 임시 본부 지하실.
“크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혼절하는 아이작 버밀리온.
그 모습을 확인한 지크 버밀리온이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잠시 쉬고 계시죠. 아버지.”
그러고는 이내 손에 든 큐브를 탐스럽게 매만졌다.
“이로써 큐브는 전부 모았군.”
“아직 열쇠가 남았잖아.”
옆에서 장총을 고쳐 매고 있는 피터 샤프슈터가 딴지를 걸었다.
그에 대한 대답으로 지크는 히죽 웃어 보였다.
“그쪽이야 알 바는 아니잖아. 지금쯤이면 다이애나랑 솔로몬 자매가 알아서 처리해 놨겠지. 설마 세 명이나 갔는데 그걸 못하겠어?”
“그래도 아카데미 쪽은 히로빈 영감이 있잖아. 케이든과 랑켄 슈타이너도 까다로울 테고.”
“그렇게 따지면 우리 쪽은.”
“…맞네. 그렇긴 하네.”
피터는 지크의 말에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따지고 보면 이곳의 전력은 아카데미 쪽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아무리 마계 대전의 영웅 히로빈 그린월드가 있다 한들, 그는 다 늙어 빠진 퇴물.
이곳엔 현역 권좌 다섯 명이 있었다.
게다가,
“무엇보다 우리 쪽은 노아 교수님이 계시잖아.”
“하긴, 그 인간은 마계 대전의 영웅보다도 더한 괴물이지.”
노아의 ‘인류 최강’이라는 칭호는 이미 그가 아카데미를 졸업했던 시절부터 뒤따르고 있었다.
당연히 지크와 피터가 아카데미의 학생일 때도 괴물 같은 무력은 마찬가지였고, 지금이라고 그때와 다를 리 없었다.
지크는 갑자기 히죽히죽 웃으며 피터 쪽을 바라보았다.
“난 노아 교수님이 벌써 위에 안드로이드들 싹 다 정리했다에 걸게.”
“뭐? 싹 다? 그 인간이 아무리 괴물 같다 해도 그 정도는 아니지 않나. 마법 안드로이드를 무려 50대나 동원한 거잖아. 아무리 그래도 그건 무리일걸.”
“…그래? 내기할래?”
장담한다는 듯 말하는 지크.
피터는 그 말에 질렸다는 듯 절레절레 흔들었다.
“뭐, 네가 맞다면 맞는 거겠지.”
그런데 그때.
쿠과과과광!
커다란 폭음이 위쪽에서 들려왔다.
현재 지크와 피터가 있는 곳은 지하였기에 그다지 큰 소음은 아니었지만, 건물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진동은 뭔가 엄청난 일이 발생했다는 것을 짐작게 했다.
그리고 동시에 지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거봐. 내가 뭐라 그랬어.”
“응? 뭐가?”
“지금 진동 말이야. 아마도 노아 교수님이 성공한 거 같군.”
“성공했다니. 그게 무슨 소린데. 그 인간이 폭발이라도 일으킨 거야?”
“아니, 반대야. 폭발을 막은 거지.”
“폭발을… 막았다고……?”
“그래. 애초에 막지 못했다면 우린 살아 있지도 못했어.”
피터 샤프슈터는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에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그러나 지크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대략적으로 열 대 이상은 폭발한 것 같은데. 그렇다면 반경 1km는 훌쩍 넘을 범위의 파괴력. 그걸 막아 내다니. 역시 노아 교수님이야.”
그러더니 이내 지크는 피터의 어깨를 두드렸다.
“올라가 보자. 바람도 쐴 겸.”
“큐브도 회수했는데 철수 안 하고?”
“조금 여유는 있잖아. 어차피 올라가면 상황은 종료되어 있을 거야. 오랜만에 교수님 얼굴 좀 뵙고 싶어서.”
“음… 그래.”
그렇게 둘은 지상으로 올라갔다.
밖의 풍경은 처참했다.
“뭐야. 폭발을 막았다면서?”
이미 지상에 있던 협회 본부의 건물은 반파되어 있었고, 곳곳에서 비릿한 피 냄새도 느껴졌다.
막았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크 버밀리온은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니. 틀림없이 막아 낸 거야.”
그러고는 두리번거리며 노아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면에 쓰러져 있는 노아를 발견할 수 있었다.
