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화
퍼엉―!
퍼어엉―!
매기는 계속해서 분열해 나갔다.
그와 동시에 수많은 솜사탕들이 공간을 가득 메웠다.
닉스 엘가시아는 눈앞에서 일어나는 광경에 몹시 당황스러운 듯했다.
- 마기를 흡수하는 능력이라니… 말도 안 된다!
닉스가 허탈하게 내뱉은 말을 들은 나도 그의 의견에 동의했다.
애초에 매기에게 이런 능력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런 전승이 있었던가.”
원래 세계에서도 윌 오 위습이 마족의 천적이라는 설정을 본 기억이 있었다.
수만 마리의 위습이 한데 뭉쳐 마족의 왕을 상대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
그럼에도 저 무해해 보이는 솜털 모양의 도깨비불이 마기를 흡수한다는 어마어마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믿을 수 없었다.
정말 상상치도 못한 상황인 것이다.
- 크아아아아!
닉스는 울부짖으며 온몸에 달라붙는 위습들을 떨쳐 내려고 팔을 저었다.
그리고 녀석의 거센 움직임에 위습들은 힘없이 나가떨어졌다.
애초에 위습 자체에 대미지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저 날아다니는 하얀 솜사탕은 힘없이 내동댕이쳐지고, 다시금 쪼르르 날아가 달라붙어 마기를 흡수하고를 반복할 뿐이었다.
다만 효과는 확실했다.
위습이 닿는 부위는 마기가 희미해졌다.
아니, 아예 소멸하는 것으로도 보였다.
닉스의 몸에서도 계속해서 마기가 뿜어져 나와 몸을 뒤덮고 있었지만, 흡수당하는 양이 더 많아 위습이 닿는 부위는 결국 녀석의 흰 살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다가 이내 언노운에 검기를 머금었다.
내가 할 일은 명확했다.
위습이 녀석의 마기를 흡수했을 때, 드러난 녀석의 맨몸을 베어 내는 것.
그리하여 녀석을 막아 내는 것.
그것이 지금 당장 내게 주어진 숙명이었다.
다만, 살짝 망설여지는 이유가 있었다.
애초에 녀석을 베어 내려면, 녀석의 몸을 감싸고 있는 매기를 함께 베어 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언노운의 대미지에 매기가 함께 소멸할 리스크가 있는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러던 중, 매기가 이런 내 망설임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 끼룩!
수없이 생성되고 있는 매기 중 하나가 나를 바라보았다.
녀석은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이미 각오는 되었다는 건가.”
녀석의 눈빛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매기는 애초에 죽음을 각오하고 닉스 엘가시아를 상대하고 있는 것이다.
“고마워.”
나는 서서히 언노운을 들었다.
그리고 닉스를 베어 낼 준비를 했다.
여기서 더 시간을 지체했다가는 타이밍을 놓칠 수도 있었다.
저 녀석이 저렇게까지 각오한 모습을 보여 줬으니, 나도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해야 마땅했다.
닉스는 여전히 솜사탕 무리에 둘러싸여 손을 허우적대고 있었고, 그의 몸은 이미 마기가 전부 걷혀 맨살이 드러나고 있었다.
“후우…….”
나는 길게 심호흡을 내쉰 뒤,
촤아아아아악!
그대로 닉스를 베어 냈다.
콰과과과광!!
한바탕 거센 흙먼지가 일렁이고 보이는 것은 알몸으로 쓰러져 있는 닉스 엘가시아였다.
녀석의 몸에서는 더 이상 마기가 감지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은 매기도 마찬가지였다.
“매기…….”
이렇게 될 줄은 검을 휘두르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다만,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골드버그의 회중시계에 마나를 불어 넣었다.
그러자,
- 파르.
- 푸르으.
두 녀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매기는 역시 보이지 않았다.
“얘들아…….”
나는 녀석들을 말없이 껴안았다.
- 파르?!
- 푸르으으!
내 품속으로 안긴 두 녀석은 처음에는 반항하며 몸을 비틀어 대었다.
그러나 이내 저항 없이 받아들였다.
곧 매기의 부재를 눈치챈 모양이었다.
- 파르…….
- 푸르으…….
“미안… 미안해.”
다만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매기가 바란 선택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닉스 엘가시아의 몸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뭐…야? 아직 쓰러진 게 아닌 건가?”
