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의 무속성 마법사-175화 (175/175)

175화

꿈을 꾸었다.

평범한 대한민국의 남자, 이도형.

그런 내가 갑자기 게임 속으로 들어가서 마법사가 되었고, 아카데미의 학생이 되었다니.

게다가 그곳이 사실은 게임 속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이세계였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지.’

더더욱 말이 안 되는 것은 그곳에서 내가 수십만 개의 매직 미사일을 생성하였고, 한 번 베면 공간을 파괴하는 검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수많은 친구와 동료들과 함께했다니.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꿈, 그래 꿈일 뿐이야.’

애초에 나는 보잘것없는 사람이었다.

성적도 그럭저럭이고 교우 관계도 원만하지 못해 대학교를 휴학하고 방구석에서 게임만 하는 그런 하찮은 사람.

게임에 소질이 있다고는 하나 남들보다 조금 잘할 뿐, 프로게이머를 할 정도도, 그걸로 밥을 먹고 살 정도도 아닌 그런 사람.

그게 나였다.

그런 내가 이세계의 멸망을 막기 위해 흑막과 맞서 싸우고 최종적으로는 마계를 막아 내다니.

그래서야…….

‘마치 영웅 같잖아.’

영웅.

현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어쩌면 게임 속에서만 볼 수 있을 법한 그런 존재.

내가 했던 모든 행동들이 전부 ‘영웅’에 걸맞다고는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그 세계의 사람들은 나를 영웅이라고 칭송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잠시만.’

어쩌면 칭호만 그런 게 아니라 진짜 영웅이 맞을지도.

생각해 보니 꿈에서 ‘영웅으로 변신시켜 주는 사탕’ 같은 걸 삼켰던 기억이 있었다.

‘그걸 삼켜도 아무 일도 없었지. 뭐였더라. 그린월드 같은 이름이었었는데.’

‘그린월드의 사탕.’

이제 기억이 났다.

나는 분명 ‘그린월드의 사탕’을 삼켰었다.

그러나 내 외형은 그대로였었다.

그건 아마도…….

‘내가 영웅이라는 건가.’

이제는 알 것 같았다.

‘가만, 그럼 이제 그 세계는 어떻게 되는 거지?’

물론 꿈일 뿐이다.

그런데, 이제 그 이후의 세계는 어떻게 되는 거지?

너무 궁금했다.

그리하여 나는 눈을 감고 좀 더 꿈을 꾸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문득 깨달은 사실이 있었다.

‘여긴, 어디지?’

눈을 감는다, 뜬다의 감각만 있을 뿐.

내 몸은 실체가 없었다.

그저 아무것도 없는 무의 공간에 있을 뿐이었다.

나는 지금 생각하고 있다.

고로 존재하는 것은 맞다.

다만 내 실체와 형체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누구지?’

갑자기 혼란스러워졌다.

실체가 없는 나는 누구? 누구의 꿈을 꾸었던 거지?

한참을 고뇌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아 버렸다.

‘이곳은 나의 의식 속.’

반대였다.

이곳이 허상이었고,

꿈이라고 생각한 그곳이 현실이었다.

이곳은 단지 아무것도 없는 무의 공간, 내 무의식의 세계일 뿐이었다.

아마도 꿈속의 영웅 ‘제로’, 아니 ‘나’는 마지막 방전 이후로 이곳으로 오게 된 것일 테지.

현재 내가 어떤 상태인지, 어떻게 되어 가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건 있었다.

‘나는…….’

마족을 막아 낸 영웅.

‘…제로다.’

* * *

“커어어억.”

거칠게 기침을 토해 냈다.

입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올 것 같은 느낌과 목이 간질거리는 감각 때문이었다.

다만, 다행히도 입에서 무언가가 나오지는 않고 그저 느낌뿐이었다.

“제로! 일어났어?!”

귓가에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

왠지 익숙했다.

흐릿한 시야를 들어 초점을 맞추자 금발 머리가 보였다.

좀 더 눈꺼풀을 들자 이내 제페토 골드버그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일어나자마자… 보는 얼굴이 너라니…….”

물론 녀석의 나를 생각하는 마음은 기특하나, 조금 실망인 감은 없지 않아 있었다.

뭔가 다른 장면을 기대한 것일 수도 있겠다.

슬쩍 주위를 둘러보자 어두운 병실 안을 달빛이 비추고 있었다.

병실 안에는 제페토 골드버그밖에 보이지 않았다.

“네 녀석 얼마나 쓰러져 있었는지 아나? 꼼짝없이 죽은 줄 알았다!”

“…쓰러져 있는 건 익숙하긴 한데. 그래서 얼마나 됐는데?”

“세 달. 무려 세 달이나 쓰러져 있었다고!”

“세 달이라고……?”

최장 기록이었다.

이렇게 오래 쓰러져 있었던 건 처음이었다.

그러니 그 요상한 꿈도 꾼 거겠지.

잠시만, 그러고 보니 지금 내가 얼마나 오래 정신을 잃고 있었는지의 여부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마족은, 연합은, 전쟁은 어떻게 된 거야.”