“너, 너희는…….”
“와아. 아직도 살아 계시다니 참 질긴 생명력이시네요. 아니 살아 있는 건 맞나요.”
너덜너덜해진 노아의 몸.
그의 주변에 몇 L인지 가늠 안 될 만큼 왈칵 쏟아져 있는 피.
노아의 상태는 사실상 반죽음 상태나 다름없었다.
어떻게 입을 열 수 있는지가 신기할 따름이었다.
지크는 역시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죽일 거냐…….”
힘겹게 입을 열며 말하는 노아.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음이 터진 피터가 장총을 꺼내 들었다.
“그러게 진작에 죽였어야 했는데. 너무 끈질기잖아.”
그리고 장총에 검은 마나를 주입시키기 시작한 피터.
그런데 지크가 그를 저지했다.
“놔둬. 어차피 이대로 둬도 살긴 힘들 거야.”
“그래도 마무리는 해야지.”
“뭐, 옛 제자로서의 마지막 온정이라는 셈 치자고. 아무래도 제자에게 죽는 스승은 비참하잖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의 피터.
그는 곧 머리를 긁적이다 총구를 거뒀다.
“아무튼 좋네. 옛 스승도 만나고.”
“너, 아무리 그래도 너무 설렁설렁하는 거 아니야? 아까 아이작 버밀리온도 죽이지 말라고 해 놓고.”
“어떻게 아버지와 스승을 죽이나. 난 그렇게 못해.”
빙긋 웃어 보이는 지크 버밀리온.
“나는 아직 인간이거든.”
그 말에 피터가 질색한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해할 수 없다니깐.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지크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미 눈을 감고 의식을 잃은 노아를 그저 물끄러미 내려다볼 뿐이었다.
“흐으음…….”
그렇게 한참 동안 노아의 얼굴을 지켜보던 지크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오랜만에 아카데미 견학이라도 가 볼까.”
그리고 주문을 외우는 지크 버밀리온.
순간 지크와 피터의 몸이 홀연 듯이 사라졌다.
황폐화된 전장에 남은 것은 눈을 감은 채 간신히 호흡하는 노아뿐이었다.
* * *
“으으윽.”
근육이 비명을 질러 댔다.
다행인 것은 단지 근육통, 타박상에서 그쳤을 뿐.
크게 다친 곳은 없다는 점이었다.
“아직… 충분히 할 수 있어.”
이제 남은 것은 서쪽 숲에 있는 마법 안드로이드들뿐이다.
당장 방금 상대했던 안드로이드들을 해치운 것처럼 하면 문제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때.
- 끼루욱.
갑자기 눈앞에 매기가 튀어 나왔다.
언제부턴가 모습이 보이지 않다가 다시 튀어나온 매기.
이런 경우는 처음인지라 살짝 의아했다.
“어디 갔다 왔어?”
- 끼루욱…….
어딘가 목소리에 힘이 없는 매기.
나는 녀석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었다.
“고생했어. 일단은 좀 쉬고 있어.”
우우웅―
하얀빛과 함께 회중시계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매기, 그리고 파르와 푸르.
방금의 교전으로 마나를 꽤나 많이 소모시켰기에 잠시 녀석들을 소환 해제 시켰다.
그리고 나는 피닉스를 올려다보았다.
“가자. 피닉스.”
휘이이이익―
녀석은 힘찬 날갯짓으로 대신 대답했다.
나는 그 모습에 고개를 끄덕인 뒤 일단 가까운 건물 옥상으로 점멸을 사용했다.
팟―
그리고 튀어나온 옥상에서 서쪽 지역을 확인하고 다시금 점멸을 사용했다.
팟―
“으아아아악!”
“꺄아아아!”
점멸을 사용하자마자 들리는 것은 학생들의 비명 소리.
보이는 것은 아비규환의 현장이었다.
먼저 보이는 것은 네 대의 마법 안드로이드.
학생과 교수진 연합들이 어찌저찌 두 대를 처리하는 데 성공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시야에 쓰러져 있는 랑켄 교수님이 들어왔다.
그리고 랑켄 교수님의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
그러나 나는 랑켄 교수님께 달려갈 수 없었다.
당장은 눈앞의 상황이 중요했다.
부상자와 사상자가 나오는 것은 각오한 일.
