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37화
11. 출사
마차를 몰고 마크 영지로 가기 시작한 야안은, 오늘로 네 차례의 코볼트의 습격을 받게 되었는데 모두 정찰대 정도의 소규모였다.
아마도 제법 큰 마차에 비해 지키는 이가 겨우 한 사람인지라 만만하다 여겨졌던 모양이었다. 덕분에 야안은 코볼트의 부산물 따위를 얻을 수 있었다.
본래 코볼트의 부산물은 얻기 힘든 편이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교활할 정도로 잔머리가 뛰어나기 때문이었다.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없다면 아예 미리 만들어둔 몇 개의 굴을 이용해 그 모습을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기에, 자연히 그들의 부산물이 귀해질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코볼트의 손톱과 발톱은 마법 물품을 만들 때 쓰이는 약물의 원료 중 하나이기도 했다.
지난 파일 용병들을 습격한 코볼트들은 족장의 자리에서 패한 무리가 도망치는 중에 만나 어쩔 수 없이 전투를 하게 된 것인지 원래 이들은 보기 힘든 몬스터들이었다.
아침에 식사하던 중에 습격을 받았던지라 기분이 찜찜할 법도 했지만, 야안은 전혀 그런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이 산만 넘으면 마크 영지에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잘하면 해가 지기 전에 갈 수 있을 듯한지라, 그는 남은 코볼트의 잔재를 태우며 그 온기로 몸을 풀고 마차를 점검한 뒤 다시 길을 재촉했다.
다행히도 말들도 이번 산만 내려서면 쉰다는 것을 아는 듯 투정부리지를 않아 해가 중천에서 완전히 지기도 전에 그는 저 너머로 마크 영주 성 문을 발견할 수 있었다.
떠날 때 보았던 그때 그 모습 그대로인지라 아직 짧지 않은 거리가 남았건만 벌써 가슴이 들떠 올랐다. 야안은 말들의 등을 매만지며 말했다.
“조금만 더 고생하자. 도착하면 너희가 좋아하는 콩 섞인 여물을 실컷 먹게 해줄 테니, 힘내어라.”
그런 그의 마음을 아는지 말들 또한 조금씩 힘을 내어 걸음을 재촉했다.
야안은 그렇게 한 시간을 더 마차를 몰아서야 성문 앞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렇게 고향에 도착한 야안은 얼마 가지 않아 입구에서 만난 경비병의 날이 선 모습 등을 통해서 성문 주위에 무거운 긴장감이 감돌고 있음을 알았다.
전에 없이 군인들이 이곳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있었고, 길거리에도 사람이 현저하게 줄어들어 있었다. 그런 길거리에 있는 사람들도 노인이나 여인네, 그리고 어린아이들뿐이었는데, 모두들 표정이 어두웠다. 야안은 자신이 느낀 이질감이 이것임을 깨달았다.
‘징집이 시작된 모양이구나.’
역시 마크 벨로치 남작이라고 할까?
영지민 입장에서는 절망적인 일이었지만, 군사학을 전공한 만큼 전쟁을 준비하는 영주로서는 유능한 인물임이 틀림없다. 사실 빠르게 징집하여 최소한의 진법과 무기술, 물자 운송 등을 가르치려면 한 달도 빠듯하다.
보아하니 벌써 징집은 막바지에 이르렀고, 일부는 훈련을 시작하는 모습이라. 만약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 그의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마크 벨로치는 군부에서 제법 이름을 알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야안이 마차를 몰며 들어오는 모습에, 아직 모자라는 인원을 채우기 위해 미신고자들을 찾아다니던 군인들이 야안의 마차를 둘러쌌다. 야안은 놀라 거친 숨소리를 내는 말을 진정시켰다. 마차가 멈춰 서자 군인 중 한 명이 물었다.
“외지인인가? 아님 영지인인가? 소속을 말하라.”
강압적인 말투에 야안은 자신이 건드리기가 껄끄러울 정도의 신분이 아니라면 그들이 강제로 징집하려는 것임을 알았다.
곤란한 일이 생기기 전에 일을 해결하는 것이 좋을 듯하여, 품속을 뒤져 예전에 받은 준귀족 임명장을 그에게 건네주었다.
