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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안-40화 (40/385)

야안 40화

고대의 현명한 왕들은 탈란이 찾아오는 것을 크게 기뻐했다.

그 현명한 왕 중 한 왕이 탈란이 자신의 왕국에 왔다는 것에 크게 기뻐하며 그를 모셔오기를 명했고, 곧 탈란이 왕성에 입성해 이 왕을 기쁘게 했다.

그 왕에게는 한 명의 공주가 있었는데 어릴 적부터 너무 총애하던 터라 버릇이 없었다. 그녀는 이름 높은 탈란이 왔다는 말에 궁금해 다가갔는데 처음 그자를 보고 크게 실망했다.

세상을 밝히는 자라고 하기에는 그 모습이 너무 보잘것없었기 때문이다. 마치 비에 젖은 생쥐 꼴인지라 그녀는 평소의 자신처럼 그의 앞에 다가가 그의 몰골을 비난했다.

“탈란께서는 지독하게 못생겼군요. 그 몰골이라니. 어떻게 당신 같은 몰골을 지닌 자가 탈란이라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공주의 말에 탈란은 미소를 지으며 부정치 않았다. 다만 그녀에게 말하기를.

“제가 듣기로는 이곳의 왕성에서 자랑하는 명주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한데 그 명주는 보잘것없는 토기 따위에 보관된다 하더군요. 왕성에 그것을 담을 고귀한 황금이 넘쳐나는데 말입니다.”

그 말에 공주는 과연 그렇다는 생각에 황금으로 항아리를 만들어 술을 담갔다. 그리고 왕이 벌인 연회에서 금 항아리에 담긴 술을 가져와 바쳤다.

왕도 껄껄 웃으며 금 항아리에서 술을 마셨는데, 얼마 먹지 못하고 술을 뱉어냈다. 그 달콤한 명주가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공주도 놀라 마셔보니 과연 맛이 이상해 술을 뱉어내고 말았다.

공주는 화가 나 탈란에게 소리쳤다.

“당신은 알고 있었어. 황금으로 술을 담그면 맛이 변질된다는 것을 말이야.”

그 말에 탈란이 공주에게 말했다.

“바로 그렇습니다. 아무리 명주라도 토기가 아닌 황금 항아리에 담으면 맛이 변질이 되듯이, 저의 몰골이 이런 것에는 그런 이유가 있습니다.”

지난번 그의 몰골에 비난을 한 것에 대답이라, 그녀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랬다. 지금 이 상황은 그 고사처럼 이 눈앞의 사내는 탈란이고 자신은 공주였다. 당시에 그저 흘려 읽던 이야기가 이처럼 가깝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었다.

“놀랍군. 설마 우리 영지에 그처럼 큰 이점이 있는 줄 몰랐네. 자네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과연 그렇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군.”

그의 말에 그 자리에 있던 가신들은 저마다 야안에게 감탄을 금치 못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정말 놀랍습니다. 확실히 우리 영지는 주위 산맥을 넓히기도, 중앙이나 여타의 대영지에 진출하기도 어려운 위치이나, 가까운 나라의 우리 같은 소영지들과 거래를 하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외국으로 물물교환을 하는 대상도 그렇습니다. 대영주가 아닌 우리와 같은 처지의 영주들에게 특산물을 얻는다니. 그렇다면 거래 시에 밑지는 장사를 하지 않게 될 것이니 이 또한 아주 좋습니다.”

“저는 영지 자체에서 대규모의 공사를 통해 영지민을 받아들인다는 점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과연 일자리가 생기면 사람이 모이는 것이 이치. 결국 그 공사에서 출자한 돈도 우리 영지에 돌아올 테니 크게 생각하면 이득만 있을 뿐, 손해는 없습니다.”

“외국의 특산물로 유혹해 상인들을 불러 모아 시장을 만들겠다니. 과연, 이행만 가능하다면 능히 큰 규모의 시장을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 더불어 다른 곳과 달리 세금을 크게 낮추고 터를 잡는 데 도움을 주어 그들이 머무는 기간을 늘릴 수 있다면 빠르게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한 번 틀어진 물꼬가 가신들의 생각을 조금씩 바꾸고 있었다. 야안의 계획에 따라 조금씩 세세한 부분들이 맞춰졌고, 남작은 그런 그들의 토론을 크게 즐기다 식어버린 음식을 다시 내오라 명하고는 야안에게 다시 물었다.

특히 군사 쪽 관련에 크게 관심이 있어 그는 이 젊고 지혜로운 자에게 그 고견을 듣고자 했고, 야안의 대답은 과연 놀라울 만한 것이었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뛰어난 장수, 잘 훈련된 강병, 그리고 마지막으로 원활한 물자 운송 외의 복지 정책입니다. 이 중 저는 제일로 치고 싶은 것은 세 번째입니다.”

