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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의 무속성 마법사-172화 (172/175)

172화

한바탕 거대한 파동이 몰아쳤다.

그리고 파동이 휩쓴 자리에는 검은 안개가 일렁였다.

‘역시, 쉽게 끝나지는 않는다는 건가.’

방금의 언노운에 의한 공격은 내 최선의 공격이었다.

모든 마나를 모아 행한 필살의 공격, 이걸 맞아도 끄떡없는 상대면 아마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었다.

다만 일단은 이 정도로 만족했다.

나는 녀석이 검은 안개 속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 동안 황급히 제이드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제이드의 몸을 묶은 사슬을 언노운으로 내리쳤다.

까아앙!

사슬은 꽤나 단단해서 언노운으로도 쉽게 잘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마법이 걸려 있는 것으로 보였다.

따라서 나는 언노운에 다시금 검기를 머금고 사슬을 끊어 냈다.

방금 전 일격에 대부분의 마나를 실어 넣었기에 남은 마나는 간당간당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사슬이 풀리고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진 제이드를 업은 뒤 검은 안개로부터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제이드의 의식을 확인했다.

“제이드! 괜찮아?!”

다행히도 숨은 쉬고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생명의 마나 빛은 꺼지지 않은 채 타오르고 있었다.

“…이 개자식이!”

이윽고 검은 안개로부터 닉스 엘가시아가 빠져나왔다.

다만 녀석은 온전한 상태로 보이진 않았다.

아무래도 내 모든 힘을 실은 공격을 막아 내서인지, 꽤나 힘이 빠져 보였다.

방금의 공격으로 내 몸은 최상의 컨디션은 아니었으나, 적어도 녀석의 힘도 어느 정도는 소모시킨 것이다.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제이드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팟─

마나를 불어넣는 동시에 제이드의 몸이 사라졌다.

‘버밀리온의 로브’를 통해 그를 지상 위로 순간이동 시킨 것이다.

“귀찮게 하는구나.”

“그거 칭찬인가.”

사실 제이드를 구한 시점에서 이대로 도망쳐도 원래의 작전은 성공이었다.

다만, 나는 도망칠 수 없었다.

일단은 단상 위에 놓인 큐브 두 개가 마음에 걸렸다.

‘반드시 큐브는 회수해야 돼.’

큐브가 있다면 녀석은 언제든지 마계의 문을 열기 위해 제이드를 노릴 것이다.

나아가 저 녀석을 이곳에서 쓰러트리지 않으면 언제든지 이 세계가 위험할 수 있었다.

사아아아아―

닉스 엘가시아의 주변으로 한기가 돌았다.

그와 동시에 검은 소용돌이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도 질세라 언노운에 마나를 불어 넣었다.

몸에서 방출되는 백색의 마나가 검신을 감싸 안았다.

“공교롭게도 하얀색이네.”

나를 포함해서 ‘지구’의 사람들의 마나색은 하얀색.

나는 이것이 당연한 줄 알았으나, 하얀색의 마나도 오직 내 원래 세계 사람들만 갖는 독특한 특성이라고 다프네는 말했었다.

애초에 이곳의 고유 마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백색이 아닌 ‘무색’의 마나를 가지고 있어야 정상인 것이다.

“흑과 백의 싸움이라.”

어쩌면 이것 또한 흔해 빠진 클리셰의 일종이었다.

그리고,

“그렇다면 백이 승리하는 게 맞겠지.”

그것이 일반적인 이야기의 결말이었다.

솨아아아아아!

녀석의 몸에서 방출되는 검은 소용돌이는 이내 공간을 잡아먹을 듯이 범위를 확장시키고 있었다.

녀석은 엘가시아의 자식.

녀석이 아무리 마기를 사용한들, 그 근간은 방출계 마법이었다.

따라서 저 검은 소용돌이도 마나 그 자체를 방출한 것임에 틀림없었다.

“다만 평범한 마나는 아닌 거 같은데.”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검은 소용돌이의 정체는 바로 ‘마기’였다.

마족들만이 가지는 마나 ‘마기’.

녀석은 지금, 마기 그 자체를 방출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두렵나?”

“두렵냐고? 설마.”

그런 감정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눈앞의 녀석을 쓰러트린다는 일념뿐.

