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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안-16화 (16/385)

야안 16화

야안은 자신에게 알 수 없는 마법을 부린 뒤 사라진 마론이 마지막에 남긴 말에 정신이 팔렸다 한스의 칭찬에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그는 어색하게 웃음을 보이며 콧등을 긁었다.

“만족하신다니 다행이에요.”

“아니, 만족하고 안 하고가 아니라 정말 대단한 솜씨야. 대단한데!”

적잖게 감탄을 하던 한스는 다시 문이 열리며 들어오는 멜리나에게 크게 미소를 보였다. 멜리나는 평소와 달리 단정한 차림을 하고 있었고, 머리도 큰 리본으로 장식한 뒤였다.

그녀의 손에는 이른 아침부터 어머니와 소란스럽게 구운 사과파이가 쥐여 있었다.

“크흠, 그럼 이만 가보마. 이거 뜻하지 않게 일거리가 늘었구나. 리나야, 상점 잘 부탁하마.”

그렇게 말하던 한스는 휘파람을 불며 상점 밖으로 나섰고, 상점 안은 어색한 분위기가 대신 자리했다. 잠시 멈칫하던 야안은 멜리나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손을 내밀어 받으며 인사했다.

“네가 만든 거야?”

“으, 응. 아침에.”

“솜씨가 좋은데.”

멜리나는 먼저 말을 건네는 야안에 분위기가 좀 편안해졌음을 느꼈다. 그녀는 상점 가운데에 자리한 데스크로 자리를 이동했다. 야안 또한 그 데스크 위로 음식을 올려놓았고, 그녀는 파이를 잘라 야안에게 건넸다.

야안은 건네받은 그녀의 파이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사과 특유의 단맛이 매력적인 사과파이는 그의 혀를 자극했다.

“피곤할 때 먹으면 정말 좋겠는데. 맛있어.”

“정말, 휴, 다행이다.”

멜리나는 야안의 맛있다는 말에 안도를 하며 환하게 웃음을 보였다. 그녀의 환한 웃음에 야안은 머리가 아찔한 충격을 받았다. 그때만큼은 사냥꾼에 대한 고민은 그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빤히 쳐다보는 야안의 시선에 멜리나는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살짝 숙이며 물었다.

“왜? 뭐 묻었어?”

“아, 아니. 웃는 모습이 예뻐서.”

예쁘다는 야안의 말에 멜리나는 귓가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꼬아댔다. 야안은 그 모습에 이마를 긁적이다 묵묵히 파이를 입에 집어넣었다.

야안은 멜리나와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그녀와 가까워졌다는 생각에 벅찬 감정을 느꼈다.

그러다 오늘 마주하게 된, 아니, 애써 피하고 있었던 그 사냥꾼이 생각나 그의 머리는 차가워졌고, 가슴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과연, 그 사냥꾼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처럼 현자였다. 무슨 마법을 펼친 것인지 모르지만 예사롭지 않은 마법이었고, 공격 마법은 아니지만 자신은 그 마법에 적중했다. 더구나 그는 자신의 상태를 한 번에 파악했다.

‘현자라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그 마법 때문인가? 오크의 치명타 부위는 화살이 아닌 마법이었을지 모르겠구나?’

야안은 어찌 되었든 이런 외지에 현자가 있음을 확인하자 가슴이 벅찼다. 사실 고대 마법의 기초만을 달성한 그는 아직 마법을 펼칠 수 없는 상태였다.

이는 마법을 펼치려면 대기 속 마력의 유동을 룬 문자에 마력을 불어넣어 둘을 연결하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마법의 서적에 적혀 있지 않았다.

상태 창에서도 대우주와 호흡이 소통하면 능히 이룬다는 말만이 있을 뿐이라 그에게 있어 마법은 그림 속의 만찬과 같았다.

한데 그에 대해 알고 있는 현자의 존재가 곁에 있으니 잠재되었던 그의 마법에 대한 갈망은 다시금 일어나게 되었다. 혹시나 생각은 했지만 실제로 확인하고 보니 망설임은 사라졌다.

더구나 그는 자신의 능력을 알고 있었고, 또한 그러함에도 별다른 동요 없이 대범함을 보였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에 대해 호의적인 느낌이었다.

오랫동안 숨기고 있던 비밀을 다른 사람이 알게 되자 생각보다 마음이 편했다. 가슴 위에 올려놓은 돌이 치워지는 듯했다.

조만간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야안은 다시금 룬 조각을 시작했다.

야안이 마론에게 걸음을 옮긴 것은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뒤였다.

당장에라도 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그는 여러 변수를 생각했고, 또한 무엇을 말할지에 대한 생각이 그를 그렇게 잡아두었다.

