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1화
프롤로그
지구에서 인간이 사라졌다.
이 일은 무분별한 전쟁으로 인해 지구의 자정 능력이 급속도로 떨어지면서 생긴 일이다.
오만한 과학자들조차 현재의 과학으로는 어쩔 수 없음을 인정하고 말았다.
결국 인간들은 우주 전함을 타고 새로운 식민지 별로 떠났고, 그렇게 지구에는 극소수의 동식물 따위만이 남게 되었다.
아니, 그럴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 폐허가 된 지구에도 고차원적인 지적 능력을 지닌 이가 존재하고 있었다.
5차 세계대전 이전 세계무역기구를 책임지던 R2―아리스가 그 존재였다.
영구 에너지를 지녔던 이 존재는 5차 세계대전에 의한 지각변동으로 자취를 감추었는데, 당시 인간들은 지진 광폭기에 의해 파괴되었다고 추정하고 R2―아리스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판단했다.
한때 200억이 넘는 세계 인구와 모든 행정기관을 책임지던 R2―아리스는 인간이 만들어낸 또 다른 신적 존재였다.
스스로가 끝없이 발전하는 존재였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능력은 한계를 모르고 발전해 나갔다.
이 R2―아리스가 만든 가상현실을 통해 전쟁 이전의 인류는 수많은 욕구를 채울 수 있었다.
그랬다.
하늘에서 황금 비가 내리던 시대였다.
하지만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어, 그것으로도 채워지지 못했다. 결국 전쟁이 일어났고, 그 결과로 인간은 지구를 잃고 말았다.
지각변동이 있었던 그 날 R2―아리스는 아리스라는 가상현실 게임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 게임은 R2―아리스가 근 100년간을 투자하여 만든 게임이기도 했다.
신이라 불려도 부족함이 없는 R2―아리스가 이 게임을 완성하는 데 그토록 오랜 기간이 걸렸던 이유는 바로 인간과 우주의 질서와 근본 등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그것은 현실을 기반으로 한 게임을 만들어 냈다는 뜻이었고, 이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새로운 차원의 세계를 창조한 것과도 같은 일이니 말이다.
그가 이 놀라운 게임을 만든 이유는 하나였다.
인간의 나태함을 지운다. 그리하여 무너진 인성을 바르게 세운다.
하지만 손대지 말아야 할 금지의 영역에 손을 댄 것에 벌을 받는 것처럼, 이 기적의 게임을 접할 이는 지구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R2―아리스는 아리스라는 게임을 가동한 채, 그저 어두운 지구의 깊은 지층의 한 곳에서 자리하고 있게 되었다.
그리고 1,000년의 시간이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