이렇게 태평하게 병실 안에 누워 있는 걸 보니 보나 마나 결과는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그리고 역시나 예상은 들어맞았다.

“전쟁은 이미 종식되었다. 네 녀석이 성공적으로 마계의 문을 봉인해서 마족은 단 하나도 이곳으로 넘어오지 못했고, 블랙잭은 모조리 마경의 지하 감옥에 구속되었다. 마법부 측도 세뇌를 전부 푼 모양이고.”

“그래……? 다행이네.”

바라던 결과였다.

목숨을 바쳐 가면서까지 쟁취하고자 했던 평화가 드디어 찾아왔다.

나는 상쾌한 느낌에 크게 기지개를 켰다.

오랜 시간 동안 누워 있어 몸이 말을 안 들었지만, 팔다리가 전부 붙어 있는걸 확인하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침대 아래로 시선이 갔다.

그곳에는 침대 옆부분에 기대어 꾸벅꾸벅 자고 있는 캐서린 골드버그가 보였다.

“뭐야, 있었잖아.”

그녀를 확인하자 입꼬리가 나도 모르게 올라갔다.

아무래도 상태를 보니 내가 깨어날 때까지 이곳에서 줄곧 있었던 모양이다.

왠지 캐서린의 달빛에 비친 새하얀 피부를 보니, 마족과 대치했을 때의 주마등이 다시금 떠오르는 것 같기도 했다.

“아무튼, 일단은 푹 쉬어라. 밤도 늦었고, 내일부턴 쉴 틈이 없을 테니.”

“응?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쉴 틈이 없다니?”

“그건…….”

뭔가 내키지 않는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는 제페토 골드버그.

“내일 되면 알겠지.”

* * *

다음날.

알고 보니 내가 누워 있던 곳은 마경의 의료 시설이었다.

눈을 뜨니 제페토와 캐서린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마경의 직원으로 보이는 여성이 나를 안내했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그녀의 뒤를 따랐다.

“어디로 가는 거죠……?”

“가 보시면 알게 될 거예요.”

그리고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높은 단상이었다.

그리고 아래로 보이는 것은…….

- 와아아아아아!!

광장에 모여 나를 올려다보는 수많은 사람들이었다.

그곳에는 익숙한 사람들도, 그리고 처음 보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이건…….”

나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조금 머쓱해져 뒷머리를 긁을 뿐이었다.

그러자 같이 단상 위에 올라와 있던 히로빈 그린월드가 다가오더니 마이크를 쥐고 소리쳤다.

- 소개합니다! 블랙잭을 처단하고, 마족과 홀로 맞서 싸우며, 종래에는 마계의 문까지 재봉인시킨 새로운 시대의 영웅, 제로입니다!

“와아아아아아!”

“새로운 시대의 영웅! 제로!”

“제로! 제로! 제로!!”

“우와아아아아!!”

나는 몰아치는 그 엄청난 에너지에 살짝 얼떨떨한 미소를 지었다.

“하하…….”

거대한 스크린에 비치는 영상을 보니 아무래도 마지막에 닉스를 상대했던 장면이 어떤 방식으로든 복원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모양이었다.

나를 올려다보는 수많은 군중들.

그곳에는 아카데미의 동급생들도 있었고, 마경과 협회 소속 인원들도 있었고, 권좌들도 있었다.

구석에는 지크 버밀리온과 다프네 브륀힐드도 있었다.

옆에는 루비 버밀리온과 협회장 아이작 버밀리온이 있는 걸 보니 상호 간의 사정도 어느 정도 설명이 된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조금 갑작스럽긴 한데.”

만인에게 찬사받는 느낌.

군중들 앞에 서서 칭송받는 느낌.

아카데미에서도 몇 번 경험해 본 거지만, 언제나 그렇듯 새롭고 어색했다.

그래도 나름 기분은 좋았다.

“그러고 보니 내 원래 목표는 권좌였던가.”

이곳에 오게 돼서 시스템에 의해 제멋대로 토해 냈던 목표, 권좌.

그런데 지금은 권좌가 아닌, 그 이상이 되어 버렸다.

이들의 ‘영웅’이 된 것이다.

“뭐, 나쁘진 않네.”

나는 계속해서 소리치는 군중들을 향해 살며시 손을 흔들었다.

* * *

한바탕 환영회가 끝나고, 모두는 마경의 앞뜰에 마련된 장소에서 연회를 즐겼다.

이 세계의 각종 진미들이 펼쳐진 호화로운 연회.

자칫 잘못했으면 이 세계가 마족에 의해 지배될 뻔한 걸 생각하면 그다지 큰 사치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학생용으로 마련된 무알코올 칵테일을 마시며 한껏 기분을 냈다.

그리고 돌아다니며 여러 사람들과 교류했다.

연합 측의 인원들은 다행히 무사했다.

큐브를 빼앗겼던 이유는, 지크 버밀리온이 몰래 큐브를 숨겨 놓은 지하에 잠입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몇십 대의 안드로이드 자폭이 있었지만 노아가 전부 막아 냈다고 했다.