야안의 말에 뛰어난 지휘관이나 장수를 첫째로 치던 남작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물자 운송과 복지 정책이 가장 중요하다? 왜 그런가?”

그 말에 야안이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장수와 지휘관이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물자가 빈곤하면 병사들의 사기를 일으켜 통솔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또한, 아무리 잘 훈련된 강병일지라도 물자 운송이 원활하지 않으면 사기가 떨어지고, 질서가 무너져 결국 오합지졸에 불과한 모습을 보일 뿐입니다.

하지만 병사들에게 후한 복지 정책으로 사후 좋은 대우를 해주기를 약속하면, 오합지졸이라 해도 물러서지 않고 최후의 일인까지 싸울 것이고, 강군이라면 지휘관이 어떤 전술을 내놓아도 훌륭하게 수행할 것입니다.

또한 풍부한 물자 운송으로 주위의 환경 변화를 타지 않고 질 높은 음식으로 배를 채우게 되면, 사기가 떨어지려 해도 떨어질 수 없는 지경이니 전쟁이 길어질수록 병사들의 체력은 강해지며 더욱더 정련된 강군으로 모습이 바뀔 것입니다. 이런 연유로 저는 물자 운송과 복지 정책을 최고로 치고 있습니다.”

마크 남작은 야안의 말이 끝났음에도 아무런 말도 꺼내놓지 못했다.

그만큼 충격이었던 것이다. 야안이 하는 말은 그가 지금까지 쌓아온 전쟁에 대한 인식을 무너뜨리는 것이라 그는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

음식이 새로 나와 탁자 위에 올라왔지만, 그 누구도 그 음식에 손을 대는 이는 없었다. 마크 남작만이 아니라 가신들 또한 야안의 생각에 다시금 크게 놀랐던 탓이다.

마크 남작은 말없이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는 야안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괴물이 나타난 것인가?’

신하가 유능하면 군주는 그만큼 편안하다. 어떤 정책을 추진하더라도 신하가 뒤받쳐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이든 지나치면 좋지 않은 법이다.

신하의 유능함이 군주의 기량을 크게 넘어서면 그때부터 그 관계는 불편해지게 마련이다. 의도한 것이 아니라 해도 신하의 명성이 군주의 명성을 넘어설 것이고, 그리되면 군주는 신하를 제어하기 어려워진다.

마크 벨로치 남작은 생각했다.

이자는 자신의 기량을 뛰어넘을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야안이 내놓은 고견들은 하나같이 산처럼 쌓인 금보다도 귀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스스로 역량이 뛰어나다 생각하는 마크 남작이었지만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아무래도, 이자를 어떻게 할지에 대해 매틀 요한에게 물어야 알 수 있겠구나.’

최근 크게 노쇠하여 어렵게 모신 치료사에게도 가망이 없다는 말을 들은 매틀 요한은 몸이 크게 불편하여 최근에는 영주 성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깨어 있는 시간보다 잠이 드는 시간이 길어 마크 남작과 몇 명의 가신만이 그에게 간단한 고견을 들을 뿐이었다.

남작은 지난 몇십 년간 마크가에 충성한 그를 마지막까지 괴롭히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자신의 소견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결정을 내리자 그는 더 이상 야안에게 묻지 않았고, 그저 사적인 이야기만 나누다 그 연회를 끝냈다.

마크 남작은 끝으로 야안의 직책은 매틀 요한의 고견을 들은 끝에 결정하기로 하겠다고 말을 하고는 가신들을 물렸고, 먼저 자리를 비운 야안 또한 생각보다 마크 벨로치가 뛰어난 자라는 점에서 안도했다.

신하로서 속이 좁은 주군만큼이나 어려운 상대는 없었다. 그런 점에서 마크 벨로치 남작은 겉으로나마 대인이었고, 그가 걸어온 행적을 보면 적어도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할 줄 알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사실 야안이 그에게 선뜻 출사표를 던진 것은 부모님이 여기 있다는 점과 자신의 고향이라는 점 때문도 있지만 다른 여타의 영주와 다른 뛰어난 과단성 때문이다.

믿을 만한 자라면 그 능력을 크게 키울 수 있게 하는 것인데 실제로 이곳 영지의 대부분의 권한을 신하에게 내주기도 했다. 그 점만 보아도 그는 적어도 소인배는 아니었다.

어두운 저녁.

제법 부유한 편인 집 안에는 촛대에 꽂은 촛불들이 방 안이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콜록, 콜록.”

그 방의 한편에 자리한 노인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침 소리에 방 전체가 일렁거렸다. 방 안의 노인 매틀 요한은 자신의 삶이 이제 한 달도 채 남지 않았음을 짐작했다.

‘겨울이라. 쓸쓸하군.’

창밖으로 사늘한 바람 소리가 창문을 타고 들어왔다. 그 소리가 크게 귀에 거슬리는 것을 보면 늙고 병든 자신의 처지가 새삼스럽게 자각되었다.