나는 포옹을 푼 뒤 다시금 언노운을 닉스를 향해 겨눴다.
파르와 푸르도 이내 닉스 쪽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때,
- 끼룩!
들려오는 반가운 목소리.
그러더니 이내 닉스 엘가시아의 등 아래에서 하얀 솜사탕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뭐야… 너 살아 있던 거였어……?”
- 끼루욱!
이내 나에게 날아와 얼굴에 몸을 비벼 대는 매기.
나는 그런 녀석을 거세게 끌어안았다.
품 안에서 보드라운 솜털의 감촉이 느껴졌다.
“꼼짝없이 죽은 줄 알았잖아.”
- 끼룩! 끼룩!
매기가 골드버그의 회중시계에서 소환되지 않았던 이유는, 애초에 소멸되지 않고 살아 있었기 때문인 모양이었다.
나는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한동안 매기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매기 또한 말없이 입을 헤 벌리며 나를 올려다봤다.
그러더니 이윽고 품에서 벗어났다.
- 끼룩!
매기는 닉스 엘가시아 쪽을 가리켰다.
아마도 쓰러진 닉스 쪽을 경계하라는 의미인 것으로 느껴졌다.
“그래, 확인해야겠지.”
나는 곧바로 누워 기절해 있는 닉스를 향해 걸어가서 생사 여부를 확인했다.
가슴에 손을 얹자 희미한 맥박이 느껴졌다.
녀석은 아직 죽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커억…….”
녀석이 갑자기 토사물을 토해 내더니 몸을 움찔거렸다.
의식마저 되찾은 모양이었다.
녀석은 정신을 되찾자마자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 어떻게 된 거지?”
“어떻게 되기는 이제 다 끝난 거지.”
감지 마법으로 녀석의 몸을 훑었지만, 녀석의 몸에서는 더 이상 마기가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녀석이 지니고 있던 모든 마기가 아까 전 일격으로 전부 소멸한 것이다.
물론 다시 생성될 수도 있겠지만 당분간은 그럴 일이 없을 것으로 보였다.
“젠자아아앙!”
녀석은 누워 있는 채로 크게 절규했다.
입가에는 토사물이 범벅이었고, 벌거벗어 드러난 몸은 뼈가 드러날 정도로 앙상했다.
그야말로 비참한 모습이었다.
나는 그런 그를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동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차마 눈 뜨고 보지 못할 처참한 광경이었기 때문이었다.
“아쉽게도 너의 야망은 여기서 끝이야.”
마계의 문을 열어 다시금 마족의 지배를 받는 세계를 만들려는 녀석의 야욕.
그 허망한 꿈은 이로써 결말을 맞이한 것이다.
“아니, 아직이다…….”
“아직은 무슨, 이제 네 몸에는 더 이상의 마기가 없다고.”
“젠자아앙!”
“어떻게 이런 녀석이 탄생했는지 원.”
녀석은 분명 엘가시아의 자식이었다.
게다가 제이드의 형이었다.
그럼에도 녀석은 가족과 동료보다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이계의 존재를 택했다.
고작 같은 피가 흐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정말 다행이네. 네 녀석의 그 터무니없는 계획이 좌절돼서.”
“아니, 이 세계는 마족의 지배를 받아야 마땅하다.”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건가. 두 세계는 말이야, 지금 이대로가 맞는 거야. 애초에 인간이 없다고 해서 마족이 멸하는 것은 아니잖아? 만약 그게 맞다면 진작에 마족은 멸망했겠지.”
결국 이대로도 두 세계는 양립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그러나 마계의 문이 열려 두 세계가 하나가 될 경우, 인간에게는 끔찍한 지옥이 펼쳐지게 된다.
이 세계는 지금 이대로 유지되는 게 마땅한 것이다.
“그럼, 슬슬 끝내 볼까.”
“어쩔 셈이지……?”
“어쩌기는, 이제 넌 감옥에 갇혀서 평생을 그곳에서 썩겠지. 앞으로 너는 네가 그토록 바라던 마족의 삶과는 거리가 먼, 어쩌면 인간과도 거리가 먼, 수감자의 인생을 살게 될 거야. 뭐, 어떻게 보면 네가 원하던 것일 수도 있겠네. 어쨌든 평범한 삶은 아닐 테니까.”
