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으아아아아!”
타고 있던 모두가 꼼짝없이 그린 드래곤과 함께 지면으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답이 없었다.
“에메릴!”
나는 일단 에메릴의 상태를 먼저 살폈다.
하지만 틀렸다. 에메릴은 이미 정신을 잃은 것으로 보였다.
나는 잠시 어찌해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루비 버밀리온이 주문을 외웠고 모두의 몸에 붉은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우우웅―
“다들 진정해! 중력 감소 마법을 걸었어!”
“방금 공격, 블랙잭인 거지?”
제페토가 소리쳤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샬롯이 어딘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쪽에 저격수가 보여요!”
그녀는 제법 눈이 좋은 모양이었다.
샬롯이 가리킨 곳을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봐도 저격수는커녕, 사람 형태도 찾을 수 없었다.
‘당장은 상황 정리가 필요해.’
나는 신속하게 오더를 내렸다.
“일단은 지면에 착지하고 생각하자! 다들 저격수의 방향 쪽을 경계하고, 루비는 안전하게 지면의 착지를 부탁할게.”
“응, 맡겨 둬.”
루비 버밀리온의 중력 마법으로 곤두박질치던 드래곤은 감속하여 천천히 지면으로 향했다.
나머지는 샬롯이 알려 주는 방향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적도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지 않았다.
타아아아앙!
또다시 대포 소리와도 같은 거대한 총성이 울려 퍼졌다.
그런데,
「스쿠텀 루미니스(scutum luminis)!!」
샬롯은 이미 총소리가 나기도 전에 주문을 외웠고, 정체를 모를 상대방이 쏜 총탄은 그녀가 만들어 낸 거대한 빛의 방패에 가로막혔다.
“나이스, 샬롯.”
그렇게 우리는 샬롯 덕분에 안전하게 지면에 착지할 수 있게 되었다.
지면에 착지하자마자 나는 다시금 감지 마법으로 제이드의 위치를 확인했고, 저격수의 위치도 파악했다.
“제이드는 바로 코앞에 있어. 조금만 더 가면 도착할 수 있을 거 같아. 다만, 11시 방향 쪽에 ‘저주받은 학생’ 한 명이 보이네. 아마도 마나 색으로 보건대, 강화계 마법사인 듯해.”
게다가 고유 마법은 ‘저격’과 관련된 것이 분명했다.
현재 이곳의 위치는 기다란 나무들이 빽빽한 산림 지형.
이런 지형에서 보이지 않는 적의 저격은 상당히 위험했다.
그때, 샬롯이 비장한 얼굴로 얘기했다.
“가세요.”
“응? 가다니?”
“제가 저격수를 상대하겠어요.”
“네가 블랙잭을 맡겠다고……?”
“예. 저는 저 저격수의 위치를 감지할 수 있어요. 게다가 제 고유 마법도 원거리 교전에 능하니까 상성도 제법 맞고요. 아무래도 제가 남는 게 맞을 거 같아요.”
나는 물끄러미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상대는 블랙잭.
게다가 마기를 결합한 ‘글리치’ 마법을 사용하는 녀석이다.
그런 녀석을 샬롯이 단신으로 상대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나는 그녀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시간이 걸려도 저 녀석을 다 같이 처리하고 가는 게 맞을 거 같아.”
“그래 제로 말이 맞다. 아무리 그래도 너 혼자는 무리야. 어차피 지형이 이래도 나와 캐서린의 사역마로 적의 위치를 파악한다면 괜찮을 듯싶은데.”
제페토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루비 버밀리온이 끼어들었다.
“아니, 너희들은 가. 나도 남을게.”
“너도 남는다고?”
“응. 아무래도 샬롯 혼자서는 무리일 거 같고. 내 중력 마법으로 서포트한다면 어떻게든 비벼 볼 수 있지 않을까.”
샬롯과 루비.
원거리 화력 공격 스타일과 각종 버프, 서포트 스타일의 조합.
저격수를 상대로는 나름 나쁘지 않은 조합이었다.
“네, 네가 남겠다고? 아니 된다!”
제페토가 갑자기 목소리를 높여 반대했다.
