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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안-5화 (5/385)

야안 5화

야안은 진정 가르치는 맛이 나는 제자였다. 흔히 말하는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는 천재의 범주에 달할 만큼 머리가 활성화되었던 탓이다.

글을 열흘 만에 뗀 야안은 지금은 자신이 방이 된, 예전 베론 가한의 둘째 아들인 라운의 방에 자리한 서재의 모든 책을 반년 만에 통달하게 되었다.

베론 가한의 둘째 아들인 베론 라운 또한 머리가 비상한 편이라 다시금 준남작에 칭하는 집사의 자리에 앉을 것이라 기대되던 인재였다.

그가 보던 책들의 규모도 그렇고 수준이 낮지 않았는데 단순히 읽고 외운 것이 아니라 이해하기까지 했으니 놀라운 일이었다.

이 같은 결과를 보인 것은 단순히 그의 지혜 스탯이 올라서며 생긴 변화 때문만이 아니라, 자신에게 큰 은혜를 베푼 양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한 그의 피나는 노력 덕분이었다.

그렇게 반년간을 정신없이 공부를 한 결과 야안의 지혜 스탯 2가 올라가는 쾌거를 이루었다.

사실 초기에는 레벨 외의 방법으로 스탯을 올리기란 상당한 공을 들이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상황에 따라 여러 조건이 만족되어야 하기에 게임 시간으로 1년을 투자해도 스탯 1을 올리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한데 글을 배운 지 반년 만에 이를 이루었으니 야안이 그간 얼마나 노력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 밖에 다른 조건들이 만족되면 스탯을 올릴 수 있다.

베론 가한은 둘째 아들이 10년간 공부했음에도 끝내지 못했던 것을 반년 만에 해치워 버린 야안의 능력이 놀랍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했다. 정말 베론 가문이 다시금 준귀족에 오르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생겼다.

이로 인해 베론 가한은 어느 순간부터 우울증도 자연스럽게 사라질 뿐 아니라 마음이 편해지자 몸에 활력이 생겨 젊은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사실 야안과 베론 가한의 나이 차를 볼 때 그들 관계는 부자라기보다는 조손에 가까웠고, 야안 또한 깨끗이 씻겨보니 잘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그 또래 아이 특유의 귀여움이 있었다.

그런 아이가 자신에게 잘 보이려 이런저런 노력을 하니 나이가 든 노인은 생기 넘치는 야안의 그런 모습에 호감이 절로 가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베론 가한은 야안이 공부할 만한 책들을 구해주려고 했으나 수확 기간이 겹치면서 쉽게 몸을 빼지 못했다.

야안은 농노였기에 수확 일에 익숙했는데, 신체 능력이 일반 성인들보다 대략 두 배는 뛰어나게 된 뒤 혼자서 두세 사람 분량을 쉽사리 해치웠다. 그 모습에 마을 사람들뿐 아니라 베론 가한이 특히 크게 놀랐다.

이제 막 열 살이 된 아이의 능력이라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야안의 활약에 생각보다 빠른 시일 내 베론 가한 자경지의 밀 수확을 끝낼 수 있었고, 그제야 베론 가한은 말라 볼품없어 보이던 야안이 보기와 달리 그 근골이 범인을 훌쩍 넘어섬을 알 수 있었다.

확실히 마리가 이것저것 챙겨 먹여서 그런지 최근 들어 또래보다 못하던 그의 몸은 얼추 또래의 나이로 보일 만큼 성장해 있었다.

베론 가한은 야안의 재능이 머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면 다른 재능도 밀어주어야 한다 생각했다.

퍽, 쩌적.

집 밖에서 별 어려운 기색 없이 자기 몸 반을 넘는 도끼를 들고 장작을 패고 있는 야안의 모습을 보던 베론 가한은 쓴 미소를 머금었다.

일찍이 철이 든 모습이 기특하기도 듬직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아이의 지난 세월이 지난했음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했으니 마냥 기쁠 수만은 없는 일이다.

잠시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다 마침 딱 맞는 한 사람이 생각이 나 손을 꼽으며 날짜를 살피다 이내 서둘러 집을 나섰다.