정말 괴물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회에는 꽤 많은 커플들이 보였다.

전쟁 속에 사랑이 피어난다고 하던가.

가장 당연하다 생각했던 커플은 역시나 노아와 이자벨.

둘은 이번 일이 끝나자마자, 내가 의식을 잃고 병실에 누워 있던 사이 이미 혼인 신고를 마친 모양이었다.

랑켄 교수와 이올렛 선배 쪽도 조금은 예상하고 있었던 바였다.

제이드와 샬롯 쪽은 아직이긴 하지만 눈치로 보건대 관계가 꽤나 가까워져 보였다.

물론 제페토와 루비 버밀리온은 아직이었다.

아무래도 둘 사이가 가까워지려면 여전히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뭐야, 무슨 생각해.”

그때 아텔라 교수님이 다가왔다.

잠시 의자에 앉아 쉬고 있던 나는 다가오는 아텔라 교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냥 다들 좋아 보여서요.”

“네 덕분이지.”

나는 말없이 미소지었다.

아텔라도 씨익 웃어 보였다.

“그나저나 이 세계는 역시 게임이 아닌 거지?”

“그런가 봐요. 아니, 틀림없는 현실이죠.”

아텔라 교수를 비롯한 대부분의 관련자들은 이제 내가 이세계에서 왔다는 것을 알게 된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지크 버밀리온과 다프네 측이 공개했겠지.

“그럼, 이제 너는 어떡할 거야?”

“글쎄요.”

앞으로의 계획이라니.

이 이후의 일은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그전까지는 막연히 원래 세계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쯤 되니까 이 세계에 미련이 생겼다.

나는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곧 찾는 사람을 발견했다.

검은 드레스를 입고 한껏 미모를 뽐내며 사람들과 대화하고 있는 캐서린 골드버그.

나는 그녀의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고는 중얼거렸다.

“아직은 좀 더 이곳에 있고 싶네요.”

* * *

나는 긴장되는 가슴을 졸이며 마경 병원의 분만실 앞 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제발 아무 일도 없기를 바라며 두 손을 꼭 모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와중, 옆에 있던 지크 버밀리온이 내 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블랙잭이 본거지에 쳐들어왔을 때도 이 정도로 긴장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누가 보면 마왕이라도 상대하는 줄 알겠다, 너.”

“제 자식이잖아요, 형. 당연한 거죠.”

“누군 자식 없는 줄 알겠다.”

모든 오해가 풀린 이후로 나는 지크 버밀리온과 조금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현재 지크는 다프네 브륀힐드와 함께 마경 병원에 근무하고 있었고, 내 출산 소식에 분만실을 방문한 것이었다.

“그나저나 놀랍네. 이젠 완전히 이쪽 세계 사람 다됐어.”

“벌써 5년이나 지났잖아요. 당연하죠.”

“5년 전만 해도 네가 그런 선택을 할 줄은 상상도 못 했었는데.”

5년 전, 나는 결국 이 세계에 남는 선택을 했었다.

굳이 원래 세계로 돌아갈 필요성을 못 느꼈고, 이곳에는 내 소중한 사람이 있었으니까.

다프네와 지크는 처음엔 조금 의아해했지만, 이내 내 선택을 존중해 주었다.

“아무튼 축하한다. 이젠 정말 원래 세계로 돌아갈 생각은 전혀 안 하겠네.”

원래 세계로 돌아갈 생각이라.

본인의 동족을 만나려는 일념으로 세계를 멸망시키려던 누군가가 생각나는 문장이었다.

나는 대답 없이 미소지었다.

그런데 그때, 마경 병원의 간호사가 내 이름을 호명했다.

“축하드려요, 제로 님! 남자아이예요!”

그 말을 들은 나는 헐레벌떡 분만실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산모는 무사했고, 아이도 우렁차게 우는 걸 보니 건강해 보였다.

둘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눈가가 촉촉해졌다.

간호사가 안고 있는 아이는 뭐가 그리 서러운지 계속해서 울어 대었다.

갓 태어나 머리카락은 흔적밖에 없었지만, 보아하니 금발인 듯했다.

간호사는 살살 팔을 흔들며 아이를 진정시키려 들었다.

“저 혹시… 제가 안아 봐도 될까요?”

“네, 물론이죠.”

간호사는 아이를 선뜻 내게 넘겼다.

나는 조심스레 아이를 받아 들고는 팔을 살살 움직여 아이를 진정시키려 했다.

그런데, 아이는 내 품에 안기자 거짓말처럼 울음을 그쳤다.

“어머, 아빠를 알아보나 본데요?”

“그런가요.”

내 품에 안겨 얌전히 있는 아이.

나는 아이를 내려다보며 진득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그때,

우우우우웅─

갑자기 아이에게서 강렬한 마나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처음 겪어 보는 상황에 당황하여 황급히 간호사와 눈빛을 교환했다.

간호사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나를 안심시켰다. 나는 불안한 눈빛으로 다시금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아니, 이건……?”

아이의 몸에서 무지갯빛이 찬란하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것을 보며 나는 어쩌면 새로운 영웅이 탄생한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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