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약혼은 개뿔 사업이나 하렵니다-93화 (94/141)

93화 - 짓밟다 (2)

그녀의 입술이 쪽하고 떨어졌다가 다시 진득하게 그의 입술로 다가왔다. 그녀의 혀가 그의 입술을 쓸자 그는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입을 벌렸다. 곧 말랑한 촉감이 그의 입술 사이로 들어왔다.

“읍.”

에스티아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내뱉었다. 그가 한 손으로 그녀를 들어 자신의 무릎 위에 앉혔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는 자세가 되었다. 에스티아가 두 팔을 그의 어깨에 둘렀고 두 사람의 혀는 더 진하게 얽혀들었다.

에스티아가 달래듯 그의 귓불을 살살 어루만졌다. 그러자 에버하르트가 그녀의 허리를 더 바짝 끌어안았다.

에스티아는 알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우위에 있는 건 자신이라는걸.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온몸은 걱정될 정도로 빨개져 있었다. 더군다나 그는 참기 어렵다는 듯이 신음을 잔뜩 흘리고 있었다.

“……읍 ……응…….”

아. 그가 고개를 틀면서 다시 소리를 흘렸다. 그의 입술이 아래로 내려왔다. 그는 그녀의 쇄골을 조심스레 빨았다. 에스티아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러나 에스티아는 그대로 그를 놔뒀다. 벌써부터 그가 무너져서는 이용할 수가 없으니.

그의 입술이 그녀의 목덜미로 올라와 키스를 하며 열심히 자국을 남겼다. 이러다 나중에 자국이 안 사라질 거 같아 에스티아가 살짝 어깨를 치자 그가 입술을 뗐다. 그가 말간 눈으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허락을 구하는 눈빛이었다.

그 눈빛이 뭔데 배덕감을 부추기는지. 에스티아의 마음에 뭔지 알 수 없는 지배심이 차올랐다. 자신을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던 남자를 발아래 두고 싶다는 욕구가 그녀의 전신을 덮었다.

에스티아가 이런 욕구를 느낀 건 전에도 몇 번 있었다. 민망하게도 대개 장소가 마차 안이나 남의 집 정원이었을 뿐이지. 특히 정원에서 그렇게 한 건 체스넛한테 두고두고 미안할 거 같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침실이었다. 그것도 누군가 갑자기 들어올 염려가 없는. 물론 이안이 1시간 후에 쳐들어올 거 같긴 하지만.

에스티아가 허락하듯 그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으며 쪽 하고 입을 맞췄다. 그러자 그가 그녀의 목에 얼굴을 파묻더니 그녀의 어깨에 걸쳐져 있는 드레스를 끌어 내렸다. 찬 기운에 에스티아가 흠칫 몸을 떨었다. 게다가 간지러운 촉감에 맨살에 닿자 더욱 떨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오아시스를 갓 발견한 사막의 방랑자처럼 급한 몸짓이 이어졌다. 앞에서는 그녀의 기운을 머금고, 뒤에서는 그녀를 꽉 껴안고 있는 터라 에스티아는 완전히 그 사이에 갇힌 꼴이었다.

몸을 덮치는 생경한 느낌에 에스티아가 고개를 뒤로 젖혔다. 발가락이 절로 안으로 말리고 그의 어깨를 부여잡은 손에도 잔뜩 힘이 들어갔다. 그 모습만으로도 왠지 부끄러워져 에스티아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신음을 참았다.

그의 시선이 잠시 에스티아에게로 향했다가 다시 내려갔다. 그의 입술이 다시 닿으면서 손도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그녀가 만족하지 못할까 봐 염려하는 듯했다. 그의 동작이 더 다급해졌으니까.

에스티아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 주고 싶었다. 왜냐하면 그냥 좋은 정도가 아니라 정말 미칠 정도였으니까. 그의 혀가, 손가락이, 손바닥이 그녀를 핥고 움켜쥘 때마다 절로 비명이 터져 나올 거 같았다.

“아……!”

