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안-18화 (18/385)

야안 18화

6. 시험

새벽의 빛이 사방에 자리한 동굴 속 한 소년이 그 중심에 가부좌를 한 채 턱을 괴고 있었다.

야안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자신의 몸에 적응하는 훈련을 하다 마나의 고갈로 운기를 하던 그는 몇 주간 자신을 괴롭히던 문제에 다시 마주하고 있었다.

그의 고민은 다름 아닌 스탯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평이하게 생각한다면 그저 힘, 지혜, 민첩성, 마나에 골고루 분배하면 될 일이지만, 그렇게 가볍게 정하기에는 이 스탯의 가치는 너무도 대단했다.

사실 예전부터 그가 스탯 시스템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이 행운이라는 스탯에 대한 것이었다.

이 행운이라는 스탯에 의해 지금 자신이 익히고 있는 이십사수검법이 탄생했으니 이 행운에는 무언가 확연히 보이지 않는 다른 능력이 있을 것이라 그는 생각했다.

주신 아리스께서 내린 축복이 그렇게 허술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또한 지혜나 다른 것들은 노력으로 올릴 수 있는 것이지만 이 행운은 올릴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한데 중급의 익스퍼트의 경지에 올라 오감의 감각이 확장되었는데, 혹시 이것이 행운 1스탯이 올라선 것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점이 이처럼 그를 고민하게 했다.

생각해 보면 그동안 자신이 크게 힘든 일 없이 지금껏 행복하게 살게 된 것에는 이런 운 스탯이 작용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어쩌면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이 행운인지 모르겠구나.’

하지만 이 생각은 자신만의 의견일 뿐이었다. 어떤 확실한 것도 없었다. 그저 모험일 따름이다.

만약 예전의 야안이었다면 이런 고민은 고려할 필요 없이 다른 곳에 스탯을 분배할 것이지만 불굴의 의지를 가슴에 피우게 된 야안이었기에 지금 위대한 모험을 앞에 두고 고민 중인 것이다.

근 3주간의 고민 끝에 그는 이 16스탯 모두 운에 적용했다. 그 가치를 누구보다 아는 야안의 이 선택은 뼈를 깎는 고통과도 같았다.

곧 그의 머릿속 어딘가 간질거리는 것 같더니 이내 그마저 사그라졌다. 그리고 야안의 눈앞에 다시 희끗희끗한 창이 그 모습을 보였다. 무언가 새로운 능력을 지니게 된 듯했다. 이내 그는 다급히 정보 창을 열었다.

//제6감각의 발현.

아리스가 남긴 숨겨진 축복이다. 운 스탯을 올린 현명한 자에게 이 축복을 남긴다.

운 스탯을 30 이상 올린 자에게 생겨나는 능력.

인식의 표면에 떠올라 있는 의식과 인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의 세계의 차이는 태양과 달의 차이라 할 만큼 극명하다. 이 제6감각은 그 무의식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능력이다. 그대는 이 제6감각으로 인해 위험을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복잡한 선택에서는 큰 도움을 주지 못하겠지만, 극단적인 상황에 처하거나 위험이 자리한 곳에서 이 제6감각은 직관력이라는 이름으로 그대에게 현명한 선택을 해줄 것이다.

*운 스탯을 더 올리게 된다면 그대는 이 운 스탯에 수치에 맞는 운 스탯에 가려진 비밀을 알게 될 것이다.

*암습의 수준에 따라 이를 인지할 수 있다.//

막상 행운에 모든 스탯을 찍었을 때, 크게 걱정을 했으나 지금 나타난 이능력에 그동안의 고민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역시 행운은 무의식과 관련이 있었다.’

그 또한 무의식을 확장한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잘 아는 바였다. 마법을 배울 때 이 무의식에 대해 중히 여긴다.

현자는 이 무의식을 얼마나 개척하는지에 따라 그 펼쳐지는 마법의 위력도 그렇지만 마법의 완성도에도 영향을 크게 받는다.