‘한때는 영원히 젊음이 같이하는 줄 알았는데.’

인간은 그처럼 어리석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젊은 시절 몸도 챙겨야 했다.

다른 때라면 피곤한 몸에 잠이 들 시간이지만 아들이 남작이 찾아왔다며 자신을 깨워 일어났다. 본래라면 행정과 군부의 일에 바빠 정신없는 아들이건만 그 와중에도 자신을 보살피는 아들과 배려를 해주는 남작이 고마웠다.

아들은 남작이 무엇 때문에 왔는지에 대해 설명해 주었는데, 영지에 새로운 관료 시험 합격자가 출사했다는 말에 매틀 요한은 크게 기뻐했다. 더구나 그 합격자가 장원이라는 말에 그는 감탄을 터뜨렸다.

“아! 참으로 좋은 일이구나. 마크가가 진정 일어서려는 모양이다. 어서 이 좋은 소식을 주군에게서 듣고 싶다.”

모처럼 즐거운 소식에 그의 병든 몸에도 활력이 솟아 침대에서 벗어나 옷을 갈아입고 이야기를 들을 준비를 끝냈다.

하지만 방문을 들어서는 마크 벨로치의 안색은 그의 생각과 달리 좋지 않았다.

먹기도 어렵고 버리기도 아까운 야안이라는 존재는 그의 안색이 굳어질 만큼 고민하게 했다. 평소 과단성이 뛰어난 그조차 망설이게 할 정도였다.

그는 매틀 요한이 침의가 아닌 옷으로 갈아입고 예를 표하는 모습에 걱정스럽게 물었다.

“아! 왜 일어서 있는 것이오. 몸도 성치 않은 분이.”

“오늘은 그 정도의 기력이 있어 그럽니다. 그러니 주군께서 걱정 마십시오.”

몇 차례 침대에 누우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아, 마크 벨로치는 고개를 저으며 침대 옆의 탁자에 마주 앉았다.

그렇게 자리를 잡자 연륜이 깊은 매틀 요한은 단번에 주군이 고민하고 있음을 알고 물었다.

“아들에게 간단히 들었습니다. 뛰어난 이가 주군께 출사표를 던졌다는 소식을 말입니다. 한데 주군께서는 무엇이 고민이십니까?”

그 말에 마크 벨로치 남작은 그가 연회장에서 자신과 나눈 대화들을 알려주었다. 매틀 요한은 그 대화 내내 그저 감탄에 감탄을 할 뿐이었다.

그토록 뛰어난 식견이라니.

나이가 들어 경험이 쌓인다면 아주 놀라운 존재가 마일드 왕국에 모습을 보일 것이다. 매틀 요한은 그를 만나보지 않았지만, 남작의 이야기만으로도 어떤 인물인지 짐작이 갔다.

전장에 나가면 대장군감이라 그 위치로서의 몫을 다할 것이고, 안으로는 한 나라를 능히 다룰 만한 재상감이었다.

문무 어디로도 뛰어난 존재. 매틀 요한은 단번에 그의 주군의 고민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지끈거리는 머리로 한참을 고민하다 무겁게 입을 열었다.

“만약 남작님께서 이자를 믿는다면 저를 믿듯이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살아생전에 남작님은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것이고, 남작님의 아들 또한 그리하신다면 능히 변경백의 수장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를 믿지 못하시겠다면 그의 출사를 정중히 거절하십시오. 그리고 크게 호의를 베풀어 남작님과 거리가 멀어 영향을 끼치기 어려운 곳의 영주에게 출사하도록 유도하셔야 합니다.”

매틀 요한의 말에 마크 남작은 눈을 빛내며 물었다.

“앞의 말은 그가 그만큼 유능한 인물이라는 뜻이니 잘 알겠소이다. 한데 뒤에 따른 말은 이해하지 못하겠구려.”

남작의 궁금증을 이해한다는 듯 매틀 요한이 대답했다.

“이유는 앞과 같습니다. 그는 보기 드물게 뛰어난 자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왕성에서 그를 중용한다면, 전장에서는 장수로서 그 위임을 다할 것이고, 안으로는 재상에 준하는 능력을 보일 것입니다. 겨우 열일곱의 나이에 그만한 식견이라면 능히 그럴 만한 재목입니다.

하니 다른 영지에 간다면 그가 있는 영지가 부유해지고 힘이 강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그때 가서는 남작님이 보여주신 호의가 만 배로 돌아올 것입니다.”

“으음.”

매틀 요한의 답변에 마크 벨로치 남작은 긴 신음을 흘렸다. 직감적으로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존재임을 안 것이다.

만약 그를 끌어안는다면 겉으로는 군신 관계를 유지하지만, 안으로는 동등한 입장이라 생각을 해야 했다.

그의 고민을 알아서일까? 삭풍의 거센 바람 소리는 점점 커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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