“이것이면 내가 왜 지금 이 시기에 마크 성에 들어왔는지를 아실 것이오.”
보통 강압적인 태도에 야안 같은 몰골의 어린 사내는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이며 실수하게 마련이었다. 한데 그런 예상과 달리 무언가 적힌 증명서를 내밀자 군인은 그것을 조장에게 넘겨주었다.
다행히 조장은 글을 읽을 줄 아는지라 얼마 읽지 않아 그것이 준귀족 임명장임을 알았다. 그것도 일반적인 준귀족 임명장이 아닌 수석이라는 표시가 붙은, 푸른색 글씨로 된 임명장이었다.
그것은 저자가 자신의 영지에 출사한다면 자신이 올려다보기 힘들 만큼의 높은 상사가 되는 것을 의미했다.
아니, 그 이전에 준귀족이라 해도 귀족. 죄를 지었다고 해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존재인데, 이런 무례를 범했으니 그는 큰 낭패라 여겼다. 서둘러 경례를 올리며 용서를 빌었다.
“죄송합니다. 설마 귀족이신지 몰랐습니다. 지금 전쟁을 앞둔 비상시라 실례를 범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조장의 말에 놀란 군인들도 같이 예를 보이며 용서를 빌었고, 야안은 큰일도 아닌지라 그가 돌려준 준귀족 증명서를 다시 품속에 넣고 말했다.
“나는 베론 마을의 베론 가한 촌장의 아들이네. 내일 마크 남작님께 출사를 할 예정이니 그대는 남작님께 고해주게.”
야안이 용서해 주자 안도의 한숨을 내쉰 그는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예의를 표했다.
“남작님께서 크게 기뻐하실 것입니다.”
사실이 그랬다. 수석자라면 이곳이 아닌 대영주에게도 어렵지 않게 출사를 할 수 있었다. 한데 고작 이 같은 변방의 남작에게 출사를 한다니. 만약 그가 이곳 출신이 아니었다면 이해하지 못했을 일이었다.
변방이니만큼 지금 남작 성의 행정을 보는 이 중 시험을 치러 관료직의 자격을 얻은 자는 총관 하나뿐이었다. 그 외의 관료들은 그가 키운 제자들로 임시로 간단한 일들을 맡겨 영지를 꾸려나가고 있었다.
이전의 영주에게 출사하여 다음 대까지 총관 일을 하는 그도 이제 일흔을 넘은 노구인지라, 행정 일을 하기 어렵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었다.
그 때문에 지금 마크 남작성의 행정은 마크 벨로치 남작의 가신들이 나누어 하고 있었으니 영지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게 당연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 와중에 전쟁 준비에 많은 자금을 투입하고 있으니 대대로 모아놓은 보물들은 그 흔적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오직 단 한 번. 이번 전쟁에서 모든 것을 만회하리라.”
자신감 넘치는 남작의 그 한마디를 믿고 가신들도 재산을 내놓을 정도로 영주 성이 유지하기도 힘든 지금, 관료직 종사자의 출사는 마크 남작이 지금 가장 절실하게 바라는 것이었다. 하물며 그 관료직 종사자가 수석 합격자라면 두말할 것 없었다.
야안은 사죄를 하며 떠나가는 군인들을 보며, 권력의 마력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가 이름 높은 대용병단 소속의 용병이라 해도 그들은 말도 안 되는 죄목을 붙여 자신을 끌고 갔을 것이다.
한데 겨우 이 종이 한 장에 그들은 오히려 크게 사과를 하며 물러났다. 야안은 이 점만 보아도 왜 귀족들이 그토록 오만한지, 왜 자신 이하의 족속들을 무시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권력에 취한 자는 죽기 전까지 그 미몽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것이 권력이라는 이름이 지금까지 존속할 수 있는 이유이다.’
야안은 예전 어떤 책에서 본 고언이 생각이 났다. 과연 그 말대로다. 세상에 많은 힘이 있지만 이 권력을 향한 탐욕은 그중 으뜸이었다.
하지만 그런 잡념도 잠시, 이내 흩어버리며 야안은 다시 말을 몰았다. 집까지 이제 한 시간도 채 남지 않은지라 그의 마음은 설레 크게 들떴다.