야안은 요즘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하지만 너무 행복했기에 또한 불안하기도 했다. 벌써 베론 촌장의 양자가 된 지 반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가끔 이것이 현실이 아닌 꿈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끔 지옥 같던 농노 시절을 꿈으로 꾸었던 탓인데, 어떤 때는 밤새 꿈속에서 한참을 두들겨 맞다 식은땀에 절어 일어나기도 했다. 이능력을 받으며 자존감이 높아지긴 했지만 그 시절의 기억을 벗어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듯 보였다.

그간 읽은 역사책이나 격언을 보자면 인생은 수평축을 이루려는 저울과도 같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무슨 일이 일어나면 그만큼 반대급부의 일이 일어난다는 이론에서 파생된 것이다.

그러니 너무 행복하기만 한 그로서는 이 반대급부의 불행이 어떻게 다가오는가 싶어서 내심 겁이 난 것이다.

‘만약 그런 불행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나에게만 국한되어야 돼.’

혹시 불행이 온다 해도 그것을 자신의 은인인 양부모님과 나누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곧 마지막 장작을 쪼개던 그는 자신을 부르는 마리의 목소리에 서둘러 정리를 하고 집으로 들어섰다. 집에 들어서자 마리가 천으로 야안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책망하는 듯 말했다.

“에후, 이 땀 보렴. 장작을 패지 않아도 된다 했잖니. 밭에 일을 나가는 것도 불만이었는데.”

마리는 한창 부모에게 응석을 부릴 나이인 야안이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것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무언가를 해주고 싶고, 더 안락한 보금자리를 만들어주고 싶은데 야안은 쉽사리 기대려 하지 않았다.

그래도 지난 시간 동안 많은 노력을 한 탓에 야안은 가끔 용기를 내 그녀에게 어리광도 부리곤 했다.

어머니의 책망에 야안은 멋쩍은 표정으로 이마를 긁적였다. 그런 야안에게 마리는 작게 웃음을 흘리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더니 이내 야안을 음식이 준비된 식탁으로 데려왔다.

식탁 위에는 언제나 그랬듯 야안이 좋아하는 옥수수 수프가 자리하고 있었고, 검은 빵과 소젖으로 만들어낸 냄새 고약한 치즈도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말없이 자리를 잡고 계시는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야안의 그런 생각을 아는 듯 마리는 오늘 갓 짠 우유를 컵에 따라주며 말했다.

“조금 전 갑자기 나가셨단다. 아마도 누군가를 만나러 가신 것 같으니 조금 시간이 걸릴 듯 보이구나.”

“그렇군요. 음, 오늘 수프 맛이 좋은걸요.”

그 말에 마리는 기쁜 듯 미소를 머금는다. 두 모자지간은 만난 지 겨우 반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컸다.

야안은 그녀에게서 마을에서 있었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들으며 식사를 하는데, 그러느라 수프가 식자 그녀는 다시 한번 수프를 데워주었다.

식사를 마치고 야안은 고인이 된 첫째 형 베론 로일의 서재에서 발견된 책들을 꺼내 들었다. 책은 기사의 전설이 담긴 위인전이었다.

학사의 꿈을 꾸며 이곳 마크 벨로치 남작의 집사가 되고자 하던 둘째와 달리 베론 로일은 검에 대한 환상이 가득한 혈기 넘치는 사내였다.

그는 근골이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눈썰미가 좋아 한 번 본 것은 곧장 따라 했다. 또한 넉살이 좋아 가끔 마을에 들르는 용병들에게서 검을 배우기도 했다. 그러던 중 이곳에서 멀지 않은 나프롬 자작과의 영지전이 일어났고, 그는 지원을 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일단 한 가구당 한 명의 사내가 징집되는 것이 기본인지라 그나마 형제들 중 맏이이자 검을 수련한 자신이 가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한 탓이다.

더구나 이런 시골에서의 농사일은 그의 체질에 맞지 않았다. 이번 영지전에서 운 좋게 공을 세운다면 경비병으로 뽑힐 수 있다는 생각도 지원하는 데 한몫했다.

하지만 나프롬 자작의 배후에는 카람 백작이 자리하고 있는지라 이를 몰랐던 전대의 마크 남작은 1차 영지전에서 목숨을 잃어야 했다.

그렇게 크게 패하자 현 영주인 마크 벨로치 남작은 수도에서 공부한 바를 십분 발휘해 자작의 공격을 수비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 최종적으로 그들은 다섯 번의 영지전을 하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베론가에 사내는 촌장만이 남게 되었다.