어떻게 그에게서 가르침을 받을 것인가? 자신의 상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가 거절한다면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그는 많은 것을 생각했다.

실제 그는 현자의 길을 공부를 하고 있는지라 현자라는 존재가 얼마나 뛰어난 자인지 알고 있었다. 괜히 사람들이 마법을 쓰는 자들을 현명한 자라 부르는 것이 아니었다.

더구나 그는 숱한 위험을 넘어서며 고대를 넘어 전설의 시대의 유물을 조사하는 자가 아니던가? 그런 위대한 지혜를 지닌 존재라면 자신의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어렵지 않게 찾아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졌고, 곧 저 너머로 현자가 살고 있는 거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마음을 정리하고는 문을 두드렸다.

“계십니까?”

세차게 문을 두들기며 물었지만 집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야안은 생각지 못한 무반응에 당황하다 다시 문을 두들기며 물었다.

“별다른 말씀이 없으시면 들어가겠습니다.”

야안은 그렇게 말함에도 아무런 말이 없자 조심스럽게 천천히 문을 열었다. 집 안은 과연 현자의 거처답게 3분의 1이 종이로 가득했는데, 최근 무언가를 찾았던지 여기저기 종이가 어지럽혀져 있었다.

그가 방 안으로 들어서자 허리를 곱게 편 거구의 사내가 의자에 앉은 채 고개를 떨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탁자 위에는 저번에 가져간 위스키의 일부분이 남아 있었는데 열어놓은 지 오래된 듯 그의 주위로 주향이 진동했다.

야안은 현자가 술에 취해 잠에 든 줄 알았던지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이대로 나가자니 그의 가슴에 자리한 열망이 작지 않았고, 그렇다고 그를 깨우자니 가르침을 청하러 온 자신의 입장이 난처했다.

고민 속에 마론을 바라보던 야안은 그가 어쩐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다 이내 떠오른 생각에 황급히 마론을 향해 다가갔다.

“이, 이럴 수가!”

야안은 한참을 아무런 말도 못 하다 결국 비명 어린 한마디를 내뱉고 말았다. 깊은 설렘을 안고 찾아온 희망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마론은 죽어 있었다.

차갑게 식은 그의 시체는 추운 날씨에 의해 더욱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야안은 잠시 운기를 통해 어지러운 마음을 정리하고 눈을 떴다. 마음이 차분해지자 자신이 보지 못한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현자의 그 험한 얼굴에 주름이 가득히 일어나며 웃고 있음을 본 것이다. 무엇이 그리 좋았는지, 아니, 어떤 짐을 내려놓았는지 몰라도 죽은 그의 표정은 너무도 평온해 보였다.

잠시 마론을 살피던 야안은 천천히 주위를 돌아보다 책상 위에 놓인 무언가 적힌 종이를 발견했다. 종이에는 룬 문자가 나열되어 있었다. 그것은 오직 현자만이 읽을 수 있는 것이었기에 야안은 직감적으로 그가 자신에게 남긴 글임을 알 수 있었다.

//그대를 본 순간 주신 아리스 님께서 나에게 맡긴 임무가 끝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름 모를 소년이여, 그대 진리를 얻고자 한다면 나와 함께 이곳을 불태워다오.//

그 말에 야안의 눈앞에 다시 희끗희끗한 창이 나타났다. 그가 창을 부르자 창이 열리며 지금의 상황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현자의 부탁(연계 퀘스트)

난이도 : F급

진실을 얻고자 한다면 이곳의 모든 것을 불태우라. 그러면 현자의 말대로 그대는 진리의 길을 갈 수 있으리라.

*충분한 양의 기름이 뿌려져 있다.//

야안은 창을 통해 이곳을 태우면 무언가 다른 퀘스트가 발동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잠시 세상 누구도 알 수 없는 이 외진 곳에서 죽음을 맞이한 현자에게 경의를 표하며 밖으로 나섰다.

탁, 탁.

그가 몇 번 부싯돌을 치자 이내 불이 일어난다. 곧 기름이 뿌려진 곳을 중심으로 화마가 번져갔다. 매캐한 연기를 뿜으며 현자의 모든 것이 자리했던 집을 태우던 야안은 경건한 마음으로 그의 마지막 모습을 눈에 넣었다.

기둥이 불타 부서지자 지붕은 요란하게 무너져 내렸다.

요란한 소리를 내는 그 광경을 바라보던 야안은 시간이 지나 점차 잦아지는 불씨 너머로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집 안에 숨겨진 또 다른 문이었다. 야안은 직감적으로 그곳이 현자가 자신에게 남긴 진리를 얻는 열쇠임을 알았다.