나는 검은 소용돌이를 향해 언노운을 베어 냈다.

촤아아아악!

백색의 마나가 흑색의 마나를 베어 낸다.

그와 동시에 대기를 가득 채우던 검은 안개가 언노운의 범위만큼 사그라들었다.

그 모습은 마치 어둠이 빛으로 정화되는 듯한 그림이었다.

“이런.”

그러나 그뿐이었다.

공간을 가득 채운 녀석의 마기.

나는 그저 눈앞까지 다가온 검은 안개를 베어 내기 급급할 뿐이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는데.”

그 순간 머리에 떠오른 방법이 있었다.

저 마기는 내 마나에 닿으면 일순간 사라진다.

그렇다면 저 검은 안개를 걷어 내기 위해서는 한 방의 강력한 공격보다는 횟수가 중요했다.

그리하여 나는 주문을 외웠다.

「마지아 미실레(magía míssĭle)」

그리고,

「마지아 미실레(magía míssĭle)」

또다시 주문을 외웠고,

「마지아 미실레(magía míssĭle)」

끊임없이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한 번 주문을 외울 때마다 내 주변에는 매직 미사일이 열 개씩 생성되고 있었다.

게다가 그 크기도 기존보다 컸고, 더욱 강력해 보였다.

‘아무래도 이게 내 진짜 힘인 거겠지.’

지금까지는 ‘시스템’의 제한으로 능력에 한계가 있었다.

시스템의 정체는 다프네 브륀힐드의 고유 마법 ‘시뮬레이션’.

성장을 위해라지만, 애초에 내 마법을 강화시킨 것이 아닌, 지금껏 내 마법에 제약을 두던 족쇄였던 것이다.

그 족쇄를 벗어난 지금, 내 매직 미사일은 한계를 모르고 생성되고 있었다.

수백 개.

수천 개.

그리고 수만 개.

더 이상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하얀 구체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

결국 이 넓은 지하 공간은 닉스 엘가시아의 검은 마기와 내 하얀 매직 미사일이 양분하게 되었다.

“그것이 네 마법인가? 도대체 어떤 고유 마법인 거지? 백색의 마법이 있다고는 들어 본 적 없는데.”

“그 질문, 되게 익숙하네.”

이 세계에 와서 수없이 들었던 질문이다.

도대체 고유 마법이 무엇인가.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딱히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애초에 내 고유 마법은 무속성 마법일 수도.”

세계의 진실을 안 이상, 이제는 내 마법과 내 마력이 온전히 나에게만 주어지는 특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개개인의 편차는 있겠지만 내 세계의 사람들은 다들 이만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마법을 모르는 이상 평생 사용할 수 없겠지만.’

어쨌든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지금 당장 중요한 건, 내게 힘과 능력이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손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그와 동시에 무수히 많은 매직 미사일들이 일제히 검은 안개를 향해 날아갔다.

선두의 매직 미사일은 검은 안개와 맞닿자 이내 힘없이 소멸했다.

그러나 무의미하지 않았다.

그것은 소멸한 만큼의 공간을 만들어 냈다.

그 뒤로 잇따라 온 매직 미사일이 또다시 검은 안개와 맞닿아 소멸했다.

그렇게 무수히 많은 매직 미사일들은 계속해서 공간을 넓혀 가기 시작했다.

흑과 백의 충돌.

그리고 점차 마기로 이루어진 검은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이럴… 수가.”

지금껏 자신만만한 태도로 일관하던 닉스 엘가시아가 입을 떡 벌렸다.

그만큼 펼쳐지고 있는 상황이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어림도 없다!”

닉스는 한껏 일갈하더니, 이내 몸에서 더욱더 거센 마기를 방출하기 시작했다.

“과연 그럴까.”

나도 질세라 주문을 외웠다.

‘매직 미사일’이라고 외치면 자동으로 주문이 되어 시전된다.

다만 그렇다 해서 실제로 발음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수만 개의 매직 미사일을 시전하기 위해선 그만큼 수백 번 ‘매직 미사일’을 외쳐야 한다.

입 안이 바싹 마르고 입술이 부르트고 목이 메여도 나는 주문을 외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이윽고,

‘됐다.’

검은 마기의 안개가 조금씩 걷히기 시작했다.

특히나 중앙 부분의 안개가 매우 옅어졌다.