생각 같아서는 마차를 팽개치고 달려가고 싶을 정도였지만, 그 안에는 부모님께 드릴 선물 등도 있기에 그러지 못하는 게 아쉬울 지경이다.
“아! 드디어 보이는구나.”
목책으로 둘러싸인 자신의 마을이 드디어 보였다.
근 세 달 만의 귀환이었다.
군 징집이 시작됐다는 소식을 듣고 마리가 끙끙 앓은 지 벌써 열흘이 될 무렵이었다.
쇼크에 누운 그녀는 그 열흘간 아픈 몸을 이끌고 새벽에 일어나 아리스 님께 아들의 귀환이 늦어지기를 기도했다.
마크 남작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거대한 전쟁. 아들의 미래는 불 보듯 뻔했다.
‘하, 신이시여. 제발 그대가 보내준 어린양을 다시 빼앗아 가지 말아 주십시오.’
그녀의 간절한 기도가 통해서일까?
아들의 귀환이 늦어지고 있었다. 그것이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었지만, 또한 크게 안심도 되었다.
무슨 일이든 전쟁에 끌려가는 것만큼이겠는가? 아들이 살 확률은 오지 않는 쪽이 더 높았다.
그녀는 제대로 식사도 하지 못한 채 아들을 구할 방법을 찾으려 궁리하는 남편의 빈자리를 바라보며 저녁조차 할 의욕도 나지 않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때였다.
들리지 말아야 할 목소리가 귀에 들어온 것은.
“어머니, 아들이 돌아왔어요.”
아들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리자 순간 마리는 헛것을 들었나 싶었다. 하지만 다시금 들려오는 아들 소리에 그녀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어머니, 어머니의 아들이 돌아왔다니까요.”
분명히 아들의 목소리였다. 놀란 마음을 주체할 수 없다는 듯 마리는 잠시 주저앉다 이내 어디서 그런 힘이 일어났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섰다.
과연 아들이 있었다. 마구간에 말을 두고 온 것인지 집 뒤편에서 오는 아들의 손을 잡고 그녀는 주위를 살피며 걸음을 서둘렀다.
“어, 어머니.”
크게 반색을 하며 다가서는 아들이었지만, 그런 감정을 나눌 여유는 그녀에게 없었다. 그녀는 죽을 둥 말 둥 아들을 이끌며 한 손으로는 입에 손가락질하며 아들에게 조용히 하기를 권했다.
집에 들어가기까지 정말 몇 미터 되지 않는 거리였지만 그녀는 너무도 멀게 느껴졌다.
다행히 겨울이라 마을 주위에는 집 밖을 나온 사람이 없었지만, 사람의 일은 모르는 법이다. 그녀는 아들을 집 안에 데려와서야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아들을 살폈다.
고생을 한 탓인지 반쪽이 된 얼굴이 그녀의 가슴을 미어지게 한다. 그래도 그 여정이 나쁘지 않았던지 아들의 성정은 여전히 밝아 보였다.
‘다행이야, 다행.’
정말이지 다행이었다. 오지 않기를 그토록 바랐지만, 그래도 시간이 늦어져 얼마나 걱정했던가? 그런데 무사한 듯하니, 그녀는 아들을 보살펴주신 아리스 님께 감사의 말을 멈추지 않았다.
“어머니, 왜 이렇게 몸이 상하셨어요. 울지 마세요. 제가 죄송해요. 무리해서라도 조금만 더 일찍 왔어야 했는데. 자, 보세요. 어머니가 기뻐할 일이 있어요. 자, 이것 보세요.”
그러며 아들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려 하는데, 그녀는 집 안의 촛불을 끄며 다시금 입술에 검지를 갖다 대며 말했다.
“아들아, 조용히 하렴. 잠시만, 잠시만 기다리려무나.”
그렇게 말하던 그녀는 난로 옆에 둔 식료품 함에서 배낭을 꺼냈다. 그녀는 몹시 불안한 기색으로 몇 번이고 배낭을 꽁꽁 묶어내더니 아들의 가슴에 건네주며 말했다.
