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10화
이에 검의 전문가, 고대의 말로 흔히 익스퍼트의 경지라고 하고 또한 신검합일이라고도 하며 절정에 들어섰다고도 말을 한다.
절정. 그랬다.
그야말로 인간으로서 갈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올라섰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후에 소드 마스터라는 경지가 있으나 이때부터는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자라 하여 초절정에 들어섰다 하기도 하고 인간을 넘어섰다 하여 초인이라 하기도 했다.
이 익스퍼트의 경지에 오르면 국가에서는 신분, 나이, 성별을 막론하고 기사의 작위를 내려 최소 준남작의 대우를 해주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 본래의 계급을 하나 더 올리는 것이다.
물론 그 대에 한해서이고 자작 이상은 어쩔 수 없이 다른 식으로 보상을 받고 있었다.
현시대에 존재하는 소드 마스터는 두 명에 불과했고, 야안이 살고 있는 마일드 왕국에는 익스퍼트의 기사가 100명만이 존재했다.
이를 생각한다면 이 익스퍼트의 경지에 오른 이들의 가치는 대단한 것이며 국가에서 앞서와 같은 보상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할 수 있다.
그런 경지에 올해 열두 살에 불과한 어린아이가 들어섰으니 놀라운 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야안이 최초의 이방인이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고, 그동안 노력한 것을 생각한다면 어찌 보면 빠르다고도 할 수 없다.
실제 이방인이었다면 레벨 100대에서 이루었을 일이기는 하지만 그 투자한 시간은 절반으로도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니 말이다.
야안은 지금 당장에라도 검을 빼 들고 검기를 펼치고 싶어 온몸이 근질근질했으나 참아냈다. 이는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이 오랫동안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또한 야안이 겨우 열두 살이라는 나이에 익스퍼트의 경지에 오른 것을 다른 이들이 알게 된다면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을 알았던 것도 한몫을 했다.
튀어나온 못은 두들겨 맞게 마련이고, 배후 없는 무위는 이용만 당하게 마련이다. 다행히 자신에게는 마론의 던전이라는 비밀 수련 장소가 생겼으니 그곳에서 검을 수련하면 된다.
어젯밤 번뇌를 물리침으로써 한층 성숙해진 야안에게 이런 성취감의 발휘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통, 통, 통.
곧 어머니가 식사를 준비하는 듯 도마를 두드리는 소리에 야안은 미소를 머금었다. 사실 검기를 발휘하고, 현자의 유물을 발견하는 등 기적 같은 일들이 벌어졌지만 그런 것들을 다 합한다 해도 지금 듣고 있는 소리만큼의 기적은 없을 것이다.
그는 흥얼거리며 어제 흘린 땀의 흔적을 씻으러 밖을 나섰다.
야안은 식사를 마치고 오전에는 집 안 공터에서 탈론의 수련법을 시작했다.
비록 하룻밤을 자지 못했다지만, 익스퍼트의 경지에 오르면서 신체의 모든 기능이 활성화가 되며 모든 체력이 회복된 상태였다.
이런 현상은 굳이 이번만이 아니라 예전에 최초의 이방인이라는 칭호를 얻었을 때 또는 수련 중 민첩성과 힘에서 스탯이 올라갈 때 그에 달하는 기능이 새로운 옷을 입은 듯 회복하는 현상을 몇 번이고 겪어 낯설지 않았다.
이번에는 동시에 민첩성과 힘이 2스탯이나 갑자기 올랐기에 야안은 탈론의 수련에 더욱 매진했다.
그 한계점을 한 단계 더 위로 설정하며, 미세한 신체 한 부분 한 부분에 힘을 집중하는 훈련을 했는데 이번 수련은 보통 때보다 더 긴 시간을 필요로 했다.
그 이유는 조금씩 훈련을 통해 적응되며 향상된 능력이 아니라 갑자기 늘어난 신체 능력을 완벽히 통제하기 위해서이다. 통제되지 못하는 신체는 차라리 향상되지 않은 것만 못한 것이었다.
다행히 검기를 통해 얻은 깨달음으로 인해 신체의 활용에 폭넓은 이해를 얻은 야안이었기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그는 곧 스승께서 준 검을 막대기처럼 천으로 감아 위장한 뒤 마을 공동 저장고로 움직였다. 그가 검을 막대기로 숨긴 것은 아이가 좋은 검을 들고 가는 것 때문에 혹시나 생길 사건을 막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자신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관심을 피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지역의 특성상 마을 사람들도 자신이 검을 수련한다는 것을 알지만 진검을 들 정도의 실력은 아니라 생각하고 있었다.
