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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안-26화 (26/385)

야안 26화

야안은 그가 떠난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에야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그는 이 두 개의 단검 세트와 밧줄을 들고 아직 뒷정리를 끝내지 못한 하인에게서 가격을 치렀다.

가격은 30골드 정도였는데, 야안은 이 정도의 물건이면 그 가격 정도가 적당하다 생각했다. 그러며 1실버를 꺼내 그에게 보여주며 조금 전의 사내에 대해 물었다.

하인은 횡재에 기분이 좋은 듯 방금 전 나간 그에 대해 아는 바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분의 머리가 그처럼 붉은 이유는 어릴 적 드래곤의 심장 파편을 섭취해서라고 하더군요. 그 영향 때문인지 지금 붉은 장미 기사단의 단장도 그분과는 쉽사리 승부가 나지 않는답니다.”

야안은 하인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사내의 경지는 자신보다 윗길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이 정도로 공포를 느낄 이유는 없었다.

곰곰이 생각한 결과 이유를 찾아냈는데, 바로 제6감각 때문이었다. 무의식을 조금씩 엿보게 되면서 그 드래곤의 심장 파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의 본질을 보았던 탓이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상상한 그 괴물의 모습도 어쩌면 드래곤과 유사할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정말 수많은 강자가 있구나. 그런 괴물의 마력을 섭취한 자라니.’

야안은 중급 익스퍼트 경지에 올라서며 저도 모르게 키워가던 자만하던 마음의 싹이 그자 덕분에 지워졌다.

궁금증이 풀린 그는 이내 들어올 때와 달리 공손하게 인사하는 하인을 뒤로한 채 상점을 나섰다.

이틀이 지났다.

야안은 이른 시간에 일어나 방을 정리했다. 방 안은 몹시 어지러웠는데, 그 이유는 지난 마법 상점에서 결심했던 마법이 새겨진 물품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바로 전설의 시대에 있었던 방어 마법인 ‘카’가 그것이었다.

현재에도 실드 형식의 방어 마법이 존재하고 있었지만, 그 마법을 펼친 후에는 시전자가 움직이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한데 이 ‘카’는 그 범위가 일인에 한해서이지만 그 마법을 펼친 후에도 움직임에 지장이 없다는 큰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 ‘카’는 전설의 시대에 흔히 쓰는 방어 마법의 가장 하위 단계에서 상위 단계로 갈수록 ‘카라’, ‘카라민’, ‘카라민주’로 나누어진다.

이 방어 마법은 시전자의 몸을 금속처럼 단단하게 만드는데 처음 ‘카’는 청동으로, 다음은 강철, 미스릴, 전설의 오리할콘으로 변하는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단계는 고대의 대현자에 오르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었고, 미스릴 또한 지금의 구존의 위치가 아니면 어려웠다.

‘카’는 아쉽게도 하위 현자 마스터에 올라선 뒤에야 펼칠 수 있는 것인데, 그 주문이 상당히 어려운 점이 있었다. 시전을 한다고 해도 그 펼치는 시간이나 시전된 시간이 길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다행이라 할까?

알리의 마법 물품 제작에서 이 마법을 만들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그 시전 시간이 10분이 채 안 된다지만 시동어 한마디로 펼칠 수 있다는 점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여덟 가지의 룬 문자를 써야 하는 마법인 만큼 그 제작 과정이 상당히 지난하여 야안은 벌써 세 번의 실패로 최하위 마정석 열다섯 개와 고목 조각 여섯 개를 날려야 했다.

결국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야안은 실패 과정을 통해서 왜 실패했는지에 대해 실마리를 잡은 상태였기에, 오늘 시험장을 갔다 오면 시험 결과 날까지 이 물품을 제작하는 데 전력을 다할 예정이었다.

방을 치운 그는 마법 펜 한 자루를 옷 안의 호주머니에 넣어둔 채 그 누구보다도 가벼운 마음으로 시험장을 향해 갔다.

시험장 정문 200미터 전부터 수많은 인파로 시끌벅적했는데 그중에는 시험자의 가족이나 친구들도 있었고, 행운을 가져다주는 상품 따위를 홍보하는 상인들도 있었다.

주위를 구경하던 야안은 입구에서 주는 시험자 배지를 가슴에 달고 시험장에 들어섰다. 열한 개의 시험장 중 제4시험장에 들어섰는데, 그 안에는 이미 3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 누구 하나 속삭이는 사람조차 없었다.

모두가 마지막 전장에 나서는 병사들처럼 경건한 마음으로 시험을 기다리고 있었다. 야안은 배지에 적힌 자신의 번호를 찾아 자리에 앉았다.

