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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안-20화 (20/385)

야안 20화

그가 이미지 마법을 건 케일이라는 상인은 골든 상단의 주인인 골든 라인의 열다섯 자식 중 열둘째였다.

야안보다 열 살이 많아 올해로 스물일곱인 그는 머리가 좋은 편이라 작년까지 야안이 그랬던 것처럼 관료 시험을 준비했지만, 여섯 번이나 떨어지자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그런 이유로 다른 형제들에 비해 뒤늦게 상인의 길로 들어선지라 아직 상주가 아니라 그 밑에서 일을 배우고 있었다. 하지만 상단 주인의 아들이기에 상주도 그에게 함부로 하지 못했다.

케일은 야안이 이미지 마법을 걸고 난 뒤 자신처럼 관료 시험을 치른다는 야안을 마치 동문의 후배처럼 대했다. 식사를 챙겨주거나, 관료 시험의 유형, 시험장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등을 가르쳐 주곤 했다.

야안은 그런 케일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확실히 오랫동안 관료 시험을 준비해서인지 그 하는 말마다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야안은 케일 말고도 또 다른 이들에게 호감을 얻었는데, 다름 아닌 용병들이었다.

그 계기가 된 것은 용병단장의 제자 중 하나인 파일에 의해서였다. 파일은 유렌처럼 체구가 큰 편이 아니라 빠른 검격이 특기인 검객이었다.

그는 올해로 스물네 살로 용병 경력이 6년인 베테랑 용병이었다. 중급 유저였는데, 일반적으로 용병 중에서 중급 유저에 들어가는 검객은 서른을 넘기는 것으로 볼 때 그의 재능은 뛰어난 것이었다.

파일은 유렌과 성격이 비슷하여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은지라, 모르는 이가 본다면 이곳 용병을 이끄는 이가 아닌 막내 용병으로 착각하기도 했다. 그런 성격이기에 먼저 누구에게 다가서지 않았는데, 야안에게는 먼저 다가왔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야안의 허리춤에 걸린 검 때문이었다. 7년 전 스승이 아끼던 애검을 재능이 뛰어난 아이에게 주고 왔다는 얘기를 들었던 그였다.

한데, 야안이 그때의 그 검을 허리에 차고 있었으니 나서는 것을 싫어하는 그의 성격으로도 야안에게 다가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역시 신중한 성격이라 크게 일을 벌이지 않고 독대를 하기로 결심했다.

야안은 나이가 어리기에 처음 불 당번을 맡았다. 챙겨놓은 장작을 체크하면서 잘 타지 않는 나무를 여기저기 들쑤시며 숨구멍을 틔우던 야안은 누군가 다가오자 고개를 돌렸다. 돌아보니 조용하여 눈에 잘 띄지 않았던 용병이었다.

하지만 이미 중급 익스퍼트의 경지에 올라선 야안이었기에 이미 그가 이들 무리 중 가장 뛰어난 검객임을 아는 바였다.

파일은 자신이 다가오자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내주는 야안에 작게 묵례를 하다 이내 말을 꺼냈다. 직선적인 성격답게 그는 크게 돌려 말하지 않았다.

“혹시 유렌이라는 이름을 가진 용병을 알고 있는가?”

그 말에 야안은 파일에게서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네, 물론입니다. 저에게 처음으로 검을 가르쳐 주던 분이십니다. 혹시 유렌 님의 문하 되십니까?”

파일은 야안이 스승님을 안다고 하자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그렇다네. 역시 자네가 스승님이 말씀하시던 그 천재라고 하던 이였군. 비록 그 검을 들고 있다 하지만 7년 전이라 스승님이 말해준 이미지와 잘 맞지 않아 혹시나 했네.”

“하하, 그렇습니까?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 유렌 님은 요즘 어떠신지요?”

“잘 지내시네. 비록 작년 귀족파 내부의 전쟁에 참가하시다 팔 하나를 잃으셨지만, 대신 익스퍼트의 경지에 오르셨네.”

사선을 넘어서면서 깨달음이 있었던 모양이다. 하기야 당시 유렌은 상급 유저의 끝자리에 있었으니 계기만 있으면 익스퍼트를 넘어서는 것은 크게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축하드립니다. 아! 그래서 이곳에 들르지 않으셨군요.”

“그렇다네. 대용병대를 이끌게 되었으니. 예전 스승님이 맡으신 구역은 부족하게나마 내가 맡았지.”

