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온몸을 강렬한 빛이 휘감았다.
잠시 후, 그 찬란한 빛이 걷히자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내 몸을 확인했다.
“뭐가… 변한 거지……?”
분명 ‘영웅으로 변신’시켜 준다는 그린월드의 사탕을 삼켰었다.
그러나 딱히 외형적으로 바뀐 것은 확인할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온몸에서 마나가 샘솟는 게 느껴지고 있었다.
지금의 상태는 최상의 컨디션, 아니 기존보다도 더욱 강렬한 마나가 느껴지는 듯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마나는 회복했으니까.”
아까까지만 해도 전부 소진된 마나는 ‘그린월드의 사탕’을 사용함으로써 재충전됐다.
따라서 이제는 이 넘치는 마나를 다시 활용해야 할 때였다.
나는 곧바로 언노운의 검날에 최대 출력의 마나를 실어 넣었다.
그리고 날아오는 악마들을 향해 휘둘렀다.
콰과과광!!
검기는 엄청난 광음과 함께 폭발하였고, 벽 너머로 넘어오려는 악마들은 맥을 못 추고 쓰러졌다.
그러나 녀석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벽을 넘기 위해 날아들었다.
점차 거리가 가까워지니 녀석들의 외형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하나같이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기괴한 얼굴들이었다.
“…정말 엘가시아 님이 반인 반마가 맞는 건가.”
사람의 외형에 가까운 엘가시아와는 달리, 녀석들은 사람보다는 괴물에 가까웠다.
아니, 어쩌면 ‘마물’에 가깝다고도 볼 수 있었다.
콰과과과광!!
나는 또다시 언노운을 휘둘렀다.
녀석들이 단 한 마리도 넘어오지 못하게 꼼꼼히 확인하며 쉴 새 없이 언노운의 검기를 날렸다.
“젠장, 끝도 없네.”
이래서야 녀석들을 전부 처리하기 이전에 내 몸의 마나가 고갈되는 게 먼저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200년 전 마계 대전의 영웅들도 녀석들을 완전히 처리하진 못했다.
그저 봉인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런 마족 전체를 나 혼자 상대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래도, 이곳에선 단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다.”
여기서 내가 쓰러지면 결국 이 세계는 파멸이다.
나는 쓰러지지 않아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었다.
“흐아아아압!!”
나는 기합을 내지르며 계속해서 녀석들을 베어 나갔다.
조금은 손쉽게 제거되는 마족 무리들.
그러나 곧 기세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저건……!”
벽 너머에 보이는 새로운 존재들.
고래 같은 외형의 마족도 있었고, 거대한 문어 형태의 마족도 있었다.
마치 심해어의 형상을 띄고 있는 듯했다.
방금 전까지 날아오던 마족들과는 다른, 상위 마족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림도 없다!”
콰과과과광!!
나는 또다시 언노운을 휘둘렀다.
그런데,
“공격이… 막혔어……?”
녀석들, 상위 마족들은 저마다 배리어를 두르고 있어 언노운의 공격을 손쉽게 막아 냈다.
그리고 곧 녀석들은 기괴한 미소를 히죽 지어 보이더니 서서히 벽 너머로 넘어오려 하고 있었다.
새빨간 공간 안에서 날아오는 거대한 고래와 문어, 그리고 기타 마족들.
그야말로 지옥도의 풍경이었다.
“젠장.”
어쩔 수 없었다.
언노운의 검기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면 직접 처리하는 수밖에.
나는 왼쪽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세이피어의 부적을 발동시켰다.
파아아아아아―!!
동시에 온몸에서 하얀 불꽃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솟구치는 힘.
팟―
나는 그대로 점멸을 사용해 벽 너머로 넘어갔다.
그리고,
촤아아아악!
거대한 고래 형태의 마족을 베어 냈다.
“휴우.”
나는 한숨을 돌리며 두 동강 난 거대 고래를 바라보았다.
단면은 깔끔하게 잘려 있었고, 녀석은 이미 숨을 거둔 지 오래였다.
그럼에도 살짝 아쉬움을 느꼈다.