곧 시험관들이 모습을 보였고, 특수 용액이 발린 시험지를 나누어 주었다. 모두에게 시험지가 나누어지자 저 끝자락에 있는 이도 한눈에 볼 수 있는 거대한 글씨로 쓰인 시험 문제가 시험장 앞면을 가득 채웠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생각보다 난도 높은 문제 수준에 모두가 끙끙댔는데, 야안은 주위 사람들과 달리 생각보다 풀 만한 문제들이라 다행이라 생각했다.

하기야 초급 현자 마스터에 준하는 지혜를 지닌 것만으로도 이곳의 그 누구도 그와 지혜를 겨룰 만한 이는 없을 것이다.

야안은 문제를 생각보다 빨리 풀었지만, 혹시나 하여 몇 번 점검하느라 100명 정도가 나간 뒤에야 시험지를 제출했다.

시골 촌놈처럼 보이는 야안이 빠른 시간 내에 문밖을 나서자, 문 입구에서 시험자를 기다리는 그들의 친지들은 그를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어떤 이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젓기도 했는데, 이유는 그가 시험을 포기하고 나선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야안 앞에 먼저 나선 이들 중 대부분이 그런 이유로 시험을 포기했기에 그들의 반응은 크게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야안은 그런 그들의 시선에 일일이 마음을 줄 만한 여유는 없었다.

시험 내내 마법 물품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그는 문제를 몇 번이나 점검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번 시험에서 붙어 관료가 되는 것이 아버지에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그는 뛴다 싶은 걸음으로 자신의 방에 도착해 어제 먹다 남은 음식으로 요기를 끝내고 인벤토리를 열어 하급 마정석과 최하급 마정석을 각각 한 개씩 꺼냈다.

그리고 손에 올려 마나양을 측정하면서 머릿속으로 수많은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해가 기울어 가서야 그 계산이 끝이 난 듯 도로 마정석을 인벤토리에 넣어두고 그는 식사를 하러 방을 나섰다.

‘아무래도 마법 물품이 실패한 이유는 마나양이 미달한 탓이 분명해. 내 생각이 맞는다면 하급 마정석 다섯 개로는 10분의 1도 채우지 못할 거야. 멍청한 녀석, 그런 것도 모르고 최하급 마정석 따위로 그 마나양을 감당하려 했으니. 아쉽게도 부피는 커지겠지만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마정석과 고목 조각들을 합한다면 답이 있을지도.’

자책하던 야안은 뜨거운 수프에 혀가 데는지도 모른 채 온통 마법 물품에 정신이 팔렸다. 주인은 그 모습을 보면서 그가 시험장에서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으면 저럴까 싶어 혀를 끌끌 찼다.

대충 식사를 마친 야안은 보따리에서 종이 묶음을 꺼냈다.

질이 낮은 종이였지만 야안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마법 펜을 꺼내 그가 구상한 마법진을 계산하기 시작했는데 마법 펜이어서인지 질 낮은 종이에도 잉크가 번지는 법이 없었다.

알리의 뛰어난 마법 룬 술식과 마법진들을 연구하면서 마나의 유동을 살피던 야안은 그로부터 닷새가 지날 때까지도 눈 한 번 붙이지 않은 채 정신없이 이 일에 빠져들었다.

본래라면 중급 마정석 세 개, 미스릴 실 한 묶음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하급 마정석 열 개와 최하위 마정석 다섯 개, 고목 조각 따위로 대신하려 하니 마법식과 마법진이 어지러울 수밖에 없다.

그렇게 닷새째 날이 저물어갈 때쯤에서야 야안은 떨리는 손길로 마법 펜에서 손을 떼어냈다. 읊조리는 듯한 그의 목소리는 닷새를 밤을 새운 자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힘이 실려 있었다.

“드디어! 그래, 이것이면 충분히 그 마나양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야.”

야안은 바로 물품을 제작하려 했지만, 목이 까칠하고 배 속이 텅 빈 느낌이 들자 그제야 자신이 긴 시간 동안 모든 것을 잊고 물아일체 했음을 알았다.

며칠이나 지났는지 알 겸 방을 나선 그는 주인에게 부탁해 가벼운 식사부터 한 그는 씻을 물을 부탁했다.

그는 식사를 하며 주위에 귀를 연 뒤에야 자신이 닷새 밤낮을 지새운 것을 알고는 자신의 미련함에 고개를 내 저었다.

방으로 돌아온 그는 주인이 마련해 준 물로 씻은 뒤여서인지 몸이 나른해졌음을 느꼈다. 한나절을 잠으로 피로를 푼 뒤, 운기행공으로 남은 피로를 마저 물리쳤다. 몸이 어느 정도 정상으로 돌아오자 그는 그제야 마법 물품 ‘카’를 만들기를 시도했다.

마법진이 복잡해 어지럽던 만큼 룬을 세공하는 그 과정은 대단히 힘든 과정이었다. 그래도 다행히도 이틀이 지나기 전 새벽 무렵에서야 끝을 낼 수 있었는데, 하루라도 늦었다면 시험 결과 발표 날에 가지 못할 수도 있었다.