결국 에스티아가 허공으로 신음을 토해 냈다. 그러자 에버하르트가 고개를 들더니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입술이 딱 맞닿은 상태로 그가 속삭였다.

“더 해도 될까요?”

반쯤 잠겨 있는 눈이, 뺨에 닿은 오뚝한 코가, 언제라도 자신을 덮칠 거 같은 입술이, 너무 매혹적이었다. 이 순간이 이어질지 말지는 오로지 에스티아에게 달렸지만 유혹하는 것만큼은 자신보다 그가 우위라는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에스티아는 잠시 고민했다. 여기서 그만해야 한다는 이성과 더 나아가 그를 짓밟고 싶다는 감성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혼자 고민하던 에스티아는 솔직하게 그에게 털어놓았다.

“그만할까요, 아니면 더 할까요. 더 하게 되면 내가 당신을 짓밟아 버릴지도 몰라요.”

여기서 멈추면 그가 갈증에 목말라 하더라도 괴롭지는 않을 것이다. 반대로 여기서 더 나아가면 그는 괴로울 것이다. 본능적인 쾌감에 꼼짝없이 밟힐 거고 그녀는 그걸 그대로 내려다볼 생각이었다.

“……하세요.”

하지만 그는 그 무엇도 상관없었다. 조금이라도 그녀와 함께 있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고문을 당해도 상관없었다.

“날 짓밟아 줘요, 에스티아.”

그렇게 내뱉는 것에 대해서도 일말의 후회도 느끼지 않았다. 그는 에스티아를 유혹하고 싶었다. 매달리고 싶었다. 그녀가 몸을 숙여 다시 입을 맞춰 올 때, 그는 빛을 발견한 신도처럼 그녀를 끊임없이 갈망했다.

에버하르트가 에스티아를 번쩍 들어 침대에 눕혔다. 에스티아는 끝까지 가는 걸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좋았다. 그녀의 체향이 안정제처럼 그의 몸에 스며들었으니까.

에버하르트가 에스티아의 드레스를 벗겼다. 그러고는 다시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 * *

에스티아가 눈을 비볐다. 간만에 악몽을 꾸지 않고 푹 잔 듯했다. 팔의 통증도 날이 갈수록 계속 나아져서 기분도 많이 좋아졌다. 왼쪽 팔을 쭉 뻗어 기지개를 켜던 에스티아는 순간 어제 일을 떠올리고는 얼굴을 붉혔다.

그 사람도 예상했겠지만 에스티아는 그에게 끝을 허락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에스티아는 그에게 특별한 신체적 접촉도 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그의 목에 왼손을 둘렀을 뿐, 바쁘게 움직이는 건 오로지 그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그는 황홀한 듯 쉴 틈도 없이 입술과 손을 움직였다. 에스티아도 참지 않고 소리를 흘렸다. 그럴 때마다 행복하면서도 괴롭다는 듯이 일그러지는 얼굴을 보는 게 즐거웠다. 자신에게 이런 변태적인 취향이 있나 싶어 자괴감이 들었지만, 그에게 채찍과 당근을 동시에 줄 수 있어 에스티아는 그를 제지하지 않았다.

벌어진 그녀의 입 사이로 말캉한 혀가 들어와 위아래를 쓰다듬었다. 손은 그녀의 허리 곡선을 타고 아래로 내려와 앞뒤로 바쁘게 움직였다.

-아…….

에스티아가 최후로 마지막 소리를 뱉었을 때, 그가 고통 어린 표정을 지으며 에스티아의 뺨에 입을 맞췄다.

-좋아요…… 너무 좋아요, 에스티아.

그래도 그는 어떤 불만도 입에 담지 않았다. 오로지 계속 그녀의 뺨과 입에 쪽쪽 하며 입술을 갖다 댈 뿐이었다.

에스티아는 지금 자신이 입고 있는 수면용 드레스를 내려다보았다. 이것도 어제 그가 떠나기 전 그녀가 입을 수 있도록 도와준 옷이었다. 어째 그리 자연스러운가 했더니 전에도 그녀와 이런 적이 있었노라, 하고 얘기했다.