하지만 이 무의식을 개발하려면 끊임없는 자기반성과 자신의 내부를 바라보는 관조가 훈련되어야 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무의식을 확장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이런 방법으로 효과를 보는 이들은 고위 현자의 경지에 들어선 이들뿐이었다. 제대로 인지하고 무의식을 확장하기에 그전에는 스스로 무의식을 확장했는지 인지를 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흔히들 악운에 잘 대처하는 사람을 촉이 좋다고 한다. 한데 이 촉이라는 것은 근거가 없다. 그저 오감을 초월한 무언가를 느끼는 것이고 직감적으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다.

이런 촉이 좋은 이가 경험이 많은 노장이 되면 늘 보는 곳이고 달라진 점도 없지만 불안감이 생기면 본능적으로 알지 못하는 무언가에 대처하거나 피하려 한다. 한데 신기한 것은 그때마다 그 불안감이 현실로 온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폭 좁은 인지능력을 넘어서 무의식에 들어온 거대한 정보를 잠시 엿본 의식에 기대어 그간의 경험과 타고난 예민함을 통해 알아차리는 것이다.

한데 이런 것을 타고나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고, 그 또한 초기에는 잘 맞지도 않는다. 한데 그는 이능력을 얻게 되었으니, 앞으로 전설의 추종자로서 험난한 길이 예상되는 그에게 이는 다시 찾을 수 없는 기연과도 같은 것이었다.

야안은 잠시 이런저런 상념에 빠지다 이내 고개를 저으며 일어났다. 그리고 마법을 발현시키면서 이 동굴 전체에 널리 펼쳐져 있는 마법진을 이용해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마나를 거두어 밖을 나섰다.

밖으로 나온 야안은 멜리나를 보기 위해 한스네 상점으로 걸음을 옮기다 멀리 마차와 낯선 이들이 자리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다음 달에 올 것이라 생각했던 상단의 사람인 듯했다. 한스는 무두질을 끝낸 가죽의 상태를 보여주며 흥정을 하고 있었는데, 상인으로 보이는 사람도 한스가 건넨 가죽을 한참을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닌 게 아니라, 무두질 솜씨가 상당하여 도시에서도 이런 가죽을 구하기 어려웠던 탓이다. 흥정이 끝난 듯 물품을 옮겨 가는 도중, 멜리나가 상점 밖으로 모습을 보였다. 그녀는 한스에게 칭얼거리는 듯했는데, 한스는 망설이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멜리나는 한스를 꼬옥 껴안으며 애정 표현을 하더니 결국 상인에게서 질 좋은 천을 얻어냈다.

야안은 몰래 그녀의 뒤에 다가가 들뜬 그녀에게 물었다.

“리나, 그건 뭐지?”

그 말에 멜리나는 깜짝 놀란 듯 움츠리더니 이내 야안임을 알고 천을 뒤로 감추며 말했다.

“별것 아니야. 그보다 상인들이 생각보다 빠르게 오게 되었어. 어떡하지.”

야안은 그녀의 말에 자신도 아쉬운 감정이 들었다. 그간 서로가 좋은 감정을 확인했는데 한동안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그와 그녀가 헤어지는 일과 상단이 온 것은 관계는 깊다.

이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그가 속한 마일드 왕국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마일드 왕국은 제국과 마주한 아홉 개의 연합 왕국에 소속된 나라로 무역이나 군사 조직이 발전된 나라였다.

한데 이런 무역과 군사 조직이 잘 운영되려면 하급 관료직의 수가 많아야 했다.

그랬기에 마일드 왕국은 1년에 한 번 관료 시험을 치렀는데, 이 관료 시험은 귀족만이 아닌 평민들도 치를 수 있는 시험이었고 또한 어떤 것보다 계급 상승을 할 수 있는 확률이 높은 것이기도 했다.

시험에 붙기만 한다면 세습은 안 되지만 당대에서는 준귀족의 반열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만큼 시험 수준은 악명이 자자했다.

귀혈을 포기한 대신 철저하게 이득만을 챙기겠다는 것이 왕국의 입장이었다. 그러하기에 어지간한 수재들도 10여 번의 낙방을 각오해야 하는 시험이다.

야안은 바로 이 시험을 치르기 위해 떠나는 것이었다. 이 시험에 붙게 된다면 예전 자신의 조상처럼 이곳 영지의 제법 높은 관료직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야안이 이번에 시험을 치르러 떠나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바로 전설의 반지가 알려주는 정보 때문이었다.