곧 마을 공동 저장고에 도착한 야안이 룬 문자에 손을 올리자 곧 마나를 빨아들이는 현상이 생겨났으나, 이번은 다른 때와 달랐다.
지금까지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지켜만 보고 있었으나, 이제 검기의 발현으로 인해 마나가 외부로 나가는 것을 의지로 조절할 수 있었다.
곧 동굴 속에 들어선 야안은 천을 풀어 검을 꺼내 들고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천천히 검에 마나를 유입하자 검이 진동을 하며 울음을 보이더니 무언가 검 끝에서 발현되었다. 아니, 볼 수는 없으니 그 정도의 기운이 검 끝에 자리 잡았다는 것이 더 확실한 말일 것이다.
그 기운의 범위는 새끼손가락 길이 정도의 영역이었고 또한 기운의 흐름조차 일정하지 않고 불안하게 흔들렸으나 그것은 검기가 분명했다.
실제로 검기를 일으켰음을 확인하자 그의 성취감은 대단히 컸다. 의젓하다 하지만 아직 어린 나이라 기사들이 보이는 검기를 직접 발휘하게 되니 마치 이야기 속의 기사가 된 듯해 야안은 한껏 들떴다.
마음이 들떠서인지 검기는 조금 전보다 더 불안한 모습을 보였는지라 야안은 다시금 호흡을 가다듬으며 마음을 다스렸다.
점차 검기의 기운 또한 안정되었고, 지금의 그로서 가장 안정된 검기를 발휘할 때쯤 그는 이십사수검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검기를 발휘하게 된 뒤 처음 펼치는 이십사수검법은 진정 놀라웠다. 지금까지의 이십사수검법은 이에 반해 그 위세가 반의반도 미치지 않았다.
이는 그전과 달리 검기의 발현으로 인해 이십사수검법이 진정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검을 어떤 방위든 순간적으로 전환하는 것이 가능한 이전의 그의 검도 대단하다 할 수 있으나, 아쉽게도 초식의 연결은 매끄럽지 못했다. 그저 하나하나의 초식만을 따로 펼치는 형식일 따름이다.
하지만 지금 펼쳐지는 이십사수검법은 하나의 초식이 다음 초식으로 넘어갈 때 그 힘의 연환이 자연스러웠다. 이는 몸속 마나가 흘러가는 길이 더 넓고 안정화됨으로써 이 초식에 맞추어 적절하게 몸을 활성화시키며 생긴 일이었다.
그로 인해 몇 배는 더 날카롭고, 강렬한 검을 펼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익스퍼트에 들어선 검사가 검기를 일으키지 않아도 여러 명의 상급 유저를 이기는 건 이런 이유가 있어서인 듯했다.
한 시간여를 그렇게 검을 수련하던 그는 거친 숨을 내쉬며 검을 거두었다.
“하아, 하아.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데.”
그는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손등으로 닦아 털어내며 가부좌를 틀었다.
아직 마나양이 부족하기에 고갈한 마나를 채우기 위한 것도 있지만, 그보다 평소보다 강렬하게 기운이 유동되어 한계를 넘어선 움직임을 보인 탓에 젖어 드는 피로감을 내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잠시 후 운기행공을 끝낸 야안의 몸에 활력이 생겨났다. 다시금 이십사수검법을 펼치기 위해 검을 든 그는 방금 전과 달리 기운에 휘둘리지 않도록 조심히 검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몸을 지금의 속도에 조금씩 적응해 나가기 위해서이다.
아직 덜 성장한 자신이 탈론의 수련법을 통해 무리하게 신체를 자극하면 연골이나 성장판 등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기에 행하는 행위였다.
그는 이번에는 자신의 통제하에 검법을 펼쳤기에 두 시간이 지난 뒤에야 다시 운기를 했다. 그는 운기를 통해 고요한 정신 속에서 자신이 펼친 검의 궤적을 그렸다. 일반인이라면 불가능할 일이지만 야안은 그 모든 궤적을 기억할 수 있었다.
그렇게 차분히 검의 궤적을 살피던 그는 자신이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과 미흡한 점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어떤 식으로 기운을 통제하고, 힘의 유동과 몸의 균형이 잘 맞는가에 대해 고찰하다 진동이 일어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자 내면의 의식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후우, 정말이지 아는 만큼 본다 하더니. 이처럼 절실히 느낄 줄이야.”
그는 진정 검의 세계가 끝이 없다 생각했다. 조금 전만 해도 검기를 일으켜 대단한 성취욕을 느꼈는데, 막상 고찰하며 자신의 미진한 점과 부족한 점을 느끼니 조금 전의 그 성취욕은 어느새 사라진 상태였다.