다행히 둘은 1시간을 칼같이 지켜냈다. 이안은 1초도 넘기지 않고 방으로 들이닥쳤다. 그는 바로 두 남녀 사이에 감도는 열기를 알아챘다.

-왜 그래?

하지만 에스티아는 뻔뻔히 고개를 탁 들어 보았다. 딱히 증거가 없으니 이안도 뭐라 하진 못했다. 그저 벌겋게 달아오른 에버하르트의 얼굴만 못마땅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에스티아가 고개를 저으며 그 기억을 머릿속 한편에 미뤄 두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유난히 비가 쏟아지는 날이었다. 에스티아가 창가로 다가가 커튼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내일은 스퀘일러가 궁으로 오기로 한 날이었다. 그동안 자신은 레이첼이나 대공을 만나 로셸이 어떤 사람인지 조사할 예정이었다. 덧붙여 오랜만에 이벤다도 만날 계획이었다.

만약 그녀의 추측이 맞다면 레이첼은 로셸을 글레멘드 공작 자리에서 몰아내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에스티아를 앉히려고 한다. 아무래도 레이첼을 만나러 가야 할 듯싶었다. 분명 지금도 로셸은 에스티아를 쥐 잡듯이 찾고 있을 것이다. 하루라도 허투루 보낼 수 없었다.

“에스티아 아가씨, 조식 왔습니다.”

그때 그녀의 생각을 방해하듯 궁인이 노크를 해 왔다. 마침 어제의 여파로 배가 고팠던 에스티아는 궁인을 방 안으로 들이면서 말했다.

“오늘도 태후 폐하와 점심을 함께하고 싶은데 한번 여쭤봐 주실 수 있나요?”

“그럼요, 아가씨. 바로 전해 드리겠습니다.”

궁인은 군더더기 없는 몸짓으로 허리를 숙이더니 트레이와 함께 방에서 나갔다.

에스티아는 아침을 먹고 궁인들의 도움을 받아 외출용 드레스로 갈아입었다. 어깨선이 훤히 드러난 검은 드레스는 습한 여름에 걸맞게 시원해 보였다. 오늘은 다른 날보다 유달리 날씨가 습해 레이첼이 선물로 보냈다고 궁인이 일러 주었다.

특별한 디자인이 있는 건 아니지만 허리 쪽에 예쁜 꽃이 수놓아져 있었고, 천이 무척 부드러웠다. 허리도 딱 잡아 주긴 하지만 꽉 끼지 않아서 좋았다. 레이첼의 말에 따르면 몸이 아플 때 코르셋을 하면 괜히 몸만 더 상한다고 했다고 한다.

‘배우신 분이구나.’

에스티아는 화려한 드레스보다 오히려 이런 심플한 드레스가 좋았다. 과하지 않아서 부담스럽지 않았다. 레이첼은 어쩌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세심한 사람일지도 몰랐다.

궁인 중 한 명은 자신이 레이첼 전속 시녀라면서 뻗친 그녀의 머리를 잘 빗겨 주더니, 해바라기를 닮은 핀을 꽂아 주었다. 그러고는 손으로 짧아진 머리끝을 안쪽으로 잡아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폐하께서 오후 12시에 맞춰 별궁 후원으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전 그동안 친구 좀 만나고 와야겠어요.”

에스티아는 온화한 시녀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방에서 나왔다.

“어머.”

그렇게 두런두런 이야기를 이어 가는데 그녀가 갑자기 손으로 입을 가리며 멈춰 섰다. 그 반응에 어리둥절해져서 앞을 보니, 기사단으로 가는 복도 초입에 그가 서 있었다. 멀끔한 제복을 차려입은 채로.

“제가 맞춰 왔군요. 아이비 경을 만나러 가십니까?”

그가 해사하게 웃으며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에스티아는 놀란 마음을 숨기기 위해 고개를 홱 돌렸다. 캐롤 부인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그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

“네, 아가씨께서 아이비 부기사단장님을 만나고 싶다 하시기에…….”

“그럼, 제가 안내해도 될까요?”

그가 허락을 구하듯 에스티아를 다정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