“웃기는 소릴 하는군.”
“마지막까지 기세는 좋네.”
녀석은 이미 마기를 잃고 더 이상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다.
따라서 더 이상의 변수는 없어 보였다.
다만, 녀석의 태도는 아직 지지 않았다는 느낌을 물씬 풍겼다.
따라서 방심하지 않으려는 나는 서둘러 큐브부터 회수하고자 했다.
큐브만 분리한다면 변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치지지직―
갑자기 단상 위에 놓인 두 큐브에 스파크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뭐지?”
나는 갑작스레 일어난 변화에 서둘러 큐브를 분리하고자 했다.
그러나 두 큐브는 거센 마나 장막으로 둘러싸여 있어, 손을 집어넣을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그 마나의 근원은 큐브 자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촥!
촤라라락―
어느새 하나가 된 큐브가 스스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큐브를 맞추는 듯한 느낌이었다.
“젠장.”
나는 급하게 언노운을 들고는 큐브를 향해 내리쳤다.
그러나 검기를 머금은 언노운조차 큐브를 뚫어 내진 못했다.
“크하하하!”
갑자기 몸을 비틀며 웃어 대기 시작하는 닉스 엘가시아.
녀석은 자신의 몸이 맨몸인 것은 아랑곳하지도 않고 바닥을 구르며 웃고 있었다.
“말하지 않았나? 아직이라고! 아니, 이제 시작이야!”
나는 녀석의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내가 해야 될 것은 단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팟―
나는 곧바로 녀석을 향해 점멸을 사용한 뒤,
푸욱―
그대로 언노운을 녀석의 배에 찔러 넣었다.
배가 언노운의 마나 검날에 꿰뚫린 닉스는 엄청난 피를 토해 냈다.
그러나 큐브는 멈추지 않았다.
“설마…….”
애초에 마계의 문을 여는 조건은 엘가시아의 피 내지는 목숨.
그리고 이 녀석 또한 엘가시아였다.
커억―
녀석은 한바탕 피를 쏟아 내고는 그대로 즉사했다.
그리고,
위잉위잉위잉위잉―
엄청난 에너지가 지하 공간을 가득 메웠다.
그 커다란 굉음에 나는 반사적으로 두 귀를 막았다.
그리고 지하 공간 벽 너머로 보인 것은.
“이게… 대체…….”
다름 아닌 마계였다.
마치 어렸을 적 어렴풋이 ‘지옥’을 생각하면 떠올렸던 풍경.
그러한 풍경이 벽 쪽에 연결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그것이 마계라는 확신이 든 것은 그곳에 있는 ‘마족’들이었다.
마찬가지로 ‘악마’ 하면 떠올릴만한 모습을 하고 있는 녀석들.
그들은 벽 너머에 있는 나를 발견하자 갑자기 매우 기괴한 웃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 끼익?
- 끽끽끽!
- 끼에에에엑!!
그리고 마치 박쥐 날개 같은 날개를 펼치더니 벽 너머를 통과해 일제히 이곳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젠자아앙!”
나는 젖먹던 힘을 내서 언노운에 검기를 응축시켰다.
이미 대부분의 마나를 소모하여 체력이 한계였다. 그럼에도 나는 언노운에 기어코 검기를 발산시켰다.
날아오는 것은 수백.
아니, 수천.
아니 수만 마리로 보이는 마족들.
저 녀석들을 이곳에서 막아 내지 못한다면 꼼짝없이 이 세계는 멸망한다.
즉 이 자리에서 녀석들을 막아 내야 하는 것이다.
나는 날아오는 마족들을 향해 언노운을 휘둘렀고,
콰아아아아앙!
검기는 그대로 박쥐 같은 악마들을 삼켰다.
다행히도 공격은 들어가는 모양이었다.
다만, 숫자가 문제였다.
게다가 저 녀석들이 전부가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아마 지금 날아오는 녀석들은 마족들 중에서도 최하급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녀석들 중 ‘진짜’는 아직 마계와 인간계가 연결된 것을 발견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물러날 수 없었다.
아니,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나는 더 이상 생각하지도 않고 품 안을 뒤적였다.
그리고 ‘영웅’으로 변신하게 해 준다는 ‘그린월드의 사탕’을 삼켰다.
동시에 강렬한 하얀빛이 내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