마음으로는 당장이라도 랑켄 교수님의 상태를 확인하고 싶었으나, 머리로는 남은 네 대의 안드로이드를 신속히 처리해야 한다는 판단이 선 것이다.
“제로!!”
내 등장을 제일 먼저 확인한 루비 버밀리온이 소리쳤다.
그리고 그 소리에 안드로이드에 대치하고 있던 학생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다.
그들의 시선에 나는 큰 목소리로 일갈했다.
“집중해! 지금 중요한 건 저 녀석들이잖아!”
눈앞의 상대는 ‘권좌급’의 파괴력을 지닌 마법 안드로이드들.
안일한 태도도, 방심도 금물이었다.
사아아아―
나는 다시금 언노운에 검기를 방출시켰다.
그리고 검날 끝까지 검기가 맺히자,
팟―
그대로 안드로이드 한 대의 등 뒤에 점멸한 뒤,
촤아아아악!
녀석의 목을 베어 냈다.
한차례 상대했던 녀석들이라 그런지, 움직임이 눈에 훤해 빈틈을 노리기 수월했다.
“빠르게 처리해야 돼! 이 녀석들, 가만 놔두면 자폭한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이 녀석들을 빠르게 처리하는 것뿐이었다.
이대로 놔두면 아까처럼 합체한 뒤 자폭할 게 분명했다.
“자폭한다고?!”
내 말에 학생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지금의 광선 공격의 파괴력도 어마어마한데 자폭까지 하다니.
그러나 그뿐이었다.
이내 학생들은 침착함을 되찾고 진형을 갖추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방금 전, 내가 안드로이드를 단번에 베어 내는 것을 보고 희망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남은 것은 고작 세 대.”
나는 언노운의 손잡이를 잡은 손을 가다듬으며 다시금 녀석들을 베어 낼 준비를 했다.
* * *
아카데미의 바깥쪽.
아직 다이애나 펠트리온과 케이든, 그리고 아텔라 버밀리온과 아텔라 가스트로디아의 대치가 한창이었다.
어느새 피너클러스 골드버그를 처리한 히로빈 그린월드도 둘의 전투에 합류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리바이 솔로몬, 베르제 솔로몬은 멀찍이 떨어져서 감상하고 있는 중이었다.
“어째 불안한걸. 이러다 지는 거 아니야?”
“보니까 피너클러스 골드버그 쪽은 무슨 이유인지 고유 마법을 사용할 수 없더라고. 쉽게 당하는 게 당연했지. 그래도 저 아텔라 버밀리온은 정품이니까 안심해.”
실제로 아텔라 가스트로디아와 히로빈 그린월드는 아텔라 버밀리온을 상대로 고전하고 있었다.
고유 마법을 사용할 수 없던 피너클러스와는 달리, 온전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마계 대전의 영웅 아텔라 버밀리온.
그녀가 패배할 일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다이애나 펠트리온 쪽도 만만치 않았다.
“언제 끝나려나. 지금쯤 지크 쪽은 마무리됐겠지?”
“그럼. 그쪽은 남아 있는 안드로이드 전부를 투입했잖아. 못하는 게 이상하지.”
그런데 그때,
그들의 뒤에 우우웅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내 얘기 하고 있었어?”
“일찍 왔네? 생각보다 일이 쉬웠나 봐.”
솔로몬 남매의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바로 지크 버밀리온과 피터 샤프슈터였다.
“흐으음. 꽤나 고전 중인데.”
“너희와 달리 우리는 직접 상대하잖아.”
“우리도 아이작 버밀리온은 직접 해치웠다고.”
리바이의 비아냥에 피터가 즉시 반박했다.
뭔가 무시받는 걸 참을 수 없는 피터였다.
그런 그들의 대화를 묵묵히 듣고 있던 지크 버밀리온.
그는 뭔가 생각에 잠긴듯이 턱을 쓰다듬었다.
그러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어차피 마무리하려면 한참 걸리겠지?”
“뭐, 금방 끝난다라고 말하고 싶은데 어쩔 수 없네. 꽤나 고전 중이라서.”
“그럼 어쩔 수 없지. 자원봉사 하는 셈 칠게.”
“응……?”
“곧 철수할 준비나 하고 있어.”
지크 버밀리온은 솔로몬 남매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열쇠는 내가 데리고 온다.”
그러고는 아카데미의 방향으로 홀연히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