“운이 좋았구나. 하지만 오면서 너를 본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니, 조만간 군인들이 찾아올 것이야. 너는 이것을 들고 예전 사냥꾼이 있던 곳으로 가 있으렴. 그곳에 너의 아버지가 몰래 비밀 장소를 준비하셨으니 그곳에서 좀 버티면 된단다. 아! 아니지. 내 정신도. 영문을 모르겠구나. 그래, 그래.”
그렇게 말을 하던 그녀는 감정을 이기지 못해 덜덜 떨리는 손으로 야안의 얼굴을 매만지며 울먹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토록 기다리던 아들인데. 밥 한 끼 제대로 차려주지 못하고 이렇게 보내야 하는구나. 불쌍한 것. 다 이 못난 어미와 아비 때문에 네가 고생하는구나. 나, 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났단다. 그것도 16년 전 영지 전쟁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전쟁이 일어났어. 영주가 결국 군대를 일으켰고, 많은 이들이 징집되었단다. 너도 이제 성인이니 전쟁에 끌려갈 수밖에 없게 되었구나. 너의 아버지가 이리저리 빠져나올 방법을 찾아다니고 있지만 아무래도 가망이 없을 것 같으니…… 미안하다, 아들아. 미안해. 미안…….”
“어, 어머니.”
야안은 가슴이 미어지고 정신이 없어 울먹거리는 와중에도 아들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자신에게 언젠가 돌아올 아들에게 줄 짐 보따리를 건네는 어머니의 마음이 절실히 느껴져 터져 나오는 눈물을 감당하지 못했다.
야안은 그제야 달빛 아래 그을린 어머니의 노쇠한 모습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었다. 조금 전에는 기뻐 제대로 살피지 못했는데, 마치 자신처럼 산속에서 도피 생활을 하기라도 한 듯이 어머니는 크게 야위어 있었다.
‘아, 이 병신 같은 놈. 그깟 물건이 무엇이더냐. 무엇이 그리 두렵더냐.’
이처럼 어머니가, 아버지가 걱정하신 줄 알았다면 모든 것을 내버린 채 달려올 것이었다. 더구나 자신은 세 번의 목숨을 지닌 자가 아니던가? 무엇이 그리 두려웠단 말인가? 소식을 들은 뒤 야루스 산맥을 횡단해서라도 빨리 도착해야 했다.
그는 어쩔 수 없었던 일이었음에도 크게 자책했다. 하지만 그 감정에 무턱대고 휩쓸리지 않았다. 어서 조금이라도 빨리 어머니의 걱정을 풀어드려야 했다.
그는 어머니가 꺼놓으신 촛불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어머니, 슬퍼하지 마세요. 노여워하지 마세요. 그럴 필요가 없답니다.”
그러며 조금 전 꺼내놓은 준귀족 임명장을 풀어 어머니에게 보여 드렸다. 그녀는 아들의 말이 무슨 말인지 영문을 몰라 하다, 아들이 보여준 준귀족 임명장을 읽고 말문을 잇지 못했다.
너무 놀라서인지 눈물마저 쏙 들어갔고, 그녀는 자신이 잘못 읽은 게 아닌가 싶어 몇 번이나 눈을 비비며 임명장을 읽고 또 읽었다. 그녀는 자신의 볼을 꼬집고 그러기를 한참이 지나서야 말했다.
“내가 꿈을 꾸는 것인가? 아! 이건…… 정말…… 믿기지 않는구나. 정말…….”
믿기지 않아 묻는 어머니의 말에 야안은 눈물을 흘리며 미소를 지었다.
“네, 너무 늦어 죄송해요. 어머니, 저는 내일 남작님을 뵙기로 했습니다.”
“아…… 아.”
그녀는 무어라 말하고 싶었지만, 긴장이 일순간 풀려서인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바라보던 야안은 그녀를 꼭 껴 안아주며 마케를 펼쳤다.
몸이 좋지 않아, 힐링과 마케를 연달아 펼친 야안 때문인지 차츰 몸에 활기가 더해지며 마음을 진정할 수 있었던 그녀는 그제야 아들의 몸을 매만지며 다행이라는 말을 버릇처럼 중얼거리며 눈물을 훔쳤다.
조금 전과는 다른 기쁨의 눈물이었다. 제 일보다 더 뿌듯해하며 기뻐하는 어머니를 보며 야안은 코끝이 찡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