시간이 지나 여기저기 작은 불씨만이 남을 뿐 모든 것이 재로 변한 그곳에 야안은 걸음을 옮겼다. 아직 열기는 뜨거웠으나 야안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현자가 남긴 숨겨진 문은 두꺼운 석쇠로 만든 것이라 웬만한 힘이 없고는 열 엄두를 못 낼 것이었으나 이미 일반인들에 비해 신력과도 같은 힘을 얻은 야안이었기에 무리 없이 문을 열어젖혔다.

열린 문 안에는 세 가지의 물품과 세 권의 책이 자리했다. 세 가지 물품은 제각각이었는데 지팡이, 반지, 검이 그것이었다. 세 권의 책 중 두 권의 책들은 이틀 전 사 간 종이로 만든 것 같았다. 그것을 알게 된 것은 아직 잉크 향이 책에 진동했기 때문이었다.

물품을 확인하던 그는 이내 희끗희끗한 창이 연달아 모습을 보였고, 지금의 상황이 궁금한 그는 망설임 없이 그중 연계된 퀘스트 창을 열었다.

//현자의 부탁(고대 대현자 테무드의 유지를 이어 전설의 현자를 재현하라.)

난이도 : SSS급

이름 모를 현자는 그대에게 평생에 이룬 모든 것을 남겼다. 비록 그의 부탁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지만 그는 검과 마법을 같이 쓸 수 있는 그대에게 희망을 얻었다. 그 길은 너무도 험난한 길이 될 것이지만 이룰 수 있다면 그대는 진정한 진실을 보게 될 것이다.

*수락하면 그에 상당한 경험치를 얻게 된다.

*수락하면 전설의 현자 직업을 얻기 전 히든 직업인 전설의 추종자를 선택하게 된다.

전설의 추종자를 선택함으로써 모든 스탯 +5를 얻게 된다.

*테무드가 남긴 책에서 고대의 숨겨진 내용을 알 수 있게 된다.

*고대 전설의 현자는 모든 것에 능통한 이였다. 그는 인간을 소우주라 생각했고, 세상을 대우주라 여기며 이 둘의 경계가 모호해지면 능히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 했다. 이 경지에 들어서면 그대 진정한 진리의 문을 열 자격을 얻으리라.

기한 : 무기한

보상 : 전설의 현자로 전직. 숨겨진 진리에 눈을 뜰 수 있게 된다.//

야안은 상식을 뛰어넘는 난도에 말을 잃었다.

SSS급이라니. 예전 폐쇄된 던전에서 겪은 등급을 생각한다면 이 난이도는 말이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확실히 전설의 현자를 재현하라는 퀘스트라 한다면 이 정도 난이도라 해도 과한 것은 아닌 이야기이다.

야안은 선뜻 결정을 내리기 힘들었다. 난이도가 높다고 하지만 기한도 무기한이고 전설의 추종자를 선택할 시 얻는 것도 적지 않을 듯 보였다.

하지만 이런 놀라운, 어쩌면 세상을 변혁할 그런 위대한 일을 자신이 선택하여 인류에게 있어 귀중한 재산을 망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그의 선택을 막아서고 있었다.

자신보다 뛰어난 존재가 있다면 이 위대한 재산을 넘겨주어야 한다 생각한 야안이었기에, 주신 아리스에게서 축복을 받은 뒤 스스로 청백한 마음을 갈고닦은 그이기에 생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야안은 한참을 망설이다 이내 결정했다. 이 퀘스트를 받아들이기로. 그것은 온전히 자신의 선택이라기보다는 평생을 바친 이 놀라운 현자님을 믿어서였다.

자신이 만약 거절한다면 그의 인생을 모조리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생각도 이 결정에 작지 않은 부분을 차지했다.

//직업을 받아들이겠습니까?//

한참 동안 자신의 눈앞을 어지럽히는 이 물음에 그는 그러겠다고 소리쳤고, 곧 환한 빛이 그를 감쌌다.

//직업을 얻기 위해 강제로 레벨을 올립니다.//

그의 레벨이 1에서 10으로 바뀌며 스탯이 9가 늘었다. 하지만 레벨 업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전설의 추종자를 선택하여 이에 상당한 경험치를 얻게 되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정신없이 안내 메시지가 그의 눈앞을 어지럽히며 다시금 7레벨이 올라 여유 스탯이 16이나 올라갔지만 야안은 그것을 파악하지 못했다.

전설의 추종자를 선택하면서 전체적으로 올라간 5스탯에 의해 그는 그동안 자신을 막아서던 벽을 무너뜨리며 각성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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