//전설의 반지 퀘스트

난이도 : C+

대륙을 가로지르는 야루스 산맥(마일드 왕국의 영역)에 자리한 붉은 오크 마을에 숨겨진 비밀이 있다. 이 붉은 오크들은 다른 오크들보다 더 흉포하고 그 전투력이 두 배에 달한다. 이들의 족장은 대대로 주술사로 중급 마스터 현자가 되어야 상대를 할 수 있다.

이들이 이처럼 강한 이유에는 이 붉은 오크 마을에 숨겨진 비밀이 있기 때문이다. 이 비밀은 고대 대현자 테무드와 관계가 있다.

*붉은 오크 마을에 숨겨진 비밀을 찾아라.

*숨겨진 비밀은 주술사와 관계가 깊다.//

이 전설의 반지 퀘스트가 자리한 야루스 산맥은 다행히 마일드 왕국의 수도와 가까웠다. 야안은 이번 기회를 빌려 야루스 산맥에 들어설 생각이었다.

아직 몬스터들과 대전한 경험은 없었으나, 그의 스승이 남긴 마론의 책에서 몬스터들을 상대하는 방법을 배운 바 있었다.

물론 실전과 이론에서는 차이가 있을지 모르나 야안은 중급 익스퍼트인지라 환경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다만 혼자의 힘으로 이것을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라, 이번 라쿤 백작가의 몬스터 토벌전을 통해 기회를 엿보기로 했다.

그러기에 먼저 이번 여정을 빌려 실전을 겪을 생각이었다. 이 여정으로 자신의 힘이 어느 정도 통하는지, 또한 얼마나 실전에 잘 적응하는지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쉬운 마음에 멜리나와 이야기를 나누던 그는 날이 저물자 그녀와 헤어지고 집으로 갔다. 집에 도착한 그는 아버지가 보이지 않자 어머니에게 물었고 어머니는 아버지가 영주성에 가셨다고 이야기했다.

시험을 치르려면 영주성에서 내주는 패를 얻어야 했으며, 상인들에게 동행을 부탁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금력이 필요했을 터이지만 그의 집은 그 정도의 여유는 있었다.

“아버지도 참, 제가 가도 되는 일인데. 아직 몸이 좋지 않으시면서.”

아들의 말에 마리는 뜨거운 수프를 내어주며 미소를 머금었다.

“아니다. 요즘은 몸이 한결 편안해졌다고 하시는구나. 예전처럼 오한이 들지도 않는다고 하시면서.”

“그래도…….”

마리는 아들의 걱정스러워하는 모습에 기특하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아들이 먼 길을 떠난다는데 가만히 있는 아버지가 어디 있겠니. 너에게 해주고 싶은 것이 많아 그런 것이니 네가 이해하렴.”

어머니의 말에 야안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처 그런 점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던 터라 일순간 그는 말문을 잃었다.

며칠 뒤 떠날 것인지라 20일 전부터 번번이 실패를 했던 회복의 아이템을 완성할 생각에 공동 저장고에서 제법 많은 양의 나뭇조각을 떼어내어 왔다.

물론 그 나뭇조각들은 삐져나온 부분들이었고, 혹시나 쥐 같은 것이 끼어들까 싶어 다른 나무판자로 벌어진 부위를 메꾸어 놓았다.

그런 마음에 다른 때보다 빨리 식사를 마치고 자신의 방에 올라선 그는 고급 심법 책자를 꺼내 운기행공을 하고 난 뒤 룬 조각을 공부했다. 재료가 아까워 보통은 일반 나무에다가 연습을 했지만 오늘은 저장고의 나무를 떼어내어 가져왔다.

그는 이제 어느 정도 자신의 부족한 점을 파악하고 왜 실패했는지에 대한 경험을 쌓았기에 다시 회복의 아이템에 도전했다.

천천히 고목 조각에 마법진을 세공하고 룬을 집약하며 마나의 유동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왠지 오늘따라 그의 룬 마법진은 세밀하여 선의 굵기도 일정한 듯했고, 룬의 마나 유동도 안정적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