나도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제페토와 마찬가지의 생각이었기에 반대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끼어드는 사람이 있었다.
“나도 남을게.”
달시 세이피어였다.
그러나 루비 버밀리온은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냐, 달시. 너는 저격수랑 상성이 좋지 않잖아. 네 힘은 더 중요한 곳에 사용해야지. 어서 가, 이곳에서 시간 낭비 하면 안 되잖아.”
여유롭게 미소짓는 루비 버밀리온.
“기다리고 있을게. 얼른 구해 내라고.”
나는 그녀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고작 아카데미 학생 둘이서 ‘저주받은 학생’을 상대하는 것은 상당한 무리다.
하지만 시간이 없는 것도 맞았다.
지금 당장은 제이드의 구출이 우선이었다.
“…그래.”
“뭐? 그냥 가겠다고?!”
“가자, 제페토.”
나는 제페토의 어깨에 툭 손을 올렸다.
지금은 이게 맞는 판단이었다.
제페토는 뭐라 항의하려다가 이내 입술을 질끈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내 루비와 샬롯을 번갈아 보며 눈을 마주쳤다.
“기다리고 있어. 반드시 제이드는 구해 낼 테니까. 그때까지 무리하지 말고 조심해야 돼.”
“응.”
“다녀오세요.”
“그럼, 가자. 제페토, 캐서린. 사역마를 소환해 줘.”
내 오더에 제페토와 캐서린은 곧바로 사역마를 소환했다.
나와 제페토, 캐서린, 그리고 달시는 말없이 사역마 위에 올라탔다.
탑승하자마자 쏜살같이 달려가기 시작하는 제페토의 도철과 캐서린의 영체화 된 호랑이.
우리는 말 없이 제이드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한참의 침묵 끝에 제페토가 입을 열었다.
“…루비는 괜찮겠지.”
답변한 것은 캐서린이었다.
“괜찮을 거예요.”
그리고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다시 한번 중얼거렸다.
“분명, 괜찮을 거예요.”
제페토를 위로하는 동시에 나를 걱정하는 듯한 눈치, 혹은 자기 암시로 보였다.
나도 그녀의 대답에 말없이 긍정의 눈빛을 보냈다.
그런데 그때,
숲속에서 누군가가 우리를 향해 매서운 속도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거기에 제일 먼저 반응한 것은 달시 세이피어였다.
그녀는 도철 위에서 뛰어내리더니 달려드는 사내에게 주먹을 날렸다.
콰아아아앙!
울려 퍼지는 커다란 충격파.
동시에 달시의 몸이 100m 밖으로 튕겨 나갔다.
제페토와 캐서린은 잠시 사역마를 멈추었고 나는 달려든 남자의 모습을 살폈다.
“저 사람은…….”
나는 단번에 사내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거구의 근육질 사내.
남자의 정체는 바로 마계 대전의 영웅, ‘클라우드 세이피어’였다.
“저 사람이 여긴 왜…….”
당황한 나는 빠르게 머리를 회전시켰다.
그러고 보니 아까 전, 아카데미에서 감지 마법을 사용할 때 아카데미의 입구 쪽에서 다른 마계 대전 영웅의 마나를 감지해 낸 것이 떠올랐다.
“설마 망자를 부활시키는 마법을 사용하는 녀석인가……?”
분명 히로빈 교장님과 케이든 교수님, 아텔라 교수님은 그 200년 전 마계 대전의 영웅들을 상대로 상당히 고전 중이었다.
그렇기에 아무래도 눈앞의 ‘클라우드 세이피어’는 복제품 따위가 아닌, 진짜 마계 대전의 영웅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는 것은 녀석들이 어느새 이곳에 있다는 건가.”
나는 곧바로 주위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클라우드 세이피어의 뒤로 두 명의 남녀가 뚜벅뚜벅 걸어왔다.
“어딜 가려고.”
“여긴 못 지나가.”
마치 쌍둥이 같은 둘의 모습.
나는 빠르게 감지 마법을 사용하여 둘의 고유 마법을 파악했다.
“상대는 정신계 마법사와 소환계 마법사, 아무래도 마법의 종류는 ‘망자의 부활’인 거 같아. 눈앞의 남자는 마계 대전의 영웅 ‘클라우드 세이피어’야!”