“이 정도로는 턱도 없는데.”
현재 나는 ‘그린월드의 사탕’과 ‘세이피어의 부적’ 두 개를 전부 사용한 상태.
따라서 강한 화력을 낼 수 있는 게 당연했다.
다만, 방금 전 고래를 베어 냈을 때의 느낌이 시원치 않았다.
온 힘을 다한 상태인데도 버거움을 느끼면, 남은 마족들을 전부 상대하기란 무리일 법도 했다.
그러나,
팟―
나는 멈추지 않고 또다시 점멸을 사용하여 거대 문어를 베어 냈다.
그 뒤로 이어지는 거대 아귀, 거대 해파리, 각종 심해동물의 외형을 띤 거대한 마족들까지.
나는 지치지 않고 차례차례 베어 냈다.
다만, 녀석들이 끊임없이 벽 너머에서 튀어나올 뿐이었다.
아무래도 녀석들, 마족이라는 존재는 단순히 일개 군단으로 끝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미 시간은 흐르고 어느덧 ‘세이피어의 부적’의 한계 시간이 가까워졌다.
의식이 흐릿해지고 점차 시야가 희미해져 갔다.
나는 피가 날 정도로 혀를 깨물며 의식을 놓지 않는 것에 집중한 뒤, 계속해서 녀석들을 베어 냈다.
그런데,
“저건… 또 뭐야…….”
이번에는 벽 너머에 완벽히 인간에 가까운 녀석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숫자는 대략 일곱 명 정도.
동물의 외형도, 박쥐 모양의 날개도 없는 완벽한 인간의 외형들.
유일하게 사람과 다른 점이라고는 거대한 마기를 풍기고 있다는 것이었다.
“저 녀석들이… 최종 보스라는 건가…….”
최종 보스.
그야말로 어울리는 명칭이었다.
놈들은 여유롭게 미소를 지은 뒤 벽 너머로 터벅터벅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 장면을 목격한 순간, 본능이 경고했다.
저 녀석들이 넘어오면 이 세계는 끝이라고.
“크읏.”
이미 입가에는 피가 주루룩 흐르고 있었다.
의식을 어떻게든 잃지 않기 위해 무리하고 있었지만, 이젠 한계에 도달한 것이다.
나는 곧 판단해야 했다.
어떻게든 방법을 떠올려야 했다.
“저 녀석들을… 어떻게 해야…….”
이미 몸과 정신이 한계였다.
게다가 방금 상대했던 거대 괴수들보다도 저 인간 형태의 마족들이 훨씬 강할 게 분명했다. 이대로는 도저히 돌파구가 보이지 않았다.
“끝인… 건가.”
그 순간.
머릿속에 주마등이 스쳤다.
갑자기 원래 세계의 일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평범하게 유치원을 다니고, 초등학교를 다니고, 중학교 고등학교를 넘어 대학교를 다니고.
군대를 다녀오고, 알바를 하고.
그러한 평범한 일상.
‘왜, 갑자기.’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풍경에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 기억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또다시 장면은 넘어가서 게임을 하는, 나아가 ‘아카마’를 하는 장면까지 도달했고, 어느덧 장면은 ‘아카마’로 넘어온 그 시절의 나를 보여 주었다.
처음 입학하게 되어서 여러 가지 강의를 들었던 것.
루비 버밀리온, 달시 세이피어 등등을 만나 교류를 했던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캐서린 골드버그를 만난 것까지.
하필이면 마지막 기억은 캐서린이 나에게 고백했던 장면이었다.
왜 그 장면이 마지막 순간에 떠올랐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는 과거의 기억들 속에서, 어쩌면 지금 상황을 타개할 힌트를 찾은 것 같기도 했다.
‘설마 이것도 세이피어의 부적의 영향인가.’
물리적인 시간이 멈추고 오로지 정신만이 활발하게 생각에 잠기는 것.
이것은 ‘초인’의 영역에 가까웠다.
찰나의 순간 이러한 경지에 도달한 것은 역시나 ‘세이피어의 부적’의 영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됐건, 이젠 알겠어.’
나는 이윽고 눈을 떴다.