사실 이것은 원래부터 설계한 것이었다.

매직 미사일은 불규칙하게 날아가는 것으로 보이나, 나는 일부러 닉스에게 향하는 길을 뚫기 위해 중앙 부분에 매직 미사일을 집중적으로 보냈었다.

사아아아아─

언노운의 검신에 다시금 백색의 빛이 감돌았다.

닉스 엘가시아는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매직 미사일에 정신을 못 차리고 내 쪽을 전혀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이 적기였다.

팟─

나는 그대로 중앙 부분의 뚫린 구멍 사이로 보이는 닉스에게 점멸을 시전했다.

그리고,

사아아악!

그대로 언노운을 가로 그었다.

그런데,

탁─

녀석이 마나를 두른 언노운의 검신을 한 손으로 붙잡았다.

“어떻게…….”

“적당히 하면 안 되겠군.”

닉스는 언노운을 맨손으로 잡은 게 아니었다.

자세히 보니 그의 손에는 검은색의 마나가 둘려 있었다.

아무래도 마기를 마치 장갑처럼 손에 두른 모양이었다.

이윽고 그 검은색의 마나는 몸 전체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녀석의 목소리 또한 변했다.

- 적당히 해서는 안 되겠군.

마기를 온몸에 두른 닉스 엘가시아.

이미 사람의 외형이 아닌, 그저 검은 물질로 온몸이 뒤덮인 이형의 존재가 되어 있었다.

“아예 마인이 되어 버린 건가.”

마인.

현재 녀석의 꼴에 가장 어울리는 단어였다.

녀석은 지금껏 봐 왔던 수많은 마인들보다도 더더욱 ‘마인’이라는 단어에 근접했다.

- 곧 끝내 주마. 네 녀석의 피를 축배로 삼겠다. 마계 부활의 신호탄이 되어라!

녀석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아까까지만 해도 평범한 인간이었던 그는, 이제 짐승이 되어 있었다.

치이이잉!

녀석의 손톱과 맞닿은 언노운의 검날이 비명을 질렀다.

그와 동시에 나는 손목이 매우 저린 것을 느꼈다.

정면으로는 녀석의 힘을 감당할 수 없었다.

“크윽…….”

힘의 차이가 너무 극명했다.

이대로는 방법이 없었다.

‘세이피어의 부적을 써야 하는 건가.’

‘세이피어의 부적’은 단 일회용이었다.

사용하게 되면 확실히 엄청난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되지만, 만약 3분 안에 승부를 보지 못한다면 그대로 의식을 잃고 쓰러질 것이다.

따라서 최후의 최후까지 아끼고 싶었다.

일단은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최대한 녀석의 공격을 막아 내는 것뿐이었다.

채애애앵!

또다시 검과 녀석의 손톱이 부딪혔다.

막아 내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이제는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할 때였다.

그리하여 세이피어의 부적을 발동시키려던 찰나,

우우웅―

골드버그의 회중시계에서 빛이 새어 나왔다.

“왜 갑자기 이러는 거지……?”

다만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눈앞의 괴물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데도 급급했다.

그런데,

- 끼룩!

갑자기 골드버그의 회중시계에서 매기가 튀어나왔다.

분명 따로 소환한 적도 없는 녀석이 갑자기 튀어나오니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어떻게 나온 거야?”

- 끼루욱!

녀석의 모습은 평소의 밝고 명랑한 표정이 아니었다.

한없이 진지하고 비장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우우웅―

매기의 솜사탕 같은 하얀 몸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펑―

둘로 갈라졌다.

그리고,

우우웅―

펑―

둘로 갈라진 매기가 또다시 넷으로 갈라졌다.

“이게 뭐야…….”

- 또 무슨 꿍꿍인 거냐!

닉스는 계속해서 분열하는 매기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나에게 달려들었다.

그런데,

- 끼룩!

분열한 매기들, 솜사탕 무리들이 그 앞을 막았고,

곧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 이, 이게 어떻게 된.

그의 몸을 둘러싸고 있는 칠흑의 어둠.

그것과 매기의 몸이 맞닿은 부위가 사라졌다.

“설마…….”

나는 그것을 보고 깨달았다.

매기의 숨겨진 능력.

그것은 바로 ‘마기를 흡수하는 능력’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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