“클라우드 세이피어라고……?”
방금 전 날아갔던 달시 세이피어가 어느새 다시금 돌아와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조상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럼 이번에야말로 내 차례겠네.”
나는 딱히 반대하지 않았다.
아까와는 달랐다.
달시 세이피어는 명백히 강했으니까.
히로빈 교장님들도 버거운 ‘마계 대전의 영웅’을 상대할 만한 사람은 우리 중에 달시 세이피어 밖에 없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아무리 상대가 클라우드 세이피어인들, 계승의 힘을 사용하면 충분히 버텨 낼 것이다.
그런데 그때, 조용히 있던 캐서린이 입을 열었다.
“하필이면, 저쪽도 쌍둥이인 거 같네요. 안 그래요 오라버니?”
“얼굴까지 닮아서 묘하게 기분 나쁘긴 하네. 저 녀석은 아무래도 우리가 맡아야겠지.”
둘의 대화를 들었는지 상대편 쪽의 쌍둥이가 대답했다.
“뭐어? 고작 너희들이 우릴 상대하겠다고?”
“우리의 마법이 이게 전부인 줄 아니? 오산이야 꼬마들아. 저 영웅님을 제외하고도 사역마는 한가득이라고.”
우우웅―
상대 쪽에서 마법을 시전했다.
곧 검노란색의 마나가 일렁거리기 시작하더니, 거대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뭐야… 저게…….”
그것은 다름 아닌 뼈다귀의 집합체.
아니, 유골로 이루어진 거대한 드래곤이었다.
“데스 드래곤이라고 들어는 봤으려나.”
“쟤들이 뭘 알겠어. 모쪼록 이곳에서 죽어 줬으면 좋겠는데.”
상대편 쪽의 쌍둥이는 히죽히죽 웃어 대었다.
그런데,
우우웅―
우우우웅―
캐서린과 제페토도 맞받아치듯, 주문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제페토의 사흉수 네 마리 전부와, 영체화 된 열두 마리의 십이지신이었다.
“너희들…….”
“가세요. 저희도 이곳을 빠르게 마무리하고 합류할 테니까.”
“마음 같아선 내가 가고 싶은데, 이번 한 번만 양보하는 거다. 빨리 꺼져라.”
“…응.”
따로 작별 인사를 하진 않았다.
나는 그대로 점멸을 사용해서 앞으로 전진했다.
뒤쪽에서 ‘저주받은 학생’ 쌍둥이가 뭐라 뭐라 소리치며 나를 추적하려는 소리가 들렸고, 캐서린과 제페토, 달시가 그것을 막아 내는 소리 또한 들렸다.
그러나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는 셋을 믿을 뿐이었다.
녀석들은 충분히 강하니까.
팟―
팟―
팟―
계속해서 점멸을 사용해 앞으로 이동한 나는 곧 거대한 사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치 오랫동안 방치된 듯한 낡아빠진 사원.
나는 본능적으로 이곳이 ‘블랙잭’의 본거지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조금만 기다려, 제이드.’
아직까지 제이드의 마나는 빛이 바래지 않고 있었다.
분명, 지금도 늦지 않았다.
충분히 녀석들의 계획을 막아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사원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제이드가 뿜어내는 마나의 빛을 따라 직진했다.
굳이 건물의 복도를 걸을 이유도 없었다.
가로막는 사원의 벽은 언노운의 검기로 부수며 전진할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곧 커다란 광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치 예배당 같이 장식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 광장.
그곳에서 나는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감지 마법에 무언가 이질적인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검붉은 마나.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틀림없이 저것의 주인은 ‘지크 버밀리온’일 것이다.
이대로 녀석을 무시하고 전진할 수는 없었다.
녀석은 ‘공간 조작’의 마법사였으니까.
그리하여 나는 넓은 광장이 울릴 정도로 크게 소리쳤다.
“숨은 거 다 아니까 나오지 그래.”
곧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런 들켰나.”
기둥 뒤편에서 헝클어진 붉은 머리의 남자, 지크 버밀리온이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