역시나 내가 눈을 감은 시점과 별반 다르지 않은 풍경이 펼쳐졌다.
여전히 원래 있던 자리에서 걸어오고 있는 일곱 명의 최상위 마족들.
나는 그런 그들을 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입가에 피비린내가 진동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리고 곧바로 큐브가 놓인 단상으로 점멸을 사용했다.
팟―
그런 뒤.
한 손은 목에 걸려 있는 ‘오팔 목걸이’에, 또 다른 한 손은 큐브가 뿜어내는 거대한 마나 장벽에 집어넣었다.
일말의 주저함도 없는 신속한 동작이었다.
동시에,
콰아아아아아아!!
거대한 에너지가 내 손을 타고 몸으로 들어와 다시금 목걸이 안으로 빨려들어 갔다.
그리고 서서히 벽이 닫히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했던 최후의 방법이 바로 이것이었다.
오팔 목걸이, 처음 이곳에 와서 얻게 된 최초의 아이템이자 지금껏 나름 유용하게 사용했던 아이템.
무려 마나를 일시적으로 1회 흡수할 수 있다는 엄청난 능력의 아티팩트였다.
애초에 오팔 목걸이는 예전에 제이드의 거대한 마나도 흡수한 전적이 있었다.
따라서 그 크기와 관계없이 마나를 흡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었고, 결국 그 생각이 제대로 들어맞은 것이다.
“크으으으으!”
다만, 문제는 큐브가 뿜어내는 마나의 양이 상상 이상이라는 것이었다.
애초에 봉인을 풀고 마계의 문을 열 정도이니, 제이드의 마나 방출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크으으아아아아!!”
몸이 타들어 가는 것이 느껴졌다.
큐브에서 나온 마나가 왼손을 타고 흘러 내 몸 안을 헤집어 놓고, 다시금 오른손을 통해 오팔 목걸이에 흡수된다.
그렇게 계속해서 마나의 격류는 끊임없이 이루어졌다.
온몸이 찢어질 듯한 통증.
그럼에도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시야에는 닫혀 가는 벽이 들어왔고, 그 벽 틈 사이로 당황한 듯 보이는 마족들의 표정이 보였다.
“크으으으… 아하하하!”
고통 속에서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대로 몸이 팽창해서 터질지도 모른다.
온몸이 과부하로 인해 방전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는 웃었다.
지하 공간의 마계와 연결된 벽은 서서히 닫혀 갔다.
그리고,
콰아아아아앙!
마침내 굉음과 함께 마계의 문이 온전히 닫혔다.
마족들은 결국 한 명도 빠져나오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그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목걸이… 애초에 말이 되지 않는 성능이잖아……?’
오팔 목걸이에 붙어 있던 옵션.
‘마나를 1회 흡수합니다.’라는 별거 아닌 능력.
다만 그것에 제한이 없을 때, 효과는 말도 안 되게 강력하다 볼 수 있었다.
‘어떻게 이런 아이템을 얻게 된 거지……?’
그것도 ‘오팔 목걸이’를 얻은 것은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때에는 그다지 의문을 갖지 않았었다.
애초에 이 세계가 반쯤 게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렇다면 딱히 이 정도의 사기적인 옵션이 달려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었으니까.
그러나 지금에 와서 보니 오팔 목걸이의 성능은 가히 이 세계의 인과율을 거스를 정도라고 볼 수 있었다.
이 아이템을 나에게 준 것이 시스템을 창조한 다프네 브륀힐드와 지크 버밀리온일 리는 없었다.
애초에 시스템 자체도 제한을 푸는 것일 뿐, 없는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렇다면 이 아이템을, 고작 아카데미 내부에 있는 작은 던전에서 발견할 수 있게끔 한 사람은 도대체 누구인가?
‘진짜 신이라도 있는 건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쿠우우웅!
이윽고 벽은 완전히 닫혔다.
그리고,
쩌저저적―
물방울 모양의 새하얀 오팔 목걸이가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이내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그리고,
털썩.
온몸의 마나를 모두 소진한 나도 마치 줄 끊어진 인형처럼 그대로 쓰러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