‘검의 끝에는 어떤 것이 존재할까?’
야안은 궁금증을 보이다 이내 자조하며 고개를 저었다.
“하하, 아직 기지도 못하는데…….”
그렇게 말하던 그는 천을 쥐어 다시 검에 감싸 막대기 모양을 만들었고, 곧 몸이 진동을 하더니 이내 밖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온 야안은 월동 준비를 하고 계시던 아버지를 도와드렸다. 그동안 짬짬이 구해놓은 장작은 따로 준비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대신 겨울에 내릴 눈에 대비해 집 보수는 따로 해야 했다. 야안은 아버지와 집 보수를 한 지 벌써 세 번째라 능숙하게 보조했다.
사실 보조라고 하지만, 그 실력은 그의 아버지 못지않았다. 그는 노쇠한 아버지 대신 마치 날쌘 다람쥐처럼 손대기 어려운 곳도 올라가 척척 목재를 덧붙이고 못질을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마리는 웃음을 짓는 남편에게 말했다.
“애가 어쩜 저리 듬직할까? 못 하는 게 없네.”
“우리의 아들이니.”
베론 가한이 자랑스럽게 하는 말에 마리는 입가를 올리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우리 아들이에요.”
야안은 보수가 끝난 듯 남은 자재를 챙기다 자신을 바라보는 부모님께 손을 흔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자신의 방에 돌아온 야안은 운기행공을 끝내고 인벤토리에서 마법 서적을 꺼내 들었다.
책을 펼쳐보니 어제 본 곳 뒷부분이 펼쳐졌다.
//룬 문자는 전설의 시대에 드래곤에게서 전해졌다고 한다. 그런지라 룬 문자는 신의 문자이며 대우주의 법칙을 문자로 표현한 것이라 보고 있다. 스승님께서는 처음 룬 문자의 종류는 50만 가지가 넘는다 했으나, 오랜 시간이 지나 룬 문자를 풀이하며 합치는 도중에서 7만 개로 줄일 수 있었다 했다.
룬 문자는 모두 7만 개에 달한다. 또한 이 룬 문자를 이용한 수식은 3,500여 가지이다. 이 두 가지를 이해할 수 있어야만 현자에 입문할 수 있다.//
그렇게 룬 문자에 대한 소개를 끝낸 책의 뒷장에는 룬 문자의 모양과 그 뜻이 자리했다. 야안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룬 문자를 살피다 기이한 일을 다시 경험하게 되었다.
야안의 눈 옆에 희뿌연 것이 모습을 보이더니 창으로 변해 룬 문자의 뜻이 해석되어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그 밑으로 새로운 정보 창이 모습을 보였다.
야안은 창에 새겨진 룬 문자의 뜻과 책자에 쓰인 룬 문자의 뜻이 비슷하나 차이가 있음을 알고 다급히 정보 창을 불렀다.
//고대 룬 문자의 비극
고대 룬 문자는 전설의 시대부터 수많은 현자들이 평생을 갈고닦아 탄생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룬 문자의 뜻이 왜곡되고 말았다.
룬 문자는 우주의 법칙을 본 따 만들어낸 문자이다.
우주의 법칙을 풀이하여 합치는 발상은 훌륭한 것이었으나 문제는 우주의 법칙을 해석하고 합치는 이 영역은 이 룬 문자를 전해준 드래곤의 영역이라는 점이었다.
오랜 시간과 수많은 현자들의 희생으로 이루어졌으나 결국 인간의 몫이 아닌 영역을 침범한 일이라 그 뜻을 풀이하는 데 문제가 있다.
이를 안 주신 아리스께서 이방인들에게 축복을 내렸다.//
야안은 고대 룬 문자에 그런 비극이 있음을 알고 고대 룬 문자로 적힌 글과 정보 창을 비교했는데 과연 열 글자를 넘게 보았음에도 똑같은 의미를 지닌 것은 보이지 않았다.
모호하게 빙빙 돌려 얘기를 하는, 그림으로 치자면 추상화가 이 책자에 나온 풀이라 한다면, 창에 쓰인 글은 명확하고 간결하여, 그림으로 치자면 사실주의 미술을 보는 듯했다.
그 가치를 깨달은 야안은 주신 아리스 님께서 내린 이 축복에 몇 번이고 감사의 절을 올렸다.
고대 룬 문자는 확실히 현재의 룬 문자보다 더 모호하고 복잡하여 야안으로서도 힘든 점이 있었으나 야안은 오히려 이를 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