시험을 아무리 잘 치러도 시험 결과 발표 날에 가 확인하지 않으면 다음 점수대의 시험자에게 미루어지기 때문에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

짧게 한숨을 내쉬던 그는 경건한 마음으로 마정석들을 미리 파놓은 슬롯에 올려놓은 뒤 마법진에 마나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와 차원이 다른 물품을 만드는 것이기에 마나를 부여하는 과정에서 그가 소모한 정신력은 상당했다. 조금이라도 실수했다간 실패를 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상당한 시간이 지나 야안은 마지막 남은 마나를 긁어모아 마지막 도착지에 부여했고, 동시에 방 안을 일순간 뒤덮는 환한 빛이 터져 나오더니 이내 사라졌다.

야안은 지친 가운데에도 환희를 감추지 못하며 마법 물품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그 옆에 자리한 마법 물품의 성공을 알리는 두 개의 작은 정보 창을 불렀다.

[새로운 마법진을 만들어냈다. 제6감각에 의한 직관력이 뛰어난 그대였기에 지금의 경지로 만들 수 없는 뛰어난 마법진을 만들어냈다. 그 덕분에 지혜 스탯이 2가 늘어났다.]

[‘카의 조각’

등급 : C―

전설의 시대에 있던 마법이 깃든 물품이다. 몸의 모든 부위를 청동의 강도로 만들어준다. 하루에 한 번 펼칠 수 있으며, 지속 시간도 20분에 달한다. 미숙한 그대가 만들어 냈다기에 믿을 수 없는 제품이다.

*시전 시 100의 마나를 더 부여하면 지속 시간을 10분 더 연장할 수 있다.]

자신의 생각보다 더 뛰어난 물품이었다. 비록 크기가 커 배를 덮을 정도지만 무거운 갑주에 비한다면 없는 것과도 같았다. 이걸 걸치고, 나중에 가벼운 갑주를 구해 입는다면 기사의 풀 플레이트를 입는 것보다 더 뛰어난 위용을 보일 것이다.

어차피 풀 플레이트의 위용은 뛰어난 방어에 있을 뿐이고, 그 방어라는 것이 전투 시 팔방에서 날아오는 암습에 방어하여 적과의 거리를 좁히는 짧은 10여 분 정도에나 필요할 뿐이다.

하니 20분에 달하는 사용 시간이라면 그의 원거리에 자리한 적들에게 다가가는 돌파 시 여러 번 목숨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완성된 자신의 물품을 보며 크게 만족하던 그는 아직 발표 시간까지 반나절이 남아 있는지라 짧게 단잠을 이루었다. 두어 시간 되지 않는 단잠이었지만 현자의 학구열에서 이루어진 성취감에 취한지라 그는 어느 때보다 달콤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짧은 잠을 깨고 일어난 야안은 지혜 스탯이 올라서인지 몰라도 육체는 아직 부담감을 느끼는 것과 달리 정신적인 피로감은 사라졌음을 알았다.

사실 자신의 한계 이상의 마법 물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지혜 스탯이 올라간 것은 참으로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방을 나와 가볍게 식사를 하고 우물가에서 물을 떠 세수를 하며 제법 자란 수염을 단검으로 정리했다. 그리고 저번에 산 옷으로 갈아입고 시험장을 향했다.

시험장에 도착하니 이번 7,520명의 응시자 중 겨우 열여덟 명이 합격했다는 공지가 크게 붙었다.

그 열여덟 명의 이름 중 맨 위에 베론 야안이라는 이름이 있었는데 그 의미는 대단히 컸다. 바로 장원이라는 것으로 이번 시험에서 가장 높은 성적을 받았다는 뜻이니.

장원이 되면 얻는 이득 중 하나가 관료직에 들어갈 시 10년의 경력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 말은 하급 관료가 아니라 몇 단계를 뛰어넘은 상급 관료직으로 일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어느 영지에 관료로 들어서 그곳에서 공을 세우거나 10여 년을 근무하면 준남작의 작위와 그에 해당하는 관료직을 얻게 되는데 야안은 그 시간을 반으로 줄일 수 있게 된 것이다.

당대에 한해서라지만 준남작의 직위를 얻으면 후손은 비록 평민이라도 성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베론 야안의 베론이라는 성도 그의 조상이 그렇게 하여 얻은 것이었다.

그러니 장원에 들어섰다는 것은 그가 자신의 영지로 돌아가 관료직에 들어선다면, 몇 년 되지 않아 준남작의 직위를 얻는다는 뜻이다.

사실 시험 당시 크게 집중하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렸던 야안으로서는 결과가 생각보다 좋아 기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특히 이 때문에 아버지가 기뻐할 것을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눈에 물기가 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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