나라에서는 용병 중에서 익스퍼트에 올라서는 이들에게도 준남작의 직위를 부여한다. 하지만 본래 용병으로서 사는 이들인지라 딱딱한 격식이 필요한 기사는 그들에게 맞지 않았다.

그랬기에 나라에서는 기사 대신 1,000명을 거느릴 수 있는 대용병단을 신설할 수 있는 권한을 그들에게 부여해 주었다.

전쟁 참여 시 천부장에 달하는 직위를 주는지라 대용병단은 귀족이라 해도 이들을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잠시 스승님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다 생각난 바가 있어 파일이 물었다.

“듣기로는 관료 시험을 치르러 간다 하던데. 맞는가?”

“네, 부족하나마 이번에 관료 시험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대단하군. 열일곱에 관료 시험이라. 시험을 치를 수 있는 최소 나이임을 알고 있지만, 보통은 스무 살쯤에 관료 시험을 치르는 것으로 아는데.”

파일의 말에 야안은 관자놀이를 긁적였다.

“대단할 것 없습니다. 그저 시험을 치르는 것뿐인데요.”

“그런가. 하하, 음, 다음 불 당번이 일어났군. 이만 자게나. 내일부터는 좀 바쁘게 움직여야 할 것일세.”

“네, 그럼.”

파일이 자리를 옮기자 야안은 장작을 하나 더 넣어 불을 다시 지피며 다음 당번과 자리를 교대했다. 멜리나가 준 망토를 몸에 감고 후드를 뒤집어쓴 야안은 자리에 누웠다.

물론 그의 아버지에게 준 것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몸의 온기를 유지하는 보호의 나뭇조각을 몸에 지닌 탓에 이제 늦가을의 추위도 그를 피해 가는지라 그렇게 몸을 보호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남의 눈도 있고, 새벽의 이슬을 피해 가기 위해서였다.

노숙을 한 지 사흘째가 되었던 탓인지 조금 익숙해졌다. 시린 날씨 속에 유난히 밝은 별빛은 쏟아질 듯 그의 눈을 어지럽히다 천천히 흐려지며 사라졌다.

야안이 처음으로 몬스터들을 만난 것은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뒤였다.

처음 부딪친 몬스터들은 개 머리 모양의 코볼트들이었는데, 이들은 오크와 달리 힘이 세거나 물건을 집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신 손톱이 날카롭고 움직임이 민첩했다.

또한 목을 치지 않고는 열지 않는 강한 턱을 지니고 있어 한 번 물리면 큰 부상을 각오해야 했다.

코볼트들의 수는 대략 50에 달했고, 이들의 수장으로 보이는 코볼트는 다른 코볼트보다 머리 하나 더 커 보였다.

황금빛 눈을 희번덕거리며 침을 질질 흘리는 모습은 처음 몬스터들을 접하는 이들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야안은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현실감을 느끼지 못해서가 아니라, 이들이 두렵다는 감정을 가지지 못했다. 하기야 익스퍼트 중급에 올라선 야안은 겉모습을 넘어 본질을 꿰뚫고 보는 법을 배웠으니.

만약 처음 만나는 몬스터가 오우거 같은 대형 몬스터였다면, 그도 일말의 긴장을 했을지 모르지만 코볼트는 그에 비해 상당히 격이 떨어진 소형 몬스터였다.

하지만 그 이전에 사실 야안은 단순히 무언가가 죽는 것에 대해서 다른 이들에 비해 부담감이 적은 편이었다. 그것은 몬스터나 짐승들에 한해서가 아니라 인간에 있어서도 그러했다.

그가 그런 이유에는 두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는 태어나 기억도 안 나는 시절부터 농노로서의 거친 삶을 살았던 점이다.

농노도 다른 부유한 영지 쪽이었다면 괜찮을 것이지만, 어린 그가 처음 한 일은 바로 전쟁의 잔재물인 시체를 처리하는 일이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구더기로 범벅된 시체 토막을 이끌고, 멀쩡한 머리를 찾기도 하는 등 아직 인격도 제대로 만들어지기 전에 그는 죽음부터 배워야 했다.

또한 영지의 사정이 좋지 않아 농노 중에서 굶어 죽는 이들이 적지 않아,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동료를 치워야 하는 일이 종종 벌어지기도 했다.

야안은 그 와중에서 버텨 살아남은 이였고, 그만큼 그의 어린 시절은 죽음에 친숙했다.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새로운 차원이라 할 수 있는 이 세계의 현실감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했듯, 아리스가 이 게임을 만들게 된 계기는 평화와 안락함에 나태해진 인간들을 위해서인데 그런 인간들에게 이런 현실적인 게임 속에서 무언가를 죽이며 레벨을 올린다는 것은 큰 정신적 외상을 낳을 수 있었다.