나프롬 자작 또한 이토록 영지전이 길어질 줄은 몰랐던지라 결국 전쟁이 일어난 지 1년이 지나자 휴전을 선언했고, 차후 20년간을 서로의 영지에 발을 들이지 않기로 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그렇게 무사히 나프롬 자작의 공격을 막을 수 있었지만 마크 영지의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곡식은 거의 바닥을 치고 있었고, 무엇보다 생산력의 척도를 보여주는 남자들의 수는 전쟁 전과 비교할 수 없이 낮아졌다.

상당히 현실주의적인 마크 남작은 가문의 보물을 팔아 남자 노예를 사들여 부족한 생산력을 메꾸었다. 그리고 흉년이 드는 해는 사람들을 풀어 사내아이를 적은 돈으로 사들여 농노로 썼다.

비극적인 결과를 낳았던 영지전으로 인해 피해를 겪은 이들이 대다수라 마을 사람들은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컸다.

야안이 지금 보고 있는 책은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 황실의 비극을 막아낸 라이온 기사 위인전으로 지금도 여러 곳에서 연극을 하는 유명한 이야기였다.

흑법사가 된 현자를 막는 내용을 담았는데, 수많은 함정을 넘나들다 결국 그 이야기는 라이온 기사가 그의 심장을 벤 뒤 죽는 것으로 끝이 난다.

너무도 유명한 이야기라 대다수의 사람들은 잘 알고 있지만, 하루하루 버티기도 힘든 농노였던 야안은 처음 보는 이야기였다. 그 장대한 서사시에 그의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책장을 덮은 그는 대륙어와 다르지만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쓸 수 있는 언어를 중얼거렸다. 그는 그 언어를 신의 언어라 생각했는데, 이는 자신에게 일어난 이 모든 일이 주신 아리스의 축복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인벤토리.”

그의 말이 끝이 나기 무섭게 그의 방에 자리한 서재만 한 것이 일렁이며 투명하게 모습을 보였다. 모두 여섯 칸이 있는데 그는 이를 이리저리 실험한 결과 그것이 역사책에서 본 공간 확장 주머니와 비슷한 것임을 알았다.

아니, 어떤 점에 있어서는 그보다 그 효율이 뛰어났는데, 그 종류가 같다고 판단하는 것은 물건을 다섯 개까지 한 칸에 보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공간은 시간을 비켜 가는지라 음식을 넣었을 때나 물건을 넣을 때 썩거나 녹스는 법이 없어 보관에 용이했다. 만약 장사를 한다면 이 공간으로 인해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야안이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이런 신비한 공간을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한 누구에게 양도할 수 없어 빼앗길 위험도 없다.

그는 어리고 힘이 없었다.

예로부터 보물을 가진 자 힘이 없는 것이 죄라 했으니 그는 주위를 파멸에 잠기게 하는 대가를 받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야안이 인벤토리를 사용할 때는 아주 조심스러웠다. 자신이야 이래저래 죽어도 상관없는 하찮은 목숨이라지만 자신에게 큰 은혜를 베푼 양부모님께 피해를 준다는 것은 상상하는 것조차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그는 자신이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양부모님께도 이에 대한 말을 하지 않았다.

인벤토리 안에는 처음 열었을 때부터 마나 심법서가 한 칸을 차지하고 있었다.

//아이템 E+급(하급 마나 심법에서 성장했다.)

초급 마나 심법(아리스가 이방인들에게 주는 축복의 선물이다. 앞으로의 성장이나 선택한 직업에 따라 변화, 성장할 수 있다. 이것은 누구에게 양도할 수 없다. 단, 수련도를 마스터하면 이보다 낮은 등급의 심법을 타인에게 가르칠 수 있다.)

수련도 : 56%(수련도를 마스터하면 책을 펼치지 않아도 운기할 수 있다.)

마속 : 1라우(10초에 1씩 채워지는 마나양.)

운기 : 1한(마나를 운기하여 신체의 혈을 타고 돌며 그 응용력을 높인다. 또한 마나를 모을 수 있어 1년을 수련하면 마나 스탯 1을 올릴 수 있다.)

TIP : 해가 뜨는 시간과 노을이 지는 시간 각각 두 시간씩 운기하면 두 배 이상의 효율을 볼 수 있다.//

아리스의 아이템이 무급을 제외한 F―급에서 시작되는 것을 생각한다면 현재의 그에게 대단히 뛰어난 아이템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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