그랬기에 아리스는 일종의 정신적 보호 체제를 이방인들에게 걸어놓았고, 그 보호 체제는 야안이 이방인이 되면서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니 만약 당장에라도 야안이 전쟁터에 나가게 될지라도 그는 전장이라는 특수 상황에서 걱정은 할지언정, 죽고 죽이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나 부담감을 느낄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로 인해 야안은 타고나기를 다정하여 자신의 사람들은 더할 수 없이 아끼지만, 타인이나 적에게는 그 누구보다 냉정해졌다.

용병들은 익숙한 듯 마차를 중심으로 간격을 잡았고, 일부는 마차 위로 올라서 활을 잡았다. 상인들과 일꾼들도 말과 마차를 연결해 고정했다. 야안 또한 검을 뽑아 그 간격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파일은 잠시 처음 실전을 겪는 야안을 걱정하는 듯 쳐다보았으나, 야안의 눈에 일말의 두려움도 보이지 않자 이내 고민을 내려놓으며 자신의 자리를 잡았다.

곧 코볼트와 용병들 사이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화살은 코볼트의 머리를 꿰뚫었고, 방패를 든 용병은 날다시피 움직이는 코볼트를 세차게 치며 방향을 틀게 했다. 뒤를 이어 아직 하급 유저들이 무너진 코볼트의 목이나 팔 등을 베어나갔다.

파일이 있는 곳에는 방패를 막는 용병이 없었다. 그의 실력으로는 방패 용병과 연합하려면 그와 맞는 실력이 아니고는 오히려 그의 움직임을 막는지라 없는 것이 나았다.

파일은 벌써 세 마리의 코볼트의 목과 다리를 날려 보낸 뒤였고, 그의 최종 목표는 코볼트를 지휘하는 수장이었다. 이런 집단 몬스터들의 특징은 수장을 잃으면 사기를 잃어 움직임이 굼떠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코볼트의 수는 많았고,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터라 지금 당장 움직이기는 어려웠다. 지금 당장은 초반이라 방패수들이 그 몫을 잘해주고 있었지만 끝없는 투지를 지니고 있는 몬스터들과의 접전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자기 몸 막기도 급급할 것이다.

‘코볼트라 해도 50이나 되다니. 부족 간의 세력 싸움에서 패배한 무리인가?’

차라리 오우거나 트롤 같은 몬스터를 맞이하는 것이 나았으리라. 이런 조직적인 몬스터들은 대형 몬스터들에게는 약할지 몰라도, 무장이 완벽하지 않은 용병들에게 있어 상당히 까다로운 편이었다.

파일은 밀려오는 상념을 흩뜨리기라도 하듯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좀 더 집중하여 이들의 수를 하나라도 더 줄이는 것이 나았다.

잠시 그렇게 생각하며 검을 휘두르는데, 어느 순간부터 코볼트들이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그들을 처리하기 쉬워졌고, 거센 공격을 막아내던 방패수들도 한결 편해졌다.

파일은 전장이 갑자기 유리해지자 놀라 한 걸음 물러서 전장을 둘러보다 흠칫했다. 전장 깊은 곳에 자리한 야안을 본 탓이다.

야안은 마치 어린아이가 개미 떼들을 죽이듯이 장난스럽게 코볼트의 목을 날리고 있었다. 그가 죽인 코볼트 중에는 추장으로 보이는 코볼트도 있었던 터라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10여 마리의 코볼트 시체 사이에 선 야안의 모습을 보던 파일은 소름이 돋았다. 그의 망설임 없는 강철과 같은 성격도 그렇지만, 그보다 그의 검 실력 때문이었다.

스승님께서 천재적인 소질을 지닌 이라 이야기하셨다지만 고작 열일곱에 불과한 소년이 홀로 닦은 검의 솜씨가 이 정도라니 믿기지 않았다.

더구나 그는 관료 시험을 치른다고 하지 않았던가? 검만을 절실히 수련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코볼트가 비록 몬스터 중에서 힘이 약한 편이라고 하지만 일반 성인 남성을 넘어서는 힘을 가지고 있다.

한데 야안은 그런 코볼트 대여섯 마리의 힘을 합친 공격을 장난스럽게 툭 치는 듯 힘을 회피함과 동시에 확실하게 한 마리씩 목숨을 끊고 있었다. 산책을 하는 듯한 그의 모